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를 다시 읽으며

윤일현지성교육문화센터이사장영국의 정치가이자 법률가인 토머스 모어(1478~1535)는 세상의 부조리를 역설과 유머, 냉소로 비판한 인문주의자였다. 그는 해학이 넘치는 재담가이자 신랄하고 통렬한 언어로 서민의 가슴을 시원하게 해 준 탁월한 문장가이기도 했다. “결혼하고자 하는 처녀와 총각은 상대방 앞에서 홀딱 발가벗고 선을 보여야 한다. 말 한 마리를 살 때도 꼼꼼히 관찰하고 확인하는데, 좋건 싫건 평생을 함께 살아야 할 사람을 고르면서 얼굴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의 정치적 공상 소설 ‘유토피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젊은 날 친구들과 이 책을 읽고 토론할 때, 우리는 젊은이답게 이 대목을 꺾쇠로 표시해 두거나 밑줄을 치며 낄낄거리며 웃었다. ‘발가벗은 몸’이란 몸매만 뜻하는 것이 아니고 얼굴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정신세계나 지적인 수준, 가치관 등도 의미한다는 사실을 물론 알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을 뽑을 때는 언변과 외모만 봐서는 안 된다.고전이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항상 현실적인 의미와 가치를 가지는 작품이다. 우리처럼 파란과 곡절이 많은 사회가 불후의 명작 ‘유토피아’를 주기적으로 다시 잡게 만든다. 토머스 모어는 1516년에 ‘유토피아’를 출간했다. ‘유토피아’는 어원상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의미한다. 이 책의 원제는 ‘최상의 공화국과 새로운 섬 유토피아에 관하여’이고 2부로 구성돼 있다. 1부에서는 당대 사회의 참상을 고발하고, 2부에서는 유토피아의 생활 방식과 사회제도에 관해 들려준다. 500년 전에 나온 이 책이 오늘에도 생생하게 와 닿는 이유는 지금 우리 사회의 공정과 정의, 평등의 문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부와 자본의 쏠림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 청년과 서민의 꿈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토머스 모어는 흉년은 기상재해이지만 그 참혹한 결과를 방지하지 못하는 것은 부자들의 탐욕 때문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가 살던 시대나 지금이나 부자들의 곳간에는 그들이 다 못 먹고 썩히는 식량이 차고 넘친다. 그는 그런 사회를 바라보며 효율적인 분배 문제를 고심했다. 모어는 그가 생각하는 이상향을 ‘유토피아’를 통해 묘사하려고 했다. 그의 시대가 얼마나 불공정하고 불평등했으면 그런 이야기를 썼겠는가.“10년마다 추첨을 통해 집을 바꾸며 산다.” 최근 ‘유토피아’를 다시 읽으며 오래 눈이 머문 구절이다. 민주당 미래주거추진단장 진선미 의원의 ‘아파트 환상’ 발언 때문이다. 진 의원은 공공 매입 다세대 임대주택을 방문해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리면 임대주택으로도 주거의 질을 마련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방도 3개가 있고 해서 내가 지금 사는 아파트와 비교해도 전혀 차이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호텔 방 전세가 미래 주거라니 당신부터 호텔 방 전월 셋방에 들어가라”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국민의 힘 윤희숙 의원은 “국민 인식의 밑동이 무엇인지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방 개수만으로 섣부른 판단을 내리는 지적인 나태함”이라고 비판했다. 윤 의원은 “더 암울한 것은 오랜 세월 축적돼 온 국민의 인식을 아무런 근거 없이 ‘환상이나 편견’으로 치부하는 고압적인 태도”라고 혹평하며 “민주화 세대라는 이들이 누구보다도 전체주의적인 사고방식에 젖어 기본을 외면하는 것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아이러니”라고 비판했다. 누구의 편도 들고 싶지 않다. 어느 쪽도 아파트 없는 서민의 고충과 설움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발언과 논쟁을 보며 10년은 너무 길고 3년에 한 번씩 강남과 강북, 부자와 가난한 자가 서로 집을 바꿔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 본다.절대권력이 반드시 부패하듯이 극단적인 정의의 추구는 극단적인 불의를 낳는다. “완벽한 국가에서는 완벽한 법을 제정하는 일보다는 완벽한 법의 집행을 최상의 사람들에게 맡기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지요”라는 구절에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대립을 떠올려 본다. 그 어느 때보다 전문가가 필요하지만 믿고 맡길 전문가를 찾기가 어렵다.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섬이지만 동시에 어디에나 있는 섬이다. 그래서 우리는 없는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유토피아를 갈망한다. ‘유토피아’의 구절이 절절히 와 닿는 오늘의 현실이 안타깝다.

골디락스를 논하기는 아직 이르다

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지난 월요일 국내 증시가 코스피 기준 역대 최고치인 2천600선을 돌파하면서, 조만간 2018년 1월에 기록했던 장중 최고치를 경신할 것이라는 시장예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더군다나 증권가 일각에서는 내년에 당장 코스피 3천을 돌파할 수 있다는 매우 희망찬 전망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물론, 이러한 낙관적인 전망의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정들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긴 하다. 가장 먼저, 코로나19 백신 효과가 내년에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 또는 가정이고, 다음으로는 경기가 반등하고 금리 등 가격 지표들도 안정세에 접어들 것이라는 가정이다. 또, 그렇게 되면 기존 산업들의 업황도 자연스럽게 개선될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주가 상승뿐 아니라 늘어날 배당금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게 될 것이라는 가정이다.더군다나 국내에서는 경기 반등을 계기로 수많은 자산들 가운데 안전자산에 속하는 금이나 달러화 및 부동산보다는 위험자산으로 자금이 이동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질 것이고, 당연히 주식시장으로 자금이 쏠릴 수밖에 없다는 가정도 있다. 여기에는 국내 투자자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부동산 시장은 이미 가격이 크게 상승했고, 규제도 심한 상황이어서 주식시장이 그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는 가정도 깔려 있다.이들 가정을 요약하면 결국 이렇다는 것이다. 국내 경제는 완만한 회복세를 보이지만, 물가와 금리가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면서 그야말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을 만큼의 상태가 유지되는 이른바 골디락스(goldilocks)가 재연될 것이고, 국내 증시는 이런 혜택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과연, 그럴까? 물론 국내 경제와 증시에 이런 여건이 만들어진다면 그보다 더 좋은 상황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늘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이런 낙관적인 가정과는 다른 현실에 직면해 왔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가장 먼저 코로나19의 진정 또는 종식 시기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빠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백신에 대한 기대감이 매우 크지만, 그것의 안전성이 확보돼 보급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 것만은 틀림없다. 설령, 안전한 백신이 보급된다 손치더라도 단기간 내 코로나19 재확산 가능성을 무한히 낮출 수 있을 정도로 면역력이 확산되기까지는 또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이외에도 낙관론을 경계해야만 하는 가정들은 얼마든지 들 수 있다. 거의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앞으로 들어서게 될 미국의 바이든 신행정부의 대내외 정책은 현 트럼프행정부보다는 훨씬 시장에 우호적일 것이라고 예상하는 바가 전혀 뜻밖의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점도 그 중 하나다.코로나19가 진정되더라도 세계 각국의 경기 여건이 국가별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도 주의해야 한다. 코로나19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기존의 컨택트(contact) 산업이 가장 먼저 수혜를 받게 되겠지만, 세계 경제가 동시다발적으로 골디락스로 향해 가지 않는 이상 수혜의 정도는 천차만별일 수 있다. 내수 의존도가 높은 타 경쟁국에 비해 수출 제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와 기업들 입장에서 보면 이는 또 다른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동반하는 것이다.그래서 말이지만 아직까지는 시장의 변화를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고, 서로 공치사를 준비해야 할 때도 아니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특히, 주식시장처럼 변동성이 큰 위험자산시장의 향방에 대해 시장 주체들이 모두 낙관적인 견해를 나타낸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재인식할 때가 아닌가 싶다.만약, 이런 낙관적인 기대가 예상은 되지만 아직 나타나지 않았거나, 너무 예외적이어서 발생가능성은 매우 낮은 일들로 우리가 인지 못하는 사이에 엄청난 충격과 파급영향을 불러올 불확실성 즉, 블랙스완(Black Swan)의 출현 가능성을 가리려는 것이라면 더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물론, 지금 대내외 여건 상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여 다행이긴 하지만 말이다.

