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광대놀음, 누구를 위한 가면인가?

김시욱에녹 원장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리는 늘 정상인이라는 자의식 속에서 세상을 보려한다. 그 세상은 늘 온전한 듯 보이지만 비리와 권모술수 그리고 권력의 역겨움으로 가득 차있다. 정돈된 정장차림으로 정의와 국민을 앞세우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그들의 모습은 ‘아귀’와 다름없다. 국민의 혈세가 자신의 것인 양 탐욕으로 가득한 그들은 앞 다퉈 자신의 입지와 영달을 꿈꾸며 가지려 한다. ‘테스형’을 목놓아 불렀던 어느 예인의 말처럼, 국민을 위한 진정한 권력자는 이 땅에 없었는지 모른다.이런 답답함 속에서 하회탈춤의 이매(바보)가 절실히 필요하다. 비정상인이 바라보는 세상이 오히려 더 솔직한 현실이 되는 까닭에 서민을 위한 광대가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권력과 금전의 상층부에서 부녀를 희롱하는 중과 선비와 양반을 풍자하며 서민의 카타르시스를 불러올 그 누군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것이 시대를 내려온 광대놀음의 뜻이었고 서민의 풍요와 안위를 걱정한 각 지역의 민속놀음이었다. ‘테스형’으로 대변되는 예인의 노랫말과 일성이 대다수 국민의 카다르시스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진영논리에 매몰돼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목소리를 높이던 그들은 누구였던가. 현실감각이 떨어진 체 권위와 ‘보여주기’에 익숙한 바보 아닌 바보들이 위정자가 아니었던가.현직 법무부 장관인 추미애씨가 두 번째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정계와 재계의 광풍으로 번질 라임 옵티머스 사태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그 명분이다. 단초가 된 것이 일반적으로 첩보 수준인 스모킹 건이 아니라 라임 전 회장 김봉현의 옥중서신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의 금품수수 의혹으로 시작된 라임사건이 이제 여야의 생사가 걸린 문제로 공방을 주고받고 있다. 진실은 분명코 어디엔가 자리하고 있겠지만 구속된 피고인의 ‘말’에 좌지우지되는 대한민국 법치의 현실이 안타깝다. 실체적 진실의 발견과 정의 구현이라는 크나큰 명분을 앞세운 ‘내 편 살고 네 편은 죽어야 한다.’는 진영논리가 될까 두렵다.언론보도에 따르면 추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사 지휘 및 감독권을 박탈한 사건은 총 5가지다. 라임 관련 1건, 윤 총장 가족 관련 3건, 윤 총장 측근으로 꼽혔던 윤대진 사법연수원 부원장의 친형 관련 1건이 그것이다. 추 장관은 검찰 출신 변호사가 구속 피고인에게 ‘윤 총장에게 힘을 실어주려면 청와대 행정관으로는 부족하고 수석 정도는 잡아야 한다. 총장에게 보고해 보석으로 재판을 받게 해주겠다며 회유·협박했다는 의혹, 검찰총장이 수사팀 검사 선정에 직접 관여하고 검사장 출신 유력 야권 정치인에 대한 구체적 비위 사실을 직접 보고받고도 여권 인사와는 달리 제대로 된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고 보고가 누락되는 등 사건을 제대로 지휘하지 않았다는 의혹’ 등을 이유로 들었다. 또 현직 검사들의 향응 접대 및 금품 로비 의혹도 구체적 제보를 받고도 관련 보고나 수사가 일절 누락됐다고 주장했다.보도된 내용대로 행간을 읽어 보면 참으로 재미난 사실을 알 수 있다. 라임 옵티머스 전 회장 김봉현은 초기 법정 진술에서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에게 금품을 제공했다고 증언했다. 그것이 도화선이 돼 여권 실세와 청와대로 불똥이 튀려하자 김봉현의 ‘옥중서신’이 등장한다. 그 내용은 검사의 회유와 유흥접대, 그리고 검찰총장이 배경으로 있는 시나리오가 중심이었다. 옥중서신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흐름이다. 이후, 야권 유력인사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여권은 역공을 시작한다.이젠 정치권 전체의 블랙홀이 되면서 이전투구의 양상을 띠고 있다. 이와 동시에 추 장관은 수사 지휘서를 통해 마치 수사결과를 발표하듯 사실관계를 기정사실화하고 김봉현 전 회장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인용했다. 수사과정에 있는 범죄사실을 구체적이고 피의사실을 확정하듯 쓰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다. 전직 판사 출신인 추미애 장관이 모르지 않을 것임에도 ‘일부 사실로 확인됐다’고 적은 이유는 무엇인가. 라임 사태를 조사해 오던 검사와 조사관 모두가 일순간에 교체됐다. 검찰개혁과 공수처 설치라는 큰 틀에서 만들어지는 춤사위라면 순수한 의도로 볼 수 없다. 개혁은 정의와 공정을 위한 수단이 돼야 하며, 정의와 공정은 정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위한 것이 돼야 하기에 그러하다.이미 광대놀음은 시작됐다. 한바탕 웃음으로 어우러지는 춤사위이길 간절히 소망하며 아집과 편견 속에 만들어지는 가면 속 놀음은 결코 국민을 감동시킬 수 없음을 명심하길 바란다.

