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어가는 포항 철강 산업…부활 나래 펴길

철강 산업이 재도약 기회를 맞았다. 정부가 포항시 등 3개 철강도시의 중소규모 철강업체들에 대해 자금 및 기술 지원 등을 할 수 있는 개발 사업이 예비 타당성 조사를 통과, 돌파구를 찾게 된 것이다. 지원 규모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발전을 꾀할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일 중소 철강사의 미래 기술력 확보 등 철강 산업 생태계 전반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철강 산업 재도약 기술 개발 사업’이 예타 조사를 최종 통과했다. 내년부터 2025년까지 5년간 총사업비 1천354억 원 규모로 추진할 예정이다. 이 사업은 고부가가치화 기술개발, 친환경 자원순환 기술개발, 산업공유자산 구축 등이 목적이다. 이 사업은 그동안 대기업 중심의 범용 소재 위주 양적 성장에 한계를 인식, 중소 철강사의 역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새로운 성장 주체로 삼기 위해 마련됐다. 지자체와 산·학·연이 협력해 철강 중소기업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국내 철강 산업은 글로벌 철강산업의 공급과잉과 수요 부진 및 가격 하락 등으로 경영 어려움을 겪는 등 고전을 면치 못했다. 최근엔 코로나19라는 복병까지 등장해 위기를 맞았다. 포스코로 대변되는 대표적인 철강도시 포항의 경제도 덩달아 추락했다. 이 때문에 경북도와 포항시는 돌파구 마련에 힘을 쏟아왔다. 예타 통과에 따라 최근 심화되고 있는 중소 철강사에 활력을 불어넣고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 또한 그간 포스코 포항제철소 중심의 양적 성장에 기대왔던 도내 철강산업에 중소·중견 철강기업이 주요 축이 되는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이 사업은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에 반영, 시작됐다. 이후 산업부와 포항시, 관계 기관이 노력 끝에 지난해 말 예타 대상 사업에 선정됐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시의적절하게 예타가 통과돼 국가 철강 산업이 한 단계 도약할 원동력이 마련돼 다행”이라면서 “철강 산업이 도내 제조업 르네상스를 선도하는 주력 산업으로 거듭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 사업은 그동안 예타 문턱에서 3차례나 탈락한 끝에 통과돼 그 의미가 남다르다. 경북도와 포항시는 정부 정책에 맞춰 수정하고 중앙부처에 사업 추진을 적극 건의하는 등 로비 끝에서야 가능했다. 지역 국회의원과 여당 정치권도 힘을 보탰다. 예산이 당초 계획한 3천억 원에서 절반 이하인 1천354억 원으로 줄어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앞으로 사업 추진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 철강 산업을 또 다른 경지로 올려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구·경북 발전의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

신천지교회에 1천억 원대 소송

얼마 전 대구시가 신천지 대구교회를 상대로 1천억 원대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대구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대규모 확산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신천지 교회 측이 전파 장소가 됐을 가능성이 큰 교회 시설과 교인 명단을 고의로 누락한 데 대해 책임을 물은 것이다.지금까지 코로나19로 인한 대구의 경제적, 사회적 피해 규모는 추정 집계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막대하다. 또 그 피해는 시간이 흐를수록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이 피해가 모두 신천지 대구교회와 직접적 관련성이 있다고 보긴 어렵겠지만, 그러나 대구 첫 확진자였던 그 교회 신자, 그리고 그 후 집단감염으로 이어진 확산 과정에서 보였던 교회 측의 대응은 대구의 코로나 피해를 키우는 데 분명 그 책임이 있다는 게 많은 이들의 생각이다.따라서 시의 소송 제기는 응당한 조치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신천지 대구교회에 끝까지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지금 시민정서를 생각한다면 금전적 피해보상 외에 다른 어떤 제재라도 신천지 교회 측은 달게 받아야 할 판이다.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공동체의 안전이 의외로 취약하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있다. 의료기술과 과학기술은 상상한 것들을 다 현실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발전하고 있지만, 세상은 아직도 생각지 못한 곳에서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것들에 의해 쉽게 구멍이 뚫리고 허물어질 수 있음을 지금 목격하고 있다.코로나19 위협 속에서 할 수 있는 게 개인위생 수칙 준수가 전부인 현실도 그 예가 될 것이다. 치료제도 백신도 개발되지 않은 코로나 사태에서 감염병 확산과 방역이 결국 사람에 달려 있다고 해도, 그래서 크게 틀린 말이 아닐 것 같다.신천지교회 집단감염 사태만 봐도 그들의 지나치게 비밀스러운 활동과 교인들끼리만 정보를 공유하는 집단주의 등 교인들의 행동이 당시 전염병 확산을 더 키운 요인으로 지목됐다. 쓸데없는 가정이겠지만 그때 만약 신천지 교회와 신도들이 더 적극적으로 협조했다면 대구 피해가 이처럼 크진 않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코로나19가 위력을 떨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기심도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한 의학적 대응법이 없는 이번 전염병 발생 상황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효과적인 방역 대책이 개인위생 수칙 준수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이에 아랑곳없이 행동하는 이들이 있다.증상이 있는데도 여러 곳을 여행 다닌 사람이 있고, 확진 판정 이후 방역 당국의 이동경로 조사에 협조하지 않거나 아예 거짓말을 한 이들도 많이 나왔다. 대중교통이나 공공시설을 이용할 때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했지만, 이 문제로 버스나 택시 기사들과 다투는 손님도 있다. ‘나만 괜찮으면 다른 사람은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생각과 다름이 없다.이런 상황에서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선택은 어떠해야 할까. 변덕스러운 개인의 양심과 도덕심에만 맡겨 놓는 것을 우선해야 할까, 아니면 강제력이 있는 법, 제도라는 수단을 통해 통제, 관리해야 할까.최근 지역 한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대구시와 대구도시철도공사가 6월 초 폭염 대책의 하나로 ‘양산 대여 사업’을 시작하고 3주가량이 지났는데 준비한 1천여 개 양산 가운데 분실된 것이 20개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2015년과 2018년에도 ‘양심 우산 대여 사업’을 했는데, 그때는 시행한 지 한 달 만에 준비한 우산의 절반 정도가 분실되거나 파손돼 결국 사업을 중단했다고 한다.대구 도시철도의 전 역사에는 5월부터 ‘양심 마스크 무인판매대’가 설치돼 있어 필요한 사람은 누구라도 현금 1천 원을 놓고 자율적으로 마스크를 가져갈 수 있다. 여기에서도 한 달여 동안 도난 사례가 한 건도 접수되지 않았다고 한다. 시민들의 시민의식과 공동체의식이 불과 몇 년 사이에 확 달라졌다는 것이다.근래 포스트 코로나란 말이 자주 쓰인다. 지금 경험하고 있는 언택트 문화, 원격교육, 재택근무 등이 코로나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보편적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을 거란 예측이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체험하고 있는 것 중, 또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내가 조심해도 감염자가 될 수 있다’는 경험이다. 이 경험이 앞으로 공동체에 가져다줄 변화도 궁금하다.

