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가는 추수감사절

변해가는 추수감사절성민희재미수필가 오븐에서 연기가 솔솔 난다. 해마다 한 번씩 맡는 냄새다. 터키 굽는 냄새가 이렇게 맛있을 수도 있구나.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진하게 냄새가 풍겨 와도 감각이 없더니 이제는 눈을 감고 그 속에 푹 잠기고 싶은 향기가 되었다. 딸이 정성껏 요리한 음식이 식탁 위에 차려졌다. 소금, 후추, 설탕과 버터를 넣어 잘 으깬 매쉬드 포테이토, 샛노랗고 부드러운 미국고구마에 머쉬멜로를 넣어서 구운 야미, 크림콘, 그린빈, 그레이비, 스태핑, 크랜베리 소스, 샐러드, 디너롤 등이 알록달록 식탁을 채운다. 흩어져 있던 가족이 모두 모여 한 해를 감사하는 추수감사절 만찬식탁이다.딸은 모든 음식을 본인이 할 테니까 사촌들은 디저트와 음료수만 가져오라고 했다. 나는 김치와 잡채를 배당 받았다. 양식을 실컷 먹고도 뒤늦게 끓여낸 김치찌개와 밥을 반가워하던 어른을 위한 배려인 모양이다. 우리 집에서 할 때는 보이지 않던 와인바도 세련되게 차려졌다. 갖가지 종류의 치즈와 잘 쪄진 브로클리와 당근, 블랙베리, 페퍼로니, 올리브와 땅콩 등 미국사람들 파티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시간이 되자 식구들이 모여들었다. 어른들은 모두 빈손으로 오라고 했는데도 들고 온 과일 박스와 과자 상자가 한쪽 벽 밑에 쌓인다. 보스톤에서 날아온 조카는 공부하느라 힘이 들었는지 얼굴이 더 창백해 졌고, 첫 직장을 잡은 막내 조카는 청바지를 벗어버리고 이제는 얌전한 치마 아래로 스타킹까지 신었다. 올 봄에 결혼한 조카는 아내의 어깨에 손을 얹은 모습이 의젓하다. 딸은 집을 휘젓고 뛰어 다니는 두 꼬마를 붙잡고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한다. 제법 엄마 티가 난다. 갈색으로 잘 익은 터키를 오븐에서 꺼낸 사위가 양손에 칼을 쥐고 나선다. 남편과 오빠와 남동생, 나와 올케들과 여동생이 하던 일이 모두 아이들 손으로 넘어갔다.어머니 대신 남편이 감사기도를 한다. 구순을 넘긴 어머니는 본인도 힘들고 곁에 사람에게도 폐가 된다며 아예 오시지 않았다.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며 모든 가정을 한 바퀴 돌던 느리고 평온하던 기도가 사라졌다. 아이들이 알아듣든 말든 상관이 없던 경상도 사투리의 투박하던 기도는 짧고 간단한 영어 기도로 바뀌었다.할머니의 긴 감사 기도를 견디지 못하고 킥킥 팔꿈치로 서로 찔러대던 아이. 높은 식탁에 팔이 닿지 않아 까치발을 하고 서서 애를 태우던 아이. 여드름이 퐁퐁 솟은 얼굴에 노랗게 물든 머리를 하고 나타나 우리를 깜짝 놀래키던 아이가 모두 사라졌다. 보이프렌드와 걸프렌드를 수줍게 소개하던 아이도 이제는 아예 배우자를 따라 가버리거나 먼 나라에서 전화 목소리만 들려주는 어른으로 변했다. 커다란 냄비를 든 엄마 뒤를 쫄랑쫄랑 따라 들어오던 꼬마들이 어느새 자기 시간을 마음대로 요리하는 나이가 되어 버렸다. 식탁도 그대로고 그릇도 그대로고 그 때 켰던 그 촛불도 변치 않았는데, 아니, 우리도 모두 그대로인데 아이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미국 온 첫 해의 추수감사절 날에 지인의 초대를 받았다. 어떻게 지내는 미국의 명절일까 막연한 설레임으로 나와 남편은 한국 배를 한 상자 사 들고 갔다. 그날 식탁 위에 가득 차려진 음식은 도무지 낯설었다. 말로만 듣던 터키는 비린내가 나서 먹을 수가 없었다. 어느 요리에도 손이 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커다란 접시에 터키와 햄을 듬뿍 얹고 그 위에 그래이비를 끼얹어 잘도 먹던데 나는 으깬 감자와 달콤한 크랜베리 소스만 먹고 돌아왔다. 추수감사절 만찬이 어떤 건지 비로소 알게 된 늦은 저녁. 우리는 고춧가루를 듬뿍 넣은 얼큰한 라면을 또 끓여 먹었다.모든 상점이 일체 휴업을 하던 그때와는 달리 요즈음은 문을 여는 상점이 늘어난다. 집에서 정성껏 만든 음식으로 만찬을 즐기던 풍조가 조금씩 사라지고 요즘은 식당에서 외식을 하는 가족도 많아졌다. 집에서 구워야만 하는 줄로 알았던 터키와 햄은 주문만 하면 배달되기도 한다. 현지 언론이 조사한 결과 올해는 한인타운의 상점도 90%정도가 문을 연다고 한다. 타지에서 온 가족들이 아예 한인타운의 식당에서 만나 먹고 샤핑도 즐긴다는 소식이다. 차도 사람도 없던 추수감사절 거리가 이제는 오히려 분주해졌다. 어떤 가게는 오후 4시부터 오픈하여 이른 블랙프라이데이 세일을 한다고도 한다.비릿한 냄새가 느껴져 한 입도 못 먹던 터키를 40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난 지금은 고향처럼 정다우니 아이들이 변했다고, 세상이 변했다고 쓸쓸해 할 일이 아니다.

