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로 만나는 경북의 문화재…상주 퇴강성당

상주시 조암산 자락 아래, 낙동강의 옛 물미 나루터에 자리잡은 ‘퇴강성당’.퇴강성당(경북 상주시 사벌국면 퇴강리 398)이 상주의 수많은 문화유산 가운데서도 늘 빠지지 않는 건 고딕양식의 붉은 벽돌 건물 때문만은 아니다. 선교사 없이 신자들 스스로 천주교를 받아들일 정도로 신앙 활동이 활발했던 곳으로도 유명하기 때문이다.44명의 성직자와 15명의 수도자를 배출해 경북지역 천주교 신앙의 중요 거점으로 인정받는 등 명실상부 천주교 신앙의 중심지인 것이다.1956년 재건립된 퇴강성당의 본당과 사제관 건물은 지역 천주교회의 역사와 건축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손꼽히고 있다.지역 천주교의 역사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성당이라는 점과 고딕 양식으로 이뤄진 근대 건축물 등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경북 문화재자료 제520호로 지정되기도 했다.퇴강성당 신자들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시각으로 성당을 바라볼 때 비로소 그 종교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고들 한다.한적한 시골마을에 붉은 벽돌로 뒤덮인 채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퇴강성당을 찾아 떠나보자.◆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성당퇴강성당은 1903년 상주 사벌면 퇴강리 물미마을에 공소성당이 설립된 후, 1922년 본당으로 승격됐다.이후 신자 수가 줄어 다시 공소(본당보다 작아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고 순회하는 구역의 천주교 공동체 및 천주교건축물)로 유지되다가 2003년 준본당으로, 2007년 본당으로 재승격됐다.특이하게 해외 선교가 아닌 마을 주민들이 자진해서 천주교를 받아들이며 본당으로 정식 승격됐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초창기 천주교 유입과 닮아있어 지역 주민들이 갖는 천주교 신앙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지금도 성당 인근 마을 주민의 80% 이상이 성당을 찾고 있다.퇴강성당의 출발점은 1899년.당시 퇴강마을 주민 3명인 김운배(세례명: 호노리오), 김종록(세례명: 클레멘스)와 최면집(세례명: 말딩)은 가실 본당 문경 공소에서 세례를 받으면서 지역의 첫 신앙 공동체를 이루게 됐다.이후 마을의 친지와 가족, 이웃들에게도 천주교 신앙이 전파되면서, 자연스레 마을 이름을 딴 ‘물미 공소’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1930~1940년에는 본당과 관할 공소 천주교 신자만 1천여 명이 넘을 정도였다.하지만 1968년 안동교구 함창성당 관할 공소로 예속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경제 개발과 산업화로 인한 이농 현상으로 신자 수가 급속도로 줄어들게 되면서다.현재 퇴강성당은 대략 300~400명의 신자 가운데 60세 이상이 전체의 40%에 육박하는 고령화 본당이 돼가고 있다역대 본당 신부로는 1922년 본당의 제1대 신부인 이종필(마지아) 신부를 시작으로 제2대 이성인(야고보) 신부, 제3대 정수길(요셉) 신부를 거쳐 현재에는 제12대 박재식(토마스) 신부(2013년~현재)가 주임 신부로 임하고 있다.2007년 본당으로 재승격한 후 3명의 수녀를 배출했다.제1대 정요한(황아가다) 수녀, 제2대 최아가다(이발바라) 수녀, 제3대 고재노베파(김베드로) 수녀다.◆고딕 양식의 근대 건축물퇴강성당은 지역 천주교회 건축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꼽히고 있다.무엇보다도 1950년대부터 본당과 사제관이 잘 보존돼 있어 근대 건축물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높다.특히 본당은 높은 첨탑을 상징하는 12세기 이후 중세 서유럽의 건축 양식인 고딕풍의 붉은 벽돌 건물로 건립돼 수직 효과를 강조했고 천국에 닿고 싶어 하는 신자들의 소망을 잘 드러내 문화적인 가치를 지닌 지역 명소로도 유명하다.첨탑 뿐 아니라 성당 본당 건물은 입면과 평면 구조물이 독특하다.외벽은 콘크리트 기초 위에 벽돌을 쌓은 ‘영식 쌓기’를 이용해 고딕 양식을 잘 표현했고 평면은 남‧북으로 긴 장방형(내각이 모두 직각이면서, 정사각형이 아닌 것)의 ‘단랑식’(측량을 없앤 폭 넓은 구조)으로 돼 있어 눈길을 끈다.줄기둥의 아케이드(기둥으로 지탱하는 아치 또는 반원형의 천장 등을 연속해 건축한 구조물) 천장도 근대 건축물이 주는 아름다운 멋을 뽐내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본당 남쪽 정면의 주 현관 바로 앞에는 성모 마리아상이 있다.성모 마리아상을 기준으로 현관을 바라보면 첨두형 아치 형식(예각으로 이뤄진 아치로 고딕식 아치형 천장의 특징)의 주 출입구가 눈에 띈다.또 부 출입구에는 나르텍스(초기 기독교 시대 성당 정면 입구와 본당 사이에 꾸며 놓은 좁고 긴 현관)가 위치해 본당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세례를 준비하는 사람들과 회개하러 온 사람들을 모두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나르텍스 중앙 상부에는 8각의 첨탑을 둔 1개의 종탑이 있다.삼종기도(오전 6시, 낮 12시, 오후 6시)를 알리기 위해 쓰이는 종탑은 평소 전등을 달아 야간에도 성당 건물을 비추는 방식으로 사용되기도 한다.종탑의 유‧무에 따라 성당의 빛 공해도가 달라질 정도다.본당의 창문도 붉은 벽돌을 이용해 반원형 아치 형식으로 장식됐다.벽면의 플라스터(석고, 회반죽, 흙 따위를 물로 개어 바르는 데 쓰는 재료) 기둥 사이에 벽돌을 이용한 인방(창, 출입구 등 벽면 개구부 위에 벽을 지지하는 나무 또는 돌로 된 수평재)과 창문틀을 만들어 창을 달았다. 건축물의 상부 무게를 버티면서 멋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주겠다는 의미다.스테인드글라스(색판 유리조각을 접합시키는 방법으로 채색한 유리판) 유리창도 고딕 양식의 특징을 전형적으로 잘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특별한 유물과 관광 자원이 있지 않더라도 건축물이 주는 모던함과 감각적인 조형미, 웅장한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성당의 전형을 퇴강성당은 갖고 있는 것이다.◆퇴강성당의 정신을 이어가다퇴강성당의 주보성인(가톨릭 신자 개인 또는 단체나 성당을 보호하며 하느님께 기도하는 수호자)은 ‘성모 마리아’다.퇴강성당은 성모 마리아가 죽은 후 육체도 영혼과 더불어 승천했다는 가톨릭의 교의(성모승천)를 믿으며 현재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퇴강성당의 정신은 예수가 사형 선고를 받은 후 십자가에서 숨지고 땅에 묻힐 때까지의 수난을 기억하는 14처의 기도에서 엿볼 수 있다.본당을 지나 성지순례 코스를 따라가다 보면 14개 비석으로 이뤄진 14처가 보인다.신자들은 이 곳을 순서대로 돌며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가 주는 역경을 기념하며 묵상을 하거나 ‘주모경’(주님의 기도와 성모송) 기도를 한다.1999년 퇴강성당 신자들은 천주교 봉도전교 100주년 기념비를 설립하며 선대들이 이어 온 천주교 신앙을 되새겼다. 100년 전 하느님의 백성이 된 선대 신자들의 영세 기념을 통해 하느님을 봉도하게 된 큰 은총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는 것이다.이들이 전하고 싶은 퇴강성당의 정신은 이 곳을 찾는 손님들에게 교회의 역사와 과거의 신앙적 역할을 알리고 성당을 미래의 성지로 개발하는 등 진실된 신앙생활을 통해 신자들 간 평화롭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한다는 것이다.2012년 성당 내 낡은 교육관을 허물고 새로운 교육관을 재건축할 때도 전문 기술이 필요한 요소를 제외하고는 모든 공사를 신자들의 손으로 직접 해냈다는 점에서 남을 배려하고 봉사하는 마음이 평소 신자들의 몸에 배어 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또 2014년부터 상주시와 함께 어르신 사랑방학교와 시골 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주민들과 소통하고 지역 문화 발전을 위해 일하는 종교의 모습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그래서일까. 퇴강성당에 대해 신자들이 만나자마자 얘기하던 “현재가 아니라 과거의 시각으로 바라보라”는 말 속에는 성당이 발원할 때 신자들이 가졌던 믿음과 지역사회와의 공존이 과거의 시각부터 현재까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하늘의 모후여, 우리를 보호하소서’라는 천주교 신앙의 토대가 조용하지만 힘있게 살아 숨쉬는 곳이라는 것도. 이동현 기자 leedh@idaegu.com

대구·경북 고교총동창회 (30) 청도 모계중·고

청도군 화양읍에 자리 잡은 모계 중·고등학교는 아버지 김용희 선생의 유지를 받아 김경곤이 충효를 배경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정직하고 창의적인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설립한 학교다. 교훈은 ‘강(剛), 애(愛), 창(創)’이다.먼저 문을 연 것은 모계중이다. 모계중은 모계고보다 6년 앞선 1947년 개교했다.모계고는 1953년 4월8일 문교부로부터 6학급 설립인가를 받아 문을 열었다. 같은 해 7월에는 청도농업고등학교를 인수하고, 1955년 2월26일 26명의 제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개교 당시 남녀공학이었지만 1974년에 남자고등학교로 바꿨다가 2007년 신입생부터 다시 남녀공학이 됐다.1984년 학력 우수 학교로 경북도교육감 표창을 받았다. 1987년 원거리 학생들을 위한 독서실을 건립한 것을 비롯 여러 차례 교실과 기숙사를 신축하는 등 지역 인재 육성에 기여했다.활발한 교육활동으로 2008년 1지역 1명문교 육성 지역 중심학교 선정에 이어 농산어촌 명품고 지정(2011, 2015), 경북교육청 기관평가 5회 연속 우수고 선정(2010~2014), 과학교과 중점학교(2017~2019), 과학·예술·체육 융합교과 중점학교(2020~2023)로 선정됐다.현재 15학급에 남학생 186명, 여학생 152명이 재학 중이다. 52명의 교직원이 학생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열정을 다하고 있다.지난 2월 66회 졸업식까지 총 9천489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최근 130여 명의 졸업생 가운데 20%의 학생이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등 수도권 대학과 지역 국립대에 진학하며 지역의 명문고로 자리 잡았다.◆설립배경모계학원의 설립자는 김경곤이다.그는 청도군 이서면에 있는 자계서원을 중건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구휼미를 내놓는 등 교육과 사회사업에 앞장 선 김용희 선생의 아들로 아버지의 뜻을 이어 1947년 모계중을 1953년에는 모계고를 설립했다.김경곤 선생은 학교를 설립할 당시 “36년 동안 일본으로부터 온갖 착취를 당하고 특히 전쟁 동안 땀 흘려 경작한 식량까지 모두 다 빼앗긴 처지”라며 “배움에 굶주렸던 자녀들을 위해 교육비를 염출하기도 어려운 군민들을 위해 무상교육을 실시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자신은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나라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인재를 육성하는 일임을 통감하고 청도에 중·고등학교를 설립한 것이다.◆모계중·고 총동창회모계중·고를 졸업한 2만여 명의 동문은 끈끈한 정을 나누며 학계와 정·재계 등 우리사회 각 분야에 진출해 ‘강, 애, 창’의 교훈을 실천하며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모계중·고 총동창회는 1954년에 김영수(중 1회) 초대회장을 중심으로 창립했다.17대까지 이어온 총동창회는 모교장학제도를 조성하면서 청도를 중심으로 대구, 부산, 서울지구에 조직을 두고 있다.1981년부터 1986년까지 학교 화재 복구 사업을 도왔으며, 1997년엔 개교기념 50주년 행사와 모계학원 50년사를 발간하고 기숙사 건립을 주관했다.2007년엔 개교 60주년을 맞아 동문의 마음을 담아 교훈 석을 기증하고 제막식을 진행했다.총동창회는 매년 학도병을 기리기 위해 6·25참전 학도병 충훈 비에서 재학생들과 함께 학도병 추념식을 갖고 있다.총동창회 명부인 ‘모계인’을 2016년에 만들고 이듬해 모계학원 70년사를 발간했다. 70주년 행사에는 은사를 초청해 모계인 금배지를 전달하기도 했다.지난해 10월 출범한 17대 총동창회는 김준곤 회장(22회)을 중심으로 박영훈(23회) 수석부회장, 이재동(26회)·피문찬(27회)·손영우(31회)·최동열(32회)·이철승(38회) 부회장, 서울지구 이종철(21회)회장·박용출(27회) 총무, 부산지구 박태열(21회) 회장·이길우(32회) 총무·김근영(32회)사무국장, 양경식(27회)·이승경(32회) 감사, 공경돈(33회) 총무감사 등으로 구성돼 있다.◆모계중·고 총동창회 활동청도라는 지역적 동질감과 끈끈한 정으로 뭉친 총동창회는 다양한 친목도모와 활동을 통해 모교를 후원하고 있다.청도지구 동창회는 매년 봄과 가을에 모교에서 가족체육대회를 진행하고 있다.2017년 총동창회 이름으로 모교 발전기금 조성 운영위원회를 발족하고 모교에 정기적으로 장학금과 학교발전기금을 지원하고 있다.여기에는 학령인구 감소와 어려운 학교 실정에도 재학생들이 자긍심을 갖고 공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하는 선배들의 마음이 담겨있다.◆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동문들모계중·고는 중학교 71회(졸업생 1만3천260명), 고등학교 67회(졸업생 9천489명) 등 2만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이들 동문은 군수와 군의회 의원, 군 장성, 교수, 변호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역 발전의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다.정계 진출 동문으로는 김상태(1회) 전 자유중국 대사, 이원동(13회) 전 청도군수, 이승율 현 청도군수 등이 있다.재계 동문에는 귀뚜라미 보일러 최진민(7회) 회장, 한국콘도 장영기(9회) 회장, 현대제철 홍성수(24회) 부사장 등이 대·중소기업에서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군 출신 동문은 월남참전 용사인 고 이인호 소령(1회), 전 공군 준장 정재식(1회) 장군, 전 육군 소장 공병감 이석윤(1회) 장군, 전 육군 군수사령관 이상돈(21회) 장군 등이 있다.법조계 동문은 현 총동창회장으로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김준곤(22회)·김정우(23회, 부산)·이인구(24회, 김천)·최창덕(26회, 대구)·김태관(40회, 서울)·조래정(41회) 변호사와 전 서울고검 수원지검 박동진(26회) 검사 등이 있다.학계에서 활동하거나 활동 중인 동문으로는 전 제주교대 성주현(1회) 교수, 전 경북대 이중우(5회) 교수, 한국학 중앙연구원 김건곤(23회) 부총장, 전 대구한의대 김주곤(2회) 교수, 전 동아대 김민남(6회), 대구예술대 김영욱(25회), 현 경북대 이세욱(41회) 교수 등이 있다. 예술계에는 한국 현대시조의 거장 민병도(20회) 시인과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재불 화가 이배(23회) 화백 등이 있다.◆김준곤 모계중·고 총동창회장 인터뷰모계중학교 22회 졸업생으로 지난해 10월 모계중·고 총동창회 17대 회장에 취임한 김준곤 회장은 “코로나19 영향으로 취임식과 입학식도 참석하지 못하고 체육대회 등 각종 행사를 진행할 수 없어 많은 동문을 만날 기회가 적어 아쉽다”고 말했다.김 회장은 지난 6월18일에 취임 후 첫 동창회 회의를 가졌다.총동창회 발전 방안에 대해 그는 “동창회원들과 의견을 조율해 봐야겠지만 당장 가을에 열리는 동창회 행사 중 외부가수 초청비를 줄여 후배들을 위한 장학기금을 추가로 마련했으면 좋겠다”며 “총동창회가 지급하는 장학금 액수가 적은 것 같다는 생각에 내년에는 장학금 액수를 올릴 생각이다”고 밝혔다.그는 자랑스런 동문을 묻는 질문에 주저 없이 이상돈 군인공제회 13대 이사장을 꼽았다.이 전 이사장은 육사 33기로 육군군수사령관(중장)을 지냈다.김 회장은 “농촌의 학교들이 자꾸 없어지고 있어 조마조마하다”며 “모교가 남아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동문들도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그는 “설립자의 창학이념을 더 많은 후배들이 배우고 가슴에 새길 수 있도록 총동문회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겠다”고 덧붙였다. 김산희 기자 sanhee@idaegu.com

