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기행 (51) 남부여와 전 백제

삼국유사는 기이편에서 신라 마지막 왕 김부대왕에 대해 소개한 데 이어 느닷없이 백제의 처음도 아닌 한참이나 진행된 남부여로 불리던 시기를 늘어놓고 있다.백제의 시조는 온조왕이다. 그러나 백제를 234년부터 286년까지 52년이나 다스렸던 8대 고이왕을 사실적인 시조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중국의 역사서 주서에서 백제의 시조를 고이왕으로 보는 기록을 근거로 삼는다. 이와 함께 고이왕이 백제의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강화시킨 업적이 그를 시조로 모시게 한다.백제시대를 연 사람들을 온조, 고이왕, 근초고왕, 근수구왕, 개로왕 등으로 본다. 이어 백제중흥기에 이어 멸망에 이른 동성왕, 무령왕, 성왕, 위덕왕, 30대 무왕, 31대 의자왕이 역사서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무령왕은 무녕왕으로 표기되며 501년부터 523년까지 25대 백제왕으로 국내 정치를 안정시키고 해양으로 멀리까지 진출해 백제의 위상을 크게 높인 왕이다. 최근 무령왕릉이 발굴되면서 학계 연구에 새로운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무녕왕의 아들 성왕이 신라와의 전투에서 사망한 것으로 나오지만 백제의 기틀을 다지는 역할을 했다.백제는 한강유역 위례성에서 시작해 백마강 일대 사비성에서 678년 역사의 문을 내린다. 31대 의자왕의 굴욕, 삼천궁녀의 낙화암 전설과 함께 비운의 마지막을 장식한다.◆삼국유사: 남부여와 전 백제부여군은 전 백제의 왕도이다. 소부리군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를 살펴보면 백제 성왕 26년은 무오년(538) 봄에 도읍을 사비성으로 옮기고 나라 이름을 남부여라 했다. 지명은 소부리이고, 사비는 지금의 고성진이다. 소부리라는 것은 부여의 다른 이름이다.한편 여주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것은 부여군 서쪽 자복사의 높은 자리 위에 수놓은 휘장이 있는데 여주 공덕대사가 수놓은 휘장이기 때문이다. 또 옛날 하남에 임주자사를 두었는데 임주는 지금의 가림군이고, 여주는 지금의 부여군이다.백제지리지에 ‘후한서에 삼한이 모두 78국인데 백제는 그 가운데 하나라고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북사(北史)에 백제는 동쪽으로 신라와 닿아 있고, 서남쪽으로는 큰 바다에 닿아 있으며, 북쪽으로는 한강에 닿았다고 한다. 그 도읍은 거발성이라 한다. 고마성이라 하는 이도 있다. 그밖에 또 오방성이 있다.통전에는 ‘백제는 남쪽으로 신라에 닿아 있고, 북쪽으로는 고구려에 이르렀으며, 서쪽으로는 큰 바다까지 미쳤다’고 경계를 설명한다.구당서에는 ‘백제는 부여의 다른 종족이다. 그 동북쪽에는 신라가 있고, 서쪽에는 바다를 건너 월주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바다를 건너 왜에 이르고, 북쪽에는 고구려가 있다. 그 왕이 사는 곳에는 동서로 두 성이 있다’고 전한다.신당서는 ‘백제는 서쪽으로 월주를 경계삼고, 남쪽에는 왜국이 있는데, 모두 바다 건너서이다. 북쪽에는 고구려가 있다’고 설명한다.사기의 본기는 백제 시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백제의 시조는 온조이다. 그의 아버지는 추모왕인데 주몽이라고도 한다. 주몽이 북부여에서 난을 피해 도망하여 졸본부여에 이르렀다. 그곳 왕에게 아들이 없고 딸만 셋 있었는데, 주몽을 보더니 범상치 않다 여겨 둘째딸을 아내로 주었다. 얼마 있지 않아 부여의 왕이 돌아가시자 주몽이 왕위를 이어받았다.두 아들을 낳았는 데 큰아들은 비류요 다음은 온조였다. 이들은 태자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여, 오간과 마려 등의 신하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갔다. 이때 따르는 백성이 많았다.그들이 드디어 한산에 이르렀다. 부아악에 올라가 살만한 곳을 찾았다. 비류는 백성을 나누어 미추홀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온조는 하남 위례성을 도읍으로 삼았다. 열 명의 신하가 보필을 하게 되어 나라 이름을 십제라 하였다. 이때가 한나라 성제 홍가 3년(BC 18) 이었다.비류는 미추홀의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편안히 살 수 없으므로 위례성으로 되돌아 왔다. 나라이름을 고쳐 백제라 했다. 백제는 조상이 고구려와 함께 부여에서 나왔으므로 해를 성씨로 삼았다.오랜 뒤 성왕 때에 이르러 도읍을 사비성으로 옮겼다. 지금의 부여군이다. 옛 전기에서는 동명의 셋째 아들 온조가 졸본부여로부터 위례성에 이르러 도읍을 세우고 왕이라 일컬었다.14년은 병진년(BC 5)인데 도읍을 한산으로 옮겨 389년을 지냈고, 제13대 근초고왕 때인 함안 원년(37)에 고구려의 남평양을 얻고 북한성으로 도읍을 옮겨 105년을 지냈다.제22대 문주왕이 즉위한 원휘 3년은 을묘년(475)인데, 도읍을 웅천으로 옮겨 63년을 지냈다. 제26대 성왕에 이르러 소부리로 도읍을 옮기고 나라 이름을 남부여라고 했다. 제31대 의자왕에 이르기까지 120년을 그곳에서 지냈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관산성 전투의 교훈백제는 BC 18년 온조가 창건해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678년간 한반도에서 삼국의 균형을 이루며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면서 특별한 문화를 만들었다. 아름다운 건축양식과 현대 세계 최고의 명품으로 손꼽히는 도자기 생산 기술은 지금까지 일본 등지에서 명맥을 잇고 있다.백제는 26대 성왕이 공주에서 지금의 부여 사비성으로 천도한 것을 포함해 다섯 번이나 수도를 옮겼다. 처음 한강유역 위례성에서 백마강 유역의 시대로 크게 나누어 지지만 성왕은 사비성으로 천도해 나라 이름을 백제에서 남부여로 고치고, 중국 양나라와의 교류에 이어 일본과의 교류도 두텁게 펼치며 나라의 힘을 키웠다.성왕이 신라와의 화친을 통해 부여에서 힘을 키워 고구려의 한강 유역까지 영토를 회복했다. 그러자 고구려가 신라와 손을 잡고 백제를 견제했다. 신라 진흥왕은 고구려와 우호관계를 맺고 백제와의 맹약을 버렸다. 이어 고구려에서 빼앗은 한강유역을 진흥왕이 백제로부터 빼앗아 영토를 넓혀버렸다.성왕은 아들 창을 앞세워 신라에 대한 복수전을 펼쳤다. 이미 기세가 오른 신라를 백제는 당하지 못했다.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은 죽음에 이르렀다. 아들 창 또한 왜나라에서 온 장군의 도움을 받아 겨우 탈출했지만 백제는 크게 패했다.성왕은 신라의 배신에 크게 분노했다. 아들 창에게 왕좌를 넘기고 거짓 장례를 치르게 하고 도움을 청하러 왜나라로 달려갔다. 성왕은 군사력을 키우기 위해 두 가지 전략을 택했다. 국내에서는 27대 위덕왕으로 즉위한 아들 창이 아버지 성왕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승려 100명을 선발해 3년간 위로법회를 열게 했다. 겉으로는 승려들의 법회였지만 이들은 전쟁을 치를 무서운 장수를 키우는 훈련원이었다.또 왜나라 후쿠오카 지역으로 100여 명의 청년을 몰래 데리고 건너가 무술 수업을 하면서 힘을 기르는 한편 신라를 협공하기 위한 병력을 지원받기 위해 불법과 도예, 건축 기술 등의 선진문화를 전파했다.성왕의 길은 멀고 험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백제와 가까웠던 소가시 세력이 모노노베시 세력에 밀려 지원할 여력을 잃었다. 가까스로 성왕의 지원으로 소가시 세력이 3년이 지나 겨우 모노노베시 세력을 몰아내고 후쿠오카지역의 실력자로 자리를 회복했다. 이어 백제를 지원해 1천여 명의 군사를 신라로 보냈지만 이미 성왕은 병으로 사망하고, 백제는 신라와의 전쟁에서 패해 다시 군사를 일으킬 힘이 없었다. 결국 성왕은 재기에 실패하고 이역만리 왜나라에서 눈을 뜬 채 세상을 하직했다.성왕의 유지를 이어받은 위덕왕은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고구려를 견제하고, 왜나라와의 우호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신라와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무왕시대로 이어지는 제2의 부흥기를 마련했다.*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구·경북 고교총동창회 (7) 대구공업고등학교 총동창회

대구공업고등학교는 1925년 개교했다. 2025년이면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는 100년 전통의 대구지역 대표 고등학교다. 1927년 3월25일 대구공립공업보습학교로 문을 열었다. 제1회 졸업생인 15명의 인재를 시작으로 1980년 가장 많은 졸업생을 배출(제51회 졸업·1천480명)하며 지역 경제발전에 공헌했다. 대구공고는 현재까지 동문 6만여 명을 배출하며 수많은 인재와 걸출한 인물의 산실로 자리매김했다. ◆산업화의 시대, 인재의 산실로 대구공고 최고 전성기는 1987년부터 1991년까지 3년이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구공고지만 3년 연속으로 매년 졸업생 1천400명을 넘긴 적은 이때가 처음이다. 당시 한해 한 학년은 24학급으로 1천428명 정원의 초대형 학교인 셈이었다.학급당 60명이 편성됐으니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우리나라 산업화 격동기에 얼마나 많은 인재 산실 구실을 했는지 보여주는 수치기도 하다. 이러한 양적, 질적 번성기를 뒤로한 채 공업계 고등학교 쇠퇴기에 들어서며 지금은 점차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 지난해 90회 졸업생 숫자는 398명으로, 전성기 대비 졸업생 수는 4분의 1로 줄어들었다. ◆대구공고 동문회 창립 대구공고 동문회는 1925년 개교 이래 일제 강점기, 광복, 6·25 전쟁 휴전 후인 1954년 2월14일에서야 대구공업 중·고등학교 동창회 창립총회를 개최해 창립됐다. 동문회장은 초대 동문회장인 문위경(13회) 동문 이후, 현재 박종판(50회) 제34대 동문회장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구공고는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약하는 동문이 많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등 2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대통령 2명을 배출한 것은 영국의 이튼스쿨과 같은 명문 고등학교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또한 최순달 전 과학기술부 장관은 대구공고 21회 졸업생이다. 최 전 장관은 우리나라 항공우주산업의 선구자이자 널리 알려진 인공위성 박사다. 한국 세라믹 산업의 태두인 장성도(19회) 전 KIST 교수, 박수길(23회) 전 UN 대사, 노희찬(33회) 전 대구상공회의소 회장, 최진민(30회) 귀뚜라미 보일러 회장, 도승회(25회) 전 경북도 교육감, 신태용(59회)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동문이 헤아릴 수 없이 포진하고 있다.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해 있는 대구공고 동문은 유달리 끈끈한 결속력과 소속감에 대한 단단한 유대 의식이 강한 동문으로 알려졌다. 대구공고 동문은 '땜장이' 학교 출신이라는 자부심과 자존감을 지니고 있으며, 그 자부심은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업계 고등학교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자리하고 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자랑스러운 동문 1950년 6월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자 대구공고에 재학 중이던 학생 273명은 오직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도 펜 대신 총을 들고 전선으로 달려 나가 참전했다. 대구지역 학도병 중 가장 많은 인원이었다. 또한 1960년 2월28일 자유당 정권의 학원탄압에 맞서 싸운 '2·28 대구 학생민주화운동'에서 대구공고 학생들을 비롯한 지역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은 학원 탄압의 부당성에 항거, 대구 젊은이들의 기개를 만방에 떨쳤다. 특히 대구공고 동문 김윤식(16회) 시인은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이라는 저항시를 발표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김현산(23회) 동문은 두류공원에 세워진 대구 학생민주화운동 기념탑을 디자인했으며, 박명철(32회·제8대 2·28공동의장)동문은 2·28민주화 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기까지 큰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이에 동문회는 선배들의 숭고한 나라사랑 얼을 기리고 선양하고자 2018년 모교 교정 옥저공원에 2·28 기념탑과 6·25 학도병 참전 기념비를 건립했다. ◆장학회 사업 및 다양한 사업 진행 대구공고 총동문회는 대구공업고등학교 장학회를 설립해 매년 모교 입학생 및 성적 우수 동문 자녀에게 장학금을 수여해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50여 명의 동문으로 구성된 장학회 이사와 장학회 재단 이사장 출연금 등으로 장학기금을 충당하고 있다. 장학회 이사장직은 동문회장과 별도로 선임해 장학회 사업에 전념토록 하고 있다. 또한 후배 재학생들이 취업, 진학 등을 원활히 이룰 수 있도록 '동문 멘토링'을 지속해서 운영하고 있다. 대구공고 동문회 사무처는 홈페이지, 밴드 등의 모바일 공간을 개설해 동문 선·후배 상호 간 소통과 길흉사 알림, 정보교환 등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계절마다 다양한 동문회 행사 개최 대구공고 총동문회는 매년 12월 셋째 주 정기총회 겸 송년의 밤 행사를 한다. 정기총회 및 송년의 밤 행사에는 매년 동문 400여 명 이상이 참석해 친목을 다지는 등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다. 매년 10월 둘째 주 일요일 모교 운동장에서는 총동문회 체육대회가 개최된다. 체육대회에는 2천여 명의 동문이 참여해 전국체육대회를 방불케 한다. 4월에는 모교의 발전과 선·후배 간 상호 친선 도모를 위해 총동문회 등반대회가 열린다. 재경 동문회 등 지역별로 많은 동문이 모여 전국 유명산을 등산한다. 이후 함께 하산 뒤풀이 행사를 성대히 가져 동문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6월에는 총동문회장배 골프대회가 열린다. 대회는 기수별, 지역별로 팀을 이뤄 동문 친목을 도모하는 교류의 장이 되고 있다. 이 밖에도 구미동문회 등 지역별 동문회에서 매년 골프대회를 열고 있으며, 옥저 서도회 등 다양한 취미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그 외 재경동문회 체육대회, 포항·구미 동문회 체육대회 등 친목 도모를 위한 지역별 동문회 행사가 연이어 열리고 있다.------------------------------------------------------------------------------------------------- ◆박종판 대구공고 동문회장 "젊은 친구들이 사랑방처럼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동문회, 존속 가능한 동문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박종판(50회) 대구공업고등학교 제34대 동문회장은 세월이 흐르며 희미해져 가는 동문회를 이끌어가기 위해 동문의 관심을 유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동문회라는 모임 자체가 너무 오래전부터 그 시스템이 고착됐다"며 "시대가 바뀌어 동문회라는 관념 자체가 희미해졌다. 찾아오는 동문 역시 줄어드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이어 "젊은 후배들이 지속해서 찾을 수 있는 존속 가능한 동문회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일명 '대구공고 페이스북'인 대구공고 동문회 애플리케이션(앱)을 제작 중이다. 박 회장은 "대구공고는 공업계 고등학교인 만큼 선·후배 대부분이 사업 등 산업 전선에 있다"며 "업종 간의 결속이 중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한 이유에 그는 "애플리케이션 등 첨단 IT 기술들을 이용해 대구공고 동문의 업종 간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어 "IT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동문이 현재 '대구공고 동문회 앱' 막바지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동문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라며 "앱이 출시된다면 대구지역에서는 최초인 셈"이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다가오는 2025년 '대구공고 개교 100주년 기념사업'도 한창이다. 박 회장은 "33회 졸업생인 노희찬 전 상공회의소 회장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회장으로 추대해 100주년 기념탑 건립, 대구공고 100년사 책자 발간, 동문회 명부발간, 기금모금회 등 다양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태용 축구 감독과 곽태휘 축구선수 등을 배출한 대구공고 축구부에 대한 지원도 준비 중이다. 그는 "대구에서 공립고등학교 축구부는 대구공고가 유일하다"며 "현재 프로축구팀이 운영하는 사립고교의 FC 클럽 체제에 열세이긴 하지만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만큼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대구공고는 지금껏 오랜 세월 동안 지역사회를 이끌어 가는 중추적 인물 양성소의 산실로서 그 입지와 위상이 남다르다"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업계 고등학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동문회 문을 두드려줄 후배들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hsoo@idaegu.com