국립대구기상과학관이 다시 활기를 되찾기를 바라며

처음 만나는 사람과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쉽게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 무엇일까? 아마도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또는 “오늘은 좀 덥네요?”와 같이 날씨에 관한 대화일 것이다. 이처럼 날씨는 우리 생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날씨에 대해서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이 2014년 11월26일에 대구에서 문을 열었다. 바로 국내 최초의 기상과학 전문과학관인 국립대구기상과학관이다. 국립대구기상과학관은 개관한 이래 현재까지 약 53만여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가면서 지역 내 과학문화시설로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국립대구기상과학관은 가족과 연인들이 즐겨 찾는 동촌유원지에 위치해 있으며, 기상과학관에 도착하면 기상청 캐릭터인 기상이가 우산을 들고 입구에서 관람객을 반갑게 맞이한다. 국립대구기상과학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정지궤도복합위성인 천리안에서 실시간으로 보내주는 자료로 만들어진 다양한 위성영상(수증기영상, 적외영상, 합성영상 등)을 볼 수 있는 ‘지구ON’, 커다란 구름모양의 소파에 누워 우리나라의 4계절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날씨아카이브’, 실제로 기상캐스터가 돼 오늘의 날씨를 전달해보는 ‘기상캐스터 체험’ 등 날씨를 직접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물들이 마련돼 있다. 그리고 기상기후에 관련된 기후변화, 기상예보, 기상관측, 태풍 등 다른 곳에서는 체험해 볼 수 없는 체험교육 프로그램들과 미취학 아동과 초등 저학년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아동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이외에도 세계 기상의 날을 기념해 기상기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보는 ‘기상기후 그림·글짓기대회’, 온 가족이 함께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명랑운동회’, 가족 또는 친구와 함께 국립대구기상과학관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1박2일 캠프’ 프로그램 등 국립대구기상과학관에서는 매달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공연과 이벤트도 개최하고 있다. 특히 2017~2018년에는 ‘문화가 있는 날 지역특화프로그램’을 통해 기상과학과 예술을 융합한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창출했고, 매월 마지막 주에 문화가 있는 날 행사를 개최해 지역예술단체 및 지역문화예술의 발전에도 앞장서고 있다.이와 같이 국립대구기상과학관은 전시, 체험, 교육, 문화행사 등을 통해 지역민에게 기상과학을 쉽게 전달하고 관심과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국립대구기상과학관에서는 올해도 지역민에게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를 준비했지만, 1월20일 국내 코로나19 첫 환자 발생 이후, 많은 환자가 발생해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방역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임시휴관이라는 결정을 내렸고 준비했던 체험교육과 행사들이 모두 취소됐다. 휴관 후 3개월이 지나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 체계로 전환되면서 국립대구기상과학관은 입구부터 철저한 방역 아래 제한적으로 운영을 결정했으며 관람객 위생을 위해 방역물품을 구비하고 시설 일제 방역 및 주변 풀베기 작업과 환경정비를 실시하는 등 관람객을 맞이할 만반의 준비를 했다. 접수는 사전 예약제 운영으로 시간대별 동시 수용 인원을 제한해 진행하고 있으며, 미리 온라인으로 예약을 못했거나 온라인에 취약한 어르신들을 위해 수용 인원에 한해서 현장접수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또 1차 비접촉식온도계 발열 체크, 2차 열적외선 발열체크, 손소독제 사용 및 마스크 착용을 당부하고 있다.이밖에 이용자 간 거리 유지, 코로나19 발생 시 경로 파악 및 확인을 위해 방명록 작성을 진행하고 있으며 시민들과 직원들의 안전을 위해 비대면 서비스를 진행하고 직원 대상 위생교육 및 안전 교육을 철저하게 실시하고 있다. 국립대구기상학관에서는 2019년 12월 기후변화와 지진, 홍수 등을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는 4D영상관을 새롭게 구축했다. 올해는 2전시관을 새롭게 단장해 강수, 태풍, 지진 및 지진해일, 기후변화 등의 새로운 체험시설과 유아 놀이터를 설치하는 등 관람객의 요구와 만족을 위해 지속적으로 변화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하루 빨리 코로나 사태가 진정돼 국립대구기상과학관이 다시 활기를 되찾고 정상 운영되기를 기대해 본다.

(문향만리)대꽃이 필 때

대꽃이 필 때/박권숙일제히 꽃피우고 일제히 말라 죽는//대나무의 외골수가 다다른 생의 벼랑//세상의 모든 직선은 마지막 닻을 내린다//허공의 발자국이 발을 잃어버린 자리//육십 년 혹은 백년 단 한 번 허락된 꿈//그래도 꽃나무라는 허명 앞에 불을 켠다박권숙은 부산 출생으로 1991년 중앙일보 지상시조백일장 연말장원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모든 틈은 꽃핀다’, ‘뜨거운 묘비’ 등이 있다. 시조문단에는 특이한 이력을 가진 시인이 많고, 늦은 나이에 등단해 시조 창작에 자신의 인생을 걸고 활동하는 시인들도 적지 않다. 뒤늦게나마 시조의 가치성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코 늦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들이 펴낸 시조집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조쓰기에 자신의 전 생애를 의탁하는 일은 값지다. 몸으로 체험하지 않은 이들은 모른다. 우리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언어가 얼마나 신비로운지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편이라도 써보게 되면 알게 된다. ‘대꽃이 필 때’를 쓴 시인은 일찍 시조에 입문해 그간에 빛 부신 시편들을 다수 생산하여 적지 않은 독자층이 있다. 그의 작품을 찾아 읽는 후학들이 많다. 그만큼 문학적 성취가 높기 때문이다. ‘대꽃이 필 때’는 강렬하고 견고하면서 결연하다. 일제히 꽃피우고 일제히 말라 죽는에서 보듯 일제히, 라는 시어의 되풀이로 금세 독자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대나무의 외골수가 다다른 생의 벼랑을 예시하고 난 뒤 세상의 모든 직선은 마지막 닻을 내린다라고 전율을 일게 하는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허공의 발자국이 발을 잃어버린 자리라는 둘째 수 초장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대목이다. 육십 년 혹은 백년 단 한 번 허락된 꿈이 대꽃이어서 그래도 꽃나무라는 허명 앞에 불을 켤 수 있는 점을 각인시킨다. ‘대꽃이 필 때’는 집착이 아니라 집념과 인고의 결집이자 결정체다. 모든 힘든 상황을 꿋꿋한 의지와 불꽃같은 염원으로 완전무장하고 꽃 피울 그날을 위해 간구의 세월을 견디는 인종을 밀도 있게 육화하고 있다. 독자에게 새로운 꿈과 의지를 불러일으키게 하고 있는 ‘대꽃이 필 때’는 치유의 시편이자 용기를 심어주는 절절한 가편이다. 그가 일평생 시조를 신앙하다시피하며 개인적으로 갖은 고초를 극복하고 지금까지 어떻게 승리하는 삶을 영위해 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므로 시인의 자화상이 오롯이 투영되어 있다고 보아도 좋겠다. 실로 그는 꽃피우고. 말라 죽기를 마다하지 않는 대나무의 외골수가 다다른 생의 벼랑 앞에서 한시도 자세를 흩트리지 않았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직선이 마지막 닻을 내리는 상황을 두 눈으로 직시하면서 동시에 허공의 발자국이 발을 잃어버린 자리라는 허벽의 정조 앞에서 결코 무너질 수 없는 자존의 견고한 뼈대를 세우는 일 혹은 신앙과 같은 시조 쓰기에 부단히 매진해온 것이다. 자신의 존재를, 살아가야할 까닭을 이만큼 더 잘 알릴 방법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꽃이 필 때’는 그간 꾸준히 이룩해온 박권숙 시조시학을 대표할 만한 역작이다. 또한 두 수의 시조가 완벽한 정형미학을 구현하는데 최적의 그릇임을 다시 한 번 천명한 가품이다. 이만큼 명징하고 이만큼 치밀하고 이만큼 울림이 크고 깊은 세계를 축조하는 일은 쉽지 않다.시조가 지향해야 할 한 방향을 잘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정환(시조시인)

브라보 유어 라이프!( Bravo Your Life!)

