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칠곡 가시나들’의 현실

발행일 2019-03-17 16:35:25 댓글 0 글자 크기 키우기 글자 크기 줄이기 프린트
홍석봉/논설위원

사랑이라 카이/부끄럽따/내 사랑도/모르고 사라따/절을 때는 쪼매 사랑해 조대/그래도 뽀뽀는 안해밧다/.

맞춤법도 무시하고 소리 나는 대로 쓴 글은 말 그대로 시가 됐다. 동네 저수지를 배경으로 한 사계절 풍경과 옛 향수를 고스란히 간직한 빨래터의 모습 등 서정적 풍경도 볼거리다.

독립영화 ‘칠곡 가시나들’은 경북 칠곡군 약목면의 혼자된 80대 할머니들의 알콩달콩한 삶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한 폭의 서정시를 읽듯 풀어낸 영화다. 이 영화는 지난달 27일 개봉해 독립영화로는 드물게 보름 만에 관객 수 3만7천 명을 돌파하며 어머니와 할머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칠곡 가시나들’은 할머니들이 문맹을 벗어나는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시절 태어나 한글 교육을 받지 못했던 할머니들은 평생 까막눈으로 살아왔다. 80세가 넘어서 비로소 글을 배운 할머니들은 생전 처음 간판 글씨도 읽고 삐뚤빼뚤 시도 쓰고 아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도라서 이자뿌고 눈뜨만 이자뿌는’ 글자지만 알아 가는 재미가 너무 쏠쏠하다.

--80대 할머니들의 회한과 꿈 이야기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이 영화를 관람하고 출연한 할머니들을 응원하는 편지를 보내면서 ‘칠곡 가시나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 영화가 뜨면서 영화 속 주인공들이 사는 칠곡군에 대한 관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영화의 힘이다.

노년의 회한과 인생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는 예전에도 있었다. 봉화에서 팔순 농부와 마흔 살 소의 우정을 그린 영화 ‘워낭소리’가 대표적이다. 2009년 개봉한 ‘워낭소리’는 30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하며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독립영화로는 당시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등 기록적인 관객을 모았다. 영화 제작지는 지금 관광지가 됐다.

영화가 문화콘텐츠로 지역을 알리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인 청송 주산지는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 됐다. 또 영화 ‘허삼관’의 촬영지인 경산 반곡지도 명소가 됐다.

대구도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다. 대구 청라언덕, 불로 고분군, 아양 기찻길, 김광석 길, 도시철도 3호선 모노레일, 국채보상운동 기념공원, 곱창 골목 등이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대구시는 촬영지 섭외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기까지 하다.

--상영관 외면 지역민 못 봐 홍보기회 잃어

‘칠곡 가시나들’은 관객들에게 호평받은 영화다. 하지만 지역 팬들은 이 영화를 보고 싶어도 볼 곳이 없다. 대구와 경북에서는 롯데시네마와 오오극장 및 동성아트홀 등 독립영화전용관에서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초기에는 대구·경북 14곳의 영화관에서 상영했다. 하지만 점점 줄기 시작, 지난주 토·일요일에는 각각 3곳에서 상영하는 데 그쳤다.

제작사는 스크린 배정과 예매 문제를 제기, CGV와 메가박스의 상영을 보이콧했다. 제작사는 배급 및 상영관을 함께 쥐고 있는 CGV가 상영관 숫자도 적게 배정한 데다 조조와 밤늦은 시간 상영 등 홀대하자 반기를 들었다. CGV는 소위 관람객의 선호도가 높고 자사작품 위주로 스크린을 배정한 것이다. 이는 CGV가 평소 독립·예술 영화에 대한 지원 확대를 외치는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돈 되는 영화만 상영하겠다는 장삿속만 보인다.

현재 대기업의 영화 배급과 상영을 분리하는 내용의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 계류 중이다. 빨리 통과돼야 고사 직전의 독립 영화를 살릴 수 있고 ‘칠곡 가시나들’과 같은 사달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좋은 평가를 받는 영화를 돈이 안 된다며 외면하는 것은 기업의 도리가 아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무마저 내팽개쳐서는 안 된다. 하물며 기업들이 각종 ‘갑질’로 눈총받고 있는 마당에서랴.

차선책으로 경북도와 칠곡군이 지역 문화 창달과 지역민들의 문화 향유를 위해 상영관 확보를 지원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일이다.

또한 지자체가 문화예술회관 등 자체 공간을 활용, 지역민들에게 이 영화를 관람토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지역민들의 문화 갈증 해소와 지역 홍보를 할 수 있다면 다각도로 접근해야 한다. 좋은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 수야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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