방파제/ 양희영

참말로 징허다잉/ 난전에 생선을 펴며//비리고 비린 몸내/ 또 비린 하루를 연다// 썩을 것!/ 씽씽한 그 말이/ 너울파도 밀친다「좋은시조」 (2020, 봄호)양희영 시인은 충북 음성에서 출생해 2017년 「좋은시조」 신인상 시조 당선으로 등단했다. 그는 따뜻한 성정의 시인이다. 한없이 고운 눈길로 자연과 사물과 사람을 바라본다. 자연의 변화로부터 사람살이의 진정성을 떠올리고, 한 마리 직박구리의 끼니로부터 소외된 이웃의 공복을 조심스레 환기시킨다. 우후죽순처럼 솟는 아파트로 말미암아 추억의 공간이 소멸되는 것을 아파하고, 떠나버린 생명에 대한 애틋한 회억과 바다와 더불어 한평생 살아온 한 노인의 삶을 조곤조곤 들려준다. 이처럼 양희영 시인은 태생적인 서정 시인이다.‘방파제’는 단시조로서 간명하다. 참말로 징허다잉, 하면서 난전에 생선을 펴며 비리고 비린 몸내로 또 비린 하루를 여는 것을 눈여겨본다. 징허다잉, 이라는 입말에서 삶의 애환을 읽는다. 징그럽다는 방언이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며 눈길을 끈다. 몸내가 비리고 비리듯이 비린 하루를 그래도 마음을 다잡아서 시작하는 일이 느껍기까지 하다. 그리고 한 마디 툭 내뱉는 말 썩을 것!, 이라는 씽씽한 그 말은 도저한 힘이 돼 너울파도를 확 밀쳐버린다. 그럴진대 어찌 주어진 하루가 귀하지 않으랴. 복되지 않으랴. 방파제만 방파제이랴. 힘 있게 내뱉는 입말이 곧 방파제가 돼 거친 파랑을 몰아내어 버린다. 이처럼 말에는 힘이 있다. 화자는 그것을 직시하고 한 편의 단시조로 직조했다.그는 ‘우수리스크 아리랑’에서 연해주 고려인과의 만남을 노래하고 있다. 그 현장에 함께 하였기에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우리말을 못해 미안합니다, 첫말에 당신 말을 몰라 나도 미안합니다, 라고 답하는 장면은 눈물겹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속으로 터진 울음을 웃음으로 삼켰지, 라는 구절이 나온 것이다. 예리나 그 이름에 쓰는 말이 달라도 우리들의 노래인 아리랑은 같아서 툭 터진 물꼬를 따라 우리 사이 흐르던 그날을 함께 했던 이들은 실감했다. 이리저리 꿰맞춘 절반의 문장들이 겉돌던 눈빛과 촉촉한 눈 맞춤으로 잠깐이라도 한 핏줄 한 마음이던 날, 너와 나 인연을 모아 매듭으로 엮었던 것이다. 갖가지 아픈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그들이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눈빛으로 정을 나누면서 민족애를 느꼈다.여정을 같이 했던 김양희 시인은 ‘풀벌 아리랑’이라는 에세이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조국을 떠난 그들은 지난한 삶의 연속이었다. 한 곳에 발붙여 적응하려고 하면 떼어내고 또 살만하면 떼어내어 황무지로 강제이주 시켰다. 이 모든 역경을 극복한 그들은 3~5세가 우수리스크에 거주하고 있다. 고려인들에게 아리랑은 힘이며, 위안이며, 그리움이며, 흥이다. 노래로 눈물을 훔치며 뚜벅뚜벅 오늘까지 걸어왔다. 대담 자리를 마치며 나는 고려인 여성의 손을 잡고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러자 러시아어만 구사하던 그의 입에서 곱소!, 라는 우리말이 터져 나왔다. 귀가 번쩍 열렸다. 얼마나 반갑고 정겹던지. 그것도 타국에서 한국말을 할 줄 모를 거라고 단정 지은 고려인에게서 들었으니. 곱소, 는 그가 어릴 때 할머니에게서 들은 말이라고 했다. 할머니 주머니에서 손녀 주머니로 옮겨진 그 말은 잃어버리지 말라는 신신당부 없어도 기억하는 말이었다.양희영 시인은 ‘우수리스크 아리랑’이라는 시조에서 이국땅 민족의 애환을 되살려 내었다. 이러한 작업은 곧 너울파도를 극복하는 방파제가 되리라고 믿는다. 이정환(시조 시인)