거미줄을 걷어내도 나는 거미였다/ 김정희

~피는 물보다 진한가?~… 남편이 잠적했다. 사채업자들이 행패를 부렸다. 남편 행방을 대라며 소리쳤다. 살림살이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세 살배기 딸이 울음을 터트렸다. 딸을 옆방으로 피신시켜놓고 대차게 대들었다. 접시를 힘껏 내던졌다. 접시 하나를 더 날렸다. 숨쉬기도 버거웠지만 싸움닭처럼 머리털을 세웠다. 그런 다음 물러간 걸 보면 세게 나간 게 먹혀든 셈이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피붙이가 더 나쁘다. 작은형은 빚더미 사업장을 권리금까지 얹어 남편에게 떠넘겼다. 남편은 적자 사업장을 빚내서 인수했다. 사업장은 엉망진창이었다. 사채를 쓰고 큰형 돈까지 빌려 썼다. 그 와중에 큰형은 원금보다 이자를 더 많이 챙겨갔다. 결국 남편은 부도를 내고 숨었다. 어린 딸을 위해서라도 나도 도망가는 수밖에 없다. 아는 언니가 사는 광주로 갔다. 보증금은 방이 나가면 보내달라고 주인 언니에게 부탁해두었다. 광주에 도착하자 아는 언니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녀는 내가 간호사로 있을 때 사고무친 중증 우울증 환자였다. 농약을 먹고 입원한 그녀를 가족처럼 돌봐준 인연으로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언니가 되었다. 우리 모녀가 머물만한 사글세 집을 구했다. 언니는 필요한 물건들을 꼼꼼히 챙겨주었다. 보증금까지 대주었다. 가족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사랑을 느꼈다. 분식집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딸을 맡겨둘 어린이집도 찾았다. 딱한 사정을 알고서 딸을 무료로 맡아주겠단다. 돈만 밝히는 가족보다 남들이 나았다. 인천의 집주인한테 전화가 왔다. 남편 큰형이 빌려준 돈을 보증금으로 해결해야한다고 가져가겠단다. 다급한 김에 남편 절친에게 전화를 했다. 나와 살면 일도 안 풀리고 명도 짧아진다는 남편 말을 전했다. 어이가 없었다. 큰형한테 전화를 걸어 보증금을 가져와야 딸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사정했지만 턱도 없었다. 보증금으로 원금을 정리하기로 남편과 합의했단다. 부부관계를 정리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으로 올라가서 합의이혼을 하고 내려왔다. 신문을 돌리다가 넘어져 갈비뼈에 금이 갔다. 병원에 갔다가 우연히 언니를 만났다. 언니가 췌장암 말기라 불과 몇 달밖에 못산단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슬픔과 실의에 빠진 나를 오히려 위로해주었다. 언니는 모든 재산을 정리해서 나에게 주었다. 혈연보다 더 소중했던 언니였지만 끝내 떠나갔다. 딸이 외로움을 타는지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했다. 나의 이기심이 딸을 외롭게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사랑받고 싶어 했던 지난날이 스쳐간다.…피가 물보다 진한 건지 의문이다. 혈연끼리 다투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자존심이나 제사 아니면 재산 때문에 싸운다. 오죽하면 형제자매는 전생에 원수였다는 말이 나올까. 내 것 네 것 없이 부대끼며 함께 살다가 독립하게 되면서 서로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현상일 수 있다. 지나치게 밀접한 관계가 부딪히고 갈등할 수밖에 없는 원인일 수 있다. 종족보존이 본능이라면 혈연의 정 또한 외면하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무리 가족 간이라 하더라도 넘지 말아야할 선은 지켜야 한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쌍욕을 한다든가, 근거 없는 말로 부부관계를 깨는 일은 금기다. 가까울수록 더 어렵다. 서로 배려하고 예의를 갖춰야 혈연의 정을 느끼는 법이다. 오철환(문인)