한눈에 세계여행 하기 (6) 홍콩②

홍콩은 남녀노소를 가리 않고 늘 인기 만점의 관광지다. 동서양의 문화가 어우러진 매혹적인 도시이자 짧은 비행시간과 편리한 교통은 물론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까지 풍성해 자유여행을 즐기기엔 최적이다. 홍콩은 인천에서 약 3시간30분이 소요된다.시차는 1시간으로 홍콩이 한국보다 1시간 늦다. 또 홍콩은 11월부터 3월까지 홍콩의 늦가을부터 겨울은 우기가 끝나고 평균 기온 18도에서 24도를 오가는 한국의 가을을 연상시키는 날씨로 도보 여행에 적합한 날씨다. 이렇듯 한국 인기 프로그램과 영화에서도 홍콩의 명소가 많이 방영되고 있다.영화 도둑들, 예능 인기 프로그램인 런닝맨·신서유기 등이 있다. 선선한 날씨에 청바지에 맨투맨 티를 하나 걸치고 한국 영화와 예능에 담긴 홍콩의 명소들을 거닐어보자. ◆한국 영화 및 예능 속 담긴 홍콩 인기 관광지 한국에서 가깝고 문화가 비교적 비슷한 홍콩은 한국의 영화, 방송에도 자주 등장한다.하버 그랜드 구룡 호텔, 옹핑, 리펄스 베이 등이다. 영화 ‘도둑들(2012)’은 배우 김해숙, 김윤석, 김혜수, 이정재, 전지현 그리고 김수현 등 우리나라에서 내놓으라 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영화다. 당시 떠오르는 스타 김수현까지 합세해 개봉 전부터 이슈 몰이를 했던 영화 도둑들은 한국 영화로서 여섯 번째로 1천 만 관객 돌파를 기록했다. 영화 엔딩 신으로 극명 펩시 김혜수와 예니콜 전지현이 만난 야외 수영장을 기억하는가?이곳은 하버 그랜드(Harbour Grand) 구룡 호텔이다. 영화 ‘도둑들’의 엔딩 신으로 유명해진 21층 야외수영장에서 파노라믹 도심과 항구의 전망을 마주하며 수영 또는 휴식을 즐겨보자. 구룡 호텔은 홍콩 애프터눈 티 베스트로 손꼽히는 페닌슐라, 인터콘티넨탈 호텔과 바로 마주하고 있다. 또 근처 쇼핑몰 하버시티와 높은 빌딩 숲 사이에 자연을 만날 수 있는 구룡 공원 등이 있다. 인기 예능프로그램인 ‘런닝맨(2011)’에서는 명소인 옹핑(Ngong Ping)이 방영됐다. 옹핑은 홍콩에서 가장 큰 섬인 란타우 섬에 있다. 옹핑은 MTR 퉁청역에서 시작되는 케이블카로, 옹핑 360 케이블카와 세계 최대 청동 좌불상이 있는 빌리지로 구성돼 있다. 케이블카 길이 5.7㎞를 타고 옹핑 빌리지로 향하는 길은 홍콩의 산과 바다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장관을 이룬다. 케이블카에서 내리자마자 만나는 옹핑 빌리지는 높이 34m, 무게 250톤에 달하는 세계 최대 청동 좌불상이 있는 포린 사원(Po Lin Monastery)과 더불어 아기자기한 캐릭터 그리고 소원을 이뤄준다는 향들이 거리를 장식하고 있다. 런닝맨은 멤버들이 미션을 수행하며 리얼한 추격전을 벌이는 흥미진진한 모습을 보였다. 이곳은 평소 런닝맨 멤버들 중에서도 겁이 많기로 유명한 개그맨 유재석이 바닥이 투명해 ‘크리스탈 캐빈’이라 불리는 케이블카에 올라타 고소공포증을 호소하며 구석에서 옴짝달싹 못하며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줬던 장면으로 방영됐다. 케이블카에서 내리자마자 구룡의 전설을 풀 ‘진짜 목걸이’를 찾기 위해 멤버들이 동분서주 누비던 곳은 넓은 옹핑 빌리지다. 또 ‘신서유기5(2018)’에서는 리펄스 베이(Repulse Bay)가 소개됐다. 신서유기는 나영석 감독의 강호동, 이수근, 은지원 등이 출연하며 용볼을 회수하기 위한 (귀)신들의 사투, 리얼 막장 모험활극 다섯 번째 이야기다. 2018년 10월14일 3화 방영분에서 저승사자로 분한 은지원과 처녀 귀신, 송민호가 짝이 돼 향한 홍콩 최고의 부촌에 자리 잡은 비치에서 샴페인을 겸한 우아한 브런치를 즐기던 곳은 리펄스 베이다. 리펄스 베이는 지친 마음에 위로를 받을 수 있는 해변이다. 센트럴역의 익스체인지 스퀘어(Exchange square, 버스 터미널)에서 스탠리행 버스를 타고 도심을 지나 산속을 20분쯤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탁 트인 바다가 나타난다. 수평선이 보이는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고급 주택가와 골프장 등이 도심과는 180도 다른 풍경으로 ‘여기, 홍콩 맞아?’ 하는 의문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곳이다. 해변에 조성된 나무 그늘에 앉아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유유자적하거나 잔잔한 파도에 수심이 완만한 해변에서 물놀이를 즐기거나 또는 해변에 위치한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휴식을 취해보기 안성맞춤이다. ◆홍콩의 대표 관광지, 삼수이포·란콰이퐁 삼수이포는 홍콩 가우룽 반도의 북서부에 위치하며 홍콩의 근로자가 많이 사는 지역이다. 번쩍이는 고층건물 대신 검소한 겉모습 이면에 풍성한 역사를 간직한 건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삼수이포는 1950년대에는 홍콩으로 망명 온 중국 난민들을 수용하던 판자촌이었다. 홍콩 최초의 공공 임대 주택이 설립된 이후에는 서민들의 주거지이자 공업 단지로 역사를 이어왔다. 관광객의 발길이 좀처럼 닿지 않던 이곳은 서민들의 공공 주택과 공장 지대를 품은 변두리였다. 버려진 공장을 개보수한 아티스트 거주지를 중심으로 젊은 디자이너와 예술학도들이 모여들며 주목 받은 후 저렴한 가격의 맛 집과 홍콩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골목으로 빠르게 인기를 얻고 있다. 낯선 향기와 색깔로 흘러넘치는 재래시장 페이 호 스트리트 마켓(Pei Ho Street Market)을 구경한 후, 골목 모퉁이의 노천 식당이나 전통 디저트 ‘띰반’을 파는 가게를 방문해보자. 홍콩 도심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가격이 저렴하지만, 혹시라도 맛이 없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조촐한 동네 식당에서 출발해 미슐랭 원스타를 얻은 후 뉴욕까지 진출한 딤섬 가게 팀호완의 본점이 이곳에 있다. 또 란콰이퐁(Lan Kwai Fong)은 홍콩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나이트라이프의 명소로, 가장 트렌디한 거리로 알려졌다. 서구식 레스토랑과 바, 나이트클럽, 음악 등이 어우러져 독특한 색깔과 현대적 감각을 연출하는 낭만의 거리이자 홍콩에서 나이트 라이프의 명소로 90개가 넘는 레스토랑과 바가 모여 있다. 우아하게 와인을 즐기는 곳부터 시끌벅적하게 젤리 샷 칵테일을 즐기는 공간까지, 다양한 분위기의 바와 레스토랑이 있다. 또 각양각색의 음식도 선보인다. 특히 재즈와 디스코, 팝, 홍콩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취미에 맞게 즐길 수 있는 이국적인 곳이기도 하다. 영화에 종종 등장하면서 홍콩 나이트 라이프의 중심지인 란콰이퐁이 더 유명해졌다. 또 그 유명세를 반영하듯 클럽에서 종종 마주치게 되는 유명 배우들보다 란콰이퐁 공식 도로 표시판을 찍는 사람이 더 많이 보인다. 란콰이퐁은 할로윈이나 크리스마스, 새해와 같은 주요 페스티벌 기간 동안 축하 행사가 열리며 자체적으로 맥주 축제도 개최하고 있어 언제든지 방문하기 좋다. 이곳에서는 야시장도 하나의 이색 명소다. 해가 지면 상인들이 빼곡하게 들어서는 야시장은 현지인들의 일상 속에 들어간 듯, 높은 빌딩 속 홍콩의 민낯을 보여주는 곳이다. 근처 틴하우 사원이 있어 붙여진 이름 템플 스트리트 야시장은 침사추이에 위치한 대표적인 관광지로 늦은 오후가 되면 상인들 뿐 아니라 경극 배우들과 점술가들도 모인다. 축제와 극장이 가미된 중국 시장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며 매일 밤 다양한 볼거리가 펼쳐지지만 무엇보다 전구로 빛을 낸 가게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작은 장신구류부터 다기, 전자기기, 시계, 남성 의류, 욕, 골동품 등을 구경하며 길거리 음식도 즐길 수 있다. -자료제공: 홍콩 관광청구아영 기자 ayoungoo@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50) 김부대왕 (하) 신라와 남산의 신