당직변호사

▲23일 지성옥 ▲24일 류경재 ▲25일 류길룡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갈 길 먼 스마트워크

이부형현대경제연구원 이사대우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참으로 많은 변화들이 우리 주변에서 발생했다. 그 중에서도 지금까지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 향후에도 크게 변화하지 않고 지속될 트렌드를 딱 한 가지만 꼽으라면 역시 비대면 비접촉을 중심으로 한 언택트(untact) 현상을 들 수 있겠다. 이는 소비와 생산은 물론 각종 사회적 활동에 이르기까지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방대하고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우리 일상의 근로환경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근로자나 기업 모두의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기도 한데 이른바 스마트워크(smartwork)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스마트워크는 통상 재택근무나 이동근무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 업무환경이 말하는데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경영활동을 유지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필수불가결한 인사노무관리 수단으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다시 말하자면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근로자들 스스로가 재택근무에 대한 만족도가 높고 업무 효율성 또는 생산성이 향상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어서 근로자나 사용자 측인 기업 양측 모두 코로나19 팬데믹의 희생양이 되지 않아도 됨은 물론 재택근무로 인한 이점이 상당히 높다고 봐야 할 것이다. 실제로 한 글로벌 조사업체의 재택근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재택근무로 인한 생산성 제고 효과만 연간 근로자 1인당 1.4만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물론 출퇴근 시간이 그만큼 줄어드니 기름이나 인쇄용지 등을 적게 쓰는 등 지구환경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이러다 보니 기업들은 생산성 개선 효과의 내재화, 전사 차원의 비용 절감 등에 재택근무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예로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페이스북이나 구글 등은 홈오피스 구축 비용을 지원하는 한편 육아휴가 기간 연장과 수당을 지급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주거비 등 생활비가 적게 드는 지역으로 이주하는 직원들의 급여를 삭감하는 대신 이를 통해 마련한 기금으로 재택근무 지원 비용으로 활용하는 이른바 급여지역화(pay localization) 전략을 도입한 기업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만일 국내에서도 이런 제도들이 도입될 수만 있다면 기업 경영에도 도움이 됨은 물론이요 근로자의 웰빙이나 육아 및 간병 시간 확보, 감당하기 어려운 집값 대응 등등 많은 사회적 니즈를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이 되지 않을까 하고 기대도 해 본다.하지만 그전에 먼저 뛰어넘어야 할 큰 산들이 있다. 그 중 가장 큰 것은 역시 스마트워크 도입을 통해 기업이 얼마나 생산성 개선효과를 누릴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까지 나온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근로자 스스로는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관리자나 기업 입장에서는 크게 변화된 것이 없다는 평가여서 스마트워크 도입을 위한 추가적인 투자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결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또 하나의 큰 산은 인사관리 측면이다. 근태관리에서부터 성과 평가 및 관리, 보상 지급 등에 이르기까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팀원이나 조직 구성원 간 의사소통 문제는 인사관리 측면을 떠나 전사 생산성 측면에서도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시나리오별로 적절한 대안이 마련돼 있지 않으면 성공적인 재택근무를 보장하기 어려워진다.어떻게 보면 넘어야 할 가장 시급하고 큰 산은 경영관습일 수도 있다. 경영진 또는 관리자의 자세나 조직의 관성 등이 변화하지 않는 이상 재택근무와 같은 스마트워크가 전사 차원에서 장려되거나 적극적으로 활용되기는 매우 힘들다. 특히 재택근무자에 대한 조직 내부의 곱지 않은 시선은 스마트워크 확산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이외에도 많은 장애요인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모처럼 확산되고 있는 스마트워크가 제대로 자리잡아 기업 경쟁력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라본다.