이동은리즈성형외과 원장 진료실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만날 때 어떻게 생각해 보면 하나의 인생과 마주한다는 점에서 소홀히 대할 수 없는 경우가 가끔 있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며칠 전 홀로 나를 찾아온 머리가 희끗한 노년의 환자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런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주었다.여러 가지 일을 하다가 어느덧 나이가 들어 은퇴한 어르신은 내심 활력이 있는 듯한 모습으로 나와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은퇴한 후에도 요즘 노년의 인생이 그렇듯 경제적으로 부족한 점이 있었던 모양인지 다시 한 번 취업의 기회를 준비하고 계신 것 같았다.재취업을 위해 준비하다가 조금이나마 젊고 활력 있는 눈과 얼굴의 모습이 새로운 일자리를 얻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눈 수술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몇 가지 눈에 대한 기본적인 검사와 눈꺼풀의 처짐 정도를 진찰하고 나서 눈꺼풀 주름 수술에 대해 설명해 드렸다. 곰곰이 생각하시고는 대뜸 귓불에 생긴 주름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다.이제껏 경제적으로 운이 없었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던 차에 그 이유가 아마 귓불에 주름이 길고 깊게 패인 채로 자리 잡고 있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은 눈치였다. 그래서 이번 눈 수술을 하는 기회에 같이 하면 좋겠다는 결심을 하신 것 같았다.수술을 위해 모아둔 돈에 이리저리 수당을 합쳐서 수술비를 마련할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가뜩이나 노년의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마당에 요즘 코로나로 인해 그 어려움이 더 심해진 것을 짐작하게 했다.불행인지, 다행인지, 수술비가 모자라 한 가지만 할 수 있는 사정이 됐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자 그 환자는 귓불 수술을 먼저 해야겠다고 말씀하셨다.‘눈 수술을 먼저 하시지 않구요?’ 라고 이야기 했지만 그러기에는 수술비가 모자랐던지 우선 그것보다 저렴한 귓불 수술부터 먼저 하고 다음에 눈 수술을 하겠다고 하신다.지병이 있는 분이라 여러 가지 약을 많이 복용하고 있어 몇 가지 약물을 조절해서 수술 스케줄을 조정했고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이루어졌다.부처님 귀처럼 두툼하고 패여 있던 골이 다 메워져 주름이 없는 귓불이 만들어진 것에 만족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 환자에게 ‘귓불이 잘 만들어져서 마음에 드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쪼록 하시는 일에 대박이 나시면 저도 기분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덕담을 해 드렸다.나이가 들어가면서 체력과 자신감, 에너지가 떨어지면 아무래도 작고 사소한 것에도 마음의 쓰이게 된다. 이런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 보면 안쓰러운 것도 사실이다.이렇게 살아온 인생이 헛되고 의미 없는 것만은 아닌데 현재의 모습과 상황에서 이제껏 이루어 놓은 모든 것들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면서 자신감이 사라지는 것이 이 환자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요즘 같은 4차 산업혁명이니 포스트 코로나 시대니 하는 변혁의 시대, 적응하기 조차 어지러운 우리 모두에게 누구든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는 일이라 새삼 남의 일만은 아닌 듯 하다.백발이 성성해진 이 할아버지께 어떤 말을 전해드려야 힘이 될 수 있을까?‘지금 삶이 힘든 당신,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가고또 특별하지 않은 하루가 다시 온다고 해도인생은 그 나름의 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자신감을 가지고 다시 찾아올 눈이 부신 하루를 뚜벅뚜벅 쉼 없이 다시 걸어가시기 바란다.할아버지, 이제 귓볼은 해결했으니 좋은 일만 많이 있기 바랍니다. 다시 오시면 처진 눈꺼풀도 고쳐 새로 다가올 하루를 더 크고 환하게 보실 수 있도록 해 드릴께요.

심포리/이수남

~젊은 날의 운명적 불장난을 찾아서~… 알프스에서 산악열차 푸니쿨라를 타고 필라투스 산으로 가던 중 굉음과 함께 열차가 갑자기 섰다. 목덜미의 통증과 함께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지는 듯했다. 톱니바퀴 열차와 충격으로 인해 불현 듯 약 사십년 전 심포리의 기억이 떠올랐다. 언젠가 꼭 한번 가보리라 다짐한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나는 큰 맘 먹고 강원도 심포리를 찾아간다. 심포리는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 등록금을 벌기위해 몇 달 동안 짐꾼으로 일했던 곳이다. 심포리엔 톱니바퀴 열차가 있었고 그 옆으로 나무계단이 있어 짐꾼들이 생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심포리의 톱니바퀴 열차가 사라지고 폐선이 되는 바람에 기존 심포리역은 없어지고 새로운 심포리역이 생겼으나 그나마 완행열차도 서지 않는 한적한 역이 됐다. 물어물어 우여곡절 끝에 찾아간 옛 심포리역은 기다리는 사람 하나 없는 폐허였다. 다행히 근처 청년회관에서 만난 노인에게서 철암댁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어느 비 오는 날 저녁, 앞서가던 여인의 자태에 욕정을 느꼈다. 발기된 남성으로 인해 걷기조차 불편하던 와중에 발을 헛디뎌 비탈로 떨어졌다. 정신이 들었을 땐 여인의 품에 안긴 채 배수로에 처박혀있었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급히 옷을 벗어 제켰다. 그 후 몇 달 동안 두 사람은 심포리역에서 만나 인근 빈집이나 산에서 사랑을 나눴다. 그러던 어느 날, 여인의 남편이 잠자리 현장에 들이닥쳤다. 나는 죽어라고 도망쳐 나왔으나 그 여인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날이후 철암댁의 소식은 끊어졌다. 철암댁은 남편에게 눈 부위를 흉기로 찔려 한 눈이 실명하고 남편은 철암댁에게 세차게 떠밀려 뒤로 자빠지는 통에 뇌진탕으로 사망하였다. 철암댁은 6년을 복역 후 심포리역 인근에서 식당을 하고 있단다. 워낙 억척스럽게 일해 먹고사는 덴 지장이 없는 모양이다. 철암댁의 근황을 들은 후, 그 여인을 찾아가봐야 하는지, 가지 말아야 하는지, 마음을 정하지 못한다. 인근 영동선 기적소리가 폐선 부지를 걷는 내 발길을 막아선다.…한 평생 사는 동안,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남녀가 운명적으로 만나, 잊을 수 없는 사연을 만드는 경우가 없지 않다. 불가에서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한다. 살을 섞는 일은 보통 인연이 아니다. 만남의 장에서 의지를 갖고 서로 만나고, 마음이 맞지 않으면 헤어지는 일이야 일상적이다. 허나 계획되지 않은 시간에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개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우연히 환경에 갇혀 선택의 여지없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고 관계를 맺게 되는 경우는 예외적이다. 통상 남녀 간의 정사인 경우가 깊게 각인된다. 그런 횡재(?)가 왜 자기에겐 주어지지 않는지 부러워하기도 한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심리는 남녀관계도 마찬가지다. 막상 그런 추억을 간직한 사람은 우연한 일탈을 깊숙이 마음에 담아두고 떳떳이 터놓지도 못하면서 남몰래 얼굴을 붉히며 평생 되씹는다.심포리의 추억은 아름다운 인연, 어쩌면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사랑이다. 자기 때문에 철암댁이 불행하게 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슬픈 추억을 의식 아래로 가라앉혔다. 마무리를 깔끔하게 하지 못한 죄의식이 잠재했을 터다. 그러다가 톱니바퀴 열차와 머리 충격이라는 일을 매개로 그 기억이 의식으로 떠오른다. 추억의 여인을 만나 무릎 굻고 사죄하리라. 사죄는 둘째 치고 이젠 그 여인을 만나보고 싶다. 불장난이 아니라 사랑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나 기적소리가 발길을 막아서는 걸 어찌하랴.오철환(문인)

