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이 휩쓸고 간 만찬상 치우다가//푹 익은 배추김치 두둑한 배짱 테두리만 남은 화덕 피자 자존심 종지복판에 팍 퍼진 초고추장 넉살 접시에 흥건한 샐러드소스 밀착 처참하게 발린 고등어 대가리 집념 밥알 사이 툭 터진 철갑상어 알 허탈 석쇠 귀퉁이에 바짝 탄 삼겹살 끈기 속 빈 바닷가재 집게발 유혹 벗겨지고 찌그러진 양재기 습관 지문으로 얼룩진 양주잔 터득 무기력한 발에 걸리는 빈 소주병 허풍 코르크 마개 둥둥 와인병 안도 막걸리 흘리는 주전자 부리 혼돈 리넨으로 훔친 유리병 주둥이 일탈 엇갈려 널브러진 젓가락 오지랖 고기 자르다 엉킨 나이프 포크 각도 껍데기나 특수부위나 불공평으로 공평한//만찬상 휩쓸어버린 식욕을 경배하다「정음시조5호」(2023, 신우) 정제된 평시조와는 달리 사설시조에서는 형식의 파격을 통해 감정이 표현되는데 이는 형식의 아름다움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의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설시조는 내용 면에서 솔직함, 대담성, 해학성을 그 특징으로 하며 일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주로 다룬다. 표현 면에서는 실생활 소재를 동원하여 비유하고 상징함으로써 진솔한 감정을 생동감 있게 그린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김양희 시인의 ‘껍데기 특수부위’는 주목을 요한다. 평시조로 소화하기 힘든 소재를 질펀한 사설시조로 풀어낸 것이다.만찬상이 끝난 뒤의 어지러운 정황을 집요한 눈길로 포착하여 하고 싶은 말을 남김없이 엮고 있다. 풍자의 총결집이다. 인간의 탐욕스러운 식욕이 휩쓸고 간 만찬상의 전모를 보라. 배추김치에서 두둑한 배짱을, 화덕 피자에서 자존심을, 초고추장에서 넉살을, 샐러드소스의 밀착을, 고등어 대가리의 집념을, 철갑상어 알의 허탈을, 바짝 탄 삼겹살의 끈기를, 바닷가재 집게발 유혹을, 양재기의 습관을, 양주잔의 터득을, 빈 소주병의 허풍을, 와인병의 안도를, 주전자 부리의 혼돈을, 유리병 주둥이의 일탈을, 젓가락의 오지랖을, 나이프 포크의 각도를 숨 가쁘게 연첩으로 보여주면서 질문을 던진다. 무려 시적 정황이 열여섯 가지나 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얼마나 게걸스럽게 먹고 마셨는지를 구체적으로 낱낱이 열거해보인 것이다. 과연 탐욕의 끝은 어디인가? 그런 생각에 잠겨 들게 한다. 결구에서 시의 화자는 껍데기나 특수부위나 불공평으로 공평한 만찬상 휩쓸어버린 식욕을 경배하다, 로 마무리 짓고 있다. 식욕은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경배를 하고 있다는 진술을 통해 화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함축하고 있다. ‘껍데기 특수부위’는 슬며시 돌려서 말하는 조소적인 표현의 한 모델이 될 만한 작품이다. 더욱 절실하게 표현하기 위해 정황이나 대상을 열거하거나 반복하여 제시하고 있는 점이 돋보이기 때문이다.이정환(시조 시인) 김광재 기자 kjk@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