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예천 육묘장 ‘될성부른 모종 키우는 강소농’||겁 없는 전업주부가 3년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있다. 어릴 적 모습을 보면 앞날을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은 사람은 물론 식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싹수가 노랗다’는 말은 그 반대를 의미한다.

2012년에 제정된 종자산업법에는 ‘종자와 묘의 생산·보증 및 유통, 종자산업의 육성 및 지원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종자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고 농업 및 임업 생산의 안정에 이바지하기위해 5년마다 ‘종자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종합계획’을 수립·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종자에 관해 정부에서 법까지 제정해 관리하는 것은, 그만큼 종자산업의 중요성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귀농 후 육묘사업에 뛰어든 청년 강소농 부부가 있다. ‘예천육묘장’을 운영하는 조상전(39) 대표와 남편 성종규(39)씨가 그 주인공이다. 조 대표는 예천읍 석정리에서 비닐하우스 6동 (3천300㎡)의 육묘장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6천여만 원의 소득을 올렸다.

◆전업주부의 ‘겁 없는 도전’

조 대표는 전형적인 전업주부였다. 다만 남편이 농약 관련 업종에서 일하고 있어 농사가 전혀 낯설지는 않았을 뿐이다.

전업주부의 농사에 대한 겁없는 도전은 우연히 시작됐다. 집에서 다육식물을 즐겨키우던 아내에게 남편 성씨가 “다육이를 잘 키우는데, 새싹도 한번 키워보는 것은 어때?” 라고 별뜻없이 슬쩍 던진 말 한마디가 전업주부를 육묘전문가로 변신시키는 계기가 됐다.

남편 성씨는 채소 묘종을 키우는 ‘육묘’를 이야기했으나, 아내는 집에서 ‘새싹’을 화초처럼 키우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이후 부부는 ‘새싹’과 ‘육묘’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사업적 가치가 충분하다”는 의견일치를 보았다.

마침내 조 대표는 2017년 문경에서 남편의 직장이 있는 예천으로 거주지를 옮긴 후, 곧장 귀농을 하고 육묘사업에 도전했다.

농사경험이 전무한 전업주부 조 대표가 겁 없이 육묘사업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남편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다행히 꽃 키우던 취미와 비슷해 적성과도 맞았다.

귀농 첫해에 고추 8만 그루를 파종해 4만 그루만을 건지는 실패를 맛보았다. 하지만, 부부는 ‘절반의 성공’이었다고 안도했다. 낙담하기 보다는 오히려 농사에 대한 의욕과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6동의 하우스에서 고추를 비롯한 20여 종의 모종을 키우고 있다. 재배는 주로 조 대표가 맡고 있지만, 농약 전문가인 남편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는다.

◆연중 쉴 틈 없는 순환 육묘장

육묘사업은 다양한 종목의 순환 육묘를 하기 때문에 컨베이어벨트처럼 연중 돌아가 쉴 틈이 없다. 겨울에 시작해서 겨울에 마치는 농사다.

1월에서 5월까지는 고추와 호박, 쌈 채소, 땅콩 등 여름작물의 모종을 키운다. 4~6월에는 참깨 모종을 키우고, 8~9월에는 배추, 9~11월에는 양파 모종을 키운다. 혹서기인 7월에는 특별히 주문받은 모종이 없으면 쉰다.

겨울철 양파 모종이 끝나면, 이듬해 고추 모종을 파종할 때까지 약 보름간의 여유 기간이 생긴다. 연중 황금 같은 휴식기다. 이때는 주로 가족여행을 간다. 일 년간 열심히 일한 가족에게 주어지는 휴식이고, 방학 기간에 일손을 도운 자녀들에게 주는 보상이다.

육묘사업은 파종과 관리에 일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기 때문에 전 가족이 힘을 모아야 하는 힘든 일이다. 그러나 파종에서 판매까지의 기간이 짧아, 자금 회전력이 높은 장점이 있다. 월급처럼 매월 소득이 발생하는 농업이기도 하다.

◆청결과 소독이 생명

‘한번 검으면 희기 어렵다’는 속담이 있다. 흰 천에 한 번 검은 물이 들면, 아무리 빨아도 다시 희어지기 힘들다는 뜻이다.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한번 나쁜 것이 물들면 깨끗이 고치기가 쉽지 않음을 교훈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조 대표가 육묘사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신경을 쓰고 있는 분야가 병해충의 감염을 차단하는 것이다.

모종은 한번 병해충에 감염되면, 성장 과정은 물론 농작물의 수확기까지 큰 피해를 본다. 심하면 다음 해 농사에도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감염원의 사전 차단을 위해 병해충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그래서 모든 하우스마다 입구에 소독조를 설치하고, 출입 시 신발에 대한 소독을 무조건 한다. 가족은 물론 견학오는 사람도 의무적으로 소독을 해야만 출입이 된다.