두경부암을 바로 알기

머리와 목에서 생기는 모든 암을 ‘두경부암’이라고 하며 후두암의 빈도가 두경부암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가장 많다.그 밖에 구강암(입술, 구강), 구인두암(연구개, 편도), 비인강암(비강의 뒷부분), 하인두암(식도 입구부) 등이 있다.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다빈도암(5대 암) 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목에는 중요한 혈관과 신경들이 지난다.따라서 항상 두경부암을 치료 할 때 이런 중요한 구조들을 보호하며 치료 계획을 세워야 한다. ◆두경부암을 일으키는 원인은?다른 암들과 마찬가지로 두경부암을 일으키는 원인은 담배와 술이다.많은 객관적 연구에서 술과 담배를 동시에 접하는 경우 두경부암의 발생 위험도는 술과 담배를 별도로 접할 때 보다 몇 배 더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증상이 있을 때 병원을 찾아야 하나?암의 발생 위치에 따라서 증상이 다르다.가장 흔한 후두암의 경우는 목소리 변화이다.음성을 많이 사용해 목소리가 변한 경우는 보통 1주일 내로 회복된다.하지만 특별한 원인 없이 3주 이상의 목소리 변화가 있다면 반드시 이비인후과 진료가 필요하다.구강, 구인두, 하인두(식도입구부)에 암이 생길 경우 침을 삼키거나 음식을 드실 때 심한 통증(바늘로 찌르는 듯한)이 동일한 부분에 반복적으로 생긴다.비인강(비강의 뒷부분)에 암이 있을 경우는 코가 막히거나 고막 안쪽에 물이 차서 귀가 먹먹해 지기도 한다.또 상당수의 환자가 병원을 찾는 증상은 목에 만져지는 ‘덩어리’이다.목에 덩어리가 만져질 때 1주일 안에 전신증상(발열, 무력감등)을 동반한 경우라면 염증일 가능성이 많고, 말랑 말랑하면서 통증이 없고 수년간 가지고 계신 목덩이라면 낭종(물주머니)의 가능성이 크다.주의해야 할 목덩이는 수 주~수 개월에 걸쳐 커지면서 딱딱하고 통증이 있고 고정(손으로 앞뒤로 만졌을 때 목덩이가 움직이지 않을 때)된 경우 반드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임파선 전이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즉 첫 증상이 목덩이(임파선 전이)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두경부암 진단을 위해 어떤 검사를 하나요?두경부암의 진단은 조직검사와 영상검사로 한다.조직검사는 암을 확진하기 위해 시행하고 영상검사(CT, MRI, PET 등)는 진단과 치료방법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조직검사는 보통 두 가지 종류로 나눈다.암이 눈으로 직접 보일 경우는 펀치생검(punch biopsy)을 시행해 두경부암의 종류를 확진 하며, 전이된 경부 임파선은 세침흡인검사(fine needle aspiration)를 한다.두경부암은 하부호흡기 폐와 연결돼 있고 소화기인 식도, 위와도 연결돼 종종 폐암, 식도암, 위암 등과 동시에 생기는 중복암(double primary cancer)의 빈도도 높아 위내시경과 폐CT를 진단 시 시행하기도 한다. ◆두경부암의 효과적인 치료는?두경부암의 치료는 수술적 치료와 비수술적 치료로 나눌 수 있다.비교적 초기 암일 경우 수술 단독, 항암 방사선치료 단독으로 치료 가능하나 진행된 병기에서는 수술과 항암방사선의 병합치료가 필요하며 병합치료를 할 경우 그만큼 치료 후유증이 증가하므로 조기에 발견해 빨리 치료를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두경부는 말하고 음식을 씹고 삼키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 부분이고 또 목 주위에 중요한 혈관과 신경이 지나므로 치료에 있어 치료 후 생길 기능장애를 항상 염두에 둬야 하다.예를 들어 후두암 초기일 경우 성대 레이저절제술로 치료 할 수도 있고 방사선치료를 단독으로 시행할 수도 있다.레이저 절제술은 전신마취로 한쪽 성대를 절제하는 수술로 입원기간은 짧으나 술 후 약간의 허스키 목소리가 발생할 수 있다.반면 방사선치료는 목소리보존은 레이저절제술 보다 유리하나 치료 기간이 두 달 정도 걸리는 단점이 있어 두 가지 치료 중 어떤 방법이 환자분께 유리 할까 항상 고민하며 치료하는 부분입니다.최근에는 두경부암의 치료에 로봇수술이 도입돼 기능 보존도 하면서 암의 완전한 절제도 가능하고 입원기간도 많이 감소됐다.하지만 모든 환자 모든 암에서 모두 로봇 수술이 적용 될 수 는 없고 일부 제한된 암 환자에서 적용되는 치료법이다. ◆두경부암을 예방하려면?반드시 담배와 술을 멀리해야 한다.모든 암이 담배, 술과 연관돼 있지만 두경부암은 특히 연관이 많으므로 금연과 금주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3주간의 목소리 변화, 수 주간의 크기가 증가하는 주변조직과 고정돼 움직이지 않는 목덩이, 침이나 음식을 삼킬 때 찌르는 듯한 통증, 동일한 부분에 소실되지 않고 반복되는 구내염이 있을 경우 이비인후과 전문의와 상담이 필요하다. 도움말=계명대 동산병원 이비인후과 여창기 교수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73) 흥륜사 금당십성-혜공과 혜숙

혜공과 혜숙은 같이 신라 십성으로 손꼽히고 있지만 일반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특히 혜숙은 더 그렇다. 그렇지만 두 성인은 도력이 높아 일반 백성의 눈에는 기이하게 보이는 삶을 살았으나 불교적으로 큰 업적을 남겼다.신라시대에는 화랑이나 당나라 유학을 다녀온 스님들이 출세할 수 있었던 시대로 읽혀진다. 천 년이 지나도록 이름이 전해지는 인물들의 이력에는 화랑이나 당나라 유학 등의 이력을 흔히 볼 수 있다. 혜숙 스님은 화랑 출신으로 주변 인물들에게 몸으로 깨우침을 주었다.혜공 스님과 원효대사가 도력을 시험하는 이야기는 설화로 전해 내려오며 오어사라는 사찰 이름까지 남겼다. 기행을 일삼았던 신라십성 혜숙과 혜공 스님의 이야기를 더듬어본다.◆삼국유사: 혜숙과 혜공의 삶-혜숙 스님은 호세랑의 무리에 섞여 지냈다. 혜숙이 자취를 감추자 호세랑은 화랑의 명부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버렸다. 혜숙은 적선촌에 은거해 20여 년을 보냈다.때마침 국선인 구참공이 교외에 나가 사냥을 하게 되었다. 구참공이 가는 길가에 혜숙이 나와 말고삐를 잡으며 “저 또한 따라가고자 합니다. 괜찮겠습니까”라고 말하자 공이 허락했다.사냥하는 무리들은 이리저리 치달으며 옷소매를 걷고 서로 앞서거니 요란스러웠다. 공은 흐뭇했다. 잠시 쉬면서 여러 줄로 앉아 고기를 삶아 다투어 먹고 권하고 했다. 혜숙 또한 더불어 씹어 먹는데 꺼려하는 빛이 없었다. 그러다 구참공의 앞에 나아가 “이제 이보다 더 좋고 신선한 것이 있으니 바칠까요”라고 하니 “그래, 좋다”고 했다.혜숙은 사람들을 물리고 허벅지 살을 베어 쟁반에 올려 바쳤다. 피가 흘러내려 옷을 적시고 있었다. 공은 깜짝 놀라 “어찌 이다지 지독한 짓을 하는가”라고 물었다.“처음에 저는 공을 인자한 사람이며 만물과 통할 수 있는 분이라 여겨 따랐을 뿐입니다. 지금 살펴보니 공께서는 죽이는 데에만 온통 푹 빠져 있으시고, 남을 헤쳐 자신만 살찌우려 하니, 어찌 군자가 할 짓이겠습니까? 우리들은 그렇지 않습니다”고 꼬집고는 옷을 털고 가버렸다.공은 대단히 부끄러워졌다. 혜숙이 먹던 쟁반을 보니 생고기가 그대로였다. 공은 매우 이상히 여겨 조정에 돌아와 아뢰었다. 진평왕이 이 말을 듣고 사람을 보내 찾아 들이도록 하였다. 혜숙은 부녀자의 침상에 누워 자고 있었다. 사신이 더럽게 여기고 7~8리쯤 돌아오는 길에서 혜숙을 만났다. 어디서 오느냐고 물었다.“성 안 우리 신도 집의 칠일제에 갔다가 파하고 오는 길입니다.” 그가 말한 대로 임금에게 아뢰었다. 그 신도 집에 사람을 보내 조사해 보니 사실이었다.얼마 있지 않아 혜숙이 갑자기 죽었다. 마을 사람들이 이현의 동쪽에 묻어주었다. 마을 사람 가운데 하나가 이현의 서쪽에서 오다가 도중에 혜숙을 만나 어디 가는가 물었더니 “이곳에 너무 오래 머물러 다른 지방에 가고자 하네.”서로 절을 하고 헤어졌다. 반리쯤 갔는데 구름을 타고 멀어졌다. 그 사람이 이현의 동쪽에 이르러, 장례를 치르던 사람들이 아직 흩어지지 않은 것을 보고, 있었던 일을 말했다. 무덤 안을 보니 오직 가죽신 한 짝만 있을 뿐이었다.지금 안강현의 북쪽에 절이 있는데 이름이 혜숙사이니 그가 거처했음을 말한다. 또한 부도가 있다.-혜공 스님은 천진공 집안의 허드렛일을 하는 노파의 아들이었다. 어려서의 이름은 우조였다.천진공이 일찍이 등창이 나서 거의 죽게 되자 문병하는 사람들이 길거리를 메울 정도였다. 이때 우조의 나이 일곱이었다. 우조는 어머니에게 공의 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라 말하고 공의 침실로 찾아가 저절로 병이 낫게 했다.우조가 커서 공의 매를 길렀는데 공의 뜻에 꼭 들어맞게 일을 하는 모습을 보고 공은 우조가 성인임을 늦게야 깨달았다.“내가 지극한 성인이 우리 집에 맡겨진 것을 알지 못하고 헛말과 비례로 더럽히고 욕되게 하였구나. 그 죄를 어찌 씻겠는가? 이후로는 인도자가 되어 저를 이끌어 주소서.” 그리고는 내려와 절을 했다.신령스런 이적이 드러나면서 출가해 승려가 되었고, 이름을 혜공이라 했다. 혜공은 작은 절에 머무르며 미친 듯이 크게 취해 삼태기를 지고 거리에서 노래를 불러댔다. 그래서 부궤화상이라 불렀다. 거처한 절도 그런 까닭에 부개사라 했다. 이는 삼태기의 신라 말이다.또 절의 우물 가운데 들어가 몇 달 동안 나오지 않기도 했다. 나올 때면 언제나 푸른 옷을 입은 신동이 먼저 솟구쳐 나왔기 때문에 절의 승려들이 이를 보고 나오리라는 신호로 알았다. 그렇게 나왔는데도 옷이 젖지 않았다.늘그막에는 항사사로 옮겨 머물렀다. 그때 원효가 여러 경소를 찬술하면서 스님에게 와서 의심나는 곳을 묻곤 했다. 간혹 서로 장난을 치기도 했는데 하루는 두 분이 시냇물을 따라가다 물고기를 잡아 구워 먹고는 돌 위에 똥을 누었다. 스님이 그것을 가리키며 희롱하듯이 “자네는 똥인데 나는 물고기 그대로야”라고 외쳤다. 이로 인해 오어사(吾魚寺)라 이름 지었다.또 하루는 새끼줄을 꼬아 영묘사에 들어가 금당과 좌우의 경루 그리고 남문의 회랑 둘레를 묶었다. 강사에게 이 새끼줄을 3일 뒤에 거두라고 일러두었다. 강사는 이상히 여기면서도 따라 했다. 드디어 3일이 지나 선덕여왕의 가마가 절 안으로 들어오자 지귀가 불을 질러 그 탑을 태우는데 오직 새끼줄로 묶어둔 곳만은 화를 면하였다.신령스런 자취가 자못 많았으며 마지막에는 공중에 떠서 입적을 알렸다. 사리는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았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혜공과 원효의 도술 시합혜공은 부궤화상이라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녔다. 삼태기를 짊어지고 시장바닥이든 야산이든 가리지 않고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다가 아무 곳에서 코를 골며 잠을 자기도 했다.그의 행동에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자유가 느껴졌다. 혜공은 이미 아무렇게 행동해도 자연의 이치에 거스르지 않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렀다. 또한 자연의 힘을 빌려 병을 치료하는 수준에 이르러 가끔 기인의 이적을 일으키곤 했지만 누구도 그 행적을 알아채지 못했다.다만 고선사와 기림사에 머물며 대승불교론을 써내려가던 원효대사는 그의 행적과 높은 공부를 이해하고 가끔 선문답을 통해 세상의 이치와 불교의 진리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원효는 어디에도 묶이지 않는 혜공의 기행을 부러워하는 한편 백성들을 위한 깨우침에 적극 나서길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혜공은 “오른쪽으로 가는 사람도 있고, 왼쪽으로 가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라며 웃음으로 넘겨버렸다.원효가 혜공의 이러한 자유스러움에 장난을 부렸다. 혜공이 잠든 틈에 그의 삼태기에 죽은 쥐 여러 마리를 넣어두었다.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그냥 채소더미로 보였다. 일어난 혜공은 삼태기에 가득한 채소를 보더니 소여물을 삶는 농부의 솥에 그대로 쏟아 부었다. 쥐는 이미 채소로 변한 채 소여물이 되었다.다음 원효가 항사사로 옮겨가 있는 혜공을 찾아갔다. 이때 혜공이 “먼 길을 와서 배가 고플 텐데 물고기나 잡아먹자”고 권했다. 원효는 먼저 장날 쥐로 장난한데 대한 복수라 생각하고 흔쾌히 “좋다”고 응했다.둘은 어린아이들처럼 물가를 첨벙거리며 고기를 잡아 배부르게 구워먹었다. 그러고는 둘이 서로 마주보며 물가에서 변을 보았다. 배설되는 것들은 모두 고기가 되어 상류로 힘차게 헤엄쳐갔다. 그중 하나가 오색찬란한 빛을 자랑하며 춤추듯 두 사람을 선회하다가 또한 상류로 유유히 사라져갔다.이를 보고 둘은 서로 “저 녀석은 내 고기”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 ‘여시오어(如是吾魚)’라는 말이다. 이 말로인해 혜공이 머물던 항사사의 이름이 오어사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구‧경북 고교총동창회 (29) 오성중‧고