세계사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신라는 기원전(BC) 57년에 건국해 935년까지 화려한 문화를 일구었다. 그 시작은 지금의 경주 남산자락이었다. 현재 경주시 행정구역이 신라가 고대국가로 출발할 때의 영토와 비슷하다.신라는 한반도에서 백제, 고구려와 삼국의 견제 형태에서 가장 힘이 약한 나라로 손꼽히며 때로는 백제와, 때로는 고구려와 손을 잡아 나라를 유지해 왔다. 그러던 신라가 당나라와 손을 잡고, 삼국통일을 이루는 주인공이 되었다.신라는 일찍이 불교를 국가적인 정신문화로 발전시켜 국론을 통일하는 정신문화자산으로 육성하고, 화랑정신을 청소년들에게 파급시켜 뛰어난 인재를 육성하는 정치적 전략을 도입해 나라의 정체성을 확립했다.김춘추, 김유신과 같은 걸출한 인재들이 나라의 힘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지도력을 발휘하면서 당나라의 힘을 빌려 삼국통일을 이뤄냈다. 문무왕과 신문왕과 같은 훌륭한 군주와 원효, 자장, 의상, 원광, 혜공 등의 유명한 인물들이 쏟아져 나왔다.신라는 삼국통일 이후 한때 세계 최고의 화려한 문화를 자랑하는 나라로 발전했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욕망과 향락에 젖어버린 지도층의 타락은 신라를 패망의 길을 걷게 했다. 신라는 붕괴하면서 다행스럽게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는 위험을 예방하는 길을 택했다. 고려의 후삼국통일이 가져온 새로운 평화였다. 신라의 국정 운영 방향이 기울어질 때마다 남산의 신이 나타나 경계했던 이야기는 역사 전반에 전설처럼 전해온다.◆삼국유사: 김부대왕사론에서는 이렇게 논했다. 신라는 박씨와 석씨가 알에서 태어났는데 김씨는 하늘로부터 금궤에 담겨 내려왔다. 어떤 이는 금수레를 탔다고 하나, 이는 더욱 괴이해 믿을만하지 못하다. 그러나 세간에서는 그렇게 전하며 사실로 믿고 있다.이제 그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위에 있는 사람은 자기에게는 철저하고, 남에게는 관대하며, 관리는 적게, 일은 간단히 처리했다. 지성스레 중국을 모셔 험난할지라도 사신이 오가는 것을 끊이지 않았고, 늘 자제를 보내 그곳 조정에 나가 지키며, 학교에 보내 공부하게 했다. 그리하여 성현의 가르침을 익히고, 거친 풍속을 고쳐 예의를 갖춘 나라로 만들었다.또 중국 군대의 힘을 빌려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그 지역을 빼앗아 군현을 두었으니, 가장 번성할 때이다.그러나 불교의 법을 섬기면서 그 폐단을 알지 못했다. 마을마다 탑이 즐비하게 서고, 여러 백성이 중의 옷을 입고 숨자, 군대와 농업은 점차 줄어들어 나라가 나날이 쇠약해졌다. 어찌 어지러워 망하지 않으리오.게다가 경애왕은 이보다 더해 나쁜 놀이에 빠졌다. 여러 궁인과 함께 포석정에 놀러 나가 술 마시며 늘어지게 즐기다 견훤이 쳐들어온 것도 몰랐다. 문밖의 한금호와 누각 위의 장려화 사건과 무엇이 다르겠는가.경순왕이 태조에게 항복한 것은 비록 어쩔 수 없어 그랬다고 하나 잘한 일이다. 그때 만약 죽을 힘을 다해 싸워 태조의 군사에 저항하다가 힘이 부치고 세력이 다했다면 왕족이 몰살당하고 피해는 무고한 백성들에게까지 미쳤을 것이다. 그런데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왕궁의 창고를 닫고 군현의 문서를 만들어 항복했으니, 새로운 조정에 끼친 공로와 백성들에게 끼친 덕이 매우 크다.옛날 전씨가 오월의 땅을 가지고 송나라에 들어왔을 때 소동파가 그를 충신이라고 했는데 이제 신라의 공덕은 그보다 훨씬 크다.우리 태조 임금은 비와 빈이 매우 여럿이고 그 자손 또한 많지만 현종은 신라의 외손자로 보위에 올랐다. 이후 왕권이 이어진 것이 모두 그 자손이니 어찌 음덕이 아니랴.이미 신라가 강토를 바치고 나라가 없어진 다음이었다. 아간 신회는 외직을 끝내고 돌아와 허물어진 도성을 바라보며 ‘서리리’ 같은 탄식을 하다 노래를 지었다. 노래는 없어져 알 수 없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천 년 신라의 종말천 년 신라의 출발은 서남산자락 나정이다. 육부 촌장들이 힘을 합해 나라의 건설에 합의하고 훌륭한 자질을 가진 혁거세를 첫 번째 왕으로 옹립했다. 서남산자락에 궁궐을 짓고 고대국가로의 출발을 선언했다.혁거세는 남산신의 아들이다. 신성한 땅, 남산 일대에서 인간들이 벌이는 죽고 죽이는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로운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아들을 인간의 리더로 보냈다. 혁거세는 60여 년 신라를 다스리며 절대적인 힘과 덕으로 평화로운 세상을 열었다.혁거세로부터 신라인들은 양보하고 이해하는 덕목으로 서로 배려하는 이웃으로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 실천했다. 그러나 백제와 고구려에서 힘의 균형을 깨뜨리려는 도전을 계속해오면서 시기하고 질투하는 전쟁이 다시 이어졌다.남산신은 수시로 신라왕 앞에 나타나 경계의 메시지를 전했다. 소지왕이 궁궐을 수리하고, 명활성에서 다시 월성으로 들어갈 때 서출지에서 편지를 전해 왕의 시해를 막았다. 선덕여왕 이후 급격하게 약해진 왕권 강화를 위해 김유신 장군을 통한 절대적인 무도를 전해 나라를 안정에 들게 했다. 절대적 강한 무력으로 통일을 이루고 폭넓은 평화의 터전을 마련한 것이다.또 망덕사 낙성식에서 어린 효소왕 앞에 남루한 승려의 모습으로 남산신이 나타났다. 지혜를 동원해 나라를 보살필 것을 경계했다. 원성왕 때에는 죽은 충신의 입을 통해 경계 메시지를 전해 왕이 사냥을 그만두고 국정을 보살피는 데 전념하게 했다.헌안왕과 헌강왕 때에도 용의 모습으로 나타나 나랏일을 돕기도 하고, 잔치판에 나서 왕의 눈에만 보이는 춤으로 경계하게 했다.그러나 신라의 지도자들은 남산신의 직접적인 경계와 간접적인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향락에 빠져 국력이 쇠락하며 급기야 패망하고 말았다. 남산신은 신라 사람들을 아껴 나라의 평화를 추구했지만 직접 관여하지는 않았다.신라사람들은 처음부터 남산에 의존해 살았다. 남산에 첫 궁궐을 지어 나라의 살림을 시작한 데 이어 삼국통일을 이루고, 남산중턱에 대규모 산성을 짓고 창고를 건설해 풍요로운 삶을 이어가도록 상징적인 장치로 삼기도 했다.그러나 하대에 이르러 서남산에 포석정을 지어 향락에 빠졌다. 남산신은 이를 경계하기 위해 춤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러나 이를 망각한 퇴폐적인 국정으로 망국의 길을 가게 됐다. 남산에 신라의 흥망성쇠가 고스란히 남아 있어 이를 반면교사로 삼게 한다.남산의 신은 여전히 건재하다. 오천만 년 전 바다에서 불쑥 솟아오른 경주 남산은 전체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산이다. 바람과 눈, 비로 씻고 다듬어 풀과 나무가 자라게 하고, 다람쥐와 노루가 뛰어놀게 했다.500m의 키 낮은 산이지만 오묘하고 신비로운 기운을 가진 산이다. 바위산이 연출하는 풍경은 금강산에 비추어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갖가지 형상으로 계절별로 신비로운 풍경을 만들고, 계곡과 바위마다 공부될만한 전설을 품고 있다.오늘날도 경주와 내국인은 물론 전 세계에서 남산을 찾는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는 것도 남산신의 보살핌과 무관하지 않다. 험난한 코스, 특히 칠불암에서 암벽을 타고 오르면 깎아지른 절벽에 위치하고 있는 신선암은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그러나 그 많은 탐방객이 아슬아슬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지만 누구도 절벽 아래로 추락하거나 상처를 입은 사례는 발생하지 않았다. 남산신의 보살핌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구·경북 고교총동창회 (6) 경주중·고