청년 창업의 새로운 모델 사회적 기업

청년 창업의 새로운 모델, 사회적 기업추현호콰타드림랩 대표사회 문제를 해결하면서 기업 활동을 영위하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필자는 청년 창업 멘토로 청년들을 상담하며 사회적 기업 창업에 대해 물어오는 청년들의 숫자가 적지 않음을 느낀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현장의 열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2007년 고용노동부의 지원으로 시작된 사회적 경제섹터는 해마다 성장하고 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올해 인증된 사회적 기업은 2천201개소로 총 4만6천443명(취약계층 2만7천991명)의 직원들이 종사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섹터의 발전은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며 전 세계적으로 단기간에 급격한 발전을 이뤄낸 선진국가에서 주목하고 있는 모델이기도 하다.싱가포르는 550만 명의 인구(세계 190위)로 1인당 GDP는 세계 3위를 차지하는 선진 국가이다. 싱가포르의 사회적 경제는 어떤 구조를 갖추고 있을까? 필자는 지난 11월 대구시 사회적 경제 연수단원의 일원으로 선발돼 싱가포르의 사회적 경제섹터와 민간 기업을 방문한 적이 있다.도심 공유오피스 Wework에서 만난 커먼그라운드의 시후이(Shihui) 프로그램 디렉터는 커먼그라운드의 시작과 성장 과정을 설명해 줬다.커먼그라운드의 시작은 학생들에게 필요한 입시교육을 담당하는 사립학원이었다고 한다. 커먼그라운드는 ‘생각학교’(School of Thought)에서 벌어들인 안정적인 수익으로 청소년들의 시야를 넓혀줄 수 있는 매거진을 만들었다고 했다.이후 비전트립을 진행해 온 커먼그라운드는 국가로부터 건물을 임대받아 복합 사회적 기업 클러스트를 직접 운영하고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단체로 발전했다. 청소년의 진로 문제, 청년의 사회진입 및 지식교류라는 사회적 가치 실현을 학원모델, 출판 모델로 연계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면서 장기적인 생태계로 확장해 나간 점은 눈 여겨 볼만하다.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립되는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버틸 제대로 된 비즈니스모델 또한 세심하게 고민되어야 한다.사회적 기업 창업을 계획하는 예비 청년 창업가가 집중해야하는 첫 번째 부분은 사회적 문제이다. 사회문제 해결과 사회적 가치실현에 소요되는 시간동안 지속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수익모델에 대한 세심한 고민이 필요하다.

리영희

리영희 / 고은70년대 대학생에게는/ 리영희가 아버지였다/ 그래서 프랑스 신문 ‘르몽드’는/ 그를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사상의 은사’라고 썼다// 결코 원만하지 않았다/ 원만하지 않으므로 그 결핍이 아름다웠다/ 모진 세월이 아니었다면/ 그 저문 골짜기 찾아들 수 없었다// 몇 번이나 맹세하건대/ 다만 진실에서 시작하여/ 진실에서 끝나는 일이었다// 그의 역정은/ 냉전시대의 우상을 거부하는 동안/ 그는 감방 이불에다/ 어머니의 빈소를 마련하고/ 구매품 사과와 건빵 차려놓고/ 관식 받아 차려놓고/ 불효자는 웁니다/ 이렇게 세상 떠난 어머니 시신도 만져보지 못한 채/ 감방에서 울었다 소리죽여- 시집『만인보』(창작과비평사, 1986) .............................................. 12월5일은 넬슨 만델라의 6주기이자 현대사의 증인이라 할 리영희 선생이 타계한 지 9년째 되는 날이다. 통일과 민주주의, 인권을 주장하면 빨갱이로 매도되었던 시절에 자신의 생각을 주저 없이 글로써 진실과 정의를 알리려했던 선생이었다. 작가 이병주는 러시아 사상가 베르자예프의 말을 인용하면서 “세상에는 도스토옙스키의 영향 아래 인생을 사는 사람과 그와 무관하게 사는 사람으로 나뉠 수 있다”고 했다. 그렇듯 세상은 리영희에 빚진 사람과 그와 무관하게 사는 사람들로 구분될 수 있다. 나도 ‘사상의 아버지’란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으나 한때 ‘사상의 은사’였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양심이 있고 양식을 가진 모든 젊은이들에게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귀감이었다. 좌절과 고난으로 점철된 1970년대, 냉전의 우상을 타파하고 시대를 통찰하는 지성인으로서 리영희 선생은 당시 실의에 빠진 청년학생들에게 영롱한 진주와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사상적 은혜를 베풀고 떠난 선생의 글을 책으로 처음 접한 건 ‘전환시대의 논리’지만, 그보다 ‘偶像과 理性’이 더 가슴을 파고들었다. “내가 글을 쓰는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이성의 행위이다.” “도전에는 많은 난관이 있겠지만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발전, 사회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라고 설파한 첫머리는 영원히 간직해야할 말씀으로 몇 번씩 꼭꼭 접어 안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주머니 밑창이 타개지고 말씀들은 야금야금 새나갔다. 선생께서도 훗날 책의 개정판을 내면서 “우리사회에서 하루속히, 읽힐 필요가 없는 ‘구문’이거나 ‘넋두리’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선생의 바람과 내 망각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망각의 소이인 일상의 고단함에 굴복한 무뎌진 감각 탓도 있겠고 우리들 자신의 정신적인 나태도 원인이 되었으리라. 수많은 항쟁과 민주적 혁명의 세월을 통과하면서 선생의 가르침대로 양심을 가동했건만, 이성은 단단하지 않았고 논증은 철저하지 못했다.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고 용기마저 부족했는지도 모르겠다. 진실로 선생이 바라는 대로 ‘우상’이 판치지 못하는 세상을 소망하건만,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낯 두꺼운 권력의 유령들에 의해 국정이 망가져가는 어이없는 세상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정의와 진리가 보편타당해진 세상에서 선생의 저서들이 극복되는 날은 반드시 오리라 믿는다.

