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복대구가톨릭의과대학 명예교수‘우수’를 지나 천지의 물이 풀리고 따스한 남풍이 불 때가 되면 물오른 가지에 꽃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찾아오는 꽃손님은 아련한 향기를 흩트리는 매화일 것이다. 정월에도 다소곳이 피는 납매가 신비스럽다. 안개가 자욱한 ‘섬진강’ 산자락에 핀 하얀 매화 마을은 그대로 선경이다. 노란 산수유도 매화와 함께 들과 산을 장식한다. 남해안과 섬에 자생하는 동백꽃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나 향기를 풍기지 않는다. 문일평의 ‘화하만필’ 과 이상희 저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에 맨 처음 소개되는 꽃은 매화이다.봄꽃 퍼레이드는 산수유와 매화, 개나리와 진달래, 목련, 벚꽃, 유채, 튤립, 철쭉 순으로 팡파르를 울린다. 남해안에서 피기 시작한 꽃의 물결은 북으로 상승해 서울과 중부지역 지역에 도달하는 데는 대략 2주간의 시일이 걸린다. 위도에 따라, 들 또는 언덕, 음지 또는 양지에 따라 개화 시기가 달라진다. 온기와 햇볕, 기상과 지형에 달려있다.3월 말쯤 연분홍 옻 입은 벚나무는 길마다 팔을 활짝 벌리고 환영한다. 붉은 복숭아꽃이 산야를 물들일 때면, 다툼이 없는 곳, 이상향 ‘샹그릴라’에 온 듯하다. 열흘 동안 잔치를 벌이던 벚꽃의 연한 잎이 눈송이처럼 하늘거리며 내려오니 더욱 황홀하다. 하얀 배나무 꽃비 아래에서 ‘이화우 흩날릴 제’를 읊은 명기의 그리움을 알 듯하다. 산중 곳곳에 은근히 피어 있는 분홍빛 진달래는 산을 찾는 이에게 인내의 기쁨을 더하여 준다. 숭고함과 우애를 뜻하는 하얀 순백의 목련화는 그윽한 향기를 선사하고, 자목련은 좀 뒤늦게 고매한 꽃을 피운 후 떨어진다. 4월말 ‘곡우’에 이르면 보드라운 그린 카펫처럼 펼쳐있는 시골 ‘청보리밭’은 젊음의 싱그러움과 신선함을 안겨준다. 봄꽃 퍼레이드의 대미를 장식하는 꽃은 철쭉이라 할 수 있다. 오월, 분홍빛 철쭉 군락으로 장식된 ‘황매산’은 그리스 신들이 노니는 ‘올림푸스’산인 듯하다. 분홍, 홍색, 백색의 영산홍은 도시의 정원과 가로변을 환하게 밝게 한다.인류의 끝없는 사랑을 받는 정물, 꽃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모양과 색깔과 향에 있다고 할 것이다. 꽃 모양은 천차만별이나 모두 대칭과 균형을 갖추고 있다. 기하학적으로 사방팔방으로 대칭인 ‘방사대칭’이거나, 접어서 대칭인 ‘선대칭’이다. 꽃송이를 돌려보거나 접어보면 대칭이다. 인간의 본유관념은 대칭을 자연스럽게 좋아한다. 둘째로 꽃잎의 규칙적인 배열과 질서정연함은 반복에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셋째로 꽃의 천연색깔은 각양각색, 꽃마다 색조가 다르고 순수하고 밝고 선명하다. 더하여 꽃은 연하거나 농한 마력적인 향을 선사한다. 향은 언어 이전의 직접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향의 느낌은 모호한 비유로 표현할 뿐이다. 향을 찾아내는 후각은 오관 중 가장 원시적인 감각으로 감각기관 담당하는 뇌신경 중 첫 번째로 위치한다.인간의 마음을 우주처럼 열리게 하는 꽃들, 백화가 펼치는 만송이 꽃의 퍼레이드 한편에는 꽃에 과민하여 불편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 불청객인 꽃가루 알레르기이다. 콧물과 재채기, 기침을 가져오는 비염, 눈의 충혈과 눈곱이 끼는 결막염, 피부의 두드러기, 가려움, 홍조를 띠는 알레르기성 피부염과 천식 등이 성가시게 찾아온다. 꽃 알레르기의 원인은 대부분 나무의 꽃가루이다. 오리나무, 개암나무, 포플러, 자작나무, 참나무 등의 작고 볼품없는 꽃에서 온다. 야생나무의 꽃은 바람에 의해 수정되는 풍매화로 화분이 작고 가벼워서 바람에 실려 멀리 날아간다. 떠다니는 꽃가루는 사람과 접촉하기 쉽고 집안으로 날아 들어온다. 그러나 봄을 화사하게 장식하는 화초들은 벌과 나비를 매개로 수정하는 충매화이다. 화초의 꽃가루는 크고 무거워 멀리 날아가지 않는다. 꽃에 가까이 접근하지 않으면 알레르기를 피할 수 있다.꽃 알레르기의 대처법은 세 가지이다. 꽃가루와의 접촉을 차단하는 법으로 마스크와 옷으로 노출 부위를 줄이고, 농도가 진한 날은 외출을 삼가고, 집의 창문을 닫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알레르기 증상을 예방 또는 완화하는 법으로 약물을 사용한다. 항히스타민 제제와 스테로이드 제제를 분무하거나 복용한다. 세 번째는 면역계를 둔화시키는 ‘탈감작 요법’을 받는다. 의료기관에서 알레르기의 원인을 분석하여 찾아내고 소량에서 점차 양을 증가하면서 투여해 면역계 예민한 반응을 낮추어 가는 치료법이다. 김창원 기자 kcw@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