“꽃다운 혼 피어올라 서라벌 천 년 수정 앞 남산에 옥돌이 난다/ 젊은 가슴 품은 뜻을 갈고 닦는 곳 이상에 불타는 그 이름 경주중고등학교/ 퍼져 나간다 빛은 동방에서 서라벌에서/ 아아 경주중고등학교 영원한 마음의 고향아 마음의 고향아….”청록파 조지훈 시인이 작사하고, 윤이상 선생이 작곡한 경주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함께 부르는 교가다.경주중과 경주고는 1938년 함께 설립된 경주공립심상소학교에서 교육법 개정에 따라 1951년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분리됐다. 올해 개교 82주년을 맞은 경주중·고 동문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른다.경주중·고는 1948년 설립 10주년을 맞아 설립자 수봉 이규인 선생의 동상을 교정에 세웠다. 1951년 중학교와 고등학교 분리, 1999년 실내체육관 신축, 2002년 고등학교 석조 본관, 2004년 중학교 석조본관, 2007년 다목적 강당 괘정관을 신축해 현재 규모로 변모했다.경주중·고는 2008년 지역중심학교로 선정된 데 이어 2009년 교육과학기술부 지정 사교육 없는 학교, 경북도 학교기관 평가에서 최우수학교, 자율학교로 선정됐다. 2011년에는 선진형 교과교실제 시범학교로 선정되면서 명문학교로 발돋움하고 있다. 현재 중학교 80회, 고등학교 68회 졸업식을 통해 약 5만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총동창회 자부심과 자랑경주에서는 경주고를 ‘경고’라 줄여 부른다. 다른 지역에서는 대구에 있는 경북고등학교로 자칫 혼동하기 쉽다. 그렇지만 경주고 출신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역의 크고 작은 일은 경고 출신들이 도맡아 한다는 자부심으로 충만하다.경주고는 중학교와 한 뿌리에서 파생됐기 때문에 총동창회는 중·고를 묶어 운영하고 있다. 경주중·고 총동창회는 해방 전인 1944년 1월5일 제1회 창립총회를 열고 그해 7월16일 2회 졸업생까지 92명의 창립회원이 학교 강당에서 2회 총회를 열었다.1948년 4월 제3회 총회에서 중학교 1회 졸업생 김하원 동문을 총동창회 초대회장으로 선임하고 본격적인 출발을 했다.총동창회는 교정에서 1954년 11월 전몰학도병 추념비 제막식을 가지고 매년 추념 행사를 갖는다. 1970년에는 개교 30주년 기념사업으로 청마 유치환 교장의 비 ‘큰 나의 밝힘’ 돌비석을 건립하고, 1979년과 1982년 중학교와 고등학교 야구부를 나란히 창단하며 전국 야구 명문으로 발돋움 했다.또 1983년 경주중·고 동창 회보 창간호를 발행하고 매년 거르지 않고 지금까지 25호를 발간했다.경주고는 1985학년도 대학입학학력고사에서 정준화 동문이 인문계 전국 수석, 1986학년도에는 전명호 동문이 대구·경북 전체 수석을 차지하며 신문에 대서특필돼 동문들이 떠들썩하게 행사를 열었다. 이를 계기로 1986년 경주시가지에 동창회 사무실을 개설하고, 총동창회 사무국을 상설 운영하고 있다.총동창회는 또 1988년 호주에서 열린 세계수학올림피아드에서 38회 김기홍 동문이 동메달을 획득해 지금까지 자랑거리로 삼는다.1989년부터 전국동문단합등반대회를 개최해 매년 정기적인 행사로 진행한다. 최근에는 전국에서 5천여 명의 동문이 참여하는 총동창회의 가장 큰 행사로 자리 잡았다.또 1986학년도에는 603명의 졸업생 중 98.7%나 되는 595명의 학생이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대학교에 진학하는 놀라운 진학률을 기록한 것도 자랑거리로 선전한다.◆동창회의 특별한 사업들총동창회가 대다수 그러하겠지만 경주중·고총동창회 사업은 특별하고 눈길을 끄는 사업이 여럿이다. 회원들의 친목을 다지는 사업이 다양하다.특히 1989년 이후 매년 10월에 열리는 전국동문가족등반대회는 올해 33회째를 맞는 가장 큰 사업이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5천여 명의 동문이 경주 남산자락에 모여 세계문화유산, 노천박물관을 등반하고 모교로 자리를 옮겨 홈커밍데이, 노래자랑, 행운권 추첨 등 한마당 축제로 다양하게 진행한다. 하루 전에는 주관 기수들의 졸업 30주년 기념행사를 전야제로 추진하고 있다.총동창회는 1997년부터 매년 경주중·고인의 밤 행사를 개최한다. 1998년 6월21일 모교에 전몰학도병추념비를 재건립해 제막식을 거행한 데 이어 매년 6·25전쟁에 참여했던 동문에 대한 추념 행사를 갖는다. 개교 60주년을 기념해 총동창회는 학교 교문을 확장한 등용문을 건립했다.2006년에는 총동창회관건립을 위한 소위원회를 운영해 그해 9월 충효동에 총동창회관을 건립, 입주했다. 총동창회의 충효동 시대를 열어 동문의 사랑방으로 운영하고 있다.2012년에는 서울 목동종합운동장에서 경주중·고 화랑축제를 개최했다. 2013년에는 수봉학원 개교 75주년을 기념해 창학 이념을 담은 조형물 ‘알집’을 건립했다. 또 동문작품전시회를 서라벌문화회관에서 열어 장학기금을 마련하고, 고등학교 야구부 재창단식를 가졌다.매년 동문골프대회를 개최하며 실력을 쌓아 2014년에는 고교동문골프대회에 출전,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동문들의 화합과 친선을 위해 매년 14개 기수가 참여하는 동문연합체육대회를 비롯 다양한 사업을 개최한다. 동문의 모임도 갖가지다. 지역별 동창회를 비롯해 여러 가지 봉사활동을 하는 화랑회, 산악회, 수봉골프회, 수봉축구회, 수봉테니스회 등 다양한 동호회 활동과 기수모임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다.◆전국의 총동창회 네트워크경주중·고총동창회는 문어발이다. 학교가 위치하고 있는 경주에는 충효동에 동창회 회관을 건립해 사무실을 상설 운영하고 있다. 1958년 포항동창회를 시작으로 1964년 대구, 1965년 서울, 1967년 울산, 1968년 부산동창회가 각각 창립되면서 지역별 동창회 창립 러시를 이루고 있다.이어 1985년 대전, 1988년 진주, 1989년 영천, 마산과 창원의 마창, 1991년 인천동창회가 속속 창립하면서 전국적으로 총동창회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발전하고 있다.◆자랑스런 동문들경주중·고총동창회는 80주년을 맞은 역사만큼 각계에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김하경 철도청장, 정동윤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 김일윤 5선 국회의원, 정수성 4성 장군 재선 국회의원, 김용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이현세 만화가, 조희대 선임 대법관, 백상승·최양식 경주시장, 법조인으로 진출한 전국과 대구경북 수석을 차지했던 정준화 판사와 전명호 변호사.종교계에는 동국대 총장 보광 스님,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 법륜 스님, 대관음사 회주 우학 스님, 재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정휘동 청호나이스그룹 회장, 강동한 한국단조공업협동조합 이사장 등을 자랑한다.무관으로 권영해 전 국방부장관, 이은수 해군참모총장, 박춘택 공군참모총장, 언론계 정연주 한국방송공사 사장, 김동철 대구문화방송 사장, 손인락 영남일보 사장과 체육계에도 하일 KBO 전무이사, 강문수 탁구국가대표 감독, 정경훈 중국야구국가대표팀 감독 등이다.◆공석돈 회장 인터뷰경주중·고총동창회 제20대 공석돈 회장은 지난달 경주힐튼호텔에서 19대 이상윤 회장 이임식에 이어 취임해 5만여 동문의 화합과 모교발전을 위한 업무를 맡았다.공석돈 회장은 “경주중·고는 서울뿐 아니라 전국 어느 지역의 학교에도 뒤지고 싶지 않은 명문 중의 명문으로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는 동문들의 명예를 지키며 성장하는 사학의 요람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경주고는 깊은 전통만큼 자랑거리가 많은데 특별히 자랑하고 싶은 것은△자랑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 탈이다. 학교이므로 우선 전국에서 수석, 대구경북을 통틀어 전체 수석을 차지한 동문을 배출하고, 지방고교에서 서울대를 비롯 명문대학에 많은 학생이 진학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다.또 중학교와 고등학교 야구부가 창단, 운영되고 있는데 전국대회에서 4강에 들거나 준우승도 차지했다. 정경훈, 김민호, 곽채진, 조유신, 전준우, 차화준, 장지훈, 김효남, 권희동 등의 전·현 국가대표급 선수를 배출했다. 또 전국대회에서도 여러 차례 4강에 들면서 역전의 경주고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경주고가 가진 특별한 이력이 있다면△1944년 창립총회를 가진 오래된 동창회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전통성과 전몰학도병추념비를 모교에 건립해 매년 개최하는 추념 행사는 학생들에게 애국심을 길러주기도 한다. 25회의 동창회보를 발간해오면서 총동창회 동문의 자긍심을 부각시키고, 70여 년의 동창회 역사를 통해 5천여 명의 동문이 매년 정기적으로 가지는 등반대회에 참여해 전무후무한 동문잔치를 개최하고 있다. 등반대회는 신라 천 년의 흔적이 살아있는 남산 등산에 이어 전야제와 체육대회 등의 다양한 축제로 진행된다.-총동창회 행사에 많은 동문이 참여하며 활성화되는 비결이라면△학교의 80년을 이어온 전통을 자랑하는 선배 동문이 떠나지 않고 고문, 자문위원, 전직 회장단 등의 모임으로 실무를 맡고 있는 회장단, 사무국과 기획실 등의 조직이 화합하는 분위기로 운영하기 때문이다.또 총동창회 조직이 지역은 물론 서울과 부산, 대구를 비롯 전국적으로 문어발처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자체적으로도 활성화되어 유기적인 조직으로 움직이는 분위기 때문에 생산적인 경쟁으로 갈수록 끈끈한 유대감으로 성장하는 것 같다.-사업계획과 동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지역별 동창회와 유기적인 협력체계를 갖추고 정기적인 등반대회와 동문골프대회 등의 사업을 내실있게 진행하고 있다. 동문의 봉사활동과 기수별 조직에 대한 지원사업 등을 꼼꼼하게 챙겨 화합하고 행복한 동문조직으로 운영하고 싶다.모교 야구부에 대한 동문들의 애정어린 관심과 응원을 통해 전국대회 우승을 염원하면서 동문들의 발전과 행복을 소망한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손 씻기 등으로 예방가능

2월12일 오후 1시 기준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 폐렴) 추가 환자가 발생하지 않아 누적 확진자는 28명을 유지하고 있다.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의 원인 바이러스(병원체)로, 인체 감염 7개 코로나바이러스 중 하나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2019-nCoV)는 감염자의 비말(침방울)이 호흡기나 눈·코·입의 점막으로 침투될 때 전염된다.감염되면 약 2~14일(추정)의 잠복기를 거친 뒤 발열(37.5℃) 및 기침이나 호흡곤란 등 호흡기 증상, 폐렴이 주 증상으로 나타나지만 무증상 감염 사례도 드물게 나오고 있다.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발병 진원지인 중국 우한을 방문할 경우 현지 야생동물과의 접촉을 피하는 것은 물론 감염 위험이 있는 시장과 의료기관 방문, 발열·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있는 사람과의 접촉을 피해야 한다.또 중국 우한을 방문한 사람은 귀국 뒤 14일 내에 관련 증상이 나타날 경우 질병관리본부 콜센터(1339)나 보건소로 연락해야 한다.질병관리본부는 손 씻기 등의 간단한 예방수칙을 준수한다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먼저 흐르는 물에 30초 이상 손 씻기를 꼼꼼히 하고, 외출하거나 의료기관에 들를 때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외출 후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다녀온 후, 기침이나 재채기 후에는 꼭 손을 씻어야 한다. 또 의료기관 방문 시에는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사람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하며, 마스크가 없다면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옷소매로 입과 코를 가려야 한다. 마스크의 경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정하는 보건용 마스크를 사용하면 된다.식약처는 KF80(황사용)·KF94·KF99(이상 방역용) 등급으로 나눠 보건용 마스크를 관리하고 있다.다만 숫자가 높으면 미세입자 차단 효과가 크지만, 산소투과율이 낮아 숨쉬기가 어려운 단점이 있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대상포진

대상포진은 앓아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그 고통을 모를 것이다.대상포진은 어릴 때 수두를 앓은 사람에게 발생한다.몸에 남아 있던 수두균에 의해 피부에 작은 물집과 심한 통증이 생기는 것이다.대상포진은 주로 노인이나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 면역 기능이 저하된 사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이들에게 잘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상포진에 걸리면 피부에 물집이 발생하기 1~2주 전부터 그 부위에 심한 통증이 생긴다.이후 작은 물집이 옹기종기 모여 생기며 전체적으로는 띠 모양으로 발생한다.오른쪽 또는 왼쪽 중 한쪽에만 발생하며 얼굴, 팔, 다리, 몸통 어느 부위에나 생길 수 있다.물집이 발생한 부위가 매우 아프며 2~3주가 지나서 물집이 어느 정도 진정된 이후에도 통증이 계속될 수 있다.젊은 사람보다 나이가 든 어르신들이 더 심한 통증을 느낀다. 대상포진의 원인균은 베리셀라-조스터 바이러스(varicella-zoster virus)이며 어린이에게 수두(물마마)를 유발하는 균과 동일한 균이다.즉 어렸을 때 수두를 앓았던 사람의 몸에 남아 있던 수두균이 다시 병을 일으키는 것이 대상포진이다.몸이 약해졌거나, 면역 기능이 떨어진 암 환자, 심하게 피곤한 사람에게 대상포진이 잘 발생하는 것이다.병의 발생 초기에는 물집이 생기기 전부터 심한 통증이 발생한다.따라서 물집이 생기기 전에는 근육통이나 디스크 등 다른 질환으로 오진하는 경우가 많다.물집이 발생한 후에는 2~3주에 걸쳐 딱지가 생겨 서서히 좋아지게 된다.그러나 통증의 경우에는 물집이 소실된 경우에도 계속 남아 있으며 잘 치료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특히 몸이 허약한 노인의 경우에는 신경통처럼 통증이 계속되는 경우가 흔하다. 대상포진의 합병증으로는 안면 신경을 따라 발생할 경우에는 안면 신경 마비 증상이 생길 수 있다.이 경우에는 한쪽 눈이 감겨지지 않으며 입이 삐뚤어지게 된다.눈에 대상포진이 발생할 경우에는 각막염 증상과 심한 경우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가장 흔한 합병증으로는 몇 개월 내지 수년 동안 신경통에 의한 통증이 계속되는 것이다.이는 특히 노인 환자에게서 흔히 발생한다. 병의 초기에는 항바이러스 제제와 진통소염제를 사용한다.무엇보다 걸리기 전에 예방이 중요하며 예방주사로 어느 정도 대비할 수 있다.예방접종을 한다고 대상포진을 100%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발병률을 낮추고, 발병하더라도 증상을 완화시키며 회복속도를 증가시킨다.또 예방접종은 합병증 발생 감소에도 도움이 된다.대상포진 예방접종은 국가 권고사항이다.국내 판매되는 백신의 종류는 조스터박스주, 스카이조스터주 등이 있다. 대상포진은 건강한 사람보다는 몸이 허약해지거나, 최근에 무리하여 건강상태가 나빠진 경우에 주로 잘 생긴다.이와 함께 면역력이 떨어진 노인과 암 환자에서도 자주 발생한다.따라서 대상포진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생활과 적당한 휴식이 필수적이다.특히 무리하지 않은 것이 중요하다.대상포진에 걸렸을 경우에는 어린이에게 전염시켜 수두를 앓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어린이와의 격리가 필수적이다.갑자기 이유 없이 몸의 한쪽 부분에 심한 통증이 생겼다면 피부과 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은 것이 매우 중요하다.도움말=민복기 올포스킨 피부과 대표원장(대구·경북 피부과의사회 회장, 대구시의사회 부회장)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49) 김부대왕 (중) 서라벌에서 개경으로

