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원

경제부장

논어 안연편에서 공자는 정치의 근본이 무엇이냐는 자공의 물음에 ‘믿음’이 그 근본이라고 답한다. 공자는 “정치는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足食), 군비를 충족하게 하고(足兵), 백성이 믿을 수 있도록 하는 것(民信)”이라고 말했다. 이에 자공은 “만약에 부득이한 사정으로 이 셋 중에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버려야 하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군대를 버려야 한다.”

자공이 다시 물었다. “만약 둘 중에 또 하나를 또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합니까?” 공자가 말했다. “양식을 버려야 한다. 사람은 언젠가 죽게 마련이다. 하지만 백성들의 믿음이 없으면 정치는 존재할 수가 없다.” 공자의 말은 신뢰가 없으면 백성도 정치도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오늘날 정치인이나 CEO들이 애호하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뜻이다.

신뢰감의 상실은 모든 것을 어렵게 한다. 상인과 소비자가 서로 신뢰할 수 없다면 정상적인 거래가 이루어질 수가 없고, 궁극에 가서는 생산과 소비 모든 것이 침체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노사가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불신감을 쌓아 가면, 그 기업은 퇴보할 수밖에 없다.

기업에서도 CEO와 구성원이 서로 신뢰하지 않을 때, 성장 동력은 상실된다. DGB 대구은행은 지난해 10월 기준 대구·경북에서 수신율 36.2%, 여신율 25%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대구지역에서는 수신율 47.4%, 여신율 28.6%를 차지할 만큼 지역민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그런 만큼 지역민이 대구은행에 거는 기대는 크다.

DGB 금융그룹이 지난달 29일, 10개월째 공석이던 은행장에 김태오 DGB 금융지주 회장을 선임함에 따라 내부 갈등은 일단 봉합됐다. 하지만 김 회장의 겸직으로 그동안 분분했던 이야기들은 물밑으로 들어갔지만,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는 게 금융권 안팎의 중평이다.

DGB금융은 지배구조 개선과 투명성 강화를 위해 지난해 4월 지주 회장과 은행장 분리를 결정했다. 전임 박인규 회장 겸 은행장 시절의 비자금 조성, 채용 비리 등이 권력 집중으로 발생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김 회장의 은행장 겸직으로 지주 회장과 은행장 분리선임 원칙을 은행 이사회와 김 회장 스스로 깼다고 보는 의견도 있다.

일단 대구은행은 리더십 공백을 메웠다. 은행 입장에서는 급한 불은 끈 셈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불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보이지 않는 불은 여전히 내연해 있는 느낌이다. 형식을 갖췄다고 내용이 바로 채워지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다산 정약용은 식(食), 군(軍), 신(信)의 상호 관계에 대해 말했다. 백성의 믿음은 먹을 것과 군대가 바탕이 되어야 생겨날 수 있고, 먹을 것과 군대를 버리고는 믿음이 있을 수 없으므로 이 셋은 서로 분리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산은 백성이 윗사람을 믿는 마음이 없으면 군대가 있어도 환란을 막을 수 없고, 먹을 것이 있어도 백성이 즐기며 살 수 없다고 했다.

상호 신뢰감을 상실한 조직은 구성원 간 사소한 이해 관계에 따라 갈기갈기 찢어지고, 위기 앞에 분열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김태오 행장은 흐트러진 조직을 안정화하고 신뢰감 회복에 노력해야 한다.

10개월간의 은행장 공백은 DGB금융그룹 전체의 경쟁력과 신뢰도에도 타격을 입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취임식에서 김 행장은 ‘권위의식을 버리고 직원과 소통하겠다’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기업문화를 만들어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갈 주인공은 바로 임직원 여러분’이라고 밝힌 만큼 조직의 신뢰 회복에 주안점을 둘 것이란 기대가 크다.

다 같이 살아가는 길은 무너진 신뢰감을 회복하는 길밖에 없다. 대구은행 이사회와 대구은행 제1 노조가 김 회장 행장 선임 결정에 손을 들어준 후 ‘조직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밝힌 사실을 김 회장은 ‘무신불입’의 마음으로 되새겨야 한다.

지역민들은 김 회장이 밝힌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과 내부 혁신 프로그램 운영을 눈여겨보고 있다. 신뢰감은 조직을 안정시키고 조직원의 사기를 높여주는 동시에 지역민에게도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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