“순간적인 감정에 살지 말고, 큰 흐름에 나를 찾아라.”6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오성중‧고’의 교훈이자, 오성중‧고가 명문 사학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기도 하다.오성중‧고는 1952년 재단법인 오성학원이 설립인가를 받은 후, 현재까지 5만여 명의 ‘오성인’이 배출될 정도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지성과 인성의 조화를 지향하는 오성중‧고의 정신은 학교를 나타내는 상징물을 통해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이곳의 교표(학교를 상징하는 무늬를 새긴 휘장)는 미래 지향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교표에 새겨진 별 모양의 오각은 ‘최고’를 나타내며 단결과 화합을 상징한다.또한 높은 기상과 영원한 발전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히말라야삼나무’를 교목으로, 정열적인 삶을 실천하고 향기로운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장미’를 교화로 정해 창의적이고 바른 성품의 미래 인재를 육성하고 있다.이 밖에 오성중‧고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두 명이나 배출하는 등 전국에서도 이름난 ‘펜싱 사관학교’로도 유명하다.이처럼 대구 교육의 1번지라 불리는 수성학군에서 오성중‧고만의 가치관을 확립하고 빛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총동창회의 헌신적인 활동이다.오성중‧고 총동창회는 ‘오성인’의 새로운 도약과 성장을 위한 든든한 버팀목이자 연결고리가 돼 ‘오성의 별’을 밝게 빛내고 있다. ◆끈끈한 선‧후배로 뭉친 오성중‧고 총동창회오성중‧고 총동창회는 창립된 지 30여 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동문 간의 활발한 유대 강화와 친목 도모 등으로 모교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지역 동창회 모임 활성화 등 다양한 교류를 통해 지역 사회에서 오성중‧고의 영향력과 역할이 괄목할만한 위치에 도달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펼치고 있다.오성중‧고 총동창회는 제1대 김원중(2회) 오성중‧고 총동창회장을 시작으로 제2대 이준태(12회) 총동창회장, 제3대 최창덕(12회) 총동창회장 등을 거쳐 제10대 이창세(14회) 총동창회장에 이르기까지 동문 간 화합과 소통을 중요시하게 여기고 있다.혼자 가면 단순한 길이지만, 함께 가면 역사가 될 수 있다는 신념 아래, 오성의 역사를 만들어가겠다는 것.특히 선배들에게는 추억을 선사하고, 후배들에게는 인생의 희망을 전하는 매개체로 동문 간의 우애를 돈독히 하는 ‘함께하는 오성’의 초석을 다지고 있다. ◆자랑스런 오성인오성중‧고를 빛낸 동문들은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총동창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고 시인으로도 명성이 자자한 김원중(2회) 포스텍 명예교수와 경북도의회 행정보건복지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하수(10회) 경북도의원, 양영모(12회) 대한약사회 총회의장, 박영준(13회) 글로벌 경영협회장(전 대통령실 기획조정비서관‧지식경제부 제2차관) 등 많은 ‘오성’ 출신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맹활약하고 있다.특히 3선에 안착한 미래통합당 윤재옥(14회) 국회의원(대구 달서구을)과 이윤직(16회) 대구가정법원장, 손대식(18회) 울산가정법원장 등은 정계와 법조계를 빛낸 오성의 얼굴로 불리고 있다.대구의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고 참 언론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후혁(25회) 대구일보 사장도 선배들의 뒤를 잇는 대표적인 ‘오성’ 동문이다.이 밖에 2012년 올림픽 펜싱 단체전 금메달리스트인 오은석(36회)‧구본길(42회) 선수와 2018년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리스트인 하태규(42회) 선수는 펜싱 명문학교로서의 위상을 드높인 자랑스러운 오성인이다. ◆오성 동문들에게 힘이 되다2017년에 설립된 오성동문장학회는 모교에 재학하거나 대학에 첫 발을 내딛는 후배들에게 삶의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오성중‧고 총동창회는 오성동문장학회를 통해 매년 20여 명의 오성인에게 장학금을 후원하고 있다.이들의 학업 의욕을 고취시켜 미래 사회 주역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겠다는 것이다.또 교육‧연구 활동 지원 사업과 교육 기자재 구입 및 교육환경개선 사업 등 다양한 지원 사업도 추진하고 있어 모교 발전을 위한 인재 양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오성중‧고 총동창회는 2018년 ‘명문 오성의 사명’이라는 기조로 오성의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명예의 전당’을 만들어 발전기금과 장학금을 기탁한 동문 선배들의 뜻을 기리고 있다. ◆동문 상호간 교류‧소통의 장을 만들다분기별 실시되는 ‘오성비즈니스포럼’과 ‘오성비즈니스네트워크’는 본인만의 비즈니스 경험을 동문들과 공유해 사업을 발굴하는 등 동문인 간 상호 발전에 도움을 주고자 마련됐다.총동창회 운영에 있어 초기 어려움을 동문 간의 정과 상부상조의 우정으로 이겨낸 경험을 토대로 이들의 전문성과 경험, 비전을 하나로 결집시켜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포럼은 재경 동문들을 중심으로 주최하고 있으며, 네트워크는 지방 동문들이 모이는 교류의 장이다.특히 네트워크는 경제‧산업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남권 동문인의 영업장을 방문해 비즈니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총동창회의 친목과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펜싱 명가…오성중‧고오성중‧고의 또다른 자랑거리는 ‘펜싱부’다.1970년 펜싱부가 창단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전국체전과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각종 대회를 휩쓸어 ‘펜싱 명문’으로 불릴 정도다.2012년 런던 올림픽 펜싱 단체전 금메달리스트로 유명한 오은석(36회)‧구본길(42회) 선수는 오성고가 배출한 금빛 검객이다.이들은 제17회 인천아시안게임에서도 단체전을 석권했다.특히 구본길 선수는 인천아시안게임과 제18회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각각 개인(사브르) 금메달을 획득했다.오성중‧고는 제86회 전국체육대회부터 제89회 대회까지 ‘사브르’ 종목을 4년 연속 석권했다.이는 오성중‧고만의 체계적인 훈련 및 지도 방식으로 이뤄낸 결과다.또한 방과 후 펜싱 수업으로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기본 학력을 신장하기 위한 방안 등을 마련하는 등 펜싱 오성인들의 미래 계획까지 설계 중이다.최근 2019 아시아 유소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김병수(사브르) 선수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창세 오성중‧고 총동창회장 인터뷰“총동창회장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돼 영광이며, 무거운 책임감 또한 느낍니다.”제10대 이창세(14회) 오성중‧고 총동창회장은 동문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오성인’ 모두에게 힘이 되는 총동창회를 만들어 가겠다고 강조했다.이 총동창회장은 개인적인 능력이나 경륜으로 벅찬 자리지만, 오성 동문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발 벗고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그는 “선배님들의 훌륭한 업적과 전통에 누가 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총동창회 회장직에 충실히 임하겠다”며 “사회 다방면에서 활약 중인 동문들의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이 총동창회장은 ‘행복한 동행, 우리는 오성’이라는 슬로건으로 오성 동문들을 이끌고 있다.또 역대 집행부의 헌신으로 인해 지금의 오성중‧고 총동창회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이 총동창회장은 “총동창회 사무국 개소와 장학재단 설립 등 선배님들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다”며 “이번 제10대 집행부에서는 비즈니스 활동을 적극 지원해 동문 간 비즈니스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도록 아낌없는 노력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이와 함께 지역별 동문회 및 직능단체 기능의 활성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매년 1월 총동창회 정기 총회 및 신년 교례회를 통해 동문 누구나 참석 가능한 소통과 교류의 공간이 필요하고, 5월마다 모교 운동장에서 열리는 체육대회 및 8월 골프대회, 10월 가족등반대회, 12월 송년회 등을 통한 동문 상호간 친목 도모가 총동창회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필수 요소라는 것.그는 “오성비즈니스포럼과 오성비즈니스네트워크가 생긴 까닭은 서로 도움을 나누자는 의미와 더불어 동문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였다”며 “모교 현관에 설치된 ‘오성 동문 명예의 전당’도 재학생들에게 귀감이 되는 동시에 동문의 명예까지 드높일 수 있어, 후배 양성에 뜻을 같이 한 많은 오성 동문인의 도움이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마지막으로 이 총동창회장은 “혼자 가면 단순한 길이지만 함께 가면 역사가 된다”며 “동문 여러분의 쓴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오성 동문이 발전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이동현 기자 leedh@idaegu.com