경순왕은 처음부터 나라를 지켜낼 의지를 잃었다. 신라는 이미 기울어가는 나라를 고려에 의존해온 지 오래였다. 영토는 벌써 경산과 영천지역까지 축소되었고, 군사력과 경제력도 모두 바닥 수준이었다.결국 경순왕은 고려에 항복하기로 하고 왕건에게 백기를 들어 천 년 신라의 막을 내리는 치욕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싸워보지도 않고 백기 투항한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와 백성들의 피 흘림을 막기 위한 성군적 선택이었다는 엇갈리는 해석이 지금도 합의되지 않고 있다.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신라는 외적의 침입으로 왕궁이 무너지지 않았지만 스스로 문을 닫았다. 왕궁을 지키던 비밀결사대, 사천왕들은 왕이 투항하면서 할 일을 잃었다.경순왕은 나라를 헌납한 대가로 서라벌이 아닌 개경에서 고려의 신하이지만 제2인자의 지위를 보장받으며 호화로운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의 죽음은 서라벌, 전 신라 백성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었다. 왕의 선택으로 피 흘리지 않고 전쟁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었다는 데 고마움을 품고 있던 백성들이 그의 죽음에 함께 오열하는 마음을 보여주었다.◆삼국유사: 김부대왕무자년(928) 봄 3월, 태조가 기병 50여 명을 데리고 서라벌 인근에 이르렀다. 경순왕은 뭇 신하와 밖에까지 나와 영접하고 궁궐로 들어가 정성스럽게 임해전에서 연회를 베풀었다.술자리가 무르익자 왕이 “나는 하늘의 뜻을 받지 못한 사람이오. 그러니 이런 화가 미치는 것 아닌가요? 견훤은 불의를 자행하여 우리나라를 멍들게 했소. 참으로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구려”면서 옷깃을 적시며 눈물을 흘리니 주변의 신하와 태조도 눈물 흘렸다. 왕건은 몇 십일을 머물다 돌아가는데 아랫사람들이 모두 정숙하고 터럭만큼도 거스르는 짓을 하지 않았다.신라 사람들이 칭찬하며 “예전에 견훤이란 자가 왔을 때에는 마치 이리나 호랑이를 만난 것 같더니, 왕공이 이르자 마치 부모를 만나 뵌 것 같구나”라고 하였다.이어 935년 경순왕은 “판세를 보아도 보전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이미 강해지지도 못하거니와 약해질 것도 없어, 무고한 백성들의 살이 으깨지는 것만은 내 차마 할 수 없구나”면서 시랑 김봉휴를 시켜 글로 갖추어 태조에게 항복할 뜻을 전했다.태조는 글을 받고 태상 왕철을 보내 맞아들이게 하였다. 경순왕이 뭇 신하를 데리고 고려 태조에게 귀순하는데 찬란하게 장식된 마차가 30리에 길을 가득 메우고, 구경꾼이 담처럼 서 있었다. 태조는 바깥까지 나가 맞이하며 위로하고, 동쪽 한 구역의 궁을 내려주었다.큰딸 낙랑공주를 아내로 삼게 하면서 왕이 자기 나라를 버리고 남의 나라에 와서 산다고 하여 난세에 비유해 신란공주라고 고쳐 부르고, 시호를 효목이라 하였다. 또 정승의 자리에 앉혔는데 이는 태자보다 윗자리였고, 1천 석을 봉급으로 주었다. 따라온 신하들은 모두 쓰게 하였다. 신라를 고쳐 경주라 하고, 공의 식읍지로 삼았다.처음에 왕이 땅을 바쳐 항복하러 올 때였다. 태조가 매우 기뻐하며 “지금 왕께서 나라를 과인에게 주시니 그 베푸심이 큽니다. 바라건대 종실과 결혼을 해 영원히 처남 매부로서 즐거움을 누리시지요.”경순왕도 “나의 큰아버지 억렴에게 딸이 있는데 미모와 덕이 모두 훌륭하오. 그가 아니라면 궁궐 안 살림을 하지 못할 것이오”라고 했다. 태조는 그를 아내로 맞았다. 곧 신성왕후 김씨이다. 태조의 손자 경종 주가 정승공의 딸을 맞아 아내로 삼았는데 곧 헌숙황후이다. 그래서 정승공을 상보로 삼았다.무인년(978)에 경순왕이 죽었다. 태조는 그를 상보로 책봉하며 글을 내렸다. 관광순화위국공신 상주국 낙랑왕 정승 식읍 8천 호 김부는 대대로 계림에 살았고, 벼슬은 왕위에 올랐다. 그의 영명함으로는 세상을 초월할 만한 높은 기상을 떨쳤고, 문장으로는 뛰어난 재주를 가진 반열에 올랐다. 부는 춘추로 계속되었고, 귀는 봉토를 누렸다. 육도와 삼략이 가슴속에 들어 있고, 칠종과 오신을 손바닥에서 운용했다.태조는 초년에 이웃 나라와 친목을 닦아 일찍이 그 분위기를 알았고, 때를 기다렸다가 부마의 혼인을 반포해 안으로 큰 절차를 이뤘다. 가국이 이미 통일되고, 군신이 완연히 삼한에 합쳤다. 그 영광스러운 이름을 널리 전하고, 그 아름다운 풍채를 빛낼지어다.그에게 상보 도성령의 호를 더하고, 이어 추충신의숭덕수절공신의 호를 내린다. 훈작과 봉호는 예전과 같고, 식읍은 모두 1만 호로 정한다. 일을 맡은 이가 좋은 날을 골라 예식을 갖춰 책명하노니, 주무자는 시행하라.◆새로 쓰는 삼국유사: 사천왕의 선택천 년이나 이어져 오던 성을 지키는 사천왕들에게 들려오는 소리는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다. 경순왕이 왕궁을 비우고 개경으로 종살이를 간다는 것이었다. 이제 무엇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아무런 할 일이 없는 백수건달이 되어버렸다.문무왕 이후 성의 사방을 지켜온 사대천왕들은 북문을 지키는 라다문천왕이 전체를 이끄는 리더역을 맡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북문의 천왕이 신의 경지에 이르렀던 유신검법과 명랑의 술법까지 고스란히 전수받은 후계자다.동문을 사수하고 있는 라지국천왕은 음공의 귀재다. 비파를 뜯으며 웃음으로 적의 허를 찌르며 수하의 팔부신장들도 모두 악기를 무기로 삼고 있다.남쪽을 지키는 라증장천왕은 아주 험상궂은 인상을 하고 있으며 큰 창과 칼을 무기로 쓴다. 병기들이 모두 어마어마하게 크고 무거워 일반 장수들은 드는 것조차 버겁다. 적들은 그의 험상궂은 얼굴만 보아도 기가 죽는다.서쪽의 수호신은 라광목천왕으로 술법을 잘 쓰는 도인이다. 이름에서처럼 부리부리한 큰 눈이 특징이다. 용, 호랑이, 늑대 등의 짐승들을 수족처럼 부리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동서남북의 사대천왕들은 각자 여덟 명의 신장들을 거느리고 있다. 36명의 귀신같은 솜씨를 가진 무장들이 성문을 지키고 있어 누구도 신라의 월성을 침입해 왕의 옷깃을 밟을 수가 없었다. 이들의 천하무적 힘도 아무짝에 쓸모가 없어졌다.라다문은 천왕들을 모아두고 “이제 우리의 임무는 소멸했다. 단지 경순왕이 고려왕을 만나기까지, 개경으로 입성하는 시간까지 궁을 대신해 왕의 신변을 지킨다”고 마지막 임무를 명하고 “그 이후는 각자가 원하는 길로 가면 될 것”이라며 홀연히 자리를 떴다.사대천왕을 비롯한 팔부신장들은 대부분 첫 나들이가 마지막 나들이가 되어 천 년 궁성과 작별하게 되었다.서라벌을 떠나 개경으로 향하는 경순왕의 행렬은 장관이었다. 왕의 식솔은 물론 시중들과 6두품에 이르기까지 궁궐에서 나라의 일을 보던 신하들은 모두 그의 가족들을 대동해 하나에서 열까지 마차에 짐을 실어 북으로 항복의 행렬을 이었다.여정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여인과 노인, 어린아이들이 지쳐 가끔 병치레를 하는 이외에는 조용하게 행군이 이어졌다. 경순왕조차 사대천왕이 숨은 그림자로 호위하며 따른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사대천왕의 일은 문무왕 이후 드러난 적이 거의 없었다. 대를 이어 라다문천왕이 이끄는 대로 오로지 왕궁을 사수하는 일만 수행할 뿐이었다.일은 달구벌을 지날 때와 죽령을 넘을 때였다. 견훤의 사랑을 받았던 군사들이 후백제의 뜻을 저버리고 고려에 귀속하는 데 원한을 품고 살의를 드러냈다. 그러나 척후병으로 전방 백리를 앞서가던 팔부신중들의 첩보를 받은 39명의 신장이 소리도 없이 200의 적군들을 잠재워 버렸다. 또 죽령에 숨어 복수의 칼을 갈던 김주원의 후손과 그를 따르는 50여 명의 날랜 검객들도 신장들의 바람 같은 솜씨에 힘 한 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풀잎에 머리를 눕혔다.개경에서 경순왕의 엎드린 모습을 일견한 라다문천왕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눈짓으로 천왕과 팔부신장들의 해산을 명했다. 이후 기림사에서 라지국천왕의 신장들이 비파를 뜯으며 수행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도 드러나지 않았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구·경북 고교 총동창회 (5) 계성고

11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계성학교는 안의와 선교사에 의해 1906년 10월15일 남문안 교회(구 제일교회) 내에서 개교했다. 계성학교는 영남지방에서는 중등교육기관으로서는 처음이었다. 1911년 개최된 1회 졸업식에서는 총 12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거룩한 빛을 비출 수 있는 학교’라는 뜻의 교명답게 114년간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길러내며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약 7만 명의 졸업생들을 배출했다. 학교의 역사만큼 총동창회 역사도 깊다. 그동안 24명의 총동창회장이 역임했다. 현 이재윤(56회) 계성학교 총동창회장은 2017년 제23대 총동창회장에 취임한 후 24대 총동창회장으로 연임됐다. 계성 총동창회는 전국적으로 총 30개 지부가 운영 중이고, 외국에도 미국 뉴욕 등 8개 지부가 있다. ◆자랑스런 계성인들계성총동창회 언급에 있어 자랑스런 동문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오랜 역사 만큼 우리나라를 빛낸 많은 인물을 배출한 학교다. 우리나라 문단의 큰 기둥이라 할 김동리(21회), 김성도(21회), 박목월(23회) 등이 계성학교 출신이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극 연출가 홍해성(6회), 우리나라 대표 동요 작품들을 작곡한 박태준(5회) 등을 배출했다. 운동계에도 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먼저 유도는 1984년 LA올림픽에서 금메달1(안병근), 은메달2(김재엽, 황정오)의 성적을 거두어 계성의 이름을 빛냈다. 그후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2(김재엽,이경근)로 다시 한번 계성유도를 세계에 빛냈으며,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에서는 곽대성이 은메달을 추가했다. 교육계엔 신태식(18회) 전 계명대학교 명예총장과 김경동(42회)·소흥열(42회)·배성동(43회) 서울대 교수, 신일희(44회) 계명대학교 총장, 이용두(58회) 전 대구대학교 총장이 있다. 재계엔 정해덕(34회) 성창해운 대표, 윤희직(44회) 삼아건설 대표, 홍호용(53회) 동우이엔씨 대표, 김기웅(58회) 한국경제TV사장, 김상태(58회) 평화발레오 사장, 조영주(60회) KTF 사장 등이 활동하고 있다. 문인으로서는 소설가 김동리(21회), 아동문학가 김성도(21회), 시인 박목월(23회) 등과 음악인으로서는 작곡가 박태준(5회)·현제명(8회) 등이 있었다. 이 외에도 미술계, 예능계, 체육계와 군문에 많은 동문이 진출했거나 현재 활동 중에 있다. ◆자랑스런 계성인상2017년 자랑스런 계성인상을 제정해 매년 자랑스러운 계성인을 선발하고 있다. 이는 모교와 동창회 발전에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을 뽑아 그 공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첫 해에는 한국경제신문 김기웅(58회) 사장과 서진욱(68회) 부산지방국세청장이 선정됐다. 2018년에는 김상태(58회) 평화발레오 회장, 2019년에는 윤동한(52회) 한국콜마 대표이사가 선정됐다. 올해는 진영환(52회) 삼익THK 회장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우리들의 이야기, 동창회보 발행 계성총동창회는 1971년부터 매년 동창회보를 발행 중이다. 올해 66호를 발행했다. 매년 1월에 발행하는 동창회보에는 발간사부터 신년인사, 총동창회 각종 소식을 담고 있다. 기별소식부터 지부소식, 동문 동정까지 떨어져 있는 친구, 선배, 후배 등의 소식이 담겨 있다. 이번 동창회보에는 박운서(45회) 동문의 이야기를 실었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통상부차관을 끝으로 28년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하고 휴식기에 들어가야 할 그지만 필리핀의 오지를 믿음 하나로 찾아가 농지를 만들어 주민을 먹이고 입히고 그리고 교회를 개척, 기독교를 전파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네가 가라, 내양을 먹이라’가 증쇄를 거듭, 5판을 기록하는 등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동문의 소식이다. 28년간의 공직 이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사장, LG상사 대표이사 부회장, 데이콤 및 파워콤 대표이사 회장겸임 등 40년의 공직생활을 마무리 했다. 그가 개척한 필리핀의 망얀족이 사는 민도르섬은 마닐라가 있는 루손섬 남서쪽에 있는 고구마같이 생긴 섬이다. 제주도 2.5배 크기로 필리핀 7천100개의 섬 중 사람이 사는 4천200개 섬 중 열 번째의 크기로 인구가 100만 명이다. 그는 그곳에서 교회 건축, 수리, 악기와 찬양을 가르치고 아이들 교육과 교인들의 믿음이 자라도록 헌신하는 일을 했다. 그 교회는 130명이 참석하는 교회로 성장했다. 그는 필리핀 현지에서 불의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지난해 7월 운영을 달리했다. 이 같이 동문들이 잘 알지 못하는 동문 소식을 동문들이 직접 취재하고 글을 써 함께 동창회보를 만들고 있다. 계성총동창회에는 현재 축구, 골프 테니스, 등산 등 총 16개의 모임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계성문학회는 매년 1회 책을 발간 중이다. 벌써 34번째의 책을 발간했다. 소속 회원들은 60여 명이다. ◆총동창회 연중행사 일정매년 1월엔 총동창회 정기이사회와 총동창회 신년교례회가 있다.2월과 3월에는 기별동기회 정기총회가 진행된다.4월에는 동창회보 발간과 총동창회 한마음 트레킹대회가 열린다. 5월에는 총동창회 기별골프대회와 축구대회가 있으며, 6월에는 재경지부 체육대회가 열린다.9월에는 총동창회 회장단회의 및 이사회가 열린다. 10월엔 총동창회 가족체육대회가 성대히 열린다. 또 졸업 50주년 모교방문 행사와 재경 합동 산행, 재경 골프대회, 사제동행 교내등반대회가 연달아 열린다. 11월에는 재경주지부 송년회와 기별 정기총회가, 12월에는 결산준비와 각 기별 총회로 한 해를 마무리한다.--------------------------------------------------------------------------------------- ◆이재윤 계성총동창회장 계성고등학교에는 ‘덕영실’이 있다. 이 교실은 이재윤 총동창회장의 뜻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덕영은 이재윤 회장의 호다. 이 회장의 후배 사랑은 남다르다. 그동안 학교에 기부한 금액만 4억 원에 이른다. 벌써 10년 째 매달 신권 30권을 학교에 기부하고 있다. 후배들이 보고싶어하는 책을 기준으로 기부한다. 동문에 대한 사랑도 크다. 총동창회장이 된 후 총동창회장배 골프 대회를 개최했고, 동문들이 자주 얼굴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각종 행사와 대회도 늘렸다. 이 회장은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개인생활이 발달하고 단체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우리는 동창들과 함께 모이면 즐겁다. 행복도 느낀다. 그런면에서 동창회는 권장할만한 사업이다. 취미클럽 활성화로 많은 분들이 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은 계성총동창회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후배를 사랑하는 마음은 물론 화합도 너무 잘된다는 것이다. 매년 신년교례회에는 400여 명이 참석하고, 체육대회에는 동창회 가족까지 1천여 명이 모인단다. 그는 “이렇게 동창회 화합이 잘되는 곳이 없다. 함께 모이는 게 참 중요하다. 동창회는 또 다른 의미에서 태어난 곳이다. 고향이다. 함께하면서 새로운 힘을 얻고 주고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자랑스런 동문들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그는 한참 고민 후 “역사만큼 자랑스럽고 훌륭한 동문들이 많다. 저는 그 중에서도 경제분야에서 큰 획을 그으신 동문들을 높게 평가한다”고 했다. 이어 “대구에서 기업을 움직이는 삼익 THK 진영환 회장님도 동문이고, 그 동생인 진영국 부회장님도 동문이다. 매출이 대구 기업 중 1위다. 병화발레오 김상태 회장과 한국콜마(주) 윤동한 회장님도 동문이다. 기업을 운영하면서 동문회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여 준다”며 “또 시인 박목월, 음악가 박태준 등도 너무 훌륭한 동문이다. 계성이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동문들이 많다.역사적으로 이름을 널리 알리신 분”이라고 덧붙였다. 회장으로 취임한 지 어언 3년, 그는 남은 임기동안 후계구도를 빨리 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임기가 1년 조금 더 남았다. 후계구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잘 할 수 있도록 동문들과 잘 연결될 수 있도록 수석부회장 역할을 시키고 필요한 거 부탁하고 대신해서 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며 “처음도 중요하지만 마지막 끝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끝까지 열심히 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회장으로, 선후배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 동창회장으로 동창들 단합을 높이는 것은 물론, 모교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그동안 최선을 다했고 남은 임기동안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신헌호 기자 shh24@idaegu.com