당직변호사

▲6일 김구호 ▲7일 조소진 ▲8일 조우람김창원 기자 kcw@idaegu.com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 얼마 전 자동차 업계에서 환영할만한 일이 있었다. 현대자동차가 미래자동차 중 하나인 수소전기차 판매에서 올 10월까지 누적기준으로 3,600대 이상을 팔아 세계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다는 것이다. 그것도 일본의 도요타를 제치고 말이다.아직은 판매 규모가 작고 내수시장 비중이 전체 판매량의 90% 이상에 달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완성차 메이커들도 거의 비슷한 환경 아래서 경쟁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높이 평가할 만한 일이다.특히 BMW나 벤츠, 아우디 등 독일 기업은 물론이고 상해자동차와 우통버스 등 중국 기업들조차도 경쟁에 뛰어드는 등 앞날이 험난해 보이는 가운데 성장기반을 다질 기회를 선점했다는 측면에서는 더 반길 일이다. 또 하이브리드나 전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와 같이 수소전기차 이외에는 후발주자였던 우리 자동차 업계가 선발주자로 나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도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겠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우리 자동차 업계의 앞날에 대한 걱정과 우리 경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불안감이 사그라지지 않는다.우선은 세계 자동차 시장의 성장세가 이미 꺾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 시장의 부진으로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이 위축될 것이라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게다가 중국을 대신할만한 거대시장이 좀처럼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사실이어서 우리 자동차 업체들의 실적도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다음으로는 자동차의 개념이 CASE(Connected, Autonomous, Sharing & Service, Electric)로 알려진 신기술 및 서비스를 기반으로 확대되고 변화되면서 가져올 불확실성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커넥티드카, 자율주행차, 공유차, 전기차 등이다. 이 가운데 우리 자동차 업계가 과연 얼마나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특히 구조조정을 통해 미래자동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글로벌 자동차 업체들의 몸부림을 보면 걱정은 더 커져만 간다. 대표적인 사례로 독일의 아우디는 전기차 기술 등 미래자동차 관련 부문 투자에 집중하기 위해 2025년까지 독일 내 직원의 16%에 해당하는 9,500명을 감원할 계획이고, 일본의 닛산도 2022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1만 2천명 이상을 감축하여 자율주행차 개발 자금을 확보하기로 했다. 이뿐이 아니다. 독일의 다임러와 BMW, 미국의 포드와 같은 완성차 업계는 물론 독일의 자동차 부품업체인 콘티넨탈도 구조조정에 뛰어들었다.향후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자동차 업계에 몸담은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동참할지 모를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 자동차 업계도 절대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미래자동차 시장이 수년 내에 급격히 확대되어 디젤이나 가솔린 엔진을 기반으로 하는 기존 자동차 시장을 급속히 잠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머지않은 미래에 기존 자동차 시장이 미래자동차 시장으로 대체되는 날은 분명히 온다는 것 만큼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가장 큰 불안감은 바로 여기에 숨어 있다. 자동차 산업은 생산 및 부가가치는 물론 고용에 이르기까지 전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넘을 뿐 아니라 반도체에 이어 수출 2위 상품으로 우리나라의 핵심 주력산업이다. 이는 조선업의 3배 수준에 달하는 것으로 어느 순간 한꺼번에 구조조정이라는 큰 파도가 밀려오면, 그 피해는 조선업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하듯 우리 자동차 업계도 선제적인 구조조정과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투자가 지금이라도 당장 병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사관계를 비롯해 각종 규제 등 업계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이는 소위 주력산업이라 불리는 국내 제조업 전반에 걸친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더욱 조선업과 같은 경험을 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속임수가 판치는 세상