한눈에 세계여행 하기 (16) 미국 시애틀②

미국 워싱턴 주에 위치한 시애틀은 가족 나들이의 최적의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대관람차, 어린이 놀이터, 모래 해변 등 다양한 명소가 많다. 400개가 넘는 공원에는 가족을 위한 넓고 다양한 공간들도 마련돼 있다.대부분의 관광지는 걸어서 이동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위치해 있어 편의성을 자랑한다. 또 시애틀만의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이색 푸드 투어도 인기다. 시애틀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축제가 계획돼 있지만,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변동 가능한 점에 유의하여 방문 전 확인은 필수다. ◆400개 넘는 휴식 공원과 대관람차 디스커버리 공원(Discovery Park)은 퓨젯 만과 올림픽 산이 내려다보이는 시애틀의 마그놀리아(Magnolia) 인근 지역에 위치해 있다. 시애틀 다운타운에서 약 30분 정도 거리에 있으며, 약 65만 평의 크기로 시애틀에서 가장 큰 공원이다. 공원은 모래 해변, 엘리엇 베이, 캐스케이드 산 등을 조망하며 즐기는 산책 코스로 유명하며 어린이 놀이터, 피크닉 테이블, 방문자 센터 등이 있다. 미국 원주민의 예술과 공예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데이브레이크 스타 컬쳐 센터도 있다. 시애틀 대관람차(Seattle Great Wheel)는 시애틀의 아름다운 스카이라인과 해안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오후에 조망하는 시애틀의 야경은 환상적이다. 시애틀에서 로맨틱한 추억을 만들고자 하는 여행객들에게 인기다. 대관람차는 2012년 6월29일부터 운행을 시작했다. 42개의 곤돌라를 가지고 있으며, 한 개의 곤돌라에 8명의 승객이 탈 수 있어 총 300명 이상의 관람객이 이용 할 수 있다. 운행 속도가 빠르지 않고 안전해 영유아뿐만 아니라 임산부나 노약자 모두 이용 할 수 있다.이용 가능 시간은 월~목요일 오전 11시~오후 10시까지다. 금요일은 오전 10시~0시, 토·일요일은 오전 10시~오후 10시까지 운행된다. ◆맛집 천국 시애틀에서 즐기는 먹방 투어 시애틀은 싱싱한 해산물과 현지에서 직접 재배한 신선한 재료가 풍부한 도시로 로컬 식재료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푸드 투어가 큰 인기다. 특히 전통시장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투어, 시크릿 레스토랑 호핑 투어, 초콜릿 & 커피 투어 등이 대표 코스로 꼽힌다. 전통시장인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을 방문하는 투어 중 ‘시그니처 투어: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은 가장 유명하다. 현지 가이드와 함께 2시간 동안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을 돌며 100년 넘게 사랑을 받고 있는 전통시장의 역사와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투어를 신청하면 약 2시간 동안 마켓 내 7개 맛집을 방문해 시식할 수 있다. 특히 사회 관계망 서비스(SNS) 핫 플레이스인 파이크 플레이스 차우더, 비처스 핸드메이드 치즈, 엘레노스 리얼 그릭 요거트 등의 인기 맛집이 포함된다.웹사이트에서 오전, 오후 중 원하는 진행 시간을 확인하고 예약할 수 있다. ‘프로그레시브 다이닝’ 투어는 프리티 포크(The Pretty Fork)에서 진행하는 이색 푸드 투어다.참가자들은 투어 시작 24시간 전까지 레스토랑과 메뉴 코스를 알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투어 당일에 참가자들에게 방문할 레스토랑, 위치, 드레스 코드 등이 안내된다. 3시간 동안 3곳의 레스토랑에서 총 9개 코스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투어는 오후 7시부터 시작된다. 지역은 파이어니어 스퀘어, 캐피톨 힐, 다운타운 시애틀, 사우스 레이크 유니언 등 지역 별로 선택 가능하다. 또 참가자 개인의 음식 성향(알레르기, 채식주의자, 글루텐 프리 등)을 사전에 알려주면 그에 맞춘 메뉴를 준비해 준다. ‘초콜릿&커피 투어’는 달콤 쌉싸름한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잇 시애틀(Eat Seattle)에서는 로컬 셰프가 직접 ‘초콜릿&커피 투어’를 진행한다. 투어는 시애틀에서 꼭 방문해야 할 커피 및 디저트 맛집을 소개하는 것이 특징이다. 시애틀 로컬 브랜드 커피와 디저트를 맛볼 수 있어 특별하다.12시30분부터 약 2시간 동안 워킹 투어로 진행된다. 코스는 시애틀 최초의 빈투바(Bean-to-Bar) 초콜릿 숍인 떼오 초콜릿,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즐겨 찾았던 프란스 초콜릿과 로컬에서 로스팅 되는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감성 넘치는 체다&스폭스 카페 등이 포함돼 있다.카페 7여 곳을 방문하며 총 16가지 디저트를 경험할 수 있다. ◆시애틀만의 대표 축제 인챈트 크리스마스(Enchant Christmas)페스티벌은 미국 내 오직 3개 도시에서만 만날 수 있다. 동부 버지니아 주의 워싱턴 DC와 플로리다 주 탬파 베이 이외에 서부에서는 워싱턴 주 시애틀이 유일해 더욱 특별하다. 시애틀에서 2018년 겨울에 첫 선을 보여 올해로 3회째를 맞는 인챈트 크리스마스는 오는 11월 중 약 한 달 간 개최될 예정이다. 지난해에는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세계 최대 규모의 미로 어드벤처를 크리스마스 주제에 맞춰 구현했다.장난꾸러기 엘프가 숨겨놓은 산타의 8개 선물을 찾아 떠나는 주제로 꾸며 위트를 더했다. 또 다양한 이벤트와 함께 70개 이상의 시애틀 로컬 브랜드들을 만나볼 수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과 재작년보다 더 큰 규모의 아이스 스케이팅 트레일 등 다양한 엔터테인먼트가 운영돼 방문객들의 큰 호응을 이끌었다. 티켓은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 및 구매 가능하며, 가격은 성인 기준 $19.99(한화 약 2만4천 원)부터다. 또 매년 시애틀 대표 겨울 축제로 꼽히는 윈터페스트(Winterfest)도 오는 11월 중 시애틀 센터에서 진행된다. 축제 기간에는 아이스링크장, 장인들의 얼음조각 쇼케이스, 소형 겨울 기차 마을 전시 및 각종 음악 공연들로 모든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하이라이트로는 스페이스 니들에서 ‘새해맞이 불꽃놀이’가 진행돼 신년 카운트다운과 함께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축제 기간 동안 대부분의 이벤트가 무료로 진행돼 더욱 알찬 크리스마스 및 연말 시즌을 즐길 수 있다. 시애틀 유리공예에 관한 모든 것을 보고 싶다면 ‘리프랙트’ 페스티벌에 가보자.리프랙트는 ‘유리에 햇빛이 굴절되는 현상’을 뜻한다. 이 축제는 시애틀 관광청과 세계적인 유리공예 전시장인 치훌리 가든&글래스가 공동 주최하는 문화 예술 축제다. 지난해 첫 선을 보인 이 축제는 시애틀을 비롯한 태평양 북서부 지역이 유리공예의 중심지가 된 배경을 알린다는 취지로 기획됐다. 지난해 열린 축제에는 약 50여 개 이상의 예술 단체와 유리공예 아티스트들이 참가했다. 작품 전시회는 물론 유리 공예 오픈 스튜디오 투어, 경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올해는 10월15~18일 예정돼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변동 가능한 점을 유의해야 한다.-자료제공: 시애틀 관광청.구아영 기자 ayoungoo@idaegu.com

유방암, 자가검진과 조기검진이 중요하다

유방암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여성암으로 국내 여성에서는 갑상선암 다음으로 흔히 발생한다.연간 2만2천 명 정도의 새로운 환자가 발생할 만큼 흔한 암으로 꼽힌다.보건복지부의 중앙암등록보고에 따르면 2016년 유방암은 전체 여성암의 19.9%를 차지한다.유방암의 발생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노출, 가족력, 비만, 음주, 기타 요인 등 다양한 인자가 관련돼 있다.◆가파른 증가세, 20대도 안심 못 해국내 유방암환자의 발병을 연도별로 보면 2000년에 비해 2015년(2만2천468명)에 집계된 유방암 환자가 3배 이상 증가했다.연령별로 보면 약 20세 이후부터 발생해 40~49세 연령군에서 가장 높은 발생률을 보였고, 최근에는 40세 미만의 젊은 여성의 유방암 빈도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방암으로부터 20~30대 여성도 이제는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유방암 조기 진단을 위한 정기 검사와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연도별 유방암 병기분포를 보면 적극적인 유방검진의 활성화로 인해 0기 또는 1기의 조기 유방암환자 비율이 2002년 38.1%에서 2016년 59.6%까지 증가했다.또 조기 유방암에 해당하는 0~2기 유방암 환자 비율이 2016년에는 91%에 달하며 조기 유방암 환자 비율이 아주 높다.유방암의 재발 위험도는 병기가 증가할수록 커지기 때문에 적극적인 자가검진과 유방검진 및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증상 없이 진단되기도유방암의 진단은 유방에 단단한 혹이 촉지돼 병원 내원 후 진단되는 경우도 있지만, 증상이 없이 유방검진에 의한 이상소견이 발견돼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한국유방암학회 조기검진 권고안에 따르면 30세 이후여성은 매월 유방 자가검진을 권하며, 35세 이후 여성은 2년 간격으로 의사에 의한 임상검진, 40세 이후 여성은 1~2년 간격의 임상진찰과 유방 촬영을 권한다.유방 영상검사 상 이상소견이 발견되는 경우 일반적으로 바늘을 이용한 조직검사를 한다.대부분의 경우에서 유방암을 확진할 수 있고 일부에서는 수술적 생검이 필요할 수도 있다.◆국소치료와 전신치료유방암의 치료는 국소치료(수술, 방사선치료)와 전신치료(항암치료, 항호르몬치료, 표적치료)로 나눌 수 있다.유방암 수술은 유방 전절제 수술과 유방보존수술로 구분하며, 유방보존수술의 비율은 과거에 비해 꾸준히 증가해 현재 우리나라 유방암 환자의 60%에서 유방보존수술을 시행하고 있다.유방전절제를 해야 하는 경우에도 유방재건술을 동시에 시행할 수 있어 유방의 아름다움을 보존하면서 유방암을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게 됐다.최근에는 로봇을 이용한 유방수술 및 재건수술을 할 수 있어 옆구리의 작은 절개를 이용해 정면에서 유방에 흉터를 남기지 않고 유방암 수술을 시행하는 방법도 개발됐다.방사선 치료는 고에너지의 방사선을 이용해 암세포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수술 후에도 남아있는 암세포를 치료하기 위한 보조적 치료법이다.유방보존수술 후 또는 유방전절제수술 후 종양의 크기가 크거나 림프절 전이가 많은 경우 시행한다. 전신치료는 수술 후에 남아 있을 수 있는 미세한 암세포를 제거해 재발을 감소시키고자 시행한다.항암화학요법은 보통 두세 가지 약제를 정맥주사 혹은 경구로 투여하며 약제에 따라 1~3주 간격으로 4~8주기 정도 치료한다.대부분 4~6개월이 걸린다.또 진단 당시 유방암의 크기가 커서 수술로 완전 절제가 어렵거나, 유방보존수술을 원하는 경우 수술 절제 범위를 줄이기 위해 수술 전에 선행항암요법을 시행하기도 한다.유방암의 조직검사 결과에 따라 호르몬 수용체 양성인 경우에는 추가적으로 항호르몬요법을 시행할 수 있으며, 특정분자표적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표적치료를 하기도 한다.재발환자의 비율은 수술 후 5년 이내가 92%를 차지한다.재발 방지 치료로 재발률을 50%까지 감소시킬 수 있다.무엇보다 유방암 병기가 낮을수록 유방암의 치료성적이 좋아지기 때문에 적극적인 자가검진, 유방검진 및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유방암 자가검진법유방암의 자가검진은 매달 한 번씩 정기적으로 시행하기를 권하고 있다.생리가 있는 여성은 생리가 끝난 직 후 일주일 전후에 검사 및 임신 혹은 폐경 등으로 생리가 없으면 매월 일정한 날짜를 정해 자가검진을 한다.우선 거울을 보면서 이상소견 유무를 육안으로 관찰한 후 편한 상태로 누워 검사하는 쪽 팔을 위쪽으로 올리고 반대편 손 2·3·4번째 손가락을 이용해 유방전체를 빠짐없이 검진한다.자가검진 중 이상소견이 발견되는 경우 유방전문의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 도움말=계명대 동산병원 이무현 유방내분비외과 교수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건강보험 대경본부 장애인 건강권 지킨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대구경북지역본부(본부장 김선옥)가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 실시 지역인 대구 남구의 장애인을 대상으로 지역사회 통합돌봄 ‘장애인마음 건강 더하기’ 사업을 실시한다. 이 사업은 이달부터 11월까지 대구시 남구청, 대구시 지체장애인협회 남구지회와 공동협력으로 진행된다.건보공단 대경본부는 사업을 통해 모두 4차례에 걸쳐 코로나19 예방 항균비누 만들기와 직접 만든 비누로 감염병 예방을 위한 올바른 손씻기 방법을 교육한다. 또 코로나19로 야외활동이 더욱 힘든 재가 중중장애인들에게 반려 콩나물 재배키트를 지원해 건강 식재료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고혈압 및 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가진 장애인들에게 만성질환 이해 및 합병증 관리 건강강좌도 진행한다.김선옥 본부장은 “신체적, 정신적 장애 등의 이유로 공공서비스사각지대인 장애인들에게 건강정보 제공 및 정서적 지지 등 돌봄 강화로 보험자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스토리로 만나는 경북의 문화재…흥암서원