속눈썹이 눈을 찔러요

이동은리즈성형외과원장오전 진료를 마치고 점심시간에 잠시 짬을 내서 다른 일을 보고 있는 사이, 앳된 얼굴의 어린 여학생과 어머니가 함께 찾아왔다.“어떻게 오셨나요?” “쌍꺼풀 수술을 상담하러 왔어요. 속눈썹이 눈을 찔러서 눈을 자주 비비다 보니 눈동자에 상처가 너무 많이 나서…. 안과 의사 선생님이 쌍꺼풀 수술을 하면 좋아진다고 하셔서요.” 라고 한다.자세히 살펴보니 위와 아래쪽의 눈꺼풀이 마치 두꺼운 띠처럼 눈동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두꺼운 눈꺼풀에 밀려, 위아래 속눈썹이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 눈을 향해 자라고 있었다. 이렇게 속눈썹이 눈동자를 향해 자라나는 것을 안검내반증이라고 한다.속눈썹이 눈을 찌를 때마다 눈을 비벼서 눈가의 피부는 벌겋게 변해 있었고, 항상 눈동자와 눈 주위 피부가 충혈된 것처럼 보였다.위 아래 눈꺼풀 모두를 교정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곧장 수술 예약을 했다.수술 당일 눈을 자세히 살펴보니 두꺼워진 눈꺼풀 근육으로 인해 전체의 속눈썹이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 있었고, 특히 안쪽 속눈썹이 더 심했다. 그래서 위 아래 눈꺼풀을 모두 교정하고 특히 안쪽 속눈썹의 재발을 막기 위해 앞트임도 함께 해 주기로 했다.안검내반증 교정 수술은 심하지 않으면 간단하게 해결할 수도 있지만, 정도가 심할 경우에는 복합적인 수술이 필요하다.어린 학생이라 수술 후 흉터가 많이 보이지 않도록 속눈썹 바로 아래 피부에 세심하게 절개를 한 다음, 그 주위의 남는 피부와 두꺼워진 눈 주위 근육들을 제거하고 속눈썹이 바깥 방향으로 충분히 뒤집어 지도록 교정했다. 앞트임으로 안쪽 속눈썹도 함께 교정해 줬다.위아래 속눈썹이 바깥 방향으로 뒤집어 져서 눈에 닿지 않을 만큼 충분할 정도로 교정이 된 것을 확인하고 나서 수술을 마쳤다.수술 직후라서 눈꺼풀의 부기 때문에 예상보다 많이 뒤집어져 있기는 했지만, 이제 더 이상 속눈썹이 눈을 찌르지 않아서 눈이 많이 편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문제없이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눈동자가 불편할 일도 없어졌으니 이제 더 이상 눈을 비벼서 손상이 갈 일도 없어진 것이라 다행이다.실밥을 뽑던 날, 이제 어느 정도 부기도 빠지고 쌍꺼풀 모양도 제대로 나오게 되자, 얼굴 전체의 인상이 달라졌다.속눈썹이 눈을 찔러서 항상 벌겋게 달아 올라있던 눈이 이제는 크고 뚜렷해진 쌍꺼풀에 자신감 있는 눈매로 변화하면서 일상생활이 활기차게 됐다고 하니 이 학생에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내 마음도 뿌듯해 졌다.속눈썹이 눈을 찌르는 안검내반증은 여러 가지 원인과 형태가 있을 수 있다.흔히 성형외과를 찾아오는 환자의 대부분은 주로 중년 이상에서 노화로 인해 눈꺼풀 조직이 처져 내려와 속눈썹이 눈을 찌르게 되는 노인성 안검내반증이 대부분이고, 이런 경우 그 증상이 주로 윗눈꺼풀의 바깥쪽에 많이 생긴다.이와는 달리 어린 나이에도 생길 수 있는 기계적 안검내반증의 경우 눈꺼풀 주위의 근육이나 조직에 이상이 있어서 생기는 경우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고 위아래 눈꺼풀에 상관없이 생기고 주로 안쪽 눈꺼풀에서 많이 생긴다.교정 방법은 원인에 따라 조금 다른데, 노인성의 경우 눈꺼풀만 교정할 경우 인상이 강해지는 경우가 흔해서 눈꺼풀 수술과 함께 눈썹을 당겨 올려주는 수술을 함께 해 주는 것이 얼굴 전체의 인상을 좋게 하는 방법이다.기계적인 원인일 경우 그 원인을 찾아서 해결하고 속눈썹이 바깥쪽을 바라보도록 교정해 주는 방법이 적당하다. 경우에 따라서 앞트임을 해 주는 것이 안쪽 속눈썹을 교정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가보지 못한 길/ 이순우