속임수가 판치는 세상이동은리즈성형외과 원장요즘 대한민국은 요지경이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속임수가 판을 치고 있어서 내가 직접 하지 않은 것은 쉽게 믿을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우리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믿음의 끈이 하나씩 풀려나가는 것을 느끼게 한다.배달 음식에 대한 믿음 역시 예전 같지 않다. 다양한 음식들이 책자에 나와 있어서 이것저것 고르는 재미도 있었지만 얼마 전 보도된 TV 고발 프로그램에서 한 책자에 나와 있는 모든 식당이 한 곳이었다는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에 쓴 웃음을 지은 기억이 난다.‘매일 시장에서 사오는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는 맛’, ‘천연조미료로 숙성시킨 깔끔한 맛’, ‘어머니의 손맛으로 만든 음식’ 같은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길 법한 이야기들이 모두 믿지 못할 이야기였다는 것은 차라리 애교라고 해야겠다. 주문이 있을 때마다 얼려 놓은, 언제 사 온 것인지도 모르는 재료에 조미료 범벅인 양념들과 내 가족이 먹을 음식이라면 감히 생각하고 싶지 않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음식을 만들고는 마치 제대로 만든 좋은 음식인 양 포장해서 배달되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속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데도 이런 음식들이 맛있고 좋다는 여럿 인터넷 매체들의 선전에 현혹되어 이것이 건강에 나쁠 수 있다는 말은 온대간대 없이 오히려 문전성시를 이루는 경우도 있다.이런 일들이 식당뿐이겠는가, 우리나라 여러 곳이 요지경이 되었지만 병원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몇몇 분야는 거의 점입가경이다.얼마 전 유튜브에서 ‘주입된 필러가 녹지 않고 뼈를 손상시킨다.’는 자극적인 내용의 방송이 인터넷을 돌아다니면서 병원가에도 영향을 미친 적이 있다. 자못 전문적인 내용과 여러 가지 자료를 인용해 필러가 우리 몸속에서 나쁜 성분으로 바뀌어 흘러 다니고, 심지어 뼈 주위에서 뼈를 녹일 수도 있다는 듣기에는 걱정스러운 내용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그렇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몇 가지 작은 논문들을 자신의 입맛에 맞는 내용으로 짜깁기해 실제 내용과는 전혀 다른 사실이 아닌 왜곡된 내용으로 둔갑시켜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에게 ‘공포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일로 보톡스와 필러 시술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들이 적잖이 타격을 입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검증되지 않는 정보가 사회에 얼마나 잘못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는 좋은 사례라고 하겠다.하루가 멀다 하고 사회 여러 부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정보들을 ‘팩트 체크’를 거치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는 불신사회에 접어든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그래서 평소에 정상적으로 환자에게 잘 보고 있던 병원들은 일단 환자가 줄어서 피해를 보기도 하고, 여태 수술이나 시술해 오던 것도 환자들에게 의심을 받는 일이 생기니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원인은 내원하는 환자를 인격체로 보지 않고 단순히 상품이나 물건으로 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돈을 벌고 나면 그 다음은 환자에게 어떤 피해가 생겨도 외면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 사람의 환자를 인격체로 보고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를 중요한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것으로 생각했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전문직이 비즈니스로 전락한 예라고 해야겠다.한번씩 싼 가격이나 요란스러운 광고에 호기심이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할 수 있는 구조가 들여다보인다. 아무래도 품질에 문제가 생기는 점은 어떻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떻게 하더라도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제품을 판매하는 일도 그런데, 사람의 몸을 상대로 하는 의료행위가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다른 분야보다 더 싼 것이 비지떡인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일정한 수준을 보장해야 하는 의료행위는 품질을 떨어뜨리지 않고는 가격을 낮출 수 없기 때문이다.이제 우리나라의 의료 소비자들은 커다란 갈림길 앞에 섰다. 야바위같이 가격은 싸지만 품질은 신뢰하기 어려운 제품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가격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품질은 믿을 수 있는 제품을 선택할 것인지 말이다.

첫눈

첫눈/ 이진엽문득 깨어나 창문을 열어보니새벽의 혁명이 시작되고 있었다수만 장의 흰 전단을 뿌리며온 세상으로 번져 가는 조용한 외침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좌파도 우파도 아닌어둠도 밤의 아들도 아닌오직 피가 맑은 무정부주의자들이 일으킨새벽이 하얀 반란//나는 마음속으로 손뼉을 짝짝 쳤다- 시집『겨울 카프카』(시학, 2013) ........................................................................ 강원과 남쪽지역을 제외한 중부지방에 모처럼 첫눈다운 눈이 내렸다. 충분한 감성이 장전될 만큼의 긴 시간은 아니었으나 애매모호하지 않았고 흩날리는 눈의 풍경도 좋았다. 12월 들자 머뭇거리지 않고 마침맞게 왔다. 약간 과장하자면 나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아직도 이런 고전적인 낭만이 물씬 풍기는 약속을 실제로 가동하는 이가 있을까 모르겠지만, 사귀는 사람이 있는 사람들은 상대와 이 소식을 공유하느라 바빴으리라. 그만큼 아직은 세상 사람들의 가슴에 순수와 동심이 살아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첫눈은 연인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어린 시절 눈은 순결과 신비, 설렘과 경탄의 대상이었다. 그러다가 도시생활의 이기와 약삭빠름에 젖다보면 감흥은 차츰 떨어지고 때로 눈은 내 교통을 방해하는 성가신 강하물에 불과했다. 나이 먹는다고 서정의 노쇠화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첫눈조차 무덤덤해진다면 우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사실과 첫눈 오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마음속으로 손뼉을 짝짝 쳤다’함은 여전히 세상엔 목마르게 그리워할 것이 있다는 의미이다. 첫눈 오면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의 마음은 붐비고 눈송이처럼 불어난다. 사랑을 알고 평화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은 혁명 같은 그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래서 첫눈은 가장 때 묻지 않은 곳부터 ‘조용한 외침’으로 내린다. ‘좌파도 우파도 아닌’ ‘어둠도 밤의 아들도 아닌’ ‘오직 피가 맑은 무정부주의자들이 일으킨’ ‘하얀 반란’이다. 작은아이 세살 무렵, 사물을 감식하는 눈이 막 뜨일 때 밤새 첫눈이 내려 온 세상이 하얗게 도포된 풍경을 보고선 “아빠, 외계인이 왔나봐!” 생애 처음으로 눈의 ‘하얀 반란’을 목격한 아이의 눈엔 달라진 세상이 외계인의 침공으로 보였던 것이다. 눈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잠시 세상을 달리 보이게 끔 한다. 어린 시절 장독대 위에 함지박 만하게 내려앉은 눈이며, 팔작지붕 기와 위에 우아한 곡선을 또렷이 드러내는 설경의 아름다움은 요즘 보기 힘들어졌지만 눈으로 채색된 풍경은 언제나 아름답다. 검은 눈만 내리지 않는다면 정말 세상이 확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첫눈은 무언가 판을 갈아엎고 싶은 마음 위에도 내린다. 좌든 우든 국민들에게 도움 안 되는 쭉정이는 채에 걸러 싹 날려 보내고 정치도 좀 산뜻해졌으면 좋겠다. 세상을 갱신하고 조율하기 위한 시그널로서의 첫눈이라면 손바닥이 시뻘게지도록 ‘손뼉을 짝짝’ 치겠다.