흥암서원여름철이어서 서원 마당은 잡초들로 붐볐다. 여름철이어서라기보다는 서원을 돌보지 않은 무관심이 잡초를 불러들였다고 해야 옳겠다. 들판에 자생하는 풀들이 채소밭을 침범하면 그 이름이 잡초로 바뀐다. ‘풀’이 ‘잡초’로 이름이 바뀌어 지는 순간 그것은 제거돼야 할 몹쓸 처지가 된다. 채소밭을 뒤덮은 잡초들이 그러하듯이 서원의 뜰에 붐비는 잡초들은 선비의 고적한 기운을 해친다. 잡초들로 붐비는 일상, 잡초들이 들끓는 정치로부터 민족사의 비극은 시작된다. 날뛰는 잡초들의 소음이 견디기 힘들어 뉴스 채널을 끄고 사는 나날이었다. 맥 빠진 민초들은 미스터 트롯으로 마음을 달래는 날들이었다. 흥암서원(경상북도 기념물 제61호)을 찾았다. 동춘당 송준길 선생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흥암사, 진수당, 집의재, 의인재, 어필비각 등 경내 건물을 가진 흥암서원(상주시 연원동 769번지)은 숙종 28년(1702년)에 세워진 사액서원이다. 앞면 3칸, 옆면 3칸,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의 흥암사는 동춘당의 위패를 모신 곳이고, 팔작지붕의 진수당은 강당, 집의재와 의인재는 학생들의 기숙사였다. 어필비각 안에는 숙종이 지어준 ‘흥암서원(興巖書院)’이라 새긴 비가 있다. 찾는 이의 발길도 없고, 좁은 농로 한 끝에 방치된 듯 스산한 모습으로 남아있지만 대원군의 철폐령에도 폐쇄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곳이었다. 동춘당 송준길은 누구인가? 그가 잡초로 들끓는 오늘의 세태를 향해 던지는 역사적 가르침은 무엇인가? 조선조 후기 문신이었던 송준길(1606~1672년)은 효종 때 판서를 지낸 주자학의 대가였다. 문묘에 종사된 해동 18현 중의 한 사람, 당색은 서인, 율곡 이이를 사숙한 기호학파의 중심이었고, 김장생, 김집의 문하생이었다. 장인이기도 한 우복 정경세의 문하에도 출입해 퇴계학맥을 이은 그를 사표로 받들기도 했다. 우암 송시열과 함께 양송으로 불릴 만큼 당대 역사에 이름을 남긴 분이다. 광해군의 난세에 등을 돌리고 향리에서 학문에만 전념하던 중 효종의 부름을 받아 조정에 발을 딛는다. 1649년 즉위한 효종이 김장생의 아들 김집을 이조판서에 기용하는 등 척화파와 재야학자들을 대거 등용할 때였다. 송시열 등과 함께 발탁돼 집의에 임명되고 통정대부의 품계를 받는다. 집의로 있으면서 송준길은 효종의 북벌계획에 참여한다. 침략만 받아온 조선의 역사임을 상기할 때, 그 성패와 상관없이 ‘북벌’이라는 말만으로도 가슴 찡한 바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효종의 북벌론은 청나라를 정벌하기 위한 계획이었다.◆삼전도의 치욕 아직도 남아1637년 1월 조선은 청국과의 전쟁에서 패한다. 남한산성에서 끌려나온 인조는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는다.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땅바닥에 머리를 찧는 예를 행한다. 이른바 삼전도의 치욕이다. 장남 소현세자와 차남 봉림대군이 인질로 끌려간다. 1645년 2월이었다. 청국에서 8년간 볼모생활을 하고 돌아온 소현세자는 청국과의 화친을 주장했고, 차남인 봉림대군은 청과의 전쟁을 주장한다. 청 태종에게 굴욕을 당한 인조는 자신을 ‘화살을 맞은 새’라 자탄하며 청국이라는 말만 들어도 몸서리칠 때였다. 효종은 소현세자를 멀리하고 경계한다. 소현세자가 급사하자 인조는 대신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원손이 아닌 차남 봉림대군을 세자로 봉한다. 임금으로 즉위한 효종은 반청척화파(反淸斥和派)의 인물을 등용, 북벌을 준비한다. 남한산성의 방비를 강화하기 위해 수어청의 군사력을 정비하고, 이완을 대장으로 어영청군을 크게 증가시킨다. 또한 제주도에 표착한 하멜 등에게 신무기를 만들게 하고 송시열, 송준길 등을 등용해 군비를 확충한다. 그러나 삼전도의 치욕을 씻으려는 북벌계획은 효종의 승하와 함께 수포로 돌아간다.후대의 논객들이 지적하듯이 효종의 북벌론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수준의 군사력을 가지고 만주 벌판을 달리려 한 허황된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현실성 없는 지배계층의 지속된 북벌의식은 청나라 문화의 유입을 막아 정치적 쇄국주의, 문화적 폐쇄주의를 낳게 한 가장 큰 원인이 됐다는 지적도 틀린 말이 아닐 수 있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삼전도의 역사적 치욕을 씻으려는 자세와 정신, 국격과 민족의 자존을 지키려 했던 당당한 북벌의지마저 폄하돼서는 안 된다. 서원 뒤뜰의 잡초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 무성했다. 담당 관청에게 까닭을 묻는다면 일손이 모자라기 때문이라는 뻔한 대답을 들려줄 것이었다. 그렇게 방대한 추경예산으로 왜, 문화재 앞뒤 마당 잡초 뽑는 일자리는 늘리지 않는가. 길가 휴지 줍기보다, 가로등 소등하기보다 조상의 얼을 지키는 일이 하찮다는 말인가! 왜 아무도 말하지 않는가. 돈과 밥과 권력과 무관한 일에는 침묵해도 좋은가. 위대한 침묵도 있고 비열한 침묵도 있다. 죽을 때까지 묵언 수행하는 수도사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의 제목은 Into Great Silence이고, 한 시인이 신군부시절 지식인들의 비굴함을 풍자한 침묵은 ‘침을 퉤퉤 뱉어 만든 묵’이다. 신문 기사를 옮긴다.북한의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은 이날 ‘옥류관 주방장 오수봉’이 쓴 글을 내보냈다. 오수봉은 “평양에 와서 우리의 이름난 옥류관 국수를 처먹을 때는 그 무슨 큰일이나 칠 것처럼 요사를 떨고 돌아가서는 지금까지 전혀 한 일도 없는 주제에 오늘은 또 우리의 심장에 대못을 박았으니 이를 어찌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당장이라도 달려나가 그 더러운 똥개무리들(탈북민 단체)과 그것들의 망나니짓을 묵인하며 한 짝이 되여 돌아친 자들을 몽땅 잡아다가 우리 주방의 구이로에 처넣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조선비즈 2020.06.13.) 국민들의 마음에 오물을 끼얹은 모멸적인 언동에 왜 침묵하는가. 하찮은 주방장 말쯤이야… 전략적 차원의 위대한 침묵인가. 꼬리를 감추는 비열한 침묵인가. 안타깝고 딱하다. 안타깝고 딱한 오늘의 시점에서 효종의 북벌의지를 바라보니 그것이 한갓 계란으로 바위 치는 허황된 꿈이었다 하더라도 그날의 꿈은 당당했으므로 숭고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민(安民)과 내치(內治)가 먼저이고, 안민과 내치의 근본은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는 격군심(格君心)에 있다는 송준길의 주장은 탁월한 바 있다.송준길은 존명배청(尊明排淸)과 복수설치(復讐雪恥) 운동을 추진한다. 현실을 직시한 송준길의 북벌운동은 허황한 꿈에 앞서 내실을 다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당시 조선은 수년간 지속된 대기근과 청의 대약진이라는 악조건 속에 처해있었다. 이에 송준길이 추진한 현실 정책은 외양에 앞서 내수를 다지는 ‘내수외양(內修外攘)‘이었다. 내치(內治)는 외양(外攘)의 근본이고, 치병(治兵)은 안민이 우선이라고 했다. 내수의 핵심은 양민(良民)과 격군심(格君心)이었다. 송준길은 군주의 덕성함양과 심성수양이 곧 치국평천하의 근본이라 주장한다. 모든 문제의 근본은 백성의 마음, 임금의 됨됨에 달렸다는 것이었다.◆북벌 진출의 한을 남긴 채북벌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떠난 송준길의 죽음은 안타까운 것이었다. 하늘도 안타까워, “이날 붉은 기운이 하늘로 솟고 그 빛이 땅을 비추니 길을 가던 사람이 바라보고는 불을 끄기 위해 달려왔는데, 와서 보니 선생이 막 운명하였다. 이해 10월 성관(星官)의 ‘소미성이 동방에 떨어졌다.’라는 발언이 있었는데, 권상하는 송준길의 죽음이 바로 성관의 말과 맞아 떨어진다고 애석해 하였다.”고 역사는 적고 있다. 잡초 북적이는 흥암서원을 나서며 ‘격군심(格君心)’이라는 말을 되새겼다. 격군심이라는 말이 구한말 이 땅을 찾았던 이사벨라 비숍 여사를 불러내었다. 강자 앞에 굽실대는 조선인들을 보고, 세계에서 가장 열등한 민족이 아닌가 의심했던 비숍이, 러시아 자치구 프리모스키에 이주한 조선인들의 당당한 삶의 현장을 만난 뒤에는 자신의 생각을 고친다. “정부가 부패하지 않고 잘해주기만 한다면, 조선은 어느 나라보다 우수한 나라가 될 것이다”라고.정부를 거꾸로 읽으면 부정(不正/不淨)이 된다. 당당하지 못한 정부는 거꾸로 된 정부이다. 당당한 국민이 당당한 정부와 당당한 역사를 만들고, 당당한 정부가 당당한 국민과 당당한 역사를 만든다. 아무리 물러서서 생각한다 하더라도 효종의 북벌의지, 동춘당 송준길의 북벌운동은 당당했으므로 아름다운 민족사의 한 획이었다. 강현국시인·사단법인 녹색연 이사장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72) 흥륜사 금당십성-자장과 표훈

자장은 신분이 상당히 높은 신라 진골 대신의 아들로 태어났다.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황제로부터도 인정을 받는 덕망이 높은 승려였다. 신라 선덕여왕이 당나라 황제에게 그를 돌려줄 것을 요청해 돌아오게 할 정도로 자장에 대한 평가는 절대적이었다.당나라에서 돌아온 자장은 분황사에 머물며 대국통이 되어 왕실에서 법회를 주관하기도 하고, 황룡사 9층 목탑을 건축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목탑이 준공되고 황룡사 제2대 주지로 주석했다.반면 대덕 표훈은 삼국유사에서 천제를 만나 왕의 뜻을 전하는 등으로 천궁에까지 드나드는 술법을 펼치는 도력이 높은 승려로 전해진다. 표훈은 의상대사의 십대제자 중 하나로 불국사에 머물면서 아들이 없던 경덕왕의 심부름으로 천제를 만나 부탁해 혜공왕을 낳게 했다.자장과 표훈은 신라시대 불교진흥에 크게 기여한 인물로 신라 십성으로 선정됐다. 같은 금당십성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자장이 널리 알려진데 반해 표훈은 삼국유사에 잠깐 등장하는 이외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신라시대의 고승으로 전해지는 신라십성 자장과 표훈의 단면을 살펴본다.◆삼국유사: 자장이 계율을 정하다대덕 자장은 김씨이고, 본디 진한의 진골 무림 소판의 아들이다. 그 아버지가 높은 관직을 두루 거쳤는데 뒤를 이을 자식이 끊어지게 되었다. 이에 삼보에 마음을 기울여 천부관음에게 나아가 자식 하나 낳기를 바라며 축원했다.“만약 사내아이를 낳으면 불교의 바다에 나루터와 다리가 되도록 키우겠나이다.”문득 어머니의 꿈에 별이 떨어져 가슴 속으로 들어오더니 아이를 가져서 석가모니와 같은 날 태어났다. 이름을 선종랑이라 했다. 정신은 맑고 뜻이 슬기로웠으며 글은 빛나고 생각이 높아 세상의 맛에 물들지 않았다.일찍 부모를 여의고는 더욱 세상의 번잡한 것이 싫어졌다. 처자식을 버리고 밭과 동산을 내놓아 원녕사를 만들었다. 홀로 그윽하고 험한 곳에서 지내며 호랑이와 승냥이도 피하지 않고 고골관을 닦았다. 조금이라도 권태로움이 닥치면 곧 작은 방을 지어 둘레에는 가시나무 담을 두른 채 그 안에 벌거벗고 앉아 있었다. 움직이면 곧 가시바늘이 찔러댄다. 머리는 기둥에 달아두고 명상이 흐려지는 것을 물리쳤다.마침 재상 자리가 비자 귀족 집안 간에 의견이 맞아 여러 차례 자장을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왕이 이에 “오지 않으면 참형을 내리겠다”는 칙명을 내렸다.자장이 이를 듣고 “내가 차라리 하루라도 계를 지키다가 죽을지언정 계를 깨고 백년을 사는 일은 바라지 않노라”고 했다.사정을 들은 왕이 출가를 허락했다. 이에 바위 수풀 속으로 깊이 숨어서 먹는 것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할 정도였다. 그때 이상한 새가 과자를 물고 와 공양하니 손으로 받아먹었다. 아련히 꿈속에 하늘의 사람이 내려와 오계를 주자 그제야 비로소 골짜기를 나왔다. 동네의 남녀들이 다투어 와서 계를 받았다.자장은 변방에 태어난 것을 탄식하며 서쪽으로 가 큰 가르침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평 3년 병신년(636)에 칙명을 받아 제자 승실 등 열 명 남짓 데리고 서쪽 당나라 청량산으로 들어가 보았다.산에는 만수대성의 소상이 있었다. 그 나라에서 이 상에 대해 “하늘님이 기술자를 데리고 와 만든 것이다”라고 전해 내려온다. 자장은 이 불상 앞에서 기도하고 명상에 잠겼다. 꿈에 불상이 이마를 만지더니 산스크리트어로 된 계를 주었다. 하지만 깨어나서도 해석하지 못했다. 아침이 되어 특이하게 생긴 어떤 스님이 오더니 해석해 주었다.또 “비록 수만 가지 가르침을 배운다 한들 이 글을 넘지 못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사와 사리 등을 주고 사라져 버렸다.자장은 이미 성스러운 가르침을 입었음을 알고, 북대를 내려와 태화지를 거쳐 당나라 서울로 들어갔다. 태종은 사람을 보내 위로하며 승광별원에서 편히 지내게 해 주었다. 은총을 내림이 빈번하고 두터웠다. 그러나 자장은 그 번잡스러움을 싫어해 황제에게 글을 올리고 종남산 운제사의 동쪽 낭떠러지에 들어가 바위를 잇대 방을 지었다. 3년을 지내는 동안 사람과 신이 계를 받고 신령스런 응답이 날마다 번갈아 나타났다. 글이 너무 길어져 싣지 않는다.다시 서울에 들어오자 황제가 사람을 보내 위로했다. 비단 20필을 내리고 옷감으로 쓰도록 했다.정관 17년 계묘년 (643)이었다. 본국의 선덕왕이 황제에게 글을 올려 돌아오게 해달라고 했다. 황제는 허락해 주면서 궁궐로 불러들여 가사 한 벌과 좋은 비단 500단을 내려 주었다. 세자도 200단을 내렸으며 여러 가지 예물을 갖추어 주었다. 자장은 자기 나라에 경전과 불상이 충분치 못하다 하여 대장경 1부와 여러 번당에서 화개까지 이득이 될 만한 것을 요청해 모두 실었다.본국에 이르니 온 나라가 크게 환영했다. 왕은 분황사에 머물게 하고, 쓸 것과 시중들 사람을 충분히 내려주었다. 한번은 여름에 궁중으로 불러 들여 대승론을 강독했으며 황룡사에서 보살계본을 일곱날 일곱 밤을 강연했다. 하늘에서는 단비가 내리고 구름과 안개가 어둑어둑 깔려 강당을 덮었다. 남녀 승려와 신도 모두 그 신이스러움에 깊이 감탄했다.조정에서 “불교가 동쪽으로 온 지 오래되었지만 부처님의 일을 맡아 받들고 수행하는 규칙이 없는 채 지내고 있다. 잘 짜여진 규정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잘 정돈할 수가 없다”고 의논했다. 의논에 따라 자장을 대국통으로 삼는 칙령이 내렸다. 무릇 승려들을 하나로 이끌어 가도록 모든 권한을 승통에게 주었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자장과 당 태종의 약속자장은 신라 소판 무림공의 아들로 590년에 태어났다. 당시는 진평왕 12년으로 진흥왕의 정복전쟁 후유증에 의한 외세침략이 끊이지 않던 때였다.자장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처자식마저 등진 채 깊은 산으로 들어가 처절한 수신의 길을 걸었다. 골방에서 알몸으로 가시덤불 속에 앉아 머리는 천정에 매달아 졸음을 좇아가며 불도 삼매경에 들었다.왕이 그를 재상으로 임명하려 불렀지만 목숨을 걸고 응하지 않았다. “계를 지키며 하루를 살 지언정 계를 깨뜨리고 백년을 살지 않겠다”며 왕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이에 왕은 그에게 승려의 길을 갈 것을 허락했다.선덕여왕이 즉위하고 제자 10여 명과 함께 당나라 청량산에서 기도하며 정진해 문수보살로부터 사구계를 받았다. 이에 당나라 태종의 신임과 예우를 받으며 장안에서 수도했다.당 태종 이세민은 반역 호족들을 진압하는 전쟁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고 모두 제거하자 아버지인 당 고조로부터 하늘이 내린 장수라는 천책상장의 별호를 얻을 정도로 호걸이었다.이러한 태종이 나라의 세력을 넓히기 위해 정복전쟁을 이어나가자 자장은 그의 신임을 바탕으로 신라와의 전쟁 불가론을 펼쳐 불가침의 약속을 얻어냈다. 태종이 고구려 정복의 꿈을 펼치며 승승장구 할 때의 일이라 대단한 성과로 평가된다.자장은 당시 볼모로 당나라에 와있던 태종 무열왕의 둘째 아들 김인문과 머리를 맞대어 신라를 지키기 위한 전략을 추진했다. 김인문은 태종의 후궁이었던 측천무후에게 신라가 고구려를 칠 수 있는 병력을 지원해 줄 것을 부탁하고, 자장은 태종에게 신라와의 협력을 다짐하는 약속을 얻어냈다.자장은 태종의 야욕을 간파해 고구려와 맞대면하고 있던 거란을 꾀어 고구려와 전쟁하도록 종용하고, 약해진 거란과 고구려를 한꺼번에 침략하는 전략을 제시해 더욱 신임을 얻었다. 이를 계기로 자장은 신라와의 동맹을 제의해 태종의 선심을 얻는데 성공했다.그러나 태종의 야욕에 찬 속마음을 헤아린 자장은 신라로 돌아와 선덕여왕에게 당나라의 침략에 대비하도록 황룡사 9층 목탑 건축을 건의해 백성들의 마음을 모으는데 집중했다.이때 자장은 대국통이 되어 신라에 화엄사상을 소개하며 승려들의 질서를 세우는데도 크게 공헌했다.*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구·경북 고교총동창회 (28) 영양중·고