~첫사랑의 슬픈 자화상~…첫사랑 여인으로부터 뜻하지 않은 편지를 받았다.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가슴이 뛴다. 한 살 아래인 영희는 단발머리 소녀였다. 나는 홀어머니에 찢어지게 가난한 집 아들이었고, 영희는 고향 인근에서 떵떵거리는 부잣집 딸이었다. 그 가족은 내가 영희와 사귀는 걸 싫어했다. 궂은일을 하는 어머니와 지독한 가난이 허물이었다. 막 봉투를 열려는 순간 문자가 왔다. 고모가 위암으로 입원했다고 한다. 고모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분이다. 즉시 병원으로 갔다. 마침 과장이 애제자였다. 연세가 높아 병세를 장담하기 힘들단다. 위암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고모는 서문시장에서 건어물장사를 했었다. 중3때 대구 유학을 주선하고 학창생활 내내 도움을 주었다. 고1 여름방학 때 영희를 길에서 만났다. 대구의 고교로 진학하길 바란다면서 악수만 하고 헤어졌다. 고2 여름방학 때 뒷집 아이를 메신저로 활용하여 영희를 당집으로 불러냈다. 그날 밤 은은히 풍기던 찔레꽃 향기가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있다. 고모의 위암수술이 끝났다. 해질 녘에 빈집으로 돌아왔다. 그제야 영희 편지를 펼쳤다. 핸드폰번호만 적혀있었다. 전화하라는 말인가. 왠지 기다리지 않을 것 같다. 첫 휴가 때였다. 그리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영희는 돈 많은 재일교포에게 시집갔다고. 신부얼굴에 눈물자국이 있었다는 말을 뒷날 전해 들었다. 그 말을 듣고 입대전날을 떠올렸다. 군대생활 잘 하라는 말과 제대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을 교환했다. 영화를 보고 데이트를 하다가 통금 시간을 넘겨 여관 신세를 졌다. 그날 밤 우리는 옷깃 하나 닿지 않았다. 옆방의 얄궂은 소리에도 유혹되지 않고 꿋꿋이 버텨내었다. 두려워서였는지, 확신이 없어서였는지. 그러한 단초를 스스로 제공한 줄 모르고 휴가 때까지 눈이 빠지게 편지만 기다렸다. 신부의 눈물이, 영희 탓이 아닌, 나의 잘못을 입증하는 증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찢어진다. 고모의 병세가 호전되자 관심이 영희로 옮아갔다. 폰 번호가 적힌 편지를 찾았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영희 쪽에서 소식이 오길 기다렸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영희의 일로 만나고 싶다는 문자가 왔다. 약속 시간에 오라는 곳으로 갔다. 50대쯤 되어 보이는 여인이 나왔다. 말기 암 환자였던 영희를 돌보았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마지막까지 폰을 들고 전화를 기다렸다고 한다. 편지 한 통을 건넸다. “세월이 지나도 오빠는 낯설지 않아요. 가엽게 여기시고 마음 푸세요.”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첫사랑의 애틋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첫사랑이기에 순수하고 아름답지만 처음 경험하는 감정이기에 매끄럽지 못하고 실수투성이다.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은 결코 빈말이 아닌 셈이다. 세월이 한참 지나고 첫사랑을 회고해보면 바보 같은 자신이 부끄러워 얼굴을 감싸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아둔한 머리를 쥐어박기도 한다. 그래서 남에게 첫사랑 이야기를 털어놓자면 자신의 한심한 판단력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가보지 못한 길」에도 결정적 실수가 노정된다. 여름방학 때 당집에 나와 자신의 마음을 보여준 영희에게 그에 상응하는 확고한 결심을 보여줄 한방이 없었다. 또 입영전야에 확신을 심어줄 용기 있는 행동을 기대했던 영희에게 오히려 수치심을 느끼게 했을 수 있다. 마지막까지 영희를 실망시킨 주인공은 사랑엔 젬병이다.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해 되돌아보고 아쉬워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오철환(문인)

당직변호사

▲22일 조정아 ▲23일 지성옥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일본유학은 죄가 아니다