과욕은 파국을 부른다

과욕은 파국을 부른다오철환객원논설위원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미·북 정상회담 일정을 내년 총선일 직전으로 잡지 말 것을 미국 측에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미·북 회담 자제 요청의 적절성이 근본적으로 의문이라는 완곡한 비판이 자유한국당내에서 나왔다. 여당의 거센 반격과 여론의 역풍을 우려한 방어막으로 읽힌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미·북 정상회담 자체를 반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허나 그렇게 점잖게 넘어갈 수 없는 절박한 사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발언 취지는 명백하다.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을 반대하지도 않고 또 반대할 수도 없지만 남의 나라 중대 선거를 왜곡시키지 않도록 배려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 뜻이라면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다. 2018년 싱가포르 회담 전에 요청했어야 했다. 선거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역사적인 미·북 회담을 선거일 바로 전날 갖는다는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선택이다. 전국동시지방선거의 날짜나 그 중요성을 몰랐을 것이라고 변명한다면 미국의 정보력과 역량을 무시하는 처사다. 회담 날짜를 선거일 이후로 조금 미룬다고 달라질 일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선거일 전일을 회담일로 미리 못 박은 이유는 회담을 선거에 활용하자는 의도일 것이다. 누구의 의도였는지 분명하진 않지만 가장 이득을 많이 보는 측의 전략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정이다. 자국의 선거에 다른 나라를 끌어들이려는 시도는 매국적인 외세의존에 다름 아니다. 차후에 터무니없는 청구서가 날아든다는 점에서 더욱 금기다. 공짜 점심은 없다. 주한미군 분담금 논란도 그 연장선이다. 한번 약점을 잡으면 계속 물고 늘어지는 것이 장사치의 본능이다. 다른 나라의 선거에 개입하는 일은 불법이고 심각한 내정간섭이다. 그 선거가 어떤 종류의 선거이든 가리지 않는다. 미국도 이런 유형의 스캔들로 시끄럽다. 러시아가 지난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는 의혹으로 특검이 실시되었고 차기 대통령 경쟁자를 흠집 내고자 우크라이나를 끌어들인 스캔들로 탄핵 절차가 진행 중이다. 입증만 된다면 하야나 탄핵도 가능한 위중한 사안이다. 선거에 개입하는 나라가 초강대국이거나 위험한 이웃나라일수록 문제는 더 심각하다. 아이들이 장난삼아 던지는 돌에 개구리는 맞아죽는다. 지난 6·13 지방선거는 자유한국당의 참패였다. 탄핵의 후유증이 한 요인이었겠지만 그 전날 열린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이 결정적이었다. 휴전 후 최초로 만난 전쟁당사자의 역사적 이벤트에 세계가 열광했다. 회담 다음날인 선거일엔 신문마다 대문짝만 한 사진과 함께 회담 내용이 대서특필되었고 온 종일 관련 뉴스가 미주알 고주알 계속 보도되었다. 선거 이슈를 평화로 매몰시킨 공작은 기대 이상 주효했다. 싱가포르 발 핵 폭풍으로 야당 선거판은 초토화되었다. 여당은 선거사상 유례없는 압승을 거두었다. 지방선거의 성격과 전혀 관련 없는 이벤트로 여론을 유린한 결과다. 선거에서 구도와 바람이 얼마나 무서운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다. 야당은 사전에 그 결과를 예측하고 결사적으로 막았어야 했다. 이 기막힌 이벤트를 두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은 불가사의다. 그 무능과 부작위에 대한 대가를 야당은 톡톡히 치르고 있다. 미·북 회담 일정을 내년 총선 직전으로 잡지 말아달라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요청은 학습효과에 의한 당연한 귀결이다. 회담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남의 나라 선거에 편파적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배려해 달라는 당당한 요청이다. 이에 청와대 대변인은 “오로지 선거만 있고 국민과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라고 했고, 여당 대변인은 “당리당략이 한반도 평화보다 우선할 수 있느냐”고 했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봐야 진의가 보인다. 요청받은 미국 측은 상황을 수긍하는 분위기 같은데 청와대와 여당이 필요이상 발끈해서 과잉 반응하는 모양새는 반칙을 쓰려다가 발각된 부정선수 같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번 재미 본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무슨 일이든 꼬리가 길면 덜미가 잡힌다. 총선이 코앞이다. 제1야당을 배제한 채 선거법을 무리하게 바꾸려는 독선은 비정상이다. 스물여덟 석 정도를 비례로 돌리고 정당득표율에 의석을 연동시키는 룰은 민생사안도 아니고 사생결단할 일도 아니다. 기존대로 한다고 해서 결딴날 이유는 없다. 연동형비례제를 고집하는 통에 나라가 결딴나는 건 왜 모르는가. 선거는 정정당당해야 한다. 과욕은 파국을 부를 뿐이다.

