종교갈등까지 더할 것인가

발행일 2019-05-27 16:45:31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종교갈등까지 더할 것인가

홍덕률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우리는 다른 종교를 가진 이들과 늘 함께 지낸다. 직장이나 사회에서는 물론이고, 한 가족 안에서도 그렇다. 불교, 기독교, 가톨릭, 유교 등 대표적인 세계종교들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전형적인 다종교사회라고 할 수 있다. 종교간 갈등이 테러나 전쟁으로 치달아 숱한 인명을 살상했던 세계 역사를 생각하면, 우리 국민의 지혜에 감탄하게 된다.

그렇다고 평안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한 가족이지만 종교가 달라 힘들어 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 장례나 제사 등 각종 의식을 치를 때 특히 그렇다. 하지만 이는 사인(私人)들 간의 미시적인 갈등이다. 가족 구성원이나 친구들도 성격이나 취미가 달라 때로 갈등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적 영역의 갈등이니만큼 당사자들이 슬기롭게 풀어가야 하는 개인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심각한 종교 갈등도 있다. 다른 종교의 상징이나 시설을 공격하는 경우다. 단군상을 훼손하거나 불교 사찰에 들어가 땅밟기하는 사건 등이 대표적인 예다. 주역은 대개 근본주의 기독교 목회자거나 신자들이었다. 다종교사회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위험한 일이다. 종교의 자유를 부정하는 반 헌법적 행위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일부 신앙인의 개인적 일탈이라고 치부할 수 있었다.

정작 걱정되는 종교 갈등은 따로 있다. 특정 종교와 정치권력의 유착에서 비롯되는 종교 갈등이다. 2004년 5월,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하겠다고 했다. 공인으로서는 심각한 종교 편향이었다. 다른 종교를 갖고 있으면서 똑같이 세금을 내는 서울시민의 입장에서는 용납하기 힘든 발언이었다. 보수 기독교계의 지도자들이 같은 종교를 가진 정치인이나 특정 정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경우도 많았다. 물론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 중에도 비슷한 사례가 없지 않았다. 우리 사회를 심각한 종교 갈등의 수렁에 빠뜨릴 수 있는, 정교 유착의 위험한 사례들이 비일비재했던 것이다.

누구나, 특히 지도자라면 신중해야 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지난 12일이었다.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은해사 법요식에 참석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불교 예식을 거부하는 일이 있었다. 공인의 바람직한 자세와 관련해 논란이 일었다. 그리고 지난 23일, 불교 조계종은 황교안대표를 강하게 성토하는 내용의 입장을 발표했다. 공당의 대표로 자격이 없다는 주장까지 폈다. 그동안 기독교인 정치 지도자들이 보여온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자세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녹아 있는 듯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전광훈 회장이 나섰다. 조계종 지도부가 좌파 아니냐고 했다. 색깔론으로 불교 지도부를 공격한 것이다. 보수 기독교계의 전광훈 회장은 두 달여 전에도 황교안대표를 적극 지지한다고 공개 발언하기도 했다.

잠복해 있던 종교 갈등에 불을 붙인 모양새다. 위험 수위를 넘나들던 종교 갈등이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닫는 형국이다. 한참 감정싸움중인 정치권과 얽혀 촉발된 사건이어서 더 걱정이다.

실마리는 종교간 대화와 관용의 자세에서 찾아야 한다. 누구라도 자신의 신앙에 자부심을 갖는 것과는 별도로, 타종교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아울러 다른 종교들에 대해서도 알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종교사회를 살아가는 국민이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공인이거나 정치권의 지도자라면 더욱 그렇다.

또 하나의 실마리는 정교분리의 헌법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정치와 종교가 유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먼저 종교지도자들은 종교적 영향력을 동원해 정치권력을 창출하려 해서는 안된다. 같은 종교를 가진 정치인이나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종교의 세와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정당이나 정치인들도 종교를 정치나 권력 획득에 활용하려는 유혹을 떨쳐내야 한다. 전체 국민을 위해 공적으로 사용해야 할 정치권력을 자신의 종교를 위해 혹은 다른 종교를 억압하기 위해 사용해서도 안된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사회의 갈등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계층, 이념, 지역, 세대 등으로 갈기갈기 찢겨져 갈등하며 몸살을 앓고 있다.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막대하다. 어느 갈등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데 종교 갈등까지 더해져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위험 수준으로 치닫지 않도록 자중해야 한다. 특히 종교계와 정치권의 지도자들이 스스로를 성찰하며 공존과 관용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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