한눈에 세계여행 하기 (5) 홍콩①

홍콩은 작지만 여행자들의 즐길 거리는 무궁무진한 국가다.홍콩은 런던과 뉴욕에 이어 아시아 최대의 국제 금융 센터로, 동서양의 문화가 혼합된 매우 독특한 나라다.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디지털 태블릿으로 중국 전통 보드 게임과 마작을 즐기는 곳이다.또 풍수 전문가가 최첨단의 고층 빌딩이 들어설 곳을 안내한다.특히 한류에 앞선 ‘향류’라 불리기도 하는 홍콩 영화의 최 전성기 시절은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추억의 한 장으로 남아있다.코믹 쿵푸 영화의 대표 주자 성룡, 현대식 무협과 홍콩 느와르 작품들로 사랑받은 주윤발, 유덕화, 장국영 등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다.그 명맥을 이어받아 1990년대에는 로맨스 장르가 주류를 끌면서 임청하, 장만옥 등 여배우들이 스타로 떠올랐다.이들이 출연한 작품들은 최근 몇 년간 국내에서 재개봉을 하고 있다.중경삼림, 유리의 성, 화양연화, 천장지구 등이다.레트로가 뉴트로라는 개념으로 확장해 그 시절을 함께 한 30~50대뿐만 아니라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해 10~20대 등 전 세대에 어필하고 있다.영화 속 잔상들이 진하게 남는 영화 속 홍콩의 명소들을 되짚으며 여행을 떠나보자. ◆홍콩 영화 속 명소, ‘올드 타운 센트럴의 계단’·‘빅토리아 피크’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세계에서 가장 긴 야외 에스컬레이터다.홍콩의 중심가인 ‘올드 타운 센트럴’의 마법의 계단으로 홍콩 여행의 필수 코스다.이곳은 홍콩 젊은이들의 이별과 만남을 그린 영화인 ‘중경삼림’ 속에서 나온 명소로 유명하다.중경삼림은 1994년 만들어진 작품이다.작품 속 나른한 오후, 짧은 커트 머리의 왕페이가 길게 뻗은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에 올라 짝사랑하는 양조위의 집으로 향하는 길과 그의 집을 훔쳐보는 장소로 나온다.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는 세계에서 가장 긴 야외 에스컬레이터라는 수식어답게 올드 타운 센트럴의 중요한 거리들을 빠짐없이 지난다.건물과 직접 이어지는 통로들도 많아 원하는 목적지 바로 앞까지 여행자들의 걸음을 배웅한다.이에 올드 타운 센트럴에서는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를 여정의 중심으로 삼고 발길 가는 대로 골목을 돌아보는 것이 좋다.또 영화 속 주인공처럼 걷다보면 타이퀀(Tai Kwun)을 만날 수 있다.타이퀀은 과거 경찰서다.현재는 전시관과 박물관 등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갖추고 있다.광둥어로 ‘큰 집’을 뜻한다. 경찰서를 의미하는 이름과 바(Bar)로 변신한 옛 감옥 등은 건물이 가진 홍콩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고 있다.최초 1864년에 지어진 이곳 건물들은 1995년 문화재로 지정된 후 10년가량의 혁신을 거쳐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했다.세계적인 건축가 헤르조그 앤 드 뫼롱은 역사적 유산을 고스란히 살리는 동시에 현대식인 컨템포러리 아트 갤러리와 공연장을 새롭게 덧붙여 우아한 건축적 풍경으로 완성시켰다.또 세계적인 수준의 바와 독특한 수제 맥주를 즐길 수 있는 나이트 라이프의 명소다.타이퀀은 우리나라의 압구정과 분위기가 비슷한 란콰이퐁과 홍콩에서 가장 세련된 거리인 소호 사이 드넓은 거리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고 있다.또 빅토리아 피크(The Victoria Peak)는 홍콩 최고의 전망 스팟이다.홍콩 섬 서부에 위치하고 있다. 홍콩 섬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최고의 고도, 높이 약 552m의 전망대에 서면 숲과 바, 고층 빌딩이 한 눈에 들어온다.화려한 홍콩만의 야경이 내려다보여 영웅본색, 도신, 유리의 성 등 홍콩 영화에 빠짐없이 나오는 촬영 장소다.유리의 성은 홍콩의 중국 반환 시점인 1997년 직전 혼란스러웠던 젊은이들의 애절한 로맨스 영화다.여명, 서기 주연의 홍콩 멜로 영화다.이들은 빅토리아 피크에 올라 사랑을 확인하고, 두 주인공들 뒤로는 화려한 홍콩의 야경이 화면 가득 펼쳐진다.또 전망이 좋아 19세기부터 영국인들의 거주지로 사랑받았다.별다른 교통수단이 없던 시절, 영국인들은 가마를 타고 이동했다고 한다.이곳에 오르기 위해 피크 트램을 타고 이동할 수 있다.1888년 개통된 산악 기차 피크 트램은 120여 년간 운행됐다.45도가 넘는 급경사를 오르는 홍콩의 명물로 정상에 도달하기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피크 트램으로 빅토리아 피크에 올랐다면 홍콩 주민들의 산책과 조깅 코스로 사랑받는 ‘피크서클워크’로 향해보자.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정상에서와는 다른 각도의 빅토리아 하버뷰와 함께 홍콩 섬 남부의 자연 경관을 감상할 수 있고, 영화 속에 등장한 홍콩대학교에 다다른다. ◆외국인 여행객들이 찾는 ‘치파오’, ‘성마가렛 성당’ 치파오는 전통적이지만 현대적인 동·서양을 아우르는 디자인의 중국 전통 의상이다.홍콩의 1960년대를 배경으로 2000년 작품인 영화 ‘화양연화’에서 주인공인 장만옥이 입고 나와 전 세계의 관객들을 매혹시켰다.화양연화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표현하는 말로, 왕가위 감독의 미장센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이 작품은 2016년 BBC가 선정한 21세기 영화 100선의 2위로 선정될 정도로 손꼽히는 명작이다.빨강, 초록, 파랑 등 각각의 색들로 의미를 더한 적절한 공간과 다양한 소품이 배치된 공간에서 장만옥은 무려 23벌에 달하는 다양한 색상과 무늬의 치파오 컬렉션을 선보여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또 영화 색계에서도 주인공 탕웨이가 치파오를 입고나와 더욱 유명해졌다.치파오를 입고 홍콩만의 식문화인 ‘차찬탱’을 즐겨보자.차찬탱은 서로 문화가 다른 동·서양인들이 한 곳에서 차를 마시며 생겨난 문화라고 한다.홍콩 어느 카페를 방문하더라도 쉽게 차찬탱을 즐길 수 있다.인근 카페에서 영화 제목 그대로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아름다움에 반해 홍콩 영화 속 주인공들이 입고 나온 치파오 의상을 구입할 수도 있다.치파오를 구입하는 가격이 부담스럽다면 몽콕의 야시장을 찾거나 홍콩 치파오 대여 및 사진 촬영 서비스를 검색해보길 추천한다.성마가렛 성당(St. Margaret's Church)은 홍콩의 주요 도심 속 성전이다.1990년 작품인 ‘천장지구’의 성지 순례 장소로 꼽힌다.천장지구의 극중 주인공인 유덕화와 오천련이 이별을 예감하고 마지막으로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던 곳이다.어둠이 내리 앉은 거리에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오천련이 하얀 턱시도 재킷을 입은 유덕화의 빨간 오토바이 뒤편에 앉아 성당으로 향하던 장면은 영화의 포스터 장면으로 쓰일 만큼 강렬하다.낭만적이면서도 비극적인 그들의 사랑이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장소다.이곳은 홍콩 섬 북단 코즈웨이베이에 위치한다. 성녀 마가렛을 기리는 아시아 최초 교회로 1925년에 세워졌다.높게 치솟은 빌딩숲 가운데 낮은 높이의 성전은 홍콩인들에게 마음의 안신처가 되고 있다.또 인근에 있는 해피 밸리 경마장을 방문해보자.해피 밸리 경마장은 1841년 영국 엘리트들의 오락거리로 시작돼 영국인들이 모이던 사교장소였다.이곳은 현재 홍콩 현지인들뿐만이 아니라 외국인 여행객들까지 찾는 명소가 됐다.경마장은 홍콩 사람들의 80%가 참여하는 스포츠이자 엔터테인먼트다.홍콩 현지 문화를 즐기면서 마치 축제와 같은 흥겨운 경마의 현장에 함께 하고 싶다면 매주(여름 제외) 수요일 밤, 이곳을 방문하면 좋다.-자료 제공: 홍콩 관광청구아영 기자 ayoungoo@idaegu.com