오철환객원논설위원 일본유학을 갔다 온 사람은 친일파, 민족반역자이고 이들을 단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일본유학을 갔다 온 사람은 친일파이고 친일파는 민족반역자이며 민족반역자는 단죄해야 한다는 논리다. 논리학에서 어떤 명제가 참이라면 그 대우도 참이다. 일본유학을 다녀온 자는 반역죄인이라는 논리가 참이라면 그 대우도 참이다. 처벌받지 않으려면 민족반역자가 되지 말아야 하고 민족반역자가 되지 않으려면 일본유학을 가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가 참이란 의미다. 그런데 처벌받지 않으려면 일본유학을 가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는 상식적으로 참일 수 없다. 원명제의 대우가 거짓이라는 의미다. 대우가 거짓이라면 대우의 대우는 당연히 거짓이다. 대우의 대우는 원명제다. 즉 대우가 거짓이면 원명제도 거짓이다. 복잡한 논법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일본유학을 갔다 온 사람을 단죄해야 한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우리나라가 이 정도라도 발전한 것은 뒤늦게나마 외국의 학문과 문물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받아들인 성과다. 유럽의 중세가 가톨릭에 갇혀 살았던 암흑기였다면 중국만을 선진국으로 섬기고 성리학을 절대적 진리체계로 신봉하던 조선시대는 우리 역사의 암흑기였다. 두꺼운 벽을 허물고 빛을 비추어 미몽에서 깨어나게 한 사람은 새로운 학문에 눈 뜬 선각자였다. 최초의 유학생인 유길준과 같은 해외유학파와 선진문물을 전해준 선교사들이 개화의 횃불을 들었다. 외세를 업고 추태를 보였던 친일파, 친미파, 친러파 등도 방법론에 문제가 있었고 국제정세를 오판한 잘못은 인정되지만 기본적인 애국심은 가지고 있은 듯하다. 그 누가 자기 가족, 자기 민족, 자기 나라를 사랑하지 않겠는가. 19세기 구한말의 지배계층이 좀 더 빨리, 좀 더 적극적으로 해외의 선진학문과 문물을 배우고 수용했다면 그렇게 무기력하게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진 않았을 터다. 해외유학은 단죄해야 할 죄악이 아니라 포상해야할 미덕이다. 유학 대상국은 제한이 없다. 꼭 선진국이어야 할 필요도 없고 과거의 원수라고 하여 안 될 이유도 없다. 보잘 것 없는 소국이라도 타산지석이 될 만한 유익한 문화는 존재하고, 나라를 가릴 것 없이 그 나라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는 필요하다. 개인은 선악의 개성이 있을 수 있겠지만 국가는 그 선악을 특정할 수 없고 감정이 없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불변적 성향의 개별성은 없다. 나쁜 나라는 나쁘고 좋은 나라는 좋다는 식의 가치판단이 국가의 경우엔 해당되지 않는다. 일본도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일본이라고 특별하진 않다. 현해탄을 끼고 이웃하는 일본은 고대부터 우리나라와 교류해오던 사이다. 사이좋게 지내다가도 수틀리면 주먹다짐도 마다않았다. 수시로 노략질을 일삼으며 민폐를 끼치기도 했다. 이웃나라와의 이러한 갈등관계는 영국과 프랑스, 덴마크와 스웨덴, 터키와 그리스 등 다른 나라에서도 어렵잖게 발견된다. 먼 나라는 접촉할 일이 드물고 영토분쟁이 거의 없으나 가까운 이웃나라는 늘 붙어있는 관계로 싸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닐 터다. 이웃나라는 이해가 엇갈려 싸워야 할 운명을 타고나지만 상호 내왕하면서 협력해야 할 숙명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 개인 간에도 마찬가지다. 같은 공간에서 자주 마주치다 보면 형제간이라도 얼굴 붉힐 일이 남보다 많은 법이다.강제 병합해 고통을 준 일제의 만행은 잊혀 질 수도 없고 잊혀 져서도 안 된다. 이제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난 지 75년이 지났다. 아직도 일본과 불행한 과거사에 발목 잡혀 수시로 충돌하고 한다. 이웃나라와의 위상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이제 새 역사를 써야할 때다. 미래에도 일본과 이웃하고 살아야 한다면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본과 친하다고 반역자라 해선 답이 없다. 국가 간 감정은 허상이다. 일본도 이젠 우방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 영원한 적으로 고정된 나라는 없다. 서로 이해가 갈려 돌아설 땐 돌아서더라도 그렇지 않을 땐 친구다. 더구나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지금과 달라질 개연성이 크다. 지금까진 개인이 수동적으로 국가의 일원이 되었지만 글로벌시대엔 민족이란 관념적 허구는 사라지고 국가는 대체재로 전락할 수 있다. 마음에 맞는 국가를 각자가 선택하는 세상이 올 수 있다는 말이다. 국가의 경계가 옅어지는 현상을 목도하노라면 그런 세상이 벌써 코앞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하루가 다르게 격변하는 시대에 친일파 프레임을 씌워 국민을 갈라 치는 일은 시대착오다. 시대가 변해도 유학이 죄가 될 것 같진 않다. 일본유학은 죄가 아니다.