무엇이 불필요하고 잔인한 것들인가?

요즘 들어 생각이지만 전대미문의 충격이라는 코로나19 사태가 어디로 갈지는 누구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 같고사람들은 그저 그러려니 하고 일상을 보내는 것 같아 ‘과연 이래도 되나’하고 씁쓸한 느낌마저 든다.IMF와 우리 정책당국을 제외하면 말이다. IMF는 지난 주말에 기습적으로 세계경제 수정전망을 발표했다. 그것도 지난 4월 전망에 비해 올해 세계경제는 1.9%포인트나 더 나빠진 -4.9% 한국경제도 1.2%포인트 더 하락해 -2.0%를 기록할 것으로 말이다.이런 비관론을 배경으로 우리 정책당국도 조기 위기 극복을 위해 애써 마련한 3차 추경안을 21대 국회에서 하루라도 빨리 통과시켜 주길 바라고 있다. 모처럼 공감대를 형성한 역대 최대 규모의 추경일 뿐더러 경기부양효과가 큰 SOC(사회간접자본) 투자 비중도 늘렸으니 사업타당성조사도 건너뛰어 조속히 처리돼야 한다고 말이다.그런데 최근 우리 정책당국이 내놓는 새로운 정책들을 보면 위기의 조기 극복은커녕 여기저기 들쑤셔서 시장 분위기만 흩트리고 위기극복의 동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증세 논란이다. 미증유의 경제위기라면 응당 위기극복까지 증세 논의는 뒤로 미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남아 지금 당장 증세를 논해야 한다면 위기극복 후 증세의 방향성에 대해 합의를 도출하는 정도가 돼야 한다.더군다나 냉정하게 보면 증세는 이미 실현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대표적인 예로 그 동안 쏟아낸 부동산 시장 안정화 대책에는 수많은 증세책이 포함돼 있고 이를 두고 말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내하는 국민들은 그나마 정책당국의 진의 즉 부동산 시장을 안정화시켜 자산으로 인한 양극화가 더 심화되거나 내 집 마련의 꿈이 멀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를 더 신뢰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이뿐이 아니다. 애써 부정하고 있지만 주식양도세 도입을 포함함 금융세제 선진화 추진 방향도 실질적인 증세다. 2023년 시행이라며 이번 정부에서는 시행되지도 않을 정책을 왜 지금 발표했는지 동기야 어떻든 미증유의 위기에 맞서 모처럼 ‘동학개미’라 일컬어지는 개인투자자들 덕분에 취약했던 우리 금융시장이 이만큼 버티고 있는데 왜 그들에게 하필이면 지금 그런 정책을 발표했어야 했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이는 글로벌 금융허브까지는 몰라도 국내 자본시장의 발전을 위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처사다.고용 아니 노동 정책도 마찬가지다. 공공부문을 시작으로 한 비정규직 철폐, 과도할 정도로 빠른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과 고질적인 저성장 극복 등은 참으로 고상하고 바람직한 이상향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과정의 공정성은 어디간 데 없고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특히 청년층들의 상실감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저성장 극복은 코로나19 사태와 겹쳐 요원할 뿐이다.이와 관련해서 리쇼어링(reshoring 제조업의 국내 회귀) 정책도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문이다. 반기업 정서가 만연하고 각종 비용이 증가하는 등 갈수록 경영환경이 악화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기대가 더 큰데 어떤 당근을 제시한들 정책당국의 의도대로 될 리 만무하다. 혹시 아직도 생존을 위해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기업의 생리를 문제시 한다면 해결책은 없다.국회도 빼놓을 수 없다. 지금 21대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뇌리를 차지하고 있는 생각은 촌각을 다퉈가며 위기극복과 민생 해결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만들고 실천하는 위정자들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지 협치를 거부하는 야당과 다 줘도 못하는 여당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아니다.더구나 비관적인 전망에 기대어 역대 최고 수준의 추경을 편성해 조기에 위기를 극복해 보이겠다는 정책당국이 이런 사실들을 외면해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지금은 국민들에게 가장 불필요하고 잔인한 것이 무엇인지 위기극복에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인지 정책당국을 포함한 위정자들의 진지한 고민과 적절한 대책이 필요한 때다.