일본 식민지가 막바지에 이르던 1946년 12월1일 개교한 영양중학교와 6·25 전쟁 종전 직전 포화 속에서 1953년 5월15일 문을 연 영양중·고등학교는 70여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명실상부한 영양지역뿐만 아니라 한 때 경북 북부지역 최고의 명문 학교로 손꼽혔다.‘백두산 힘찬 줄기/ 젊은 뜻이 솟구친다/ 일월산 높은 뫼가 반공에 우뚝 서 있네/ 굳세고 밝은 기상 이 나라를 위해서/ 갈고 닦은 한 마음에 큰 영광이 비친다/ 아~ 영양중고 아~ 영양중고/ 우리 모교 영양중고 /영원히 빛난다 영원히 빛난다’영양중·고 교가는 1956년 한국 최고 시인으로 꼽히는 조지훈 선생이 작사하고 대한민국 대표 음악가 중 한 사람인 윤이상 선생이 작곡했다. 그 시대 영양중·고가 비록 깡촌에 있었지만 얼마나 많은 유명인의 관심을 받았는지 반증하고 있다.‘배움이 즐겁고 나눔이 행복한 영맥인 육성’이라는 목표 아래 영양읍 서부리 영양군 초입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는 영양중·고는 그야말로 인재 육성의 산실이요 공교육 표본의 현장이다.교목인 소나무는 늠름한 기상과 강인한 정신을 나타내고, 교화인 개나리는 순박하고 검소한 정신을 나타내는 것처럼 400여 명의 교직원과 학생은 혼연일체로 공교육의 산실이 되고 있다. 도덕인 육성, 창조적 육성, 건강인 육성, 자주인 육성, 세계인 육성을 교육 목표로 대한민국을 넘어 글로벌 세계인으로 도약의 발걸음을 힘차게 내 딛고 있다. ◆영양중·고 역사영양중학교는 일제 강점기 막바지인 1946년 10월3일 설립 인가를 받아 초대 신한균 교장이 취임해 그해 12월1일 개교했다. 1947명 9월5일 처음 입학생을 받아 1949년 6월13일 109명의 1회 졸업생을 배출했다. 영양고는 영양중 개교보다 7년 정도 늦은 6·25전쟁 휴전을 앞둔 1953년 4월1일 9학급으로 설립 인가를 받아 초대 신한균 교장이 취임해 기반을 다졌다.남녀공학이었던 영양중·고는 1971년 사립 영양여중, 1973년 영양여고가 설립되면서 분리돼 남자 공립 중·고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64년 신관 준공을 시작으로 1995년 체육관과 영양공공도서관 준공, 1997년 기숙사와 교직원 연립 사택 신축, 2008년 인조잔디 운동장 준공 등 아낌없는 투자와 관심이 이어졌다.학교 기반시설이 면학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매년 고등학교 졸업생 60~70%인 20여 명의 학생이 4년제 대학에 진학하는 등 경북 북부지역의 대표적 중심학교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지난 2월14일 중학교는 72회 졸업식을 하면서 총 1만1천681명의 졸업생을, 고등학교는 65회 졸업식과 함께 7천596명의 동문을 배출했다.일월산 정기를 이어받은 아늑한 배움의 전당에 자리한 영양중·고는 70여년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지역 명문으로 비상하고 있다.교육청과 지자체의 아낌없는 투자로 농촌지역에서 앞서가는 우수한 교육시설을 갖추고 선진형 교과교실제와 기숙형 공립고 등을 운영한다. 교육 활동에 내실을 추구하고 불편함이 없도록 교직원이 함께 노력하고 있다.농촌에서 도시로의 탈 농촌화가 진행돼 학생 수가 줄어드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다시 도약할 수 있도록 신뢰받는 학교, 우수한 인재를 육성하는 학교, 학생들의 행복을 고민하는 학교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영양중·고 총동창회 역사영양중·고 총동창회는 1964년 1월 당시 영양중 1회 졸업생을 중심으로 창립총회를 열고 초대회장으로 조순기 동문(중 1회)이 취임했다. 조 회장 취임이후 동창회 연락사무소 및 각 지구 연락소 설치, 우수 졸업생 장학 사업, 군민체육대회 단체전 참가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또 1965년에는 고 신한균 초대 교장 기념비를 세우는 한편 모교 기증용 도서 모으기, 동창 회원록 1집 발간 등 지역 내에서도 대표적으로 손꼽힐 만큼 모교와 지역 발전을 위한 각종 사업을 펼쳤다. 1984년 시작된 영양중·고 동문체육대회는 2018년까지 전국의 동문이 한자리에 모이는 등 총동창회 활동이 절정에 이르렀다.하지만 2010년 이후 학생 감소와 동문의 관심 저조로 2018년 동문체육대회를 마지막으로 침체기를 걷고 있다. 현재 2016년 취임한 이재철(중 20회) 회장이 총동창회를 이끌고 있다. 재경 동문회와 재부산, 재울산 동문회 등 해당 지역 동문들이 구심점이 돼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모교와 후배 위한 총동창회 활동영양중·고 총동창회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도 전국에서 터를 잡고 있는 1만여 동문이다. 이들 동문을 중심으로 부산이나, 서울, 경기, 울산 등에 동문회가 조직돼 있다. 매년 정기적 모임을 통해 동문 간 단합을 유도하고 또 후배들을 위해 매년 모교를 방문, 장학금을 전달하며 격려하고 있다.영양중·고 총동창회는 지금까지 동문 간 끈끈한 정과 관심으로 모교 발전과 후배 양성에 목표를 두고 선후배 간 돈독한 우정을 위해 노력해 왔다. 총동창회 설립부터 지금까지 매년 입학식 때는 성적우수 중·고 입학생 3명씩을 선발해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모교 장기근속 교직원들에게 기념품 전달과 매년 모교 수능 고득점 기원제를 지내고 있다.또 권영택(중 30회) 전 영양군수, 서진현(중 19회) 전 육군보병학교장, 이재오(중 12회) 전 국회의원, 조병인(중 6회) 등 동문이 모교를 방문해 후배들을 대상으로 삶의 방향 제시 등 진로체험 특강을 하고 있다. 후배들에게 올바른 진로선택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영양중·고가 배출한 인재들영양중·고 졸업생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잡초처럼 끈질긴 생명력으로 우리나라 곳곳에서 중심이 돼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영양군에서는 영양중·고 출신이 아니면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많은 인재가 지역 사회를 이끌고 있다.민선 초대 영양군수인 권용한(중 4회) 동문부터 2대 이여형(중 3회) 동문, 3대 김용암(중6회) 동문, 영양군 최초 4대에서 6대까지 3선 군수를 지낸 권영택(중 30회) 동문, 현재 7대 군수인 오도창(중 29회) 동문까지 모두 영양중·고 출신이다. 제8대 영양군의회 후반기를 이끌어갈 장영호(중 27회) 동문과 농업경제건설 국장 강완석(중 30회) 동문도 영양지역 발전과 모교 발전에 노력하고 있다. 정계에는 이재오(중 12회) 전 국회의원, 남창진(중 19회) 전 서울시 원, 이종열(중 31회) 경북도의원 등이 있다.재계에는 남승희(중 14) 전 쌍방울 회장, 안태만(중 10회) 우신화장품 대표, 장명호(중 32회) 두산연강재단 부사장, 감성텍스 김동암(중 18회) 대표이사, 진우양품 조국영(중 6회)대표, 성원하이드로릭스 권성흠(중 29회) 회장과 조은기(중 25회) 경북농식품유통교육진흥원 초대원장 등 수 많은 동문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군 장성 출신으로는 서진현(중 19회) 전 육군보병학교장과 권승찬(중 9회) 예비역 육군 중장이 있다. 김광환(중 26회)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중앙회장, 이종열(중 25회) 전 전국부동산중개업 회장 등도 동문이다.◆이재철 총동창회장 인터뷰영양중·고 총동창회 이재철(중 21회) 회장은 “첩첩산중 산골 영양에 교육만이 살길이며, 전국에서 각자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1만여 동문의 구심점으로 동문 간 화합은 물론 지역과 모교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며 2016년 3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경기도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이 회장은 학교나 총동창회 행사가 있을 때마다 달려와 적극적인 지원과 참여를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재경 총동창회와 영양중·고 총동창회가 잘 어울려 돌아갈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총동창회 운영에 어려운 점이 있다면△총동창회 회장에 취임한 지 벌써 5년째다. 특히 농촌지역 어느 학교나 마찬가지로 모교의 학생 수 감소는 물론 동문의 관심도 낮아지면서 자연스레 후배 동문의 총동창회 참여가 저조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총회도 아직 열지 못해 차기 회장단 구성도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총동창회의 가장 큰 자원은 기수별 동기회다. 기수별 동기회 활동이 활발해야 총동창회도 탄력을 받아 탄탄하게 운영될 수 있기에 동기회 활성화가 무엇보다 당면한 과제다. 영양은 동문들이 지역사회 발전을 선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공직사회 진출이 두드러지는 부문이다. 총동창회 활성화를 위해 이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모교와 총동창회를 위한 향후 계획은△모교와 후배들을 지원하기 위한 재정 확보와 동문의 참여가 가장 절실하다. 현재 총동창회 기금이 1억 원에 불과해 후배들을 위한 장학 사업에 어려움이 많다. 전국 동문을 대상으로 1인 1만 원 장학금 모금 사업과 동문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사업 발굴에 앞장서겠다. 또 후배들을 위한 동문초청 명사 특강 등 꿈을 키우고 진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중·장기적 프로그램을 마련, 추진하겠다.황태진 기자 tjhwang@idaegu.com