조 대표는 다른 농장을 다녀온 경우, 아무리 바빠도 집에서 옷을 완전히 갈아입고 농장으로 향한다. 건강하고 튼튼한 모종은 재배과정도 중요하지만, 병충해 감염이 없는 ‘무병 모’ 생산이 중요하고, 예방이 치료보다는 훨씬 쉽기 때문이다.

◆특별한 고객들

육묘는 다른 농사와 달리, 한 해 농사의 시작부터 많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육묘는 대부분 계약재배를 하기 때문에 특별한 고객을 많이 만나게 된다.

지난해에는 영양의 토종고추 씨 200알을 가져와 육묘를 주문한 고객이 있었다. “몹시 어렵게 구한 귀한 씨앗이라 전부 살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신신당부 했다.

어떤 농가에서는 청양고추보다 40배나 매운맛이 나는 멕시코 고추라면서 씨앗 10알을 가져오기도 했다. 워낙 매운맛이 강하기 때문에 “잎도 만지지 말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 매운 고추는 근처에만 가도 매운맛을 느낄 정도였다. 매운맛이 너무 강해 장갑을 두 켤레나 끼고 모든 작업과정한 이색 경험도 있다.

다문화 가정에서는 자기 나라 식물의 낯선씨앗을 가져오기도 한다. “고국의 향수를 느낄 수 있게 집에서 키우고 싶다”며 “혹시나 집에서 싹을 내다가 실패할까 봐 겁이 나서 가져왔다”고 부탁하는 사례도 있다.

이런 특별한 고객의 특별한 주문이 들어오면, 한층 더 정성들여 키운다. 나름대로 사연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찰을 단 모종판

육묘는 언뜻 보기에는 쉬워 보이지만, 부담이 큰 농사다. 주문받은 모종을 제때에 튼튼하게 키워서 보내주지 않으면, 남의 일 년 농사를 망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묘기간 뿐만 아니라, 본 포(밭)에 정식을 하고 수확할 때지 긴장해야 한다. 해당 작물의 수확이 완료돼야 마음을 놓는다.

같은 작목이라도 수많은 품종이 있다. 한순간이라도 소홀히 하면, 주문한 종자가 아닌 엉뚱한 품종이 파종될 수도 있다. 파종 이후에는 확인할 방법도 없다. 그래서 조 대표는 6동의 하우스에 작목별, 품종별로 구획을 지어서 육묘한다.

특히 모든 모종판에는 파종 일자와 작목, 품종, 주문자, 생산자, 육묘업등록번호가 인쇄된 라벨을 부착한다.

일일이 라벨을 붙이는 작업은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가지만, 철저한 관리와 고객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문 농가에서도 자기 이름이 부착된 모종판을 보면 훨씬 신뢰감을 가진다.

◆첫해 농사, 절반의 실패

2017년 첫해 농사에서 고추씨 8만 알을 파종했으나 4만 알만 싹이 텄다. 비율적으로는 50%가 발아를 했으니 단순한 숫자만 보면 절반의 성공이었다.

그러나 내막을 자세히 보면 실패한 농사다. 발아율이 50%라고는 하지만, 많은 모종판이 듬성듬성 비어있어 상품 가치가 없는 상품이었다. 누가 모종 판에 듬성듬성하게 자란 묘종을 사겠는가. 발아율이 떨어진 모종판은 모두 폐기했다. 돈으로 환산하면 일천만 원이 넘는다.

그러나 조 대표는 “첫해 농사로는 성공작”이라고 말한다. 언제나 실패를 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좋은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예천군농업기술센터에 의뢰해 실패 원인을 찾아낸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좋은 공부를 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농가로부터 강한 항의도 받았다. 분명히 맵지 않은 고추를 주문했는데, 매운 고추가 달렸다는 것이었다. 원인을 파악하니 유례없는 폭염으로 매운맛이 나는 ‘캡사이신’ 농도가 증가한 것이 원인으로 밝혀졌고, 이후 비가 오면서 매운맛이 없어지는 웃지 못할 일도 생겼다.

◆첨단시설의 육묘장과 체험농장

육묘업은 기후와 하우스 시설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 농사다. 지금의 단동하우스는 병해충의 확산을 막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일손이 많이 가는 단점도 있다.

앞으로 기술력이 축적되고 자금확보 여력이 생기면, 시설확장과 함께 자동화 시설을 갖춘 스마트팜 농장을 만들 계획이다.

날씨의 영향을 최대한 적게 받기 위해 LED 조명을 활용하는 육묘법을 준비 중이다. 첨단자동화시설을 갖춘 연동 하우스 시설이 준비되면, 한층 더 건강한 묘종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농장 홍보를 위해 유휴 농지를 활용하여 고구마와 감자 등의 수확체험과 가정에서 손쉽게 키울 수 있는 작물을 활용한 새싹 모종 체험도 추진할 계획이다.



글·사진 홍상철 대구일보 객원편집위원

경북도농업기술원 강소농 민간전문위원

팜라이터 ilsok@korea.kr



이홍섭 기자 hslee@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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