수성구 부동산 규제…‘핀셋 적용’ 전환해야

최근 대구 수성구가 부동산 경기과열을 막기 위한 주택법 상의 ‘조정대상 지역’으로 지정됐다. 수성구 아파트 가격은 동네와 위치에 따라 최대 5배 이상 차이가 난다. 그런데도 전역을 뭉뚱그려 조정대상 지역으로 묶는 통에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부동산 가격 급상승은 당연히 규제해야 한다. 하지만 동네가 수성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실익 없이 규제만 당하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나온다.선의의 피해자가 없도록 가격 급등 지역을 골라 동별로 핀셋규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핀셋규제가 이뤄지지 않으면 투기 규제 정책이 주민들의 정상적 부동산 보유와 매매에 주름만 깊게 할 수도 있다.그간 수성구의 아파트 가격 급상승은 이른바 범사(범어4동), 만삼(만촌3동)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그러나 수성구 외곽과 비중심 지역에서는 ‘범사만삼’ 이야기가 먼나라 이야기로 들린다고 한다.부동산 관계자들에 따르면 수성구 내에서도 일부 비중심 지역은 무늬만 수성구일뿐 아파트 시세는 대구지역 다른 구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제 84㎡의 경우 범어동 일대와 무려 10억 원 이상 차이 나는 곳도 있다는 것이다.이들 지역 주민들은 실제 가격상승 현상도 없는데 기존의 투기과열지구에 더해 조정대상 지역까지 덧씌워져 이중 규제가 이뤄졌다며 ‘거래 절벽’ 등 시장 위축을 우려하고 있다.조정대상 지역으로 지정되면 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해 다주택 양도세 중과, 장기보유 특별공제 배제, 1순위 청약자격 강화 등 부동산 거래나 보유 시 강도 높은 규제를 받게 된다.흔히 이야기하는 ‘풍선효과’도 문제다. 수성구의 조정대상 지역 지정 이후 대구시내 비규제 지역이나 인근 시군으로 투자심리가 옮겨가는 현상이 우려된다.일부 지역에서는 부동산 과열을 일컫는 이른바 ‘불장’ 현상까지 나타나 부동산 투기나 투자 대상 지역이 확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경산과 구미가 대표적 사례다. 경산의 경우 대구와 인접해 있는 중산동과 대구도시철도 2호선을 따라 정평역, 임당역 부근 신축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구미에서도 최근 분양한 한 아파트에 무려 1만8천여 명이 몰렸다. 인접한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효과로 분석되기도 하지만, 수도권 투자세력이 대거 몰려왔다는 이야기도 나온다.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달라져야 한다. 약발이 다했거나 판에 박힌 정책만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 지역 상황을 정밀 분석해 정책 효과를 거두면서도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놔야 한다.

황주섭(예천군 체육진흥팀장)씨 장녀

▲황주섭(예천군 체육진흥팀장)·윤정해씨 장녀 소현양, 김태영·최선옥씨 차남 지훈군= 11월29일 오전 11시30분 안동 두리원웨딩홀 5

/이슈추적/ 김해신공항 백지화 후폭풍

김해신공항 사업을 두고 우려하던 일이 결국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 최근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검증위원회의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발표가 사실상 김해신공항의 백지화 결정으로 받아들여지는 가운데, 정부와 여당에서 이에 보조를 맞춘 듯 가덕도신공항 사업 재추진을 본격화하고 있다.민주당은 당내에 가덕도신공항추진단을 구성하고 11월 중에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해 구체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국민의힘 소속 부산지역 국회의원 15명도 20일 ‘부산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을 공동발의 하면서 가덕도신공항은 이제 입법 절차만 남겨두었을 뿐 사실상 본궤도에 오른 거나 다름없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김해신공항의 백지화 이후 영남권에서는 부산, 경남, 울산과 대구, 경북 간에 예상대로 상반된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부산에서는 가덕도신공항을 국가 균형발전을 유도할 핵심 기반시설로 보고 구체적 준비에 나서고 있는데 반해 대구, 경북에서는 이미 결정된 국책 사업을 명확한 근거조차 없이 무산시킨 정부, 여당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대구·경북민들은 동남권신공항 추진 과정에서 10년 넘게 갈라졌던 영남권 민심이 5개 광역지자체의 합의에 의해 가까스로 봉합된 것이 불과 몇 년 전인데, 이를 정부, 여당이 뒤엎어 다시 영남 민심을 갈라놓는다는 게 과연 국정을 책임진 집단에서 할 수 있는 일이냐고 분노하고 있다.국책사업이 정치 논리에 의해 뒤집어질 수 있을 거란 의혹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일들로 인해 확신으로 바뀌고 있다. 김해신공항 결정 이후 잠잠하던 ‘가덕도신공항’ 이슈가 구체적으로 다시 거론된 것은 2018년 6월 지방선거 때였다. 당시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이를 공약으로 내걸며 여론몰이를 했다. 그 후 문재인 정부는 부산시가 경남도, 울산시와 함께 김해신공항의 적합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등 재검증을 계속 요구하자 2019년 12월 국무총리실 산하에 검증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했다.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대구·경북에서는 일각에서 이런저런 정치적 의혹이 제기됐지만 설마설마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수십 조를 투입하는 대형 국책사업이고 이미 중립적인 외부 전문기관의 평가를 거쳐 결론이 난 사안인데 아무리 정치적 셈법이 작용한다고 해도 정부가 설마 이를 뒤엎을까 하는 상식적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올해 들어 그 의혹을 더 키울 불길한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부산시장이 4월 여직원 성추행 사건으로 전격 사퇴하면서 내년 4월에 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김해신공항 백지화, 가덕도신공항 재추진 움직임까지, 일련의 과정들이 마치 예정된 수순인 것처럼 진행되고 있다.대구경북통합신공항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될 수 있겠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부산에서 구상하는 가덕도신공항 청사진을 보면 인천공항에 버금가는 규모로 실질적인 동남권 관문공항을 건설하는 것이다. 당연히 여기에 유럽과 미주 지역을 오갈 수 있는 중장거리용 대형 여객기가 취항하는 것은 물론이고, 영남권 전역을 배후로 하는 물류 허브공항 역할도 기대하고 있다.만약 부산시의 이 구상이 현실화하면 현재 이전지만 결정해 놓은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의 경우 가덕도신공항과 여객과 물류 수송 등 여러 측면에서 중복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배후 인구와 경제 규모가 상대적으로 더 작은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이 타격을 받게 되리란 건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현 상황에서 고민은 대구·경북으로서는 대응 방법이 마뜩잖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역의 의견도 분분하다. 김해신공항 사업을 계속 주장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고, 아예 원점에서, 즉 밀양, 가덕도 두 곳을 놓고 논의했던 시점으로 돌아가 동남권신공항을 재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리고 가덕도신공항을 수용하는 대신 대구경북통합신공항을 국가에서 재정사업으로 추진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해신공항 백지화 그리고 정부 움직임국무총리실 산하 김해신공항검증위원회에서 17일 ‘김해신공항은 안전, 시설 운영 및 수요, 환경, 소음 분야에서 상당 부분 보완이 필요하다. 김해신공항 추진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김수삼 검증위원장은 브리핑에서 ‘사업 확정 당시 비행 절차 보완 필요성, 서편 유도로 조기 설치 필요성, 미래 수요 변화 대비 확장성 제한, 소음 범위 확대 등이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 국제공항의 특성상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역량 면에서 매우 타이트한 기본계획안이라는 한계가 있다’고도 했다.검증위 발표가 나오자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바로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하고 ‘후속 조치 계획을 면밀히 마련해 동남권신공항 추진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주관 부처인 국토부도 같은 날 ‘검증위 검증 결과를 수용하겠다. 조속히 후속 조치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대구·경북에선 강력 반대지역에서는 대구시, 경북도를 비롯해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정치권까지 합세해 김해신공항 백지화 결정에 반대하고 있다. 권영진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17일 공동입장문을 통해 ‘510만 대구·경북민은 1천300만 영남권 시·도민의 염원이자 미래가 달린 김해신공항 건설 사업을 당초 계획대로 추진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앞으로 진행되는 모든 절차에 대해 영남권 5개 시,도의 합의가 반드시 전제돼야 함을 분명히 밝힌다’고 선언했다.국민의힘 소속 지역 국회의원들도 공동입장문을 내고 ‘월성 원전이 대통령 말 한마디에 경제성 평가가 뒤바뀌어 영구폐기에 이른 것을 기억한다. 김해신공항도 아무 권한이 없는 총리실 검증에 맞춰 백지화 수순을 밟는 건 국책사업을 신뢰하는 국민에 대한 횡포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비판했다. 통합신공항대구시민추진단과 대구경북하늘길살리기운동본부 등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이미 결정된 국책사업이 바뀌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며 정부 발표를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동남권신공항과 김해신공항 확장동남권신공항 사업은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처음 공론화된 대형 국책사업이다. 이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등 대선 후보마다 공약으로 이를 내걸었다. 동남권신공항 사업이 지역에서 얼마나 예민한 사안이었는지는 입지검증 연구용역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아직 공론화되기 전인 김대중 정부 때 처음으로 연구용역을 발주한 것을 시작으로, 노무현 정부 때 두 번, 이명박 정부 때 두 번, 그리고 박근혜 정부 때 한 번 등 여섯 차례 진행됐다. 여기에 최근의 김해신공항검증위 검증까지 더하면 총 일곱 차례나 된다.이 과정에서 동남권신공항 사업은 된다, 안 된다는 말만 오락가락했고 지역 여론은 분열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 때인 2011년 4월에는 당시 최종후보지였던 가덕도와 밀양 모두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를 들어 사업 자체를 아예 백지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산될 뻔했던 동남권신공항 건설은 2012년 대선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가 공약하면서 다시 살아나게 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될 거란 기대가 커지면서 수십조가 투입되는 동남권신공항 사업은 영남권 5개 지자체에는 지역 발전을 위해 절대 놓칠 수 없는 사업이 됐고, 그만큼 지역 갈등은 격화하는 양상을 보였다.이런 상황이 계속되자 2015년에는 영남권 5개 광역지자체 단체장이 모여 국익을 위해 전문기관의 입지선정 용역 결과를 수용하자는데 합의하고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에서 입지선정 용역을 진행해 기존 김해공항을 확장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당시 발표된 ADPi용역 결과에 따르면 사업비가 김해신공항이 4조3천억 원, 밀양신공항(활주로 1본)이 4조7천억 원, 가덕도공항(활주로 2본)이 10조6천억 원이었다. 특히 가덕도신공항은 접근성 면에서 세 곳 가운데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 국토교통부는 당시 이 같은 결과를 토대로 김해신공항 사업을 2026년까지 완공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기본계획안을 마련했다.