통합공항, 무엇이 양보 가능한지 생각하라

대구·경북 통합신공합 이전부지 선정위원회가 3일 열린다. 마지막 절차다. 이제는 정말 시간이 없다. 지역사회의 전방위적 중재 노력이 군위와 의성을 상대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군위군은 지난달 30일 ‘우보 단독후보지 선정하고, 인센티브는 의성이 다 가져라’라는 입장문을 통해 “우리는 절대 공동후보지(군위 소보-의성 비안)를 신청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군민의 뜻을 거스르는 공동후보지를 전제로 한 어떠한 논의에도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천명했다. 단독후보지를 고집하는 입장에 변화가 전혀 없다. 실제 군위군은 이날 대구시에서 열린 실무진 협의에도 불참했다. 군위군이 빠진 협의에서 의성군은 국방부와 대구시, 경북도가 제시한 중재안에 대한 수정 의견을 제시했고 복수의 수정안이 검토 대상에 올랐다. 그러나 시·도 관계자들은 군위군의 입장에 전혀 변화가 없기 때문에 수정안은 의미가 없다고 평가했다. 모두 꺼릴 때 앞장서서 통합공항 유치에 나선 군위군의 아쉬운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지금은 불필요한 입장문을 발표해 합의의 여지를 없애고, 스스로 입지를 좁히는 행보는 바람직하지 않다.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감정 대결로 치달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합의에 실패하면 갈등이 후대로 이어질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두 지역 지도자들의 냉철한 상황 인식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통합신공항 대구시민추진단은 “끝내 합의에 실패한다면 제3후보지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합신공항은 군위·의성의 것만이 아니고 520만 대구·경북 시도민의 미래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제3후보지 선정 주장이 점점 세를 얻고 있다. 절대 안된다는 주장과 불가피론이 뒤섞여 혼란을 더하는 양상이다.통합신공항 이전은 대구·경북의 하늘길을 새로 여는 프로젝트다. 공항 건설에만 10조 원이 들며, 관련 SOC와 연계도시 개발 등을 포함하면 수십조 원이 투입되는 대역사다. 전후방 개발요인도 엄청날 수밖에 없다.군위군과 의성군은 최종 중재안 수락과 합의 불발의 득실을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무엇이 지역민과 지역의 발전을 위하는 길인지 생각하기 바란다.다시 한 번 차분하게 이성을 바탕으로 판단해 달라는것이 전체 지역민들의 요구다. 자신들이 양보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데서 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벼랑끝 전술은 협상을 위한 전술로 끝나야 한다. 전술이 목적을 삼키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된다. 막판 극적 대합의를 기대한다.

최저임금 인상, 면밀한 검토부터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업종을 몇 개 집단으로 나눠 최저임금을 달리 적용하는 안이 무산됐다. 6월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3차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적용 안건을 표결에 부쳤으나 부결된 것이다. 이로써 1일부터 열리는 회의에서는 내년도 최저임금을 얼마로 정할지 논의할 일만 남았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아주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당위성에만 매몰되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당위론은 예상되는 부작용을 살펴볼 여지를 없애기 때문이다. 특히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정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있어 더욱 조심해서 추진해야 할 일들이다. 최저임금 인상 문제도 그 중 하나다. 이때까지는 최저임금을 보장해 저임금 근로자의 생활 안정을 도모한다는 당위성에만 집착해왔다.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떤 파장이 일어날 지는 세밀한 검토를 하지 않았다. 아니 애써 외면해왔다는 말이 맞겠다. 실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우리 경제에 직격탄이 되어 왔다. 자영업자들은 늘어나는 인건비 부담에 줄줄이 폐업하고 있고 규모가 있는 기업조차 채용을 망설이고 있다. 청년들의 아르바이트 일자리 구하기는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그나마 단시간 일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토막근로’나 ‘메뚜기족’ 청년들만 양산하고 있다. 이처럼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았는데 오히려 문제가 더욱 악화되는 결과를 낳는 현상을 ‘코브라 효과’(cobra effect)라고 부른다.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던 당시의 인도에선 코브라에 물려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에 영국정부는 잡아오는 코브라 한 마리당 포상금을 주는 캠페인을 벌였다. 처음엔 실제로 코브라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1년, 2년 시간이 지날수록 코브라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코브라 포획으로 개체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자 포상금을 노린 사람들이 너도나도 코브라를 사육하기 시작해서였다. 이 때문에 포상금 지급을 중단하자 사육하던 코브라를 내다 버리는 바람에 개체 수는 예전의 수십배로 증가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시행한 대책이 전혀 의도하지 못했던 다른 결과를 낳는 경우다. 실제 이같은 ‘코브라’가 우리나라 곳곳의 현장에 똬리를 틀고 있다. 실손보험이 대표적이다. 국민건강보험에서 부담해주지않는 진료비를 보장해준다는 점 때문에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보험금 지급액이 더 가파르게 늘어났다. 병원의 과잉진료에, 보험 가입자들의 ‘의료쇼핑’까지 더해진 결과다. 결국 착한 대다수 보험 가입자가 보험료를 더 부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코로나 이후 여야가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복지정책들도 ‘코브라’이다.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적자 재정은 애써 외면한다. 부동산 부양 정책 이후에 과열된 부동산 시장을 잡는다며 쏟아내는 정책들도 ‘코브라’이다. 냉탕온탕을 오가는 정책들만 양산해낸다.저소득층의 소득을 일정부분 보장해준다는 기대로 시작했던 최저임금제도도 대표적인 ‘코브라’이다. 너무 가파른 인상으로 처음의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최저임금 일자리를 줄여 ‘최저임금의 역설’이라는 용어만 나돌고, 자영업을 위축시키는 역효과만 내고 있어서다. 지금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로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또다시 두자릿수의 최저임금 인상이 나온다면 한계상황에 처해있는 563만 명(2018년 통계청 자료)의 자영업자들 대부분 파산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중소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최저임금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600여 중소기업 중 약 60%가 최저임금 인상 땐 고용축소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상적인 명분에만 집착해 정책을 시행하다보면 엉뚱한 결과가 도출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걱정한다면 부작용을 해소할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말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1천1명을 대상으로 내년도 최저임금에 관해 물은 결과가 말해준다. 내년도 최저임금에 관해 물은 결과 ‘올해보다 인상해야 한다’는 응답은 28%에 그쳤고 ‘올해 수준 동결’ 응답이 56%로 가장 많았다.

유치원·어린이집 위생 관리 빈틈 없기를

코로나19 사태 속에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위생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경기 안산 유치원 집단 식중독 여파가 대구까지 밀어닥쳤다.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할 상황이 아니다. 대구시와 대구시교육청은 대구지역 유치원과 어린이집도 혹여 집단 식중독에 노출되지 않을지 몰라 시설 점검에 나서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미리 대처해서 나쁠 것은 없다. 피해를 막거나 줄일 수 있다면 그만큼 다행이다. 무엇이든지 예방이 최선이다.대구시와 시교육청은 지난달 29일부터 유치원은 340곳, 어린이집 1천269곳에 대해 전수 조사 및 위생 관리 점검에 들어갔다. 지역 학부모들이 불안감을 호소하기 때문이다. 지역 일부 시설이 위생 사각지대에 놓였다고 한다. 현재 유치원은 대구시 교육청이, 어린이집은 대구시가 관리하지만 위생 점검은 제각각이다. 50인 이상 급식소를 보유한 시설은 현행법상 대구시에 위생 점검 의무가 있다. 반면 50인 미만 급식소를 보유한 시설은 각 해당 기관의 위생 점검 주체가 애매하고, 지침도 없어 비교적 관리·감독에서 자유로운 탓에 위생 사각지대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자칫 관할을 따지다가 방역에 구멍이 생길 수도 있는 부분이다. 소규모 급식 시설에 대한 적절한 위생 관리가 시급하다. 대구시와 시 교육청은 관할을 따질 것이 아니라 협력을 강화해 위생 사각지대가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질병관리본부는 경기도 안산 유치원에서 지난달 12일 복통 증상을 보인 원생이 첫 발생한 후 지난달 30일까지 원생과 가족 등 식중독 유증상자 114명, 확진자 58명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확진자 가운데 ‘햄버거병’ 의심 증상 환자가 16명으로 드러나 이 중 4명이 투석치료를 받았다. 학부모들이 유치원 원장을 식품위생법 위반 등 혐의로 고소, 경찰이 수사 중이다.보건 당국은 안산 유치원 환자의 경우 장 출혈성 대장균이 원인임을 밝혀냈으나 접촉과 유입 경로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혀 학부모들은 속만 태우고 있다. 전문가들은 어린이들이 물놀이 시설을 이용하다 감염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더위 속 어린이들의 물놀이가 자칫 감염병에 쉬 노출될 수 있어 우려되는 상황이다.장 출혈성 대장균 감염증은 물과 음식, 손을 통해서도 감염이 가능해 여름철 식품 위생 관리와 물놀이 등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로 노이로제에 걸리다시피한 지역 학부모들에게는 숙제가 하나 더 늘어났다. 대구 시민 모두가 건강한 여름철을 보내길 바란다.