이름값의 무게를 짊어져라  

박운석패밀리푸드협동조합 이사장 할리우드 영화 트랜스포머 시리즈에는 로봇으로 변신하는 많은 자동차가 등장한다. 대부분 유명 자동차회사의 실제 차량을 모델로 했다. 쉐보레 카마로로 변신하는 ‘범블비’, F-22로 등장하는 ‘스타스크림’, 쉐보레 ‘스파크’로 등장하는 스키즈 등이 대표적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옵티머스 프라임(Optimus Prime)은 오토봇의 총 사령관이자 리더이다. 시리즈에 따라 몇 번 교체되기는 했지만 변함없는 것은 강한 이미지를 주는 트럭으로 변신한다는 점이다.옵티머스 프라임으로 변신하는 트럭의 실제 가격도 범블비로 변신하는 쉐보레 카마로의 4대 분량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옵티머스 프라임은 차량 가격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맡아 이름값을 한다. 그 이름값은 희생정신이 강한 영웅이다.옵티머스(optimus)는 ‘가장 좋은’, ‘최고의’, ‘최선의’, ‘최적의’라는 뜻이다. 이처럼 좋은 단어가 요즘 수난을 겪으며 이름값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 사기사건 때문이다.이름값을 해야 한다는 말은 일찍이 공자도 강조했다. 논어 자로(子路)편 3장에서다. 공자는 “왕께서 스승께 정치를 맡긴다면 무엇을 제일 먼저 하시겠느냐”는 제자 자로의 물음에 “정명(正名)”이라고 답했다. 필야정명(必也正名).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는 뜻이다. 스승의 대답에 시큰둥한 표정의 자로가 “왜 하필 이름입니까?”하고 묻자 공자는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에 순서가 없고, 말에 순서가 없으면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 결국 백성들의 몸 둘 곳이 없어지게 된다”고 자로를 꾸짖었다.공자의 정명(正名)은 실제에 맞게 이름을 바로잡는다는 뜻이다. 제각각 자기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가 맡은 직책에 맞게, 이름이 나면 이름에 맞게 그 역할을 해내야 된다는 말이다.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결국엔 백성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을 느끼게 된다며 정명을 강조한 것이다.지난해 한때 ‘닉값’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는 ‘닉네임(Nickname)’값의 줄임말로 온라인 상에서 사용하는 자신의 닉네임에 걸맞은 말이나 행동을 이르는 말로 사용된다. 누군가의 행동이나 말 등이 닉네임에 어울리면 ‘닉값을 한다’고 표현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닉값을 제대로 못한다’는 등으로 사용한다.닉값을 한다(이름값을 한다)는 것은 말이나 행동에 품위를 지키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제대로 닉값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그다지 많아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끊이지 않고 나오는 정치인들의 비위와 연예인들의 반사회적인 일탈, 일부 공무원들과 기업인들의 부정행위가 판을 치고 있지 않은가. 이들에게 닉값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그래도 최소한 ‘밥값’은 해야 할 것 아닌가. 그만한 값어치를 하라는 말이다.다시 공자로 돌아가 보자. 공자는 제나라 경공의 이상적인 정치에 대한 물음에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라고 답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말이다. 곱씹어보면 무서운 말이다.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면 신하가 아니라는 말이다. 보필을 하되 바른말을 해야 할 때는 직언을 서슴지 않아야 신하답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면 임금이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직책에도 이름이 있다. 직에 어울리는 이름값을 하라는 말이다.공자의 ‘정명’이든, 요즘의 ‘닉값’이든 이름에 걸맞은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뜻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지만 이름이나 직책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나 행동으로 구설에 오르는 경우를 수도 없이 봐오고 있다. 자리마다 있는 이름이지만 거기에 맞게 이름값을 하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엔 ‘민주’, 국민의힘당엔 ‘국민’이 없다는 말은 차라리 양반이다. 분명 누가 봐도 불의인데 억지논리를 끌어 붙여 정의로 포장하고 있다. 자리와 이름을 팔아 자기 욕심을 챙기려는 사람들도 많다.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기 사건도 결국 이름을 팔아 이득을 챙기려는 사람들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들 모두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다.