필터 버블 터트리는 백신도 급하다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필요한 물건이 있어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봤다. 몇몇 제품의 사양과 가격만 확인하는 수준이었다. 당혹감은 그 이후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사용할 때마다 그 물건을 판매하는 광고 혹은 인터넷사이트가 표시되는데 정도가 지나칠 정도다.인공지능이 개인의 검색기록과 정보를 수집한 후 데이터화해서 보여주는 추천 알고리즘이라지만 께름칙한 건 어쩔 수 없다. 누군가가 나를 엿보고 있다는 황당함이다. 개인적인 취향까지 어떻게 그렇게 추려낼 수 있는지 놀랍기도 하다. 최근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찜찜한 구석이 남는다.누군가가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느낌은 나의 SNS 활동이 인공지능에 의해 일일이 기록되고 있다는 뜻이다. 쿠팡에서 검색 한번 해본 물건의 홍보 게시물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활성화시키면 제일 먼저 눈에 띄게 된다. 페이스북도 이전에 ‘좋아요’를 눌렀던 걸 바탕으로 내가 좋아요를 누를 만한 것들을 미리 걸러서 보여준다. 유튜브는 한번 시청했던 영상과 비슷한 내용의 영상을 추천해 먼저 보여준다. 이런 친절함에 추천 영상을 보지 않을 재간이 없다. 세심하게 개인의 취향을 알아내어 보고 싶어 하는 영상으로 채워버리니 좋은 말로 맞춤 정보이지 실은 정보의 편식을 부추기는 것이다.얼핏 보면 편리할 것만 같은 이런 알고리즘은 자세히 알고 보면 섬뜩할 정도로 무섭다. 나의 일상생활이 인터넷 공간 안에서 일일이 필터링되면서 조종당하고 있어서다. 좋아요 몇 번과 검색 몇 번, 클릭 몇 번이 다른 세계로부터 차단된 공간에 나를 가둬버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정작 나는 그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게 더 무시무시하다.처음부터 자신이 받아들이기에 불편할 것 같은 정보나 뉴스는 아예 선택되지 않고 외면된다. 자기가 늘 보던 것과 비슷한 내용들만 추천해 준다. 결국 정보의 왜곡 혹은 편향성이 나타나면서 궁극적으로는 이른바 가짜 뉴스에 속을 가능성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다.이렇게 나에게 딱 맞게 걸러진 정보를 제공해주는 게 과연 좋기만 한 걸까. 미국의 정치 참여 시민단체 ‘무브온’의 이사장인 엘리 프레이저(Eli Pariser)는 그의 책 ‘생각 조종자들’에서 이를 필터 버블(Filter Bubble)로 설명했다. SNS에서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면서 이용자들이 여과된(filtering) 정보로 인해 자기만의 공간인 비눗방울(Bubble)에 갇혀 편향된 사고를 하게 되는 현상이다.엘리 프레이저가 필터 버블을 주창한 건 2011년이었지만 그동안 정보를 거르는 기술도 더욱 정교해졌다. 지금은 SNS 이용자들이 단순히 필터 버블에 갇히는 걸 넘어 생각까지 조종당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일단 필터 버블에 갇히게 되면 평소 자기가 자주 보던 뉴스나 정보만 얻게 된다. 자기의 생각은 신념이 돼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생각은 점차 외면하게 된다.더구나 정보를 필터링하는 알고리즘에 정치적 논리가 개입되면 정보의 편식은 갈수록 커진다는 게 엘리 프레이저의 경고였다. 그의 걱정은 현실화되고 있다. 요즘 폭발 직전에 있는 사회 갈등, 대립도 걸러진 한쪽의 정보만 받아들이다 보니 생긴 가치관의 왜곡이기 때문이다.필터 버블은 결국엔 다양한 관점을 방해한다. 때론 다른 의견을 접할 수 있는 기회조차 원천차단 해 ‘확증 편향’으로 발전시키게 된다. 지금 우리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마주치는 한국 사회의 안타까운 현실 아닌가.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이 토론을 거쳐 하나로 통일되어 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이런 확증 편향을 굳히게 하는 필터 버블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걸 넘어서서 생각마저 편향되게 만들어 사회 분열로 이어지게 한다. 때론 누가 봐도 명확한 진실에 대해서도 사회 전체가 합의하지 못하고 외면하게 만든다.그러면 어떻게 우리를 가두고 있는 버블을 터트리고 밖으로 뛰쳐나올 수 있을까. 나와 다른 견해에 의도적으로라도 귀를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 어쩌면 필터 버블을 터트리는 백신, 확증 편향에서 빠져나오는 백신을 찾는 게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해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더 큰 파국이 오기 전에 말이다.