접시꽃 저녁

접시꽃 저녁 윤경희십리 길 오일장을 한걸음에 다녀오신 당신의 손에 들린 간고등어 한 마리 특별한 날도 아닌데 잘 차려진 오종종한 밥상 집집이 피어나는 굴뚝마다의 향연, 지붕 위 엎치락덮치락 시름하던 저녁놀 그 여름 툇마루 한켠은 은밀한 저녁이었네 키만큼 따라 크던 유년의 골목 어귀 대궁마다 함초롬히 피던 붉은 접시꽃 무리 말없이 뿌리 묻고 있는 당신의 마음이었네........................................................................................................................ 윤경희는 경북 경주 출생으로 2006년《유심》신인문학상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비의 시간』『붉은 편지』『태양의 혀』와 현대시조 100인선『도시 민들레』가 있다. 봄이 되면 온갖 꽃들이 피어나서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꽃을 보는 마음은 제각각이지만 설레기는 마찬가지다. 그때마다 가슴 속에서 뭉클한 감정이 솟구쳐서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시인은 시를 쓴다. 어떻게 저리도 꽃이 아름다울까 하고 탄복하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이들도 있다. 지금은 석류꽃, 수국, 비비추, 접시꽃 철이다. 접시꽃은 아마 접시 모양이어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접시꽃은 차를 운전하며 달리는 강변길이나 바닷가 근처 길가에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볼 때가 많다. 요즘 피는 접시꽃은 키가 유난히 크고 색깔도 다채롭다. 줄기마다 다닥다닥 피어오르는 접시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접시꽃 저녁’은 섬세한 감각이 돋보인다. 십리 길 오일장을 한걸음에 다녀오신 당신의 손에 들린 간고등어 한 마리로 말미암아 특별한 날도 아닌데 잘 차려진 오종종한 밥상 앞에 앉는다. 집집이 피어나는 굴뚝마다의 향연, 지붕 위 엎치락덮치락 시름하던 저녁놀과 더불어 그 여름 툇마루 한켠은 은밀한 저녁이었다. 키만큼 따라 크던 유년의 골목 어귀 대궁마다 함초롬히 피던 붉은 접시꽃 무리를 보며 말없이 뿌리 묻고 있는 당신의 마음을 읽는다. 소박한 삶의 정경이 애틋하게 다가오고 있다. 이처럼 ‘접시꽃 저녁’은 전편에 끈끈한 가족애가 흐른다. 지금은 우리가 놓쳐버린 정겨운 분위기다. 철은 여름이었고 은밀한 저녁이 있었다. 마음을 설레게 하는 굴뚝 향연, 툇마루, 저녁놀, 유년의 골목, 붉은 접시꽃 그리고 당신은 영원토록 잊지 못할 그리움의 대상이다. 결구에서 드러난 심상인 당신의 마음은 곧 내 마음이 되어 오늘의 내가 되어 살고 있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화자도 자신이 말없이 뿌리를 묻고 있는 한 존재가 된 것을 숙연히 자각하면서 그리움을 다독인다. 그는 또 다른 작품 ‘그 남자의 집’에서 화가 이중섭의 생가에서 느낀 감회를 노래하고 있다. 남자는 가고 없었고 온기 없는 빈 집이라면서 소의 울음소리만 문고리에 걸어둔 채라는 대목이 이어진다. 눈이 번쩍 뜨이는 구절이다. 정말 문고리에서 소 울음이 흘러내릴 듯하다. 그렇기에 기막힌 불운의 시대가 통증처럼 치받칠 만하다. 말없이 설렁대는 그의 남루한 눈빛이 좁은 방 짧은 행복으로 우두커니 걸려 있는데 지켜 선 멀구슬나무가 봄빛 마중을 나오고 있다. 이중섭은 이미 오래전 가고 없지만 그의 예술은 오래도록 남아 이렇듯 한 편의 시 속에서 또다시 빛을 발한다. 개성적인 시풍을 가진 시인의 ‘접시꽃 저녁’을 들고 모처럼 고향집을 찾아가 흐드러진 접시꽃 앞에서 시를 읊조려본다면 또 다른 행복감을 맛보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 소리와 빛깔과 향기가 잘 어우러져서 마음 깊은 곳의 현을 쟁쟁쟁 울리는 시를 더 많이 읽고 외는 삶을 구가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정환(시조 시인)