대구·경북 고교총동창회 (27) 대구농업마이스터고-11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최첨단 마이스터고

‘대한제국 융희 4년(1910년) 3월14일. 서라벌 정기받아 여기 영글어, 교남의 생명어린 달벌 옛고장, 동해 동녘 바다의 해떠온 아침, 화풍이 이 강산에 가득히 차고, 푸르른 청풍 뻗쳐 팔공 엉길제…’ 올해로 개교 110년을 맞는 대구농업마이스터고(이하 대구농림고)의 백년사 책자에 나오는 글귀 한 구절이다. 대구·경북 공립학교로는 가장 먼저 설립된 대구농림고는 1910년 3월14일 순종의 칙령 반포에 따라 학교설립 인가를 받고, 그해 5월10일 교동(구 향교)에서 정식으로 개교한다. 학교가 개교한 1910년은 우리민족에게는 영원히 잊혀 지지 않을 아픈 역사를 간직한 해이기도 하다. 바로 국권을 침탈당한 한일합병이 일어난 해다. 대구농림고는 교동(구 향교)에서 개교한지 5개월만인 1910년 10월4일 지금의 경북대사대부고 자리에 신축교사를 지어 이전하고, 다음 달인 11월에 대구공립농림학교로 정식 개칭하게 된다. 개교 당시 본과와 속성과 2개과로 나눠 모집한다. 본과는 농업·임업에 관한 전문교육을 가르치는 2년 과정이었고, 속성과는 임시 토지조사원 양성을 목표로 한 1년 과정이다. 이후 1923년 학교는 대구 신천동 현재의 쌍용화성아파트 자리를 거쳐 1955년 수성동 현재 대구교육청자리로 이전, 1981년 3월에 현재 자리인 수성구 노변동으로 다시 이전한다. 110년의 역사를 간직한 대구농림고는 시대의 조류에 따라 학교명칭도 변경을 거듭한다. 1910년 3월에 ‘대구공립농림학교’로 인가를 받은 다음, 광복 이듬해인 1946년 1월7일에 ‘대구농림중학교’로 개칭하고, 다시 한국전쟁 다음해인 1951년에 ‘대구농림고등학교’, 2000년 3월1일 ‘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 2017년3월1일에 현재의 ‘대구농업마이스터고’로 교명을 개칭한다. 마이스터고로 전환하는 과정에서도 졸업 동문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뒷받침 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스터고로 전환한 대구농림고는 농업과 ICT·BT의 융·복합을 통해 새로운 성장산업 등장 및 고부가가치 창출의 기회가 확대됨에 따라 도시형 첨단농업경영 분야의 영마이스터 양성을 목표로 한다. 대학 캠퍼스에 버금가는 약10만여 평의 방대한 학교부지에 남녀학생 620여 명이 자연과 더불어 쾌적한 환경 속에서 생활한다. 이들은 전공 교과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는 한편 관련 자격증 취득, 각종 전국 대회 수상, 기업 및 공공기관 취업, 영농창업 등 다양한 부분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대구·경북지역 공립고등학교로는 가장 오랜 역사를 간직한 대구농림고는 2010년 5월에 개교100주년을 기념하는 동문음악회와 동문한마음체육대회를 열어 100년 역사를 기념하고 선후배간의 단합을 도모하는 행사를 가졌다. 전국에서 모인 동문과 동문가족 3천여 명이 이 행사에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총동창회는 더 높은 세상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염원을 담은 ‘비상하는 날개를 형상화’한 100주년 기념탑 제막식을 가지고 ‘대구농림고등학교 100년사’를 발간한다. 또 한국전쟁70주년에 즈음해 당시 학생의 신분으로 전쟁에 참여한 학도의용군이 다시 한 번 주목받는다. 당시 대구농림중학교(대구농업마이스터고 전신)는 지역에서 가장 많은 140명의 재학생이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하게 된다. 38회부터 41회 졸업생으로 당시 9명의 어린학생이 희생되기도 했다. 이에 총동창회는 이들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3년 학교 교정에 참전기념비를 세웠다. 대구농림고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배출한 인물도 걸출하다. 농림고라는 교명 때문에 우리나라 농림업분야를 대표하는 인재를 주로 배출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졸업생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보기 좋게 빗나갔다. 1960년대 대구·경북지역 시장 군수의 절반이 동문이었다는 대구농림고의 정관계인맥은 화려하다. 행정 관료로는 신현돈 전 내무부장관(8회)을 비롯해 김병윤 전 농림부장관(14회), 현석호 전 국방부장관(17회), 김영준 전 농림부장관(23회), 김덕엽 전 경북도지사(29회), 박창규 전 대구시장(32회), 구자춘 전 내부무장관(39회), 이용택 전 경북관광개발공사 사장(39회), 윤우길 전 동대문구청장(46회) 등이 있다. 또 국회에는 김보영 전 의원(20회)을 필두로 권복인 전 의원(20회), 마달천 전 의원(36회), 이종식 전 의원(38회), 황병우 전 의원(38회), 황병태 전 의원(38회), 이용택 전 의원(39회), 이종진 전 의원(55회) 등이 모두 대구농림고 출신이다. 학계에서는 1913년 본과 2회를 졸업한 오장수 초대교장을 시작으로 양인석 박사(17회), 한명수 전 경북대총장(26회), 손태현 전 해양대학교총장(29회), 국문학자인 서수생 박사(31회), 김의원 전 경원대 총장(37회), 정연식 전 경북대 학장(38회), 권도혁 법학박사(39회), 송학준 전 용인대교수(42회), 도정기 전 부교육감, 경북과학대 총장(53회), 오규실 전 대구미래대교수(55회), 김인석 전 영남대 교수(57회) 등이 있다. 특히 수재로 알려진 손태현 전 해양대학교 총장(29회)은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는데 유일하게 대구농림고에서는 4등 이상을 해본 적이 없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손 전 총장은 영남지역 인재 양성소 역할을 했던 대구농림고에 당시 수재들이 그 정도로 많았다고 회상하며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모교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대단하다.그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총동창회 행사가 열리면 부산서 대구까지 한걸음에 달려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대구은행장을 역임한 권승호(24회)씨와, 오동수 전 서울은행장(24회), 정달용 전 대구은행장(28회), 정재경 전 육군50사단장(43회) 등도 모두 대구농림고 출신이다. 지금도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동문으로는 소설 ‘객주’의 저자로 유명한 소설가 김주영(45회) 작가를 비롯해 대구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한 진영환 삼익THK대표이사(52회), 한우유통업계의 성공 모델인 김치영 일품한우 대표(55회), 성서공단 이사장 추광엽 벽진바이오 대표이사(64회), 세계양봉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벌수염 사나이’로 유명한 안상규 안상규벌꿀 대표(69회), 대한민국 난초명장 이대발 연구소 소장, 이대건 관유정 대표(73회) 등이 대표적인 동문이다. 대구농림고등학교총동창회는 후배들을 위한 장학 사업에도 열성이다. 매년 신입생을 대상으로 각과별 수석입학생과 특기반 학생을 대상으로 동창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또 1987년 2월부터 출연한 금보 김영준(23회) 장학금을 비롯해 2000년 12월부터 출연한 호산 김정수(28회) 장학금 등이 해마다 주어진다. 이밖에 동문 개별 장학금으로 법률가인 백오윤(23회) 동문의 유지에 따라 고인의 딸이 매년 500만 원을 관악부 장학금으로 지원해 오고 있다. 이밖에도 1억 원을 출연한 진영환(52회) 삼익THK회장 외에 추광엽(64회) 동문을 비롯한 많은 동문들이 장학 사업에 뜻을 같이하고 있다. 1963년 결성된 대구농림고등학교총동창회는 서울을 비롯해 부산, 대구·경북 등 각 지역별 동문회를 결성해 운영한다. 특히 일제강점기 시절 개교해 일본인 졸업생들도 다수 포함되기 때문에 재일본동창회도 조직돼 있다. 초대 총동창회 집행부는 구흥관(17회)회장과 백오윤(23회) 부회장을 시작으로 현재 24대 이정현 회장(61회)과 예병훈 수석부회장(62회)이 동문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 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대구농업마이스터고 이정현 총동창회장

“일제 강점기 엄혹한 시대에 태어난 우리 모교는 자랑스런 동문 선배님들이 우리나라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를 이뤄낸 국가발전의 한 축을 담당해 왔습니다. 특히 올해는 모교 선배님들이 분연히 앞장섰던 2·28운동 60주년을 맞아 총동창회도 그에 발맞춰 교정에 기념비를 건립하는 등 여러 사업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또 후배들의 취업과 진학에 더 큰 도움이 되도록 총동창회 차원에서도 애정을 가지고 살피고 노력해 나갈 생각입니다.” 제24대 대구농업마이스터고 총동창회장을 맡고 있는 이정현 경북임업 대표이사(61회)는 개교110주년을 맞아 학교의 새로운 위상정립과 재학생들의 취업과 진학에 총동창회가 역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아울러 올해를 기점으로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는 일에도 매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교육은 백년대계’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대농의 동산’에서 농업분야를 선도하는 글로벌 인재를 키워내는 학교의 노력에 총동창회도 적극 지원할 생각을 내비쳤다. 총동창회는 대구·경북은 물론 서울과 부산 등 각 지역별 동문회를 결성해 운영한다. 특히 일제강점기 시절 개교해 일본인 졸업생들도 다수 포함돼 재일본동창회도 조직돼 있다. 이 회장은 “재일본 동창회는 해마다 일본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동문들이 모여 학창시절을 회상하고 정기적으로 모교를 방문하는 행사도 가지는 등 국적이 다른데도 끈끈한 모교사랑을 과시하고 있다”며 “이분들이 일본에 진출하는 우리 후배들에게 디딤돌이 되어 줄 수 있도록 총동창회 차원에서 연결고리 역할을 꾸준히 해 나가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또 이 회장은 동창회원들의 노후 생활을 위한 농림고만의 특색을 살린 이색 사업도 소개했다. “은퇴한 동문을 중심으로 몇년 전부터 춘란을 키우는 ‘원명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지금 회원이 10여 명 된다. 동문 중에 대한민국 최고의 춘란명장이 있어 ‘원예치료’ 목적을 겸해 배우는데 노후 용돈벌이도 되고 건강에도 도움 돼 회원들의 만족도가 아주 높다”며 “농업계 학교 특성을 살린 이런 소모임을 꾸준히 개발하는 것도 동창회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개했다. 끝으로 이 회장은 “한 세기를 넘게 이어온 대구농림고의 커다란 발자취에 걸맞도록 모든 동문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모교 발전을 위한 지원과 응원을 바라고, 110주년을 넘어 200년, 300년 그 이상을 이어갈 역사를 위해 총동창회가 한 알의 밀알이 되도록 하겠다”고 전했다.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71) 흥륜사 금당십성-원효와 사파