배롱나무/ 정진희

여자의 깊은 한은 무명색이 아니랍니다//제 살 속 저미고 뼈마디 다 드러내어//하늘에 쏟은 핏덩이 붉디붉은 꽃이랍니다//시앗 해순이로 말을 잃은 울 어머니//터진 속살 벗기며 어응어응 울었습니다//어젯밤 바장이던 그 나무 시앗 봤나 봅니다//붉던 그 꽃 어머니와 무덤으로 갔습니다//골짜기에 다 맺힌 한을 꽃으로 풀어놓고//몸뚱이 피를 모두 뿜습니다//후드득 꽃 집니다「왕궁리에서 쓰는 편지」 (고요아침, 2020)정진희 시인은 전북 익산 출생으로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왕궁리에서 쓰는 편지’가 있다. 흔히 시인에게 에스프리라는 잣대를 들이댈 때가 있는데 정진희 시인은 실로 에스프리가 빛난다. 어떤 작품을 읽어도 그만의 에스프리가 반짝거리는 것을 산견할 수 있다. 에스프리는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 자유분방한 정신작용을 뜻하는데 다른 말로 기지다. 시정신이라는 말로 규정할 수도 있겠다.지금 창밖에 배롱나무가 세 그루 보인다. 여름 한철 꽃이 활짝 피었을 때는 3층 서재에서 고개를 살짝만 돌려도 붉은 기운이 가득히 몰려오는 느낌을 주곤 했다. 그러한 기분은 늘 마음을 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지금은 11월도 하순으로 접어들어서 꽃은 온데간데없고 빈 가지만 허허롭다. 다시 동면의 시간이 돌아온 것이다.‘배롱나무’에서 화자는 여자의 깊은 한은 무명색이 아니라고 외친다. 배롱나무처럼 제 살 속 저미고 뼈마디 다 드러내어 하늘에 쏟은 핏덩이 붉디붉은 꽃이라는 것이다. 시앗 해순이로 말을 잃은 울 어머니 때문이다. 터진 속살 벗기며 어응어응 울었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어젯밤 바장이던 그 나무도 시앗 봤나 보다, 라고 노래한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붉던 그 꽃은 어머니와 함께 무덤으로 옮겨갔다. 마침내 골짜기에 다 맺힌 한을 꽃으로 풀어놓고서 몸뚱이 피를 모두 뿜는다. 그때 후드득 하면서 꽃이 하염없이 지고 있다.어머니는 그렇듯 한 맺힌 삶을 살다가 하늘나라로 가고, 해마다 여름이면 피는 배롱나무 꽃을 바라보는 화자는 혼자 어머니를 기리며, 말 못할 그리움으로 아픔을 달랜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몇 편의 작품에서 더 드러난다. 먼저 ‘탱자나무 울타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려본 오래된 익숙함도 허락 없이 넘어버린 담벼락 사이에서 그림자 어찌할 수 없어 내리꽂은 은장도, 라고 노래하면서 뒤란에 삭은 가슴 널어두신 어머니를 그린다. 상처 많은 여자로 가시 끝에 매어두고 그래도 꽃이고 싶어 끌어안은 달의 몸짓을 보였던 분이다. 혓바늘 돌기 선 기다림의 한편에서 뒷문 열고 기억을 닦아내는 천상 여자였던 어머니는 울안에 가득한 하늘 소리 없이 떠나던 봄만 남겨두고 가셨다. ‘노랑돌쩌귀’에서도 쉰 나이에 몸 가진 어머니가 그 밤에 고아 먹고 죽자 하던 돌쩌귀 한 사발 오지게 깨어버리고 칠삭둥이 딸을 봤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참으로 한스러운 대목이다. 그러면서 나 없었음 울 엄마 어떻게 살았을까, 라고 생각하며 애잔한 마음으로 정화수에 치성 올리고 미주알 다 빠지도록 따비밭을 헤매셨던 일을 떠올린다. 끝수에서 화자의 어머니는 노랑 돌 씨앗 하나 화분에 심어두고 막내딸만 알아보는 아흔 기억 열어두고 있어서 그 말간 웃음에 그만 쉰의 눈빛은 흔들리고만 있다. 간절한 눈빛과 더불어 마음이 얼마나 애잔했으랴.가끔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속으로 어머니를 나직이 불러보곤 한다.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을 또렷이 기억하면서 그 뜻을 좇아 살려고 힘쓴다. 정진희 시인의 사모곡은 더없이 애절하여 심금을 울린다. 참, 눈물겹다. 이정환(시조 시인)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의 허상