치명적 자만에 빠진 정부는 자성해야

오철환객원논설위원최근 핀셋규제의 풍선효과에 힘입어 집값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정부는 전가의 보도처럼 또 독기 어린 부동산대책을 내놓았다.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내놓은 것 같다. 투기세력에 대한 증오가 배어있는 서슬 퍼런 대책이다. 엉뚱한 사람이 무단히 중독될 지경이다. 국민을 적으로 두고 절대 지지 않겠다며 독을 뿜는 정부가 표독스럽다 못해 광기마저 엿보인다. 무슨 콤플렉스가 그리 많은지 모르겠지만 지기 싫어하는 근성이 상하 불문 끈질기고 유별나다. 부동산대책은 보통 세 가지다. 첫째는 부동산거래제한이다. 투기과열지구, 토지거래허가제 등이 그것이다. 부동산거래를 통제함으로써 가격상승을 막아보려는 의도다. 이는 합헌성 여부마저 다투어질 정도로 위헌적 소지가 다분하다. 헌법 23조에서 재산권의 본질적 내용을 보장하고 있는 점에 미루어 공공 목적으로 부득이 침해한다 하더라도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아울러 헌법 119조에 규정된 바와 같이 자유와 창의에 터 잡은 자유시장 경제 질서를 기본으로 삼고 있는 체제하에서 공익적 필요에서 예외적으로 제한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기본권의 침해를 정당화할 만한 근거가 명확하여야 한다. 부동산거래제한이 최소 침해가 되도록 그 제한의 정도가 약하고 임시적이어야 한다. 둘째는 제1금융권의 부동산담보대출 제한 등 금융제재다. 보통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이 이루어진다. 신용대출도 가능하지만 제한적이다. 신용대출은 소액으로 제한될뿐더러 담보대출에 비해 이자가 턱없이 높다. 양성화된 사채업자가 대종인 제2금융권의 신용대출은 법정 최고이자율 수준이다. 담보대출 제한은 서민을 사채시장으로 내모는 꼴이다. 제1금융권 대출을 제한한다고 해서 돈이 필요한 상황이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담보대출이 부동산투기자금으로 전용된다는 가정은 터무니없다. 많은 서민들이 사업자금이나 생계자금을 담보대출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중산층의 재산목록 1호는 기껏 집 한 채다. 자녀결혼이나 개인사업 등 목돈이 필요할 때마다 걸핏하면 집 잡히고 빚내는 게 서민들의 일상이다. 정부가 이런 일상적 서민 사정을 모를 리 없다. 서민이 사채를 쓰든 말든, 부동산만 잡으면 이긴다는 외눈박이 사고다. 즉시 금융제재를 풀고 시장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셋째는 세금부과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원칙이다. 현대복지국가에서 세금을 정책도구로 활용하는 일이 다반사지만 항상 원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납세자의 담세능력과 인내 가능한 한도를 감안하여야 조세저항을 피할 수 있고 적정과세를 지속시킬 수 있다. 세금이 유용한 정책도구라 하더라도 이중과세나 불공정한 역진세가 되어선 곤란하고, 창의적 생산의욕을 꺾는 방식으로 운용되어서도 안 된다. 부동산가격안정보다 공평과세가 더 소중한 가치일 수도 있다. 가렴주구가 호환보다 더 무섭다는 옛말이 과장이 아니다. 세금을 남용하다간 큰 코 다친다. 부동산은 시간과 장소를 양축으로 다양한 요인에 의해 수요공급이 변화하여 독자적인 개별가격이 형성된다. 부동성, 부증성, 고정성 등 다른 재화와 다른 고유의 특성을 갖는 까닭에 가격변동요인을 인위적으로 조종하기 힘들다. 개별부동산의 가격형성도 난해한데 광범한 지역의 부동산가격을 통제하고자 하는 것은 무지막지한 과욕이다. 현대와 같이 복잡다기한 사회에서 변동요인을 모조리 파악하여 의도하는 대로 가격을 조정하고자 하는 것은 실로 지난한 과제다. 때론 원인이 되고 때론 결과가 되어 다양한 요인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데다 개개인의 미묘한 심리까지 작용하고 보면 부동산가격 변동의 인과관계를 조정하고 통제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실물경제를 코너에 몰아넣어 투자처가 없는 상태에서 수십조의 돈을 풀어 놓으면 부동산가격이 급등하고 증권시장이 금융장세로 달아오르기 마련이다. 부동산문제는 인과응보다. 정부는 치명적 자만을 자성하고 바른 길로 돌아와야 한다. 더 이상 상식 밖의 일들을 겪고 싶지 않다. 이상향을 설계하고 그곳에 가고자 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시행착오의 대가가 너무 크다. 이상향을 설계할 능력이 있고 그 이상향에 도달하는 길을 완벽히 알고 있다고 믿는 것 같다. 모두가 풍요 속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려고 정부가 모든 부문을 계획·조종하려는 모양이다. 사회주의 이념이다. 사회주의는 신과 같은 완전한 지적 능력을 갖춰야 유효하다. 그런 비현실적 가설은 하이에크의 ‘치명적 자만’이다. 지금은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때다.

나팔꽃이 피는 데는 얼마간의 어둠이 필요하다

나팔꽃이 피는 데는 얼마간의 어둠이 필요하다 박정남 나팔꽃은 새벽 두 시에서 네 시 반 사이에 핀다 나팔꽃이 피는 데는 얼마간의 어둠이 필요하다 이제 나팔꽃은 하나같이 아침 일찍 일어나라고 나팔 불지는 않는다 그때 스무 살의 나에게 쓸데없이 연애 경험 있느냐고 물어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팔꽃은 아침 일찍 피어 내 어린 날처럼 따라다녔으면 좋겠다 동네방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면 크게 나팔 불어 소문을 내주었으면 좋겠다 나팔꽃은 햇빛과는 상관없이 어둠 속에서 핀 꽃이다 어둠 속에서 네가 본 것이 무어니? 너의 어둠은 무엇이었니? 더욱 또록또록해진 눈을 뜬 아침의 나팔꽃에게 이제는 내가 나직이 물을 차례다『현대문학』 (2007년 3월호)...................................................................................................................... 나팔꽃은 여름철에 피는 청자색 또는 백색, 홍색 등의 나팔 모양의 꽃이다. ‘나팔꽃은 새벽 두 시에서 네 시 반 사이에 핀다.’ 새벽 일찍 잎겨드랑이에서 꽃이 피었다가 낮에는 햇빛에 오므라들어 시든다. 성마른 만큼 뒷심이 부족하다. ‘꽃밭에서’란 동요가 초등학교 음악책에 수록되어 애창되는 바람에 주인공으로 출연한 나팔꽃은 전 국민에게 사랑받는 스타 꽃이 되었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선화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게 피었습니다.’ 아빠가 일궈놓은 꽃밭에서 채송화, 봉선화, 나팔꽃을 보면서 돌아가신 아빠에 대한 추억을 노래한 마단조의 애절한 곡조가 아직도 내 가슴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나팔꽃은 어둠 속에서 비밀스럽게 피어나는 부지런하고 상미 급한 꽃이다. 막상 햇빛이 비치는 대낮엔 고개 숙이고 존다. 새벽녘에 눈을 뜬 만큼 따뜻한 햇살이 비치면 졸음이 쏟아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시인은 나팔꽃의 비밀을 직관을 통해 날카로운 눈으로 투사한다. 나팔꽃은 새벽에 일어나 게으름뱅이에게 모범을 보이고, 늦잠 자는 잠꾸러기를 깨운다. 나팔꽃은 매일 새벽 기상나팔을 분다. 나이가 지긋한 시인은 기상나팔을 불지 않아도 일찍 깨어있다. 나팔꽃은 어둠 속에서 본 많은 비밀을 알고 있었다. 남의 은밀한 비밀을 말하고 싶어 몸살이 날 정도다. 새벽같이 눈을 떠서 동네방네 나팔을 불고 다녔다. 연분홍빛 사연을 많이 간직한 스무 살의 사춘기 숫처녀에겐 나팔꽃은 두렵고 미운 꽃이었다. 그러나 이젠 길가에 쇠똥만 보고도 부끄러워 웃던 그 시절이 그립다. 새벽같이 일어나 사람을 따라다니며 좋은 소식을 동네방네 나팔 불고 다녔으면 좋겠다. 연분홍빛 사연을 소문낼까봐 가슴 조이던 스무 살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연애 경험이 있느냐고, 숨겨둔 연인이 있느냐고, 물어봐 주어도 화내지 않겠다. 나팔꽃에게 묻는다. 네가 어둠 속에서 본 것이 무엇이냐. 네 어둠의 정체는 또 무엇이냐. 이젠 모든 걸 이야기 해 줄 수 있겠지. 그 대신 네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보여줄 수 있어. 네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말해 줄 수 있지. 그러면 서로 공평하지 않겠니. 네가 본 것, 네가 들은 것, 네가 아는 것, 모두 나팔 불어도 좋아. 이젠 나팔꽃이 아침마다 나팔 불지 않아도 새벽 일찍 눈을 뜬다. 이번엔 시인이 나팔꽃을 어둠 속에서 지켜본다. 나팔꽃이 두 눈을 또록또록하게 뜨고 있는 이른 아침에 마음을 다잡고 다그친다. 해가 하늘로 치솟아 올라 눈이 그물그물해져서 축 늘어지기 전에 나팔꽃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젠 시인이 나팔꽃의 은밀한 비밀을 나팔 불고 다닐 차례다. 나팔꽃아, 세상만사 돌고 돈단다. 그게 세상이치란다. 오철환(문인)