12월

12월 / 황지우12월의 저녁거리는/ 돌아가는 사람들을/ 더 빨리 집으로 돌아가게 하고/ 무릇 가계부는 가산 탕진이다/ 아내여, 12월이 오면/ 삶은 지하도에 엎드리고/ 내민 손처럼/ 불결하고, 가슴 아프고/ 신경질 나게 한다/ 희망은 유혹일 뿐/ 쇼윈도 앞 12월의 나무는/ 빚더미같이, 비듬같이/ 바겐세일 품위에 나뭇잎을 털고/ 청소부는 가로수 밑의 생을 하염없이 쓸고 있다/ 12월 거리는 사람들을/ 빨리 집으로 들여보내고/ 힘센 차가 고장난 차의 멱살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갔다- 시집 『구반포 상가를 걸어가는 낙타』 (미래사, 1991) ................................................ 일상에서의 우리들 생각은 사는 처지에 따라 달라진다. 겨울에 대한 감상, 12월을 맞는 느낌도 살림의 형편에 따라 제각각이다. 훈훈하고 포시라운 곳에서 할랑하게 일하며 두둑한 연봉을 받는 사람과 난방도 시원찮은 곳에서 빡세게 몸을 움직여야만 겨우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12월은 다르다. 겨울에 노가 나는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과 길거리 행상을 하며 곱은 손으로 구겨진 천 원짜리 지전을 꺼내 펴서 몇 번이고 세고 또 세는 사람의 정서는 분명 다르다. 자본주의는 내내 이런 다름을 방관하고 부추겼다. 가슴 미어지는 죽음들,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정치권 뉴스들로 넘치는 이 나라의 12월, 마냥 행복에 겨울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만, 이럴 때 자칫 도가 넘는 럭셔리풍의 겨울 찬가가 다른 등 굽은 이에게는 ‘악마의 트릴’로 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보너스를 안주머니에 챙겨 넣고서 장작불이 타는 별장으로 스키장으로 바다 건너로 내빼는 이가 있는가 하면, 12월에 상실감으로 번뇌가 더욱 깊어진 사람도 있다. 순수한 겨울 낭만을 즐기는 거야 누가 뭐랄 까만 신경질 나게 타인의 쓰라린 가슴에 소금을 뿌려대며 방방 나대는 일만은 없으면 좋겠다. 가지고 배웠고 누리는 자는 좀 더 겸손해야하고, 가난하고 덜 배우고 못난 자도 당당할 수 있어야 한 나라의 정신토양이 건강해지는 법이거늘, 언제나 문제는 그 부조화에서 비롯되지 않았던가. 올해도 이렇게 저물어간다. 세상의 속도에 휩쓸려 늘 조바심으로 마음만 붐비며 동당거렸다. 문득 허무가 밀물처럼 밀려오는데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이렇게 살아 존재한다. ‘지금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대는 절대강자’라며 이외수는 과장된 ‘말장난’으로 우리를 위로했지만 최선을 다하지 못한 삶에 마음이 무겁다.‘힘센 차가 고장난 차의 멱살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는 나라 안의 정국은 수상하고 신산하기 짝이 없어 추위는 더 진하게 감각된다. 하지만 대저 삶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흐르고 내 둘레의 생도 그럴 것이다. ‘이번 생은 내내 불편할 것’이라면서 ‘가난은 다만 불편할 뿐이고 사랑은 또 은유처럼 오거나 가는 것’이라 했던 김경주의 시가 가슴에 스친다. 12월의 저녁거리를 걸으며 몇 남지 않은 가족에게 미안하고 부채감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그래도 백화점 앞 12월의 나무에는 희망인지 현혹인지 모를 꼬마전구의 무리가 쉼 없이 반짝인다. 탁상달력 다닥다닥 메모된 12월의 틈바구니에서 누군가는 잠을 설치고, 누구는 술에 취해 거리를 비틀거릴 것이며, 또 누군가는 기도로 밤을 지새울 것이다. 이러할 때 누구는 술 마시고 노래하는 분답한 송년모임을 단 한 건도 갖지 않겠노라고 선언했지만 그조차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소시민의 삶이다. 나는 무엇을 할까? 해답은 없고 질문은 생경하기만 하다.