오철환객원논설위원국토교통부는 부동산 공시가격을 매년 단계적으로 높여서 2030년에는 시가의 90%까지 맞추겠다고 한다. 현재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주택가격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현재 공동주택의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살펴보면, 시세 9억 원 미만 68.1%, 15억~30억 원 74.6%, 30억 원 이상 79.5% 등으로 나타난다. 고급주택일수록 그 현실화율이 높다. 고급주택 부터 먼저 인상률을 높여가면서 목표연도인 2030년엔 모두 90%에 맞추겠다고 한다. 부동산 공시가격은 보통 네 가지 목적에 사용된다. 첫 번째가 거래목적, 두 번째가 담보목적, 세 번째가 보상목적, 네 번째가 과세목적이다.부동산 거래가격은 공인중개사의 조력을 받아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된다. 부동산 시세는 원래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개별 거래의 결과물인 관계로 부동산 공시가격은 거래 참고용 정도이고 그대로 거래가격이 되지 않는다. 거래가격은 공시가격의 기초이자 목표이기도 하다. 담보 설정을 할 경우, 일정금액 이하는 금융기관 감정평가담당 직원의 시장조사에 의해 담보부동산의 가격을 정하고, 일정금액 이상은 감정평가사의 평가가격으로 가격을 결정한다. 공시가격은 사례자료의 기능을 할 뿐 그대로 평가가격이 되지는 않는다. 공시가격의 현실화가 꼭 필요한 부문은 아니다. 협의매수나 수용의 경우, 엄격한 법정절차에 따라 감정평가사의 평가가격을 기준으로 그 편입부동산의 가치를 평가한다. 이 경우에도 부동산 공시가격에 필요한 보정을 거쳐 보상가격을 산출한다. 공시가격이 시세를 반영해야겠지만 꼭 시가일 필요는 없다.각종 부동산 과세 과정에서 공시가격은 보정이나 조정 없이 과세표준으로서 세금계산의 기초가 된다. 따라서 공시가격을 시가에 맞춰줄 필요성은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시가가 수시로 변화하는 현실에서 100% 시가 반영은 불가능하고 그럴 필요도 없다. 부동산 공시가격의 시가 현실화율을 높게 맞췄다가 시가가 공시가격 이하로 떨어질 경우, 가공의 재산에 대해 과세하는 위법적인 결과가 초래될 위험성이 크다. 그런 경우를 예상한다면 그 시가 변동 폭을 감안해 현실화 상한선을 두는 것이 상식이다. 지금까지 부동산 불패신화가 시가 하방경직성을 지켜왔지만 앞으로 새로운 상황에 직면할 건 불문가지다. 인구감소가 부동산 수요 감소와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날이 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시가격이 시세에 비례해야 하겠지만 반드시 시세 반영률이 높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네 가지 경우를 살펴본 결과, 부동산 공시가격은 부동산 상호간 비례성을 유지하면서 그 시가의 일정 비율을 반영할 필요는 있겠지만 그 시가 현실화율이 반드시 높아야 좋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시세가 공시가격 이하로 떨어질 경우를 상정하면 그 변동 폭을 여유분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 여유분을 대략 20~30%로 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동산 공시가격의 현실화 상한선을 70~80%에 맞추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뜻이다.국민에게 세금을 부과할 때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세금을 올릴 때도 국회의 승인을 얻어야 비로소 국민의 납세의무가 발생한다. 그런 절차도 없이 국민에게 세금을 증액 부과하는 것은 위법하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 세금을 올리려고 한다면 원칙적으로 그 내용과 사유를 명시해 국회의 정당한 심의를 거쳐 국민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과세목적으로 부동산 공시가격을 임의로 올리는 편법은 과세표준을 올림으로써 국민 몰래 세금을 인상하고자 하는 비열한 꼼수일 뿐이다.세금은 공정과세가 원칙이다. 합당한 사유 없이 세금으로 국민을 차별하고 징벌해서는 안 된다. 종부세나 재산세와 같은 보유세는 소득이 있는 곳에 부과하는 소득세와 달리 ‘세원은 넓게, 세율은 낮게’ 유지해야 맞는다. 보유세는 이중과세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는데다 유동성이 없는 재산에 과세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율 인상에 대한 조세저항이 크고 민감하다. 이 점을 노려 소수의 고급주택에 중과하고 다수의 중하급주택에 감면함으로써 정치적 표 계산을 한다면 정권획득을 위해 국민을 희생시키는 일이다. 정치가 표에 민감한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결코 해서도 안 되는 금기는 존재하는 법이다.

‘김해신공항 백지화’ 시도민 대책위 만들어야

대구·경북이 우롱당했다.국무총리실 산하 검증위원회가 김해신공항 건설과 관련 “근본적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결과를 발표한 이후 많은 지역민이 참담하다는 심경을 토로한다.부산·울산·경남의 요구에 맞춰 김해신공항 건설이 사실상 백지화됐다. 뒤이어 가덕도신공항 건설이 마치 기정사실인 양 이야기된다. 그러나 이를 저지할 수 있는 뚜렷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3일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은 물론이고 대구·광주지역 신공항 특별법도 여야가 함께 협의해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성난 지역 민심을 어떻게든 달래보려는 약은 전략이다.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은 현 부지를 매각한 재원으로 건설된다. ‘기부 대 양여’ 방식이어서 국비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방식이다. 이와 달리 만약 가덕도신공항이 추진된다면 전액 국비가 투입된다. 대구와 광주에도 국비를 지원해주겠다는 것이다.일부 지역출신 의원도 가덕도 건설을 기정사실로 보고 특별법을 추진하자는 제안을 했다.그러나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은 건설이 전부가 아니다. 건설 후 지역민이 원하는 기능을 할 수 있느냐가 근본 문제다. 국토 동남권 관문공항을 목표로 하는 매머드급 공항이 가덕도에 들어서면 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의 국제선 기능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 현재 수준의 기능마저 할 수 없게 될 가능성도 있다.대구·경북 통합신공항의 기본 전제는 김해신공항과 영남권 항공수요 분산을 통한 양립이다. 이 전제가 파괴돼서는 안된다.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국비지원 문제는 추후 논의하면 된다. 통합공항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당면 과제다.특별법은 가덕도신공항 건설을 인정하는 출구전략이다. 입에 담아서는 안된다. 지금은 가덕도신공항 획책을 막기 위해 지역의 모든 힘을 모아 나가야 한다.국민의힘 지역출신 국회의원들은 “여권의 TK와 PK 갈라치기 전술에 휘말리면 안된다”며 엉거주춤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중장기적 대응 방안을 단계적으로 마련해야 하며, 김해신공항 백지화의 근거를 밝혀내는 것이 먼저라고 한다. 또 검증위 발표에 대해 정부 주무부처인 국토부의 공식 입장을 추궁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당연히 모두 처리해 나가야 하는 과제들이다.그러나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역의 모든 주장이 중심을 잃은 채 중구난방식으로 제기되는 모습이다. 대구·경북의 의견을 한데 모아 힘을 실을 수 있는 범시도민대책회의 성격의 특별기구 설립이 시급하다. 지자체, 정계, 시민단체, 경제계, 학계 등이 모두 참여하는 기구가 필요하다.