동성로 축제, 기부금 수익도 정산보고해야

대구 동성로축제의 수익금 정산보고가 이뤄지지 않아 물의가 일고 있다. 동성로 축제는 30년 동안 이어져온 대구의 대표 축제 중 하나다.달성문화선양회(주최)와 동성로상점가상인회(주관)가 중구청과 대구시의 보조금을 받아 개최한다. 매년 500만~7천만 원의 보조금이 지원되고 있으며 2회 행사가 열린 1991년부터 지난해까지 지원금은 총 8억 원에 이른다.문제는 주최 측이 축제를 진행하면서 당국의 보조금 외에도 매년 협찬금이나 기부금 명목으로 참가 업체당 50만~1천만 원씩 받고 있지만 정산보고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지난해 수익금은 8천7백만 원이었다. 매년 적지 않은 금액의 수익금이 발생하는 셈이다.보조금을 지급해온 중구청은 수익금은 자신들이 관여할 사항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수익금에 대한 정산보고가 교부 조건에 빠져있기 때문에 보조금과 자부담금에 대해서만 정산보고를 받았다는 것이다.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을 받는 행사는 모든 수입·지출 내역을 정산해 지원기관에 보고하는 것이 마땅하다. 행사와 관련한 수익금도 포함돼야 한다. 지원기관이 보조금 지급의 적정성을 파악하기 위한 필수 자료다.대구 중구의회 일부 의원들은 “축제 보조금은 동성로 상권활성화를 위해 지급한 것이다. 특정 단체의 수익 사업을 위해 지급한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자체 수익금이 생기면 행사 자생력 확보를 위해 써야지 다른 용도로 전용하면 안된다는 것이다.달성문화선양회 측은 동성로축제 외 사업 및 사단법인 존속을 위해 수익금을 모두 쓸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수익이 생기면 일정 부분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세금에서 나오는 보조금을 많이 받겠다는 꼼수로도 읽힐 수 있다.대구시는 현 정산체계의 미흡한 부분을 보완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보조금 외에 기부금이나 수익금 내역도 정산보고를 하도록 하고 향후 보조금 책정 및 교부에 참고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또 동성로축제처럼 수익금이 발생하는 행사는 자생력 확대를 위해 보조금을 축소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동성로축제는 축제다운 축제가 없었던 대구에 축제문화를 뿌리 내린 공이 크다. 또 축제를 통해 동성로 뿐만 아니라 대구라는 도시를 국내외에 알리는데 기여해 왔다.그러나 수익금 정산보고는 그러한 공로와는 별개 문제다. 정의기억연대 사건에서 보듯 시민·사회단체의 기부금 회계는 더욱 투명해져야 한다. 기부금 정산보고와 관련한 규정 보완이 시급하다.

변화, 적응만이 또 다른 단계로의 발전이다

이성범수필가아무것도 아닌 그 하찮은 것에 의해 흔들리는 인류, 그리고 무너지는 사회, 코로나19라 불리는 작은 미생물이 지구를 뒤집고 있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으며, 일은 더 이상 삶에서 우선이 아니고, 여행, 여가도 성공한 삶의 척도가 아님을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는 곧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으며 약함과 연대상(連帶像) 이란 단어의 가치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아프리카 오지의 나라, ‘챠드’의 아름다운 문인 ‘무스타파 달렙’이 쓴 글을 보면 전혀 생각지 못한 코로나 19가 우리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현실감있게 서술해 가슴에 와 닿는다.무릇 21세기를 살아가는 현 지구촌 사람들은 이번 코로나를 겪으면서, 황당함, 상실감, 자괴감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과 코로나 이후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에 대한 자기 고찰을 할 수 있는 시간들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한다.교육분야에도 예외없이 코로나19로 인해 학교현장의 모습은 완전히 그 모습이 바뀌고 있다. 그동안에는 면대면(얼굴을 마주하고 하는 학습) 학습이 주를 이루었으나 이제는 자연스럽게 면대면 학습과 아울러 비면대면 온라인 학습이 이루어지고 그 중요성이 크게 대두하게 되었다.이런 변화속에서 선생님들은 학교마다 어떤 식으로든 아이들에게 다가가려 고민하고 한명이라도 더 강의에 참여시키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원격수업을 두려워하던 선생님들도 점점 과감해져 이제는 PPT녹화수업, 오캠을 이용한 수업, 밴드 라이브와 줌을 이용한 쌍방향 수업 등 다양한 방법으로 수업을 전개하고 계신다.코로나19로 인해 잃은 것도 많았지만 얻는 것도 있다. 무엇보다도 교육패러다임도 변화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일례로 온라인 수업의 장점은 수업진도가 빠르고 정확하며 빠지는 내용없이 순서대로 진행이 됨은 물론 재수강을 들을 수 있으며 현 세대에 특성에 맞는 기기를 사용한다는 점이다.반면 단점은 쌍방향수업이 어려워 아이들과의 감정교감, 래포형성, 상호작용이 어렵고 학생 한명 한명 주목하는 수업과 모둠 협력학습이 어렵다는 것이다. 나아가 실기 실습수업을 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다양한 수업현장을 어떠한 방법으로 교육현장에서 조화를 이루어 나갈 것인가에 대하여 우리 모두 함께 연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코로나19로 인해 새로운 환경을 위한 교육과정의 편성, 수시로 변하는 등교 개학을 위해 그에 맞는 교육과정을 또 변경해야 함은 물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영상 원격수업을 위해 준비하는 그 과정이 모두 당황스럽고 힘들다. 거기에 늦게까지 이어지는 영상수업과 학부모들의 전화 응대에 힘이 부치는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교육패러다임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공론화됨은 어쩌면 의도하지 못한 큰 성과일지도 모른다. 교육패러다임의 변화는 시대적인 요청이기 때문이다. 온라인 수업, 모두가 처음으로 겪는 일이고 혼란스러움이 다소 있겠지만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해야만, 또 다른 단계로의 발전이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21세기를 같이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온라인 세상이 가속화 되고 비대면 삶의 방식이 전보다는 불편하고 때로는 불안하기도 하다.그러나 ‘언컨텍트(uncontact)는 단순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발전 시켜온 욕망의 산물이자, 새로운 시대를 읽는 중요한 진화코드’라는 어느 저자의 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이제 우리 모두 다가올 코로나 이후 세상을 미리 이해하면서 적응을 통해 또 다른 단계로의 도약을 준비를 해야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