원효는 신라 금당십성으로 알려진 것 외에도 신라 불교 대중화를 이룩한 시대를 초월한 성인으로 이미 유명한 인물이다. 원효는 삼국유사에서도 여러 장에서 소개되고 있지만 삼국사기 등 역사기록 곳곳에 등장한다.원효는 당나라 유학길에서 얻은 깨달음의 과정, 요석공주와의 만남과 설총을 낳은 이야기, 기림사 설립과 혈사에서의 죽음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도술을 부리는 수준의 깨달음을 얻어 신의 경지에 이른 이야기도 여러 가지로 전한다. 오어사의 이름이 지어진 배경이 된 혜공과의 신화 같은 이야기에도 등장한다.반면 사파 또는 사복 등으로 불리는 인물은 신라십성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삼국유사 4편 의해 ‘사복이 말하지 않다’에서 원효와 함께 잠깐 언급되는 외에는 기록이 없다.이번 호에서는 원효와 사파에 대해 간단하게 알아보고, 원효에 대한 이야기는 제4편을 소개하는 장에서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삼국유사: 사복이 말하지 않다서울(경주) 만선북리에 과부가 있었는데 남편도 없이 아이를 잉태해 낳았다. 아이는 나이 12세가 되어도 말을 하지 않고 일어나지도 못했다. 때문에 사동 또는 사복 또는 사파라고 불렀다.어느 날 그의 어머니가 죽었다. 그때 원효는 고선사에 있었는데, 원효가 그를 맞으면서 예를 갖추었다. 사복은 답례도 하지 않고 “그대와 내가 예전에 암소에 불경을 실었는데 지금 죽어버렸으니 함께 가서 장사를 치르자”고 했다.원효가 “좋소”라 대답하고 함께 사복의 집에 이르렀다. 원효가 시체 앞에 나아가 “나지 말라 죽는 것이 고통이니라, 죽지 말라 나는 것이 고통이니라”고 하자 사복이 “말이 번거롭다”고 했다. 원효가 다시 “죽고 나는 것이 고통이다”고 했다.둘이서 시신을 메고 활리산 동쪽으로 돌아왔는데 원효가 “지혜의 호랑이를 지혜의 숲속에 장사지내는 것이 또한 마땅치 않겠소”라고 했다. 사복이 “옛날 석가모니불께서는 사라수 사이에 열반에 드셨는데 지금 역시도 그와 같은 이가 있으니 연호장 세계에 들어가고자 하오”라 답했다.사복이 말을 마치고 풀을 뽑으니 아래에 세계가 생겨났다. 휘황찬란하고 깨끗하면서도 칠보로 장식한 난간과 누각이 장엄해 분명히 인간세상이 아니었다. 사복이 시체를 업고 들어가니 그 땅이 갑자기 합쳐졌다. 원효는 이에 돌아왔다.후세 사람들이 금강산 동남쪽에 절을 세우고 이름을 도량사라고 했다. 매년 3월14일에 점찰회를 행하는 것을 항규료 삼았다. 사복의 교화는 오로지 이것을 보여 준 것뿐인데 세간에는 황당한 이야기들이 많이 떠돈다.찬한다. “깊이 잠든 용을 어찌 등한시하리/ 떠날 때 읊은 한 곡 간단도 하다/ 고통스런 생사는 원래 고통이 아니니/ 연화장에 떠도는 세계가 넓기도 하다.”◆신라십성 원효와 사파-원효는 7세기에 활약한 승려로 출가 이후 환속해 무애행을 통한 정토신앙 확산에 힘쓴 인물이다. 속성은 설씨이고, 어렸을 때는 서당, 신당이라는 이름이 있다.파계하고 환속한 뒤에는 소성거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원효라는 법명은 새벽이라는 뜻으로 불교를 빛나게 한다는 의미를 담아 스스로 지었다.원효는 15세에 출가, 자신의 집을 절로 지어 초개사, 태어난 곳에 사라사를 세웠다. 낭지와 혜공, 보덕 등의 선승들에게서 불법을 배우며 스스로 깨우치기 위한 고행을 했다. 한국불교사상 발달에 크게 기여해 해동보살, 해동종주라고도 불린다.고려 숙종이 대성화쟁국사 시호를 내려 지금도 분황사 터에 대성화쟁국사비를 건립했던 대좌가 남아 있다.문무왕 시대 661년 의상과 당나라로 유학길에 올랐다가 당항성에서 깨달음을 얻어 돌아와 분황사에 주석하며 금강삼매경론, 대승기신론소, 화엄경소 등의 100여 종 24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박으로 무애를 만들어 일체의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 한 길로 삶과 죽음을 넘어설 수 있다고 설파했다. 누구나 입으로 부처의 이름을 외우고, 귀로 부처의 가르침을 들으면 성불할 수 있다고 가르쳐 백성들이 나무아미타불을 외우게 되었다.고선사에 머물며 참선을 하기도 했다. 기림사를 창건해 머물다 혈사에서 686년 신문왕 6년 70세 일기로 입적했다. 아들 설총이 유골을 빻아 소상을 만들어 분황사에 안치했다.발생과 소멸, 이것들이 하나이면서도 둘이며 둘이면서도 하나의 관계에 있다. 이는 모든 것은 본성적으로 실체가 없다는 것, 어떠한 실재도 없다는 것을 나름의 방법으로 극복하려 했다. 원효의 사상은 중국의 법장과 징관 등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사파: 신라 왕경의 흥륜사 금당에 소상으로 모셔진 10명의 성인 중 하나다. 사복으로도 불렸다. 사복의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 수 없다. 단지 그가 원효와 함께 등장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7세기에 활약한 인물로 추정된다.동국이상국집 23권 남행월일기에 사복은 원효의 제자로 기록하고 있다. 그의 진영이 원효와 진표의 진영과 함께 소래사에 봉안되어 있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유명 승려로 분석한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원효가 전생에서 사파를 만나다원효는 당나라 유학길에서 깨달음을 얻어 다시 신라로 돌아온 이후 전국을 떠돌며 고행의 길을 걸었다. 걸인의 행색으로 동냥을 얻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으며 농사일을 거들며 끼니를 얻어먹는 일꾼의 일도 줄곧 했다.설악산 큰 절에서 땔나무를 베어오고, 부엌의 일을 거드는 불목하니로 일을 하기도 했다. 원효가 강원도 어느 절에서 불목하니로 있을 때였다. 강원도에는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기 때문에 절에서는 민가와 마찬가지로 겨울에 땔 나무를 늦가을에 이미 산더미처럼 쌓아두어야 한다.그런데 그 절에 미리 불목하니로 들어와 일을 하고 있던 황소고집으로 소문 난 사복이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사복은 어릴 때부터 왼쪽 팔과 다리를 잘 쓰지 못하는 불구였지만 힘이 장사이고 고집이 남달라 자신의 일을 거들어주는 것도 싫어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그의 일에는 간섭을 하려하지 않았다.한쪽 팔과 다리가 불편해 절룩거리는 걸음으로 물을 길어올 때면 물동이의 절반이 출렁거리며 넘쳐 다른 사람들이 다섯 번 길어오면 될 일을 사복은 열 번은 왕복을 해야 했다. 그렇지만 사복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말없이 혼자 해내었다.원효가 불목하니로 들어왔을 때, 사복은 심하게 그를 구박했다. 이전에 하지 않았던 불손한 언행으로 원효를 부려먹었다. 그가 불문율처럼 행하던 물 긷는 작업과 땔 나무 베는 일도 대부분 원효에게 시켰다. 원효는 말없이 사복이 시키는 일을 해냈다. 그러고 잠자리에 들면서 늦도록 불법의 이치에 대해 토론하곤 했다.고집쟁이 장애인 불목하니로 관심 밖에 있던 사복은 의외로 불법에 대한 공부가 깊었다. 그의 선문답 같은 질문에 가끔 공양시간에 만나는 주지스님도 당황해 했지만 사복의 불심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차츰 원효와 죽이 맞은 사복은 겨울철 땔 나무를 준비하는 작업에도 원효와 함께 하길 즐겨했다. 아침 공양을 마친 사복은 여느 때처럼 원효를 불러 깊은 산으로 들어갔다. 가까운 산에서는 장작을 마련할 마땅한 나무가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삐걱거리는 수레를 끌고 비탈길을 오르내리며 땔 나무를 실어 날랐지만 이골이 난 사복과 원효는 매일 수레 가득 나무를 실어왔다.늦가을 어느 날 때 이른 눈이 내린 길에 수레가 계곡으로 미끄러지기 시작하자 사복과 원효가 매달렸지만 속수무책으로 열길 낭떠러지로 함께 떨어져버렸다. 원효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려보니 사복의 배를 뚫고 나온 썩은 대나무 줄기로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드디어 극락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구나. 다음 생에 또 만나세”라는 말을 남기며 사복은 웃음을 머금은 채 눈을 감았다. 가까스로 기운을 차린 원효는 사복의 미소 띤 죽음에서 또 깨달음을 얻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한눈에 세계여행 하기 (15) 미국 시애틀①

미국 워싱턴 주에 위치한 시애틀은 미국 북서부 최대 도시이자 낭만의 도시로 불린다. 호수와 산, 바다로 둘러싸인 시애틀의 지형적 특징은 미국의 어느 도시와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또 한국에서 출발할 경우 가장 먼저 도착할 수 있는 미국 관문 도시이기도 하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스타벅스, 보잉사 등 세계 굴지 기업 본사가 이 도시에 있다. 코로나19로 반드시 방문 전 개별 홈페이지를 통해 운영 여부 및 방역 수칙을 확인하길 바란다. ◆시애틀 360도 전망할 수 있는 스페이스 니들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은 1962년 시애틀 세계박람회의 유산 중 하나로 시애틀의 초현대적인 아이콘이라 할 수 있다. 스페이스 니들 전망대의 높이는 총 184m며, 160m 지점에 위치해있다. 전망대는 360도 전망으로 퓨젯 만(Puget Sound), 캐스케이드 산맥(Cascade Mountain), 올림픽 산맥(Olympic Mountain) 및 시애틀 스카이라인의 경치를 감상 할 수 있어 매년 13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한다. 2018년에는 개장 이래 처음으로 무려 1억 달러(한화 약 1천130억 원) 예산이 투입된 시설 리노베이션 공사를 했다. 통유리 교체, 회전 바닥, 와인 바 등 최신 시설로 단장했다. 스페이스 니들 약 160m 높이 지점에 위치한 전망대는 기존 창가의 철조망을 제거하고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르는 전면을 통유리로 교체했다. 통유리로 교체된 전망대 및 스카이라이저(Skyrisers)에서는 관광객들이 전망대를 통해 퓨젯 만, 캐스케이드산맥, 시애틀 다운타운 등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또 전망대 외부의 벽을 따라 비스듬하게 설치된 24개의 유리 벤치인 스카이라이저에서는 아찔한 전망대 체험이 가능하다. 스페이스 니들 150m 높이에 새롭게 설치된 더 루프(The Loupe)에서는 세계 유일의 공중회전 유리 바닥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관광객들은 회전하는 유리 바닥 위를 걸으며 발 아래로 펼쳐진 아찔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마치 하늘에 떠 있는 듯한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더 루프가 한 바퀴 회전하는 데는 약 45분 소요된다. 전망대에 위치한 ‘아트모스Atmos) 카페’와 더 루프 층에 있는 ‘아트모스 와인 바’에서는 360도 전망의 시애틀을 조망하면서 간단한 스낵과 드링크를 즐길 수 있다. 특히 전망대와 더 루프에는 리노베이션을 통해 새로 설치된 오큘러스 계단(Oculus Stairs)을 통해서 이동할 수 있다. ◆시애틀 박물관, 전시관, 과학관 등 역사 깃든 명소 비행기 박물관(Museum of Flight)은 세계에서 가장 큰 비행기 박물관으로 라이트 형제부터 우주선까지 비행기의 모든 역사가 살아있는 곳이다. 150개 이상의 역사적인 비행기들이 전시돼 있고,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체험관과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현재는 단종 된 브리티시 에어웨이 콩코드(British Airways Concorde)와 에어포스 원(Air Force One)이 전시돼 있다. 또 퍼스널 커리지 윙(Personal Courage Wing) 구역에는 제1차와 2차 세계 대전 당시 전투기 28대가 복원돼 있는 것을 관람할 수 있다. 또 시애틀 매리너스(Seattle Mariners)의 홈 경기장, T-모바일 파크(T-Mobile Park)로 이동해 보자. 이곳은 5만 명 이상 수용이 가능하며 천장은 개폐씩 돔 지붕으로 이뤄져 있다. 경기가 없는 날에는 야구장 투어를 신청할 수 있으며, 대중에게 보통 공개하지 않는 야구장의 기자석과 특별관람석, 선수 대기석 그리고 방문자 클럽하우스 등을 볼 수 있다.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공동 창시자 폴 앨런(Paul G Allen)이 설립한 시애틀 음악 박물관(Museum of Pop Culture, MoPOP)은 음악과 첨단 기술이 접목된 전시공간이다. 로큰롤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모든 장르 음악의 창조와 혁신을 탐구할 수 있는 곳이다. 다양한 전시로 대중문화와 음악을 여러 세대가 공감하고 체험할 수 있으며 각종 악기와 음악 기기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또 다양한 장르를 대표하는 전문가들의 특별한 공예품과 희귀한 수집품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뮤지션들이 전하는 그들의 스토리를 통해 음악의 창작 과정을 경험해 볼 수 있다. 치훌리 가든&글래스(Chihuly Garden&Glass)는 스페이스 니들 옆에 위치한 전시관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애틀 출신 유리공예가인 데일 치울리(Dale Chihuly)가 치훌리 가든&글래스 디자인 및 기획에 참여했다. 이곳은 지금까지 아티스트 작품의 가장 포괄적인 컬렉션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방문객들은 전시홀 내부와 아웃도어 정원에서 치훌리가 직접 불어 만든 수천 점의 컬러풀한 유리공예를 감상할 수 있다. 특히 글라스하우스 천장에 전시돼 있는 1천340개의 레드, 오렌지, 노랑 색감의 유리로 만든 아름다운 구조물은 꼭 봐야 할 전시물이다. 퍼시픽 사이언스 센터(Pacific Science Center)는 1962년 시애틀 세계박람회를 위해 미국 과학 전시관이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다가 박람회가 끝난 뒤 퍼시픽 사이언스 센터라는 이름으로 개관한 미국 최초의 과학관이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체험센터는 상설 전시관과 특별전시관으로 나눠져 있다. 상설 전시관에는 움직이는 공룡, 열대 나비의 집, 곤충 마을과 퓨젯 만 모형 등이 전시돼 있고, 각종 동물과 기술 관련 전시도 있다. 두 개의 IMAX 영화관은 최신형 3D 입체 영화관과 초대형 스크린 시설을 갖추고 있다. ◆시애틀 문화, 스포츠 등 엿볼 수 있는 이색 명소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시장이다. 신선한 해산물, 과일, 채소에서부터 아름다운 꽃, 맛있는 음식, 핸드메이드 기프트에 이르기까지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스타벅스 1호점이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검 벽(Gum Wall)에서 껌을 붙여보고, 마켓 간판 바로 아래에서는 엽서로 써도 좋을 만큼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잘 익은 베리와 글로벌 먹거리 샘플을 즐길 수 있으며, 수백 개의 가판대 사이를 걸어 보는 것도 좋다. 센추리링크 필드(CenturyLink Field)는 시애틀 미식축구팀 시호크(Seahawks)와 프로축구팀 사운더스 FC(Sounders FC)의 홈 경기장이다. T-모바일 파크와 같이 경기가 없는 날에는 팬들에게 특별관람석에 앉아 볼 수 있고, 라커룸에서 유니폼도 입어 볼 수 있는 특별한 투어를 제공한다. 이곳은 7만 명 이상 수용 가능한 곳으로, 경기가 없는 날에는 콘서트나 이벤트가 진행되기도 한다. 시애틀 아쿠아리움(Seattle Aquarium)은 4만5천 리터의 물로 채워진 수족관에 다양한 연어와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물고기들을 관람할 수 있다.특히 워싱턴 본래 해양 생물들을 잠수부들과 함께 관람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아름다운 산호초로 가득 찬 수족관과 다양한 종류의 해양 포유동물, 특히 돔을 따라 이동하면서 해양생물을 관찰할 수 있는 언더워터 돔(underwater Dome)도 인기다.아쿠아리움은 시애틀의 워터 프론트 59 부두에 위치해 있다. -자료 제공: 시애틀 관광청.구아영 기자 ayoungoo@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