주택화재 예방으로 안전한 겨울을 맞이하자

차가운 공기가 잠을 깨우는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러 옷장 앞에 서면 자연스럽게 두꺼운 외투를 찾게 된다.어느새 한 해의 마지막인 겨울이 다가왔다. 겨울이란 단어를 들으면 먼저 눈, 크리스마스, 따듯한 음식 등이 머리에 떠오르며 우리를 설레게 한다.하지만 겨울은 설렘과 동시에 화재와도 연관이 깊다.추운 날씨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외부활동이 줄고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전기장판 등 난방용품의 사용이 더욱 증가해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따라서 우리는 따듯하고 안전한 겨울철을 맞이하기 위해 몇 가지 주의사항에 대해서 기억할 필요가 있다.첫째, 난방기구 사용에 주의하자.겨울철에는 오랜 시간 난방 기구를 사용한다. 특히 난방 기구 중 전기장판의 안전사고가 가장 빈번하다.전기장판을 오래 접었다 사용하면 내부의 열선이 꼬여 누전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천연고무 성분인 라텍스 재질의 침구류는 열 축적도가 높은 특성으로 인해 장기간 사용 시 발연 탄화해 화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둘째, 화재위험요소는 사전에 차단하자.대부분의 화재는 단순한 부주의에서 발생한다. 집에서 외출할 때는 가스밸브의 잠금장치를 확인하고, 불필요한 플러그나 콘센트, 전기코드는 반드시 뽑았는지 확인해야 한다.문어발식 콘센트 사용에 따른 전기합선 및 누전 등의 원인으로 화재가 발생해 주택이 전소되는 안타까운 사고가 빈번히 발생한다.마지막으로 화재는 예방이 우선이다.가정에서 화재로부터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효과적인 예방법은 주택용 소방시설을 설치하는 것이다.주택용 소방시설이란 소화기와 단독경보형감지기를 말하며, 소화기는 화재발생 시 초기소화에 효과적이고 단독경보형 감지기는 화재 시 경보를 통해 인명이 대피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설치 기준은 소화기는 세대별, 층별 1개 이상 비치하고 단독경보형 감지기는 침실, 거실, 주방 등 구획된 실마다 천장에 1개씩 설치하면 된다.이와 같이 화재는 천재지변처럼 불가항력적이지 않다. 실천을 통해서 얼마든지 예방이 가능하다.이를 위해선 ‘우리는 해당 안된다’라는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가족을 위해서라도 주위에 화재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사소한 것들에 대해 조금만 더 관심을 갖고 주택화재를 예방해 모두가 안전하고 따듯한 겨울을 보냈으면 한다.

코로나 3차 유행…대구·경북 긴장 늦추면 안돼

코로나19가 전국 대유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북은 수도권과 호남 수준은 아니지만 n차 감염이 이어지는 아슬아슬한 상황이다. 대구는 상대적으로 안정적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전국 상황과 연동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역시 긴장을 늦출 수 없다.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24일부터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수준을 2단계로 격상했다. 호남지역도 1.5단계로 올렸다.수도권의 이번 거리두기 조정 발표는 1.5단계로 올린지 불과 3일 만이다. 정부의 코로나 차단과 관련한 판단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파급영향 등을 고려해 조정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이어진다.중대본은 이번 상황이 지난 2~3월 대구·경북, 8월 수도권 확산 때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밝혔다. 이번 고비를 넘지 못하면 12월 초에는 일일 600명 이상의 확진자 발생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겪고 있는 대규모 유행의 길로 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23일 전국의 확진자는 271명(16명은 해외유입)이다. 지난 17일 이후 6일 만에 300명 이하로 줄었다. 하지만 이날 통계는 평일보다 검사 건수가 크게 줄어드는 휴일 상황 때문으로 풀이된다.경북에서는 청송 가족모임에서 시작된 n차 감염으로 현재까지 27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영주, 안동, 포항 등지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했다. 23일 공식 발표된 확진자는 4명이다. 그러나 영주에서는 공식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3명이 추가로 확인됐다. 지난 16일 이후 매일 3~16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경북도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1.5단계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확산이 이어질 경우 선제적 대응 차원에서 시군별로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이번 전국적 확산세가 특히 우려되는 점은 많은 수험생이 한 곳에 모이는 수능시험이 불과 1주일여 앞으로 다가온 때문이다. 또 밀접·밀집·밀폐 등 ‘3밀’의 실내 시설에 머무는 경우가 많은 겨울이라는 계절적 특성도 큰 부담이다. 특정 집단·공간이 아닌 일상 속에서 확진자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도 우려를 더 한다.코로나 사태는 전 국민 백신접종이 이뤄져 집단 면역이 생길 때까지는 해결책이 없다. 다만 주요 제약사에서 백신 임상시험 성공이 잇따르고 있어 한가닥 위안이 된다. 미국 FDA가 새로 개발된 백신의 긴급 사용을 승인할 것이라는 소식도 전해진다. 정부는 백신 확보상황을 그때 그때 밝혀 국민들이 희망을 갖도록 해야 한다.현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스크 쓰기와 사람 간 접촉을 줄이는 일이다. 국민 각자가 개인위생 수칙을 지켜 나가면 백신접종 이전에도 코로나를 떨쳐 나갈 수 있다.

