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교육청 학생기자단이 소몽 채기중 선생의 생가에서 후손인 채춘길(80) 어르신을 만나 취재하고 있다.
▲ 경북교육청 학생기자단이 소몽 채기중 선생의 생가에서 후손인 채춘길(80) 어르신을 만나 취재하고 있다.
‘옛 왕국을 회복하기 위해, 의로운 사람들과 사귀었네 죽겠노라 맹세가 하늘과 해를 뚫나니, 오만가지 형벌인들 몸을 사리랴‘

1919년 48세의 일기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직전 소몽 채기중선생이 당당하고 흔들림 없이 쓴 마지막 옥중 시다.

2019년 4월6일 우리들은 소몽 채기중 선생의 생가를 찾아 나섰다.

학교에서 3km 남짓한 곳에 있었다. 늘 무심하게 지나다녔던 길인데 오늘은 너무 안타깝고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젊음과 삶을 바치신 독립운동가의 생가가 가까이 있었지만 한번도 찾은 적이 없었다. 솔직히 우리들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함창에서 상주로 가는 국도변에 초라한 생가 안내판을 따라 가면 농로가 나오고 끝자락에 철길을 건너 왼쪽으로 돌아가면 새로 복원 된 채기중 선생의 생가가 나온다.

바로 앞 철길에는 오늘도 기차가 굉음을 내며 지나간다.

생가는 2005년 인천 채씨 문중과 상주시, 지역민의 도움으로 채기중 선생의 생가터를 매입해 생가를 복원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5년부터 생가를 지키고 있는 후손 채춘길(80) 어르신은 매일 이곳을 찾아 관리하고 계신다. 손자로서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자랑스럽게 이곳을 지키고 있다.

비록 일년에 50여명이 찾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어 고맙다고 하시며 학생기자들을 반갑게 맞아주시고 친절하게 안내도 해주셨다.

그러면서 ‘독립운동을 하면 3대 망한다는 말처럼 이곳에도 아픔이 있었다’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차마 그 내용은 기사로 쓰지 말라고 하시어 안타깝게도 쓰지 않았다.

채춘길 어르신은 “'선조들이 애국심으로 나라를 지킨 것처럼 생을 마치는 날까지 생가를 지키고 선조님 곁으로 갈 것”이라고 다짐하시며 “작년에는 방문자가 50명도 채 안됐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또 우리나라가 지금 존재하는 것은 선조들의 피와 땀 덕분인 것을 알고 애국심을 더욱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전했다.

남해윤(함창고 3학년)은 “우리 지역에 이렇게 훌륭한 독립운동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이렇게 가까이 있었는데도 한번도 찾은 적이 없다는 사실이 부끄럽지만 지금이라도 찾게 돼 다행이다.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자랑하고 애국심도 우리가 본받아야 겠다”고 다짐했다.

채기중 선생은 41세때인 1913년 영주 풍기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무장조직 독립운동단체인 ‘대한광복단’ 을 조직해 무장 독립운동을 펼쳤다. 군자금을 모으고 친일부호를 처단하며 일제에 맞섰다.

선생이 살던 지역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일본군이 주둔하던 곳이고 어려서부터 남의 억울한 일을 보면 참지 못할만큼 의협심이 강했다고 한다. 근대식 교육을 받지는 못하였으나 서당에서 한학을 배워 높은 수준의 한문 실력을 갖줘 무려 76개의 한시를 지을 만큼 한문의 경지가 높았다.

선생은 경상도 영주지역으로 이주한 뒤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는데 당시 영주는 전국서 이주민들이 모여 독립운동을 비밀리에 행하던 애국지사들이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초기의 대한광복단 멤버들은 대부분 사회적 경제적으로 어려운 평범한 사람들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보다 컸던 청년들이였다.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대한광복단의 첫번째 문제는 군자금의 확보였고 이를 위해 선생은 대부호들에게 나라를 위해 의롭게 쓰이는 의연금을 지원하라는 문서를 배부하였는데 당시 식민지 권력에 안주하려는 부호들은 군자금을 내지 않았다.선생은 친일부호를 처단하며 경각심을 고취시켰는데 특히 칠곡의 장승원 처단사건은 친일부호 처단 활동중 가장 유명한 사건이며 친일파들에게 큰 경각심을 주었다.

하지만 그만큼 일본경찰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친일파 박용하를 처단하면서 조직이 발각되어 핵심 멤버들이 체포됐고 선생 또한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았고 1919년 서대문 형무소에서 형장의 이슬로 순국하셨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인정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선생의 옥중 시의 구절 ‘오만가지 형벌인들 몸을 사리랴’

오늘도 선생의 생가터에는 이름모를 들꽃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피어 있다. 우리도 나라를 지키신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애국심을 잊지않고 꽃피워야겠다.

▲ 함창고 2학년 윤재현
▲ 함창고 2학년 윤재현
경북교육청학생기자단

함창고 2학년

윤재현







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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