해결책은 혹평마저 수용하는 것

해결책은 혹평마저 수용하는 것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경기도 평택역 뒷골목에 있는 한 떡볶이집. 이 집 사장은 떡볶이 판매로 23년 동안 한우물을 파온 베테랑이다. 고향인 전남 해남의 고춧가루를 기본으로 양념장을 직접 만들 정도로 식당 운영에 정성을 쏟았다. 이 정도 경력에 이 정도 정성이면 백종원(기업인)도 감탄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떡볶이 맛을 본 백종원은 이때까지 자기가 먹어본 떡볶이 중 제일 맛이 없다고 혹평했다. 그 혹평은 혼자만 내린 것도 아니었다. 같이 시식해본 배우 정인선의 평가도 마찬가지였다.최근 방영된 SBS 프로그램인 ‘백종원의 골목식당’ 한 장면이다. 이 프로그램은 그동안 인기만큼이나 크고 작은 문제들이 불거져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몇몇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을 2년 가까이 지속해온 건 분명 이유가 있을 터다. 그 이유를 떡볶이집에서 찾았다.좋은 재료를 가지고 정성을 다해 양념장을 만들었던 이 떡볶이집 사장은 시식자들의 맛이 없다는 냉혹한 평가를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때까지 몰랐다. 왜 이제야 가르쳐 주느냐”며 웃을 정도로 악평을 겸손하게 받아들였다. 이쯤이면 문제는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된 떡볶이의 맛을 찾는 해결책은 나의 잘못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백종원의 요청에 이미 정성들여 만들어놓은 떡볶이를 전부 다 덜어내는 것도 불평 한마디 없이 해냈다.백종원은 주인이 만든 양념장을 바꾸고 레시피를 새로 짰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고추장과 간장으로 간을 맞춘 새로운 떡볶이를 만들었다. 크게 변화를 준 것도 아닌데 맛에서는 확연한 차이가 났다.외부의 복잡했던 메뉴판도 읽기 쉽고 깔끔하게 정리했다. 주인은 식당 외부의 가림막을 걷어내도 불만을 나타내지 않았다. 자신의 식견이 부족했음을 과감하게 인정하고 솔루션(해결책)을 겸허하게 받아들였다. 그러자 변화가 일어났다. 떡볶이집 맛에 대한 호평이 이어졌다. 손님들이 줄을 이었고 추가주문도 크게 늘었다.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완판도 처음으로 해냈다.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한 사람을 믿고 받아들인 결과였다.반면 같은 골목의 수제돈가스집 사장은 그렇지 않았다. 좀처럼 백종원과 의견 차이를 좁혀나가지 못하는 듯 보였다. 방송사 홈페이지 프로그램 예고편을 보면 먼저 맛을 잡아야한다는 지적에 여전히 자신만의 차별화된 맛을 고집했다. 잘못된 서비스 관행이나 맛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쉽게 바꾸지 않는 편이었다.간혹 지나친 자부심이 자신만의 착각인 줄 모르는 경우가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도 종종 그런 경우를 보게 된다. 자부심이 아집의 또 다른 말인지 모르는 경우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의 다른 이야기에서도 제안한 해결방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의 고집을 피울 때는 좋은 결과를 보여주지 못했다.그래서 냉정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가혹하다싶을 정도의 악평에도 이를 수긍하고 받아들인 떡볶이집 사장의 태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뼈아픈 지적을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가짐이 매출증대라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해결책이라도 이를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달린 문제였다.무대를 골목식당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겨 보자. 지금 당장 솔루션이 필요한 곳이 평택역 뒷골목 식당뿐이겠는가. 경제상황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데 정치마저도 엉키고 있다. 그런데도 남 탓만 하고 있다.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마저도 겸손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답답하게 꼬인 실타래를 풀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나부터 스스로 돌아볼 줄 알아야 해결된다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어서다. 오히려 고집을 자신의 소신이라고 포장시켜 억지를 부려서다.특히 소시민들이 가장 답답해하는 것은 얼어붙은 경제상황을 두고 많은 전문가들이 진단을 내리고 있음에도 정책당국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골목식당 프로그램이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문제를 짚어내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면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식당 사장들의 마음가짐 때문이다. 그래서 해결사 백종원보다 혹평을 받아들이는 그들에게서 더 많이 배우는 것이다.