지금도 그곳에선 청년의 꿈이 영근다

찬바람이 옷깃을 단단히 여미게 하는 이즈음에 문득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스무 살 청년 시절 만나 입대하기 전까지 함께 어울렸던 화가 지망생이다.같이 시골에서 올라온 처지라 흉허물 없이 지내던 그 친구를 떠올리면 길거리에 낙엽이 흩날리고 찬바람이 불던 오늘처럼 알싸한 추위가 먼저 떠오른다. 처음 만난 날이 유난히 쌀쌀한 아침이었던 기억 때문만은 아니다.신천동 어느 건물 지하실을 화실 겸 숙소로 쓰던 그 친구의 작업실을 처음 찾았을 때 그 기억이 30년도 훨씬 지난 지금까지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남아있는 것은 그때 봤던 풍경들이 너무도 낯설어 생경한 때문이다.어지럽게 널려있는 화구들과 완성되지 못한 그림들, 그리고 그 시절 자취생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살림살이 몇 개가 전부인 공간. 손이 시릴 정도로 냉기가 감도는 그곳에서 먹고 자면서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부친이 시골에서 건재상을 운영해 비교적 살림살이가 넉넉한 집 맏아들이었던 그 친구는 비록 건물 지하층이지만 혼자만의 작업실을 가질 정도로 당시 예술인 지망생으로서의 환경이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다.미술에 문외한이던 우리를 난방도 제대로 되지않는 자기 화실에 불러 화첩을 펼쳐놓고 그림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좋아했던 친구다. 누더기 옷에 기행을 일삼았던 걸레스님 중광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성기에 붓을 달아 그렸다는 설명과 피카소의 그림을 펼쳐놓고 이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뒷이야기 등 이런저런 미술이야기를 신이나서 들려주기도 했다.세월이 흘러 그 친구의 안부가 문득 궁금해졌다. 수소문 끝에 전해들은 이야기는 경기도 일원에서 중견 한국화가로 활동 중이라는 소식이 반가웠다.그 친구를 생각하면 왠지모르게 코로나시대를 맞는 요즘 지역예술인들이 처한 상황과 묘하게 오버랩된다.가뜩이나 힘든 예술인들에게 코로나는 혹독한 시련의 계절이다. 화단에 이름을 널리 알린 소수의 작가들, 안정된 수입원을 가져 생활에 여유가 있는 작가들은 코로나시대가 오히려 많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였다는 우스개 같은 이야기도 들려온다. 또 코로나가 작품의 영감을 주기도 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에게 코로나는 생계마저 위협하는 혹독한 시련이고 매서운 한파다.실제로 한 조사에 따르면 대구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 상당수가 낮은 수입 등으로 예술 활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벌어들인 수입은 대부분 최저임금을 밑돌았고, 예술활동으로 인한 수입이 전혀 없는 경우도 허다했다. 수입 부족으로 예술 활동을 포기하는 사례도 속출했다는 것이다.지역의 예술인들이 한 해 동안 예술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입이 1천200만 원 이하인 경우가 90%를 넘었다. 열에 아홉이 한 달에 100만 원 벌이도 힘든 게 지금 우리 예술계의 현실이다. 특히 예술인 한 가구의 총 수입이 연 평균 3천만 원 이하가 60%를 넘어섰다. 예술 활동만으로는 정상적인 경제 활동이 힘들다는 이야기다.그나마 사정이 나은 겸업예술인들도 낮은 소득과 불규칙한 소득으로 열명중 일곱은 예술 활동에 전념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료도 있다.뿐만 아니라 예술활동에 따른 수입부족으로 1년 이상 예술활동을 포기한 경험이 있는 작가들이 30%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이러다보니 연극 무대에 서있어야 할 예술인이 오토바이에 물건을 싣고 거리를 달리고, 막노동판을 전전하고 있는 게 지금 우리 예술계가 처한 현실이다.30년 전 젊은 열정하나로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신천동 어느 건물의 지하 화실에서 화가의 꿈을 키우던 그때나 적지 않은 세월이 흘러간 2020년 오늘 예술인들이 처한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두렵다.그 세월동안 지하실을 벗어난 바깥세상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풍경이다. 이대로라면 30년 후에도 어느 건물 곰팡내나는 지하실에서 먹고 자면서 꿈을 키우고 있을 젊은 예술가가 수두룩하다는 이야기다.청년 예술가들이 지하실에서 벗어나 밝은 곳에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모두의 관심이 필요한 때다.출근 길 낙엽이 어지럽게 나뒹굴어 더욱 스산한 오늘 문득 그 친구가 그립다. 보고 싶다 우 화백.

로프공의 비 오는 날/ 안윤하

한 남자가 비를 맞고 서 있다/ 두 손으로 우산을 들고 서 있다// 높은 임금의 유혹이/ 기다란 밧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비바람에 젖으며 흔들리며/ 사투를 벌이고 있다// 덥석 잡은 로프를 몸에 비끌어 매고/ 동료와 함께/ 허공으로 뛰어내리던 순간/ 아찔하게 미끄러지더니/ 끊어진 끈…/ 툭 떨어져/ 하얗게 식어가는 그의 얼굴에/ 우산을 받쳐주고 서 있다// 젖는 줄도 모르고/ 흐르는 줄도 모르고/ 퉁퉁 붓는 줄도 모르고/ 넋 놓고 서 있다「대구문협대표작선집」 (대구문인협회, 2013)로프를 타고 일하는 사람을 흔히 로프공이라고 부른다. 주로 고층건물의 외벽 청소나 균열보수작업, 도색 작업 등을 한다. 선거철엔 외벽에 대형 현수막을 다는 일도 로프공의 손을 빌린다. 얼른 봐도 일이 위험해 보이고, 위험수당을 감안하면 일당이 높을 것 같다. 하지만 중간관리업체, 인력파견업체 등이 건물주와의 사이에 끼어있기 때문에 정작 로프공의 일당은 생각만큼 높지 않다. 일을 따내기 위해선 견적가격을 낮춰야 하고 중간관리업체가 거기서 커미션을 먹고 인력파견업체에 일을 넘겨준다. 다시 그것을 업자와 로프공이 나눠먹어야 하니 일당이 높을 수 없는 구조다. 로프공의 위험프리미엄은 일감 확보를 위한 경쟁과정에서 먼지처럼 사라지고 마는 셈이다.대부분 빠듯한 금액으로 로프작업을 강행해야 일감이 지속적으로 나온다. 그런 치열한 경쟁상황에서 살아남는 손쉬운 방법은 안전장치를 건너뛰고 작업일정을 빡빡하게 짜는 것이다. 로프공은 위험한 걸 뻔히 알면서 제대로 된 보안장비도 없이 줄을 타고 강요된 일정에 따라 계속 무리를 한다. 홀로 위험을 떠안은 채 줄을 잡아야 한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는 날은 위험해서 줄을 탈 수 없다. 현실은 엄혹하다. 일정을 준수하거나 수지타산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작업을 강행하는 상황에 맞닥뜨려진다. 열악한 일기에도 조심해서 작업하는 관계로 무사히 작업을 마치는 일이 다반사다. 그러나 사고는 그런 안일함이나 설마라는 허점을 비집고 들어오는 법이다.비바람 치던 어느 날, 로프를 타고 작업하던 로프공이 추락했다. 돈을 더 벌어 처자식과 맛난 고기를 구워먹으려는 어린 마음에 위험을 감수하고 줄을 탔다가 그만 변을 당했다. 유혹만이 줄에 매달려 흔들리고 높은 임금은 끊어진 줄을 따라 떨어졌다. 위험프리미엄은 줄 끝에 매달려 높은 허공에서 마음 없이 바람에 대롱대롱 흔들린다. 높은 위험성은 현실이 됐지만 그 보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로프에 매달려 애쓰다가 중력을 타고 추락하던 그의 마지막 얼굴이 가슴을 후벼 판다. 작은 희망은 절단된 줄처럼 툭 끊어졌다. 이제 와서 끊어진 줄을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한 남자가 비를 맞고 처연하게 서 있다. 두 손에 우산을 들고 비를 맞는다. 하얗게 식어가는 얼굴이 비에 맞을 새라 우산을 받쳐주지만 핏기 없는 얼굴이 더욱 더 창백해지는 걸 막기엔 역부족이다. 자신의 몸이 비에 흠뻑 젖는 것도 모르고 비바람을 맞고 마냥 서 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빗물로 씻어내려는 듯 비를 맞고 하염없이 서 있다. 퉁퉁 부어오른 눈 두렁을 빗물에 내맡긴 채 빗속에 우두커니 서 있다. 이승에선 위험을 무릅쓰고 작업 로프를 탔을망정 다음 세상에 가서 줄을 타거들랑 꽃 그네만 타길 기원하리니. 오철환(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