만성 폐쇄성 폐질환 (COPD) 환자를 찾아라!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은 기관지가 좁아지고, 기관지 끝의 폐포가 손상되면서 호흡 기능이 나빠지는 질병이다.주로 오랜 기간 담배를 피운 사람, 또는 장기간 먼지에 노출되거나 나무 및 연탄 등을 연료로 사용할 때 나오는 연기를 마신 사람 등에서 발생한다.진단명에서 알 수 있듯이 하루 이틀 만에 급성으로 생기는 질병이 아니라 ‘담배를 피우던 사람이 중년 이후부터 서서히 숨이 차는 증상’이 생기는 병이다.서둘러 걷거나 오르막을 오를 때 가슴이 답답하거나 기침, 객담(가래), 쌕쌕거림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흡연을 하면 비흡연자에 비해 만성 폐쇄성 폐질환이 3배 넘게 발생하며 흡연량이 증가할수록 질병 가능성이 커지는 것으로 알려졌다.만성 폐쇄성 폐질환이 생기는 원인으로 과거 폐렴 또는 결핵의 병력, 천식, 유전적 요인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흔하고 잘 알려진 원인은 흡연이다.따라서 금연은 만성 폐쇄성 폐질환 환자의 생존율을 증가시키고, 증상을 완화시키며 폐기능 감소를 방지하는 가장 중요한 치료법이자 예방법이다.◆10년 이상 흡연, 40세 이상은 폐기능 검사심장병, 암, 당뇨 등 비교적 잘 알려진 질병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을 갖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진을 하기도 한다.그러나 40세 이상의 13%가 만성 폐쇄성 폐질환을 앓고 있지만 그 중에서 3%만 자신의 병을 진단받아 관리하는 실정이다.경증의 만성 폐쇄성 폐질환 환자는 일반적으로 증상이 없기 때문에 폐기능 검사를 하지 않으면 찾아낼 수 없다.숨어있는 만성 폐쇄성 폐질환 환자를 찾아내기 위해서 40세 이상, 10년 이상 흡연한 경우에는 폐기능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폐기능 검사는 환자가 최대한 들이마시고 내쉬는 공기의 양을 측정하여 기관지가 좁아져 있는지 확인하는 검사법이다.장기간 흡연을 했다면 증상이 없어도 폐기능 검사를 통해 경증 혹은 만성 폐쇄성 폐질환이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약물치료 및 운동요법 병행대표적인 약물요법은 좁아진 기도를 넓혀주는 흡입용 기관지확장제이다.흡입용 기관지확장제는 경구용 약제에 비해 흡수가 빠르고, 전신 부작용이 적게 나타난다.따라서 올바른 방법을 배워 꾸준히 규칙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약물치료는 갑자기 호흡 곤란이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고, 증상 및 운동 능력을 개선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또 만성 폐쇄성 폐질환 환자들은 저체중이 흔하게 동반되므로 균형 잡힌 식단과 규칙적인 운동으로 정상 범위의 체중을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운동은 다리를 사용하는 유산소 운동, 즉, 약간 숨이 찰 정도로 빠르게 걷기, 수영, 자전거 타기 등이 좋다.폐구균 예방접종과 매년 독감 예방 접종이 권고된다.만성 폐쇄성 폐질환 환자는 심장 질환, 우울증, 골다공증 등의 다른 질환이 동반되는 경우도 흔하므로 이에 대한 관리도 중요하다.도움말=계명대 동산병원 호흡기 내과 김현정 교수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대한의협, 강력한 우한 폐렴 확산 방지책 요구

대한의사협회가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한 보다 강력한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정부에 촉구했다.한 달 전 중국 우한에서 확진자는 40여 명에 불과했으나 한 달 만에 수백 배 늘어났다며, 지역사회 감염이 시작된 우리나라 역시 1개월 후에 몇 배의 환자가 늘어날지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3일 대한의협 최대집 회장은 정부의 조치만으로는 우리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기에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이 대한의사협회의 공식 입장이라고 밝혔다.먼저 대한의협은 후베이성으로 국한된 위험지역을 중국 전역으로 확대할 것을 권고했다. 후베이성은 중국 당국이 해당 지역을 봉쇄한 상태이기에 이번 입국 제한의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최 회장은 “감염병 방역 관리의 첫 번째 중요한 원칙은 유입 차단이다. 이미 중국 전역에서 확진자가 증가하는 추세이며, 현재는 전체 발생자의 약 40% 후베이성 외의 중국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정부는 더 늦기 전에 위험지역을 중국 전역으로 확대해 전방위적인 감염원 차단 조치에 나설 것”을 강조했다. 또 감염병 위기경보 단계를 ‘경계’에서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해야 한다는 것이다.현 상황은 정부의 감염병 재난 위기경보 기준에 따르면 해외 신종 감염병의 지역사회 전파가 확인됐다.따라서 적색(red)으로 구분되는 ‘심각’ 단계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이어 최 회장은 “지역사회 일선 진료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정확하고 투명한 방역예방관리 매뉴얼과 지침, 그리고 국민이 소상하게 알 수 있는 ‘접촉자’ 기준 등 대국민 관련 정보가 하루속히 제정돼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한의협은 “메르스 사태의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 관련 모든 정보의 신속·정확한 공개와 질병관리본부와 방역당국의 위기관리 소통시스템 구축과 정상화를 강력히 권고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48) 김부대왕 (상) 항복이냐 항전이냐

신라 최후의 왕 56대 경순왕은 삼국유사에서 그의 이름을 빌려 김부대왕으로 쓰였다. 김부대왕은 55대 경애왕과 이종사촌 간이다. 경애왕과 경순왕의 어머니가 모두 헌강왕의 딸이기 때문이다. 신라 천 년의 종말을 가져온 후손들인 셈이다. 경순왕의 아버지 김효종은 촉망받는 화랑으로 헌강왕의 맏사위였다. 경애왕의 아버지 신덕왕 또한 헌강왕의 둘째 사위였다.경순왕은 자신을 왕으로 앉혀준 후백제 견훤을 배신하고, 고려 왕건에게 나라를 바쳤다. 927년 왕위에 올라 8년째인 935년 일이다.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할 때는 후백제 견훤은 이미 그의 아들들에게 유폐되어 있다가 도망해 고려 왕건에 의탁하고 있었다. 또 고려는 후백제가 지배하던 웅진과 운주 등 충남지역은 물론 인접한 경산, 영천지역까지 빼앗아 그 세력이 크게 확장되고 있었다.신라는 지속적으로 공격해오는 후백제의 침략과 남하하는 고려의 세력에 버티기 어려운 입장에 처했다. 신라 궁성에서는 끝까지 전쟁할 것인지 항복할 것인지에 대한 회의가 연일 지루하게 열렸다. 결국 경순왕은 태자를 비롯한 일부 신하들이 항전해야 한다는 주장을 무시하고, 백성들의 안위를 도모해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고려에 항복하기로 결정했다.◆삼국유사: 김부대왕제56대 김부대왕은 시호가 경순이다. 천성 2년은 정해년(927)인데 9월에 백제의 견훤이 신라에 쳐들어와 고울부(현재 영천)에 이르자 경애왕은 고려의 태조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태조는 날쌘 병사 1만 명을 보내서 구해주라 하였다.이 구원병이 이르기 전 견훤은 11월에 서라벌로 들이닥쳤다. 왕궁으로 들어가서는 신하들에게 왕을 찾아내라 명하였다. 왕과 부인 그리고 첩 여러 명이 후궁에 숨어 있다가 군사들에게 끌려나왔다. 왕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는 종용을 받았다. 견훤은 동생 부를 세워 왕으로 삼았다. 그러니까 김부대왕은 견훤에 의해 자리에 오른 것이다.다음해 무자년(928) 봄 3월, 태조가 기병 50여 명을 데리고 서울 인근에 이르렀다. 왕은 뭇 신하와 함께 밖에까지 나와 영접을 하고 궁궐로 들어가 마주 대하는데 정성스럽게 예를 갖추어 임해전에서 연회를 베풀었다.술자리가 무르익자 왕이 “나는 하늘의 뜻을 받지 못한 사람이오. 그러니 이런 화가 미치는 것 아닌가요? 견훤은 불의를 자행하여 우리나라를 멍들게 했소. 참으로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구려”라면서 옷깃을 적시며 눈물을 흘리니, 주변의 신하와 태조도 눈물 흘렸다. 몇 십일을 머물다 돌아가는데 아랫사람들이 모두 정숙하고 터럭만큼도 거스르는 짓을 하지 않았다.모든 사람들이 칭찬하며 하는 말이 “예전에 견훤이란 자가 왔을 때에는 마치 이리나 호랑이를 만난 것 같더니, 왕공이 이르자 마치 부모를 만나 뵌 것 같구나”라고 하였다.청태 2년은 을미년(935)인데 10월에 사방의 토지가 모두 남의 것이 되고, 나라가 약해져 이제 더는 무엇으로 버틸 수 없게 되자, 여러 신하가 나라를 태조에게 맡기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신하들은 가부 간의 결정을 내리느라 의견이 분분해 마지않았다.태자가 “나라가 서고 망하기는 반드시 하늘의 뜻에 달렸습니다. 마땅히 충신과 뜻있는 선비들과 더불어 민심을 거두고 힘을 다한 다음이라야 그만둘 것이오. 어찌 1천 년 사직을 그다지 가벼이 남에게 준단 말입니까”라며 목소리를 높였다.왕은 “위태롭기가 이 같으니 판세를 보아도 보전할 수 없는 지경이다. 이미 강해지지도 못하거니와 약해질 것도 없어, 무고한 백성들의 살이 으깨지는 것만은 내 차마 할 수 없구나”면서 시랑 김봉휴를 시켜 글로 갖추어 태조에게 항복하겠노라 전하였다.태자는 크게 울며 왕에게 사직하고 개골산으로 들어가 삼베옷을 입고 풀을 뜯어 먹으며 생애를 마쳤다. 법명은 범공이었다. 나중에 법수사와 해운사에 머물렀다고 한다.◆새로 쓰는 삼국유사: 망한 나라 궁성 지키는 사천왕경애왕과 이종사촌이었던 김부는 적군인 후백제 견훤의 추대로 왕좌에 앉았지만 한동안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경애왕의 형인 경명왕 때부터 신라는 고려에 의존하며 급속하게 국력이 쇠퇴하고 있었다. 급기야 경애왕 8년에는 후백제로부터 왕과 궁인들까지 잡혀 죽임을 당해 실질적인 나라의 멸망 상태에 이르렀다.그러나 견훤이 강력하게 세력을 키워 성장하는 고려를 상대하면서 서라벌만 접수한 신라까지 통치할 힘이 없었다. 신라를 친고려 세력에서 후백제를 지원하는 세력으로 전환시키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그러나 성격이 급했던 견훤은 신라를 정복했지만 내치에 실패해 아들들에 의해 유폐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후백제의 내란은 결국 고려의 후삼국 통일을 가속화하는 촉매제가 되었다.견훤이 아들들의 손아귀를 벗어나 왕건에 투항하며 자신이 세우고, 아들이 다스리는 후백제 정복에 앞장섰다. 후백제를 평정한 고려 왕건은 느긋하게 기다리며 세력을 안정적으로 확산시켜 나갔다.신라의 수도 서라벌과 인접한 경산과 영천지역의 장수들까지 후백제와 고려에 투항하고, 후백제까지 평정한 고려는 세력이 크게 불어나며 안정화되었다. 반면 신라는 크게 위축된 영토와 함께 백성들도 불안한 나날들을 보내야 했다.경순왕은 이미 나라의 세력이 진한으로 출발할 당시보다 좁혀지며 군사력은 물론 경제력까지 감소하자 최종적인 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을 판단을 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왕은 아무리 생각해도 스스로 나라를 경영해 나갈 여력이 없다고 분석했다. 결국 935년 중요 대신들을 어전에 불러 의견을 물었다. “짐이 부덕하여 백성들이 헐벗고, 불안에 떨게 했다. 우리 힘으로 고려와 전쟁할 엄두도 내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경들의 생각은 어떠하오”라며 왕은 힘없는 목소리로 대신들의 의견을 물었다.태자가 떨치고 일어나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 신라는 천 년을 이어온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입니다. 나라의 흥망은 하늘의 뜻입니다. 한 번 싸워보지도 않고 나라를 덥석 바친다는 것은 치욕이요, 조상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일입니다”라며 “죽을 것을 각오하고 싸운다면 이기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라고 결사항전을 주장했다.태자의 동생과 젊은 장수 몇몇도 울분을 토하며 전쟁에 나설 뜻을 밝혔다. 그러나 대부분 중신은 차마 말을 못하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경순왕은 무겁게 그러나 결연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나라가 무슨 소용이랴, 백성들은 어차피 이 나라든 저 나라든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잘 먹고 잘살기만을 바랄 뿐이다. 군주는 백성들의 안위를 생각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며 “전쟁을 하면 백성들은 또다시 죽음에 내몰리게 된다.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 고려에 항복하겠다”고 선언하고 시랑 김봉휴에게 고려에 항복의 문서를 전하라 명했다.경순왕은 이미 나라가 기울어가는 시기에 왕위에 올라 국력회복의 시기가 늦었음을 절감하고, 재위 4년에 왕건이 후백제를 물리치고 왕도를 방문했을 때 임해전에서 후하게 대접하며 항복의 의사를 타전했다. 그 때문에 왕건도 느긋하게 신라의 항복을 기다리며 고려를 안정적인 나라로 경영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경순왕이 항복의 뜻을 밝히고 문서를 작성해 고려에 바치게 하자, 태자는 금강산으로 들어가 마의를 입고 생활하다 생을 마감했다.월성을 지키던 사천왕들은 왕의 결정이 있을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궁성을 침범하는 세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담당한 그들은 그 어떤 소용돌이에도 나서지 않았다. 오로지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궁성과 당시 왕의 안위를 보살필 뿐이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대구·경북 고교총동창회 (4) 구미고등학교

