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가정의 달, 헌신과 희생의 이름으로, (3) 외국인 이주여성 전유경씨, 가장으로서의 삶

발행일 2019-05-09 20:00:00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고된 노동에서 불평불만 한번 없어

-미술에 재능있는 딸 훌륭히 키우고 싶어

“살아가다 보면 좋은 일이 하늘의 별처럼 무수히 많이 있겠죠. 가족과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할 뿐이에요. 가족을 위한 일이기에 전혀 힘들지 않아요.”

베트남 이주여성 전유경(33)씨는 가장으로서 삶의 무게가 힘겹지 않으냐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베트남 호찌민 아래 작은 마을인 가마우마그리오 출신인 전씨는 2005년 남편 신길수(48)씨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의 삶은 상상하지 못했다.

2006년 한국에서 남편과 결혼식을 올린 후 2009년 대한민국으로 귀화해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됐다. 쩐티마이의 ‘전’자와 남편이 지어준 ‘유경’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결혼 초기 한국생활은 그리 힘들지 않았다. 남편은 대구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업에 다녔고, 결혼 1년 만에 얻은 보물 같은 딸은 너무나도 예뻤다.

행복하기만 했던 그의 삶에 시련이 닥친 것은 2017년 남편이 급성심근경색(심장발작)으로 심장 장애 5급 판정을 받게 되면서다.

계단 서너개만 오르내려도 숨이 가빠오는 남편의 몸은 더 이상 회사에 다닐 수 없을 만큼 악화됐다.

전씨는 남편을 대신해 가정을 책임져야 했다. 아이의 양육비와 교육비, 남편의 병원비, 몸이 편찮으신 시어머니까지. 가정을 돌보기 위해 밤낮없이 일했다. 베트남에 계신 부모님에게 적게나마 생활비라도 보내려면 잠자는 시간을 줄여 일해야 했다.

고된 노동에 몸과 마음이 지쳐 볼멘소리할 법도 한데 불평불만 한번 없었다.

시어머니 정분이(70)씨는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있듯 큰소리가 나올 만도 한데 아들 내외는 단 한 번도 싸움을 한 적이 없다”며 “고생만 시키는 것 아닌지 늘 미안하다”고 말했다.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온다는 그녀의 말대로 최근 좋은 일도 생겼다. 남편 신씨가 공공근로 일자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신씨가 주 5일 하루 6시간 공공근로를 통해 버는 돈은 한 달 70만~100만 원 남짓. 첫 월급날은 외식 대신 ‘통닭’ 을 시켜 축하 파티를 열었다.

신씨는 “아픈 몸을 뒷바라지해줄 때마다 너무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며 “잘해주고 싶어도 잘해주지 못하는 몸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전씨에게는 최근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미술에 재능을 보이는 딸을 훌륭하게 키우는 것이다.

그는 집 벽지마다 솜씨를 뽐낸 딸의 그림을 가리키며 “딸이 학교에서 미술대회가 있는 날은 어김없이 상장을 타온다”며 “공부도 잘해 열심히 일해 학원도 보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남편이 빨리 건강해져서 가족끼리 여행도 다니고 추억도 만들고 싶다”고 소망을 전했다.

전유경(왼쪽)씨와 시어머니 정분이씨, 남편 신길수씨가 앉아 있는 소파 뒤로 딸이 벽지에 그려놓은 그림이 눈에 띈다.


김현수 기자 khsoo@idaegu.com
<저작권자ⓒ 대구·경북 대표지역언론 대구일보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