길어지는 결혼생활, 늘어나는 황혼이혼

길어지는 결혼생활, 늘어나는 황혼이혼윤정대변호사과도한 단맛에는 쓴 맛이 존재한다. 단맛이 입안에서 사라질 때 쓴 맛이 남듯이 인생도 단맛과 쓴맛의 아이러니-모순으로 가득 차있다. 그 중의 하나가 이혼이다. 아담과 이브의 행복한 결혼의 결말이 이혼이라니! 누구나 결혼을 할 때는 이혼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통계에 따르면 2018년 혼인건수는 25만7천 쌍인 반면 같은 해 이혼건수는 10만8천 쌍이다. 그해 결혼해서 그해 이혼하는 것은 아니므로 단순비교 하는 것은 무리지만 56만4천명이 결혼하고 21만6천명이 이혼하였으므로 결혼하는 3쌍 중 한 쌍이 이혼에 이른다고 보더라도 틀린 것은 아니다. 이혼은 결혼 초반에도 많이 하지만 20년 이상 혼인생활을 한 부부의 이혼율이 가장 높다. 오래 함께 산다고 해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쌓인 것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살아오면서 문 정부의 구호인 적폐처럼 불만이 오래 동안 누적돼 이혼에 이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제 이혼법정에서 황혼이혼 부부들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다. 며칠 전 이혼법정에서 본 풍경이다. 젊은 여자 판사 앞에서 70대 부부가 서로를 비난하고 있었다. 원고석에 있는 할머니는 화장을 해서인지 모르겠지만 혈색이 좋고 통통하게 보였다. 반면에 피고석에 앉은 할아버지는 키는 크지만 구부정했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남편이 평생을 술을 마시고 바람을 피웠다는 것이고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아내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고 자신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 가족들을 부양했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뭔가 목소리가 기어 들어가고 수세에 몰려 있는 반면 할머니의 목소리는 더 크고 더 단호하고 확신과 자신감에 차 있었다. 법대 위의 판사는 여기는 싸우는 곳이 아니라 재판을 하는 곳이라고 말했지만 할머니의 할아버지에 대한 비난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대부분 변호사들은 이혼 사건을 맡아 가정법원에 드나든다. 이혼이 자주 벌어지는 일이고 협의이혼이 아니라 소송으로 이혼하는 경우가 전체 이혼 건수의 1/3 정도이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이혼사건을 많이 맡는 변호사라고 하면 부정적으로 본다.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부부가 이혼하도록 부추기는 것으로 의심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혼을 원하는 의뢰인에게 이혼사유를 찾아주려는 변호사는 있지만 이혼하라고 권유하는 변호사는 없다. 이혼을 권유한다고 이혼하는 사람도 없다. 결혼 초반에 새로운 출발을 원하여 이혼을 원하거나 오랜 결혼에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이혼을 하는 것일 뿐이다. 이혼을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협의이혼과 재판상 이혼이다. 협의이혼은 소송을 거치지 않고 부부가 합의하여 이혼하는 방법이다. 협의이혼을 하고자 하는 부부는 먼저 가정법원에 이혼의사확인신청을 하면 가정법원은 부부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는 경우는 3개월, 미성년 자녀가 없는 경우는 1개월의 숙려기간이 지난 후 이혼의사확인서를 발급해준다. 부부 중 한쪽이라도 이 이혼의사확인서를 첨부하여 관할 시, 구, 읍, 면사무소에 이혼신고를 하여야 법률적으로 이혼한 것이 된다. 그런데 가정법원으로부터 이혼의사확인서를 발급받더라도 이혼신고를 접수하기 전에 부부 중 한쪽이라도 시, 구, 읍, 면사무소에 미리 이혼의사를 철회하면 이혼의사확인서는 효력을 상실하여 원점으로 돌아간다. 재판상 이혼은 부부 중 한쪽 또는 쌍방이 이혼사유를 들어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이다. 법원이 이혼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이나 이에 준하는 결정을 하면 판결이나 결정을 받은 때에 법률적으로 이혼한 것이 된다. 이혼신고는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하다. 도중에 이혼소송을 취하하거나 패소 당하지 않는 이상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 이혼 재판을 마치고 범어동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선배 변호사와 같이 오게 됐다. 선배 변호사는 “원래 부부는 전생의 원수끼리 만난다는 말도 있다”면서 이야기를 덧붙였다. TV에서 노부부들이 나와 상대방이 설명을 듣고 단어를 맞추는 프로그램인데 아마 답이 백년해로였던 것 같았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당신과 나 사이”라고 설명하니 할머니가 “웬수”"라고 대답하여 당황한 진행자가 네 글자라고 알려 주었더니 할머니는 “평생웬수”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수명이 늘어나면서 결혼기간도 늘어나고 있다. 결혼기간이 늘어남에 따라 어쩌면 결혼생활이 지루한 일이 되고 불만이 더 많이 쌓여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혼생활이 길어질수록 배우자에 대해 더 관대하고 더 현명하게 대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 시대의 역설

우리 시대의 역설/ 제프 딕슨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작아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어졌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지혜는 모자란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너무 분별없이 소비하고 너무 적게 웃고 너무 빨리 운전하고 너무 성급히 화를 낸다. 너무 많이 마시고 너무 늦게까지 깨어있고 너무 지쳐서 깨어나며 너무 적게 책을 읽고, 텔레비전은 너무 많이 본다. 그리고 너무 드물게 기도한다. (하략)........................................................ 1999년 4월20일 미국 콜로라도의 작은 도시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히틀러가 세상에 태어난 날이었다. 평소 학교에서 따돌리고 놀림을 받곤 했던 두 학생이 자신들을 무시한 급우들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수백발의 총알이 난사되면서 13명의 무고한 생명을 한순간에 앗아갔고 그들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끔찍한 이 사건소식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이 뉴스를 접한 호주 콴타스 항공의 최고 경영자 제프 딕슨은 글 하나를 인터넷에 올렸다. ‘우리시대의 역설’이었다. 우리 모두를 돌아보게 했던 이 글은 삽시간에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한 줄씩 덧보태어져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의 반향이 컸던 것은 세계인들이 그만큼 폭넓게 공감했다는 뜻이다. 당시 21세기 진입을 코앞에 두고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 듯했지만 한편으로 우리의 삶은 헛헛해져만 갔다. 좌표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들의 양면적 자화상을 이 시는 아프게 꼬집었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행복해져야 마땅할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하다. 어찌된 까닭일까. 물질의 풍요는 행복과 비례하지 않고 돈이 행복을 결정할 수는 없다. 물질적인 기반은 행복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필요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물질적 만족 없이 행복이 담보되기는 어렵다. 수년 전 부탄 총리가 유엔총회에서 국민총생산지표를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으로 대체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는 사람들이 물량적 부의 추구로 인해 자기 파괴적 행동을 하고 있다며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GNH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탄은 히말라야 산맥 동쪽에 있는 인구 70만 명의 작은 산악 국가로, 국민소득은 2천 달러도 안 되지만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국민의 행복지수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진 나라다. 부탄은 1972년 이후 GNH를 국정의 기본철학으로 삼고 있어, 부탄 국민의 97%는 현재 행복하다고 말한다. 미국의 한 경제학자도 “경제성장(GNP)과 행복수준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논문을 발표하며 GNP를 대체할 새로운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롱경제학이지만 거시경제를 짧게 공부한 내 소견으로도 공감이 가는 제안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경제성장의 과실이 고소득층에게 편중되는 양극화가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흐름은 시간이 갈수록 빨라졌고 2008년 이후에 가속화되었다. 양극화 현상을 방치하면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게 뻔하다.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좀 더 너그러워지고 겸손해져야 양극의 격차는 좁혀질 수 있을 것이다. 나 홀로 잘 사는 시대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