구미고등학교의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다. 1980년 개교해 올해 40년째를 맞는다.구미고가 짧은 역사에도 지역을 대표하는 명문고로 자리 매김할 수 있었던 건 동문 간의 우애와 모교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구미고는 2012학년도 학교 평가에선 일반계 고등학교 최우수 학교로 선정됐다. 교육부 과학 중점학교로 지정된 2014년엔 선진·미래형 과학 중점 교육과정 개선을 통해 글로벌 우수 이공계 인재육성의 산실이 됐다. 또 2017년 1월엔 전국과학중점학교 운영성과 평가에서 1등급을 획득하며 지역 명문고의 위상을 입증했다.구미고는 ‘부지런히 배워서 바르게 향하자’란 교훈 아래 올바른 인성과 창의력을 지닌 인재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2월 37회 졸업까지 1만5천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1989년 창립…주위 명문고와 어깨 나른히구미고 총동창회는 1989년 창립됐다. 신장식 동문(1회)이 초대 회장을 맡아 총동창회의 초석을 다졌다.그동안 구미고 총동창회는 모교와 동문, 모교와 지역사회의 가교 역할을 자처했다. 한편으로는 후배 사랑을 실천하고 동문을 하나로 묶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지역사회 발전에 공헌했다.구미고가 개교 20주년을 맞은 2000년과 30주년을 맞은 2010년, 총동창회는 모교를 위해 기념탑과 교문을 선물했다. 또 2013년엔 ‘구미고 인명록’을 발간해 동문 유대강화의 기초를 마련했다.올해 출범한 구미고 16대 총동창회는 김건학 회장(4회)을 비롯해 김창병 사무국장(7회), 김준연(9회)·최태현(12회)·박홍연(13회)·김상태(14회) 사무차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현역 시·도의원만 4명…장군부터 가수까지최근 들어 구미고 동문의 활약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두드러지고 있다.가장 눈에 띄는 성과는 지난해 11월 발표된 국방부 인사발표에서 전해졌다. 권대원 동문(6회)이 대령에서 준장으로 승진한 것.권 동문은 ROTC 30기로 임관해 과학화전투훈련단(KCTC) 전문대항군 작전과장, 제1야전군사령부 검열과장, 제2군단 작전처장으로 근무했다. 그가 구미고 재학 당시, 동기들과 함께 시작했던 ‘한솔회’는 졸업한 동문의 봉사모임으로 성격이 바뀌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정계 진출도 활발하다. 정세현 경북도의원을 비롯해 장세구·강승수·김낙관 구미시의원이 현직으로 활동 중이다. 또 구자근(4회)·김찬영(19회) 동문은 오는 4·15총선을 준비하고 있다.GOD 멤버 가수 김태우도 구미고 출신으로 알려졌다. 김태우 동문은 2학년까지 구미고를 다니다 가수활동을 위해 서울로 전학을 갔다.◆따로 또 같이…직업·동호회별 모임 활발구미고 동창회에서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모임만 13개. 직업별 모임이 가장 많지만 취미가 같은 동호회별 모임이나 지역동창회도 결성돼 운영 중이다.가장 많은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곳은 구미고 출신 공무원들의 모임인 ‘필봉회’다. 모두 125명이 활동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회원이 늘고 있는 추세다. 비슷한 모임으로 구미고 출신 경찰들의 모임인 ‘필경회’와 교사 모임인 ‘필교회’가 있다.또 건설인들과 의사들, 예술인들도 각각 ‘구건협’과 ‘구의회’, ‘문예연’을 만들었고 농협 직원들은 ‘구농회’에서 활동 중이다.동호회별 모임은 문장골프회와 문장골산우회가 있다. 지역별로는 재경문장골동문회와 재대구동창회가 운영되고 있다.봉사모임 ‘한솔회’는 매년 모교에 200만 원의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총동창회는 연초에 열리는 ‘신년교류회’와 4월에 열리는 ‘총동창회 체육대회’, 5월에 열리는 ‘총동창회장배 골프대회’, 12월에 열리는 ‘송년의 밤’ 등 1년에 4차례 공식행사를 한다.◆학교 상징물 건립 등 다양한 기념사업 펼쳐구미고 총동창회는 다양한 기념사업을 통해 모교를 후원해 왔다.20주년을 맞은 2000년 총동창회는 예전 문장골 필봉 자리 인근에 기념탑을 세웠다. 기념탑은 한민족 고대로부터 전해 오던 토기를 4개의 기둥이 받치고 아래에는 알이 있는 모양이다. 네 개의 기둥과 토기가 선배들의 삶이라면 알은 성숙해 가는 후배들을 상징한다.또 30주년 때는 모교 교문을 기념 상징물로 제작해 학교에 기증하고 재학생들이 참여하는 타임캡슐 묻기 사업을 진행했다. 또 장학기금 조성 사업과 30년사 기념책자 발간 사업을 함께 진행하는 등 총동문회 역할을 강화했다.당시 만들어진 교문은 높이 10m, 높이 12.1m, 폭 2,2m의 상징물이다. 구미고와 떠오르는 태양, 최고라는 의미를 형상화했다. 당시 구미고 총동창회는 기념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동문들을 대상으로 모금활동을 펼쳤는데 한 해도 지나지 않아 1억 원이 모였다.구미고 총동창회의 올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인적 네트워크망을 강화하고 총동창회 장학재단을 법인으로 만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또 40주년을 기념사업을 선후배가 함께할 수 있는 이벤트로 기획해 올해를 총동창회의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이달 중 열리는 총회에서 동문의 의견을 수렴하고 나서 결정된다.〈김건학 총동창회장 인터뷰〉-구미고 총동창회의 역사에 대해△구미고는 역사가 길지 않다. 전통 있는 다른 학교와는 비교되질 않고 같은 지역의 현일고나 오상고보다도 30~40년이 늦다. 총동창회의 경우는 1989년 창립됐으니 역사라고 해봤자 30년을 이제 막 지났다.-총동창회를 운영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역사가 짧다 보니 내세울 부분이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회 각계각층에서 동문이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오히려 짧은 역사가 강점이 되기도 한다.가령 전통 있는 학교들 공통적인 고민은 젊은 후배들이 더 이상 동창회를 찾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성원 간의 세대 차이가 너무 심한 탓이다.이런 문제에서 구미고는 비교적 자유롭다. 비교적 젊은 세대들이 동창회에 나오고 선후배 사이도 밀접하다.-자랑스런 동문이 있다면△지난해 장군으로 진급한 권대원 동문을 꼽고 싶다. 역사가 짧은 구미고에서는 처음으로 별을 달았다. 하지만 내가 자랑스러워 하는 건 그의 한결같음이다. 권 동문은 지금은 학교 밖 선배들의 봉사모임이 된 한솔모임의 초기 멤버다. 30년이 넘도록 봉사모임을 이어오면서 매년 빼먹지 않고 후배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선배들이 얼마나 될까.-공무원들의 모임이 많던데△구미고를 졸업하고 많은 동문이 구미와 인근 지역에 정착했다. 이동이 잦은 기업보다 공무원들의 모임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물론 동문이 적극적으로 공직사회 진출에 나선 탓도 있다.하지만 최근에는 직업보다는 취미에 따라 모임이 활성화되는 추세다. 특히 골프는 매달 모임을 할 정도로 회원들의 참여가 적극적이다.-올해 꼭 하고 싶은 사업이 있다면△총동창회 장학재단을 법인으로 바꾸는 일이다. 이 사업은 15대 채종대 회장(3기)의 바램이기도 했다. 장학재단 법인화가 어려웠던 건 자금의 규모 등 여러 조건이 따라주지 못해서다. 하지만 지금은 총동창회의 역량이 충분히 이를 감당할 수 있다.장학재단을 법인으로 바꿔 장학금 사업을 보다 체계적으로 확대하고 동문들에게는 정확한 돈의 사용처를 보여주겠다는 게 이 사업의 의도다.-동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있다면△총동창회가 올해 추진하고 있는 또 하나의 사업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인적 네트워크망을 강화하는 일이다. 역사가 짧은 구미고의 단단하고 끈끈한 결속력이다. 선후배가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총동창회는 연결고리가 되겠다. 특히 올해 추진하는 40주년 기념사업에 더 많은 목소리가 반영돼 올해 개교일이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뜻 깊은 이벤트가 되길 바란다.류성욱 기자 1968plus@idaegu.com

청소년 근시 발병률↑…망막박리와 녹내장 등 실명질환 주의

겨울철 실내활동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청소년의 컴퓨터 게임, 스마트폰 사용 등도 잦아지고 있다.이런 전자기기의 과도한 사용은 청소년의 근시 발생 위험을 높이고 안질환을 유발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국내 근시 환자는 120만6천397명이었으며 그 중 10대 환자는 44만7천608명으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많았다.청소년에 해당하는 근시 환자가 전체의 37.1%를 차지한 것이다.또 10대 이하 어린이 환자가 25만115명(20.7%)으로 뒤를 이었다.매년 10대 근시 유병률이 증가하는 요인으로는 장시간 학업, 인터넷(컴퓨터)과 스마트폰 과다 이용 등 실내 활동 증가가 꼽힌다.주로 싱가포르, 중국, 대만 등 동양인에서 유병률이 높은데 최근 일본 게이오 대학 연구팀이 도쿄의 초·중학생 1천416명의 눈 건강상태를 조사한 결과 초등학생 689명 중 76.5%, 중학생 724명 중 94.9%가 근시인 것으로 집계됐다.특히 중학생의 72명(10%) 정도는 향후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질병을 유발할 위험이 높은 ‘강도 근시’인 것으로 나타났다.근시는 먼 곳을 바라볼 때 물체의 상이 망막의 앞쪽에 맺히는 굴절 이상으로 먼 곳은 잘 안보이고 가까운 곳은 잘 보이는 눈 상태를 말한다.주로 5~15세 성장기에 발생하며 방치할 경우 성인이 되면서 고도근시로 발전할 확률이 높다.일반적인 근시는 -6D(디옵터) 이내의 도수를 나타내고 고도근시와 초 고도근시는 각각 -6D(디옵터), -9D(디옵터) 이상으로 그 자체를 질환으로 보며 병적근시라고 부른다.특히 고도근시와 초고도 근시는 눈의 전후 길이가 평균 30㎜ 이상으로 길어지면서 망막과 혈관층(맥락막)이 얇아져 시력을 손상시키는 망막박리, 녹내장 같은 심각한 안질환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 정기적으로 안과검진을 받아야 한다. ◆젊은 고도근시…망막박리, 녹내장 등 주의망막박리는 안구 내벽에 붙어 있어야 하는 망막이 벽지 떨어지듯이 들뜨게 되는 상태로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안구가 위축되거나 실명에 이를 수 있어 조기발견이 중요한 질환이다.녹내장은 안압 및 혈류이상 장애 등으로 시신경이 손상되면서 시야가 점점 좁아져 실명에 이를 수 있다.한번 손상된 시신경은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초기에 발견해 손상의 진행을 멈추게 하거나 느리게 해 생활의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것이 최선이다. 두 안질환의 공통점은 초기 자각증상이 없어 대수롭지 않게 넘겨 방치하다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따라서 망막박리 및 녹내장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고도근시 환자인 경우 젊은 나이라도 방심하지 말고 6개월에서 1년에 한번 정기적으로 안과검진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상태에 따라 더 자주 검진을 받아야 할 경우도 있다. 누네안과병원 김종구 원장은 “성장기 청소년의 근시가 위험한 것은 아직 성장이 멈추지 않은 상태이고 계속 안구의 길이가 정상치보다 길어진다는 것”이라며 “이로 인해 안구내면을 이루는 신경막 조직인 망막이 얇아지고 시신경이 당겨져 망막열공, 망막박리, 녹내장, 근시성 황반변성 등 중증 안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고도근시나 초 고도근시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전자기기 사용 시 적당한 실외활동 해야청소년 근시 환자 대부분이 두꺼운 안경의 불편함에서 벗어나고자 콘택트렌즈를 착용하는 경우가 많다.특히 함수율이 높아 주변의 수분을 흡수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콘택트렌즈는 장시간 착용 시 안구건조증을 유발하고 자칫 각막에 상처를 내기 쉬워 주의해야 한다.눈의 피로를 덜기 위해서는 PC와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등의 근거리 작업을 장시간 하지 않아야 한다.근거리 작업을 장시간 할 경우 50분 사용 후 10분 정도 먼 곳을 바라보며 휴식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으며 실내조명은 적당한 광도를 유지해야 한다.그 밖에도 햇빛 속에서 하는 야외 활동은 성장기 아이들의 근시 진행에 도움이 된다.특히 스마트폰은 10~15분 이내로 짧게 나눠 사용하는 것이 좋다.또한 고도근시는 일반인에 비해 생길 수 있는 합병증이 많은 편이므로 정기적인 안과 검진으로 눈 건강에 이상은 없는지, 또는 초 고도근시(병적근시)로 진행하지 않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적어도 1년에 한 번은 주기적으로 안과 검진을 받아야 한다.특히 비문증, 광시증 등의 증상이 새로이 나타나거나 심하게 되는 경우에는 망막정밀검진을 받아 보자. 도움말=누네안과병원 김종구 원장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