김원각 시인/ 조영일

사람의 일이란 정말 모를 일이다// 종일 먼 허공을 지나는 바람처럼// 살다가 오늘 떠나는 이별 마찬가지다// 니는 오래 살아라 그 말 깨우치듯// 아무 말 없이도 열 번 백번 쌓는// 목소리 파헤쳐 봐도 바람 소리 뿐이다「설산」 (2020, 한빛)경북 안동 출신 조영일 시인은 1975년 월간문학과 시조문학 추천완료로 등단했다. 시조집으로 「바람 길」 「솔뫼리 사람들」 「마른 강」 「시간의 무늬」 「설산」 등이 있다. 그는 내용과 형식 사이에 상존하는 긴장과 상충을 감안하면서 견고한 양식적 미덕 속에서 완미한 정형미학을 이루고 있다. 또한 근원 지향의 시정신과 공동체적 사유의 결속 과정을 추인한다. 그의 문학적 성취에 대한 유성호 평론가의 평가다. 나이가 들면 더욱 쓸쓸해진다. 흔히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연륜이 깊어질수록 젊음이 부러워진다. 점점 자신감을 잃게 되고 만남의 자리가 꺼려지기도 한다. 물론 노익장들도 많다. 건강을 잘 유지하면서 열정적으로 사는 예술가들이 적지 않다. 진실로 사람의 일이란 정말 모를 일이 맞다. 종일 먼 허공을 지나는 바람처럼 살다가 오늘 떠나는 이별 마찬가지다, 라는 화자의 말에 수긍이 간다. 너는 오래 살아라 그 말 깨우치듯 아무 말 없이도 열 번 백 번 쌓는 목소리를 파헤쳐 봐도 바람 소리 뿐인 때를 화자는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고 있다. 그냥 목소리를 듣지 않고 굳이 파헤쳐 본다는 것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크기 때문이다. 제목 ‘김원각 시인’에 등장하는 시인은 친한 벗이다. 몇 해 전 타계했는데 이 시편은 그를 기리고 있다. 동도의 길을 걸으며 오랫동안 교유한 문우가 일찍 떠나버린 것을 못내 아쉬워하는 마음이 곡진하다. 진실로 종일 먼 허공을 지나는 바람과 살다가 오늘 떠나는 이별은 서로 부딪쳐서 또 다른 울음소리를 낼 듯하다. 생로병사의 길은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슬프다. 애잔한 심사를 달랠 길이 없다. 더구나 낙엽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시월 말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렇지만 아직도 열정을 품은 시인은 또 한 권의 시집을 엮어 세상에 내놓음으로써 삶이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얼마나 귀중한 정신의 소산인가? 복된 삶이 아닐 수 없다.붓을 들어 자아와 세계의 갖가지 문제를 심도 있게 시화하는 일은 필생의 업이다. 좋아서 하고 있는 일이다. 말 못할 고뇌와 더불어 환희의 시간도 적지 않다. 존재론적 성찰을 통해 삶의 진가를 맛보고 그것을 세상에 널리 퍼뜨리는 일을 하는 시인으로서는 모국어가 고맙고 함께 하는 이들이 고맙고 일이 있어 고마운 것이다. 열정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는 이상 인생은 더욱 애틋하고 각별해진다. 또한 두근두근하는 설렘을 간직하고 있어서 삶을 추동하는 힘을 얻는다.이번 시조집의 표제작 ‘설산’을 보자. 능선 너머에서 오는 바람이 찬 날 아무도 다가서지 못하는 날개를 펼치고 은빛의 차디찬 한낮 빙벽으로 서 있는 설산을 바라본다. 설산은 푸른 결기 음각한 팻말 둘러치고 한파 속에서 흰 뼈마디 드러낸 준엄한 적요의 표상이다. 그래서 절필의 막막함을 엿본다. 백지가 펄럭인다는 것은 글쓰기의 먹먹함과 막막함이 함께 클로즈업 된 장면이다. 점점 절필의 날은 가까워오는데 설산 앞에 서니 갖가지 소회가 더욱 깊어지고 있음을 자각한다. 오면 가야하고 가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 길이 인생이다. 가을이 쓸쓸하다 해도 따사롭게 내리는 볕살이 있어 밝고 환한 마음을 보듬을 수 있다. 곱게 나이든 분들을 만날 때면 닮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얼굴은 숨길 수가 없다. 한 사람의 굴곡진 궤 적이 얼굴에 다 나타난다.또다시 시작되는 하루, 한 편의 시와 함께 했으면 한다. 그렇기에 시인은 늘 붓을 촉촉이 적셔둘 일이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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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조인재 ▲22일 조정아 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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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조은희 ▲21일 조인재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바다여인숙에서/ 박숙이

나를 바다여인숙까지 끌고 간 것은 그래, 그건 순전히 몰락이었다 내가 몰락을 순순히 수락한 것도 바로 그 바다여인숙의 첫 밤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몰락과 한 몸이 된 셈이다 수락하고 보니 이렇게 편할 수 있는 걸, 나 자신을 왜? 짐승처럼 피해 다니기만 했을까 허름한 불빛이 허름한 생을 감싸줄 수 있을 것 같은, 천 날 만 날 물안개에 싸여 나처럼 글썽이는 바다여인숙, 썰물에 쓸려쓸려 눈치 하나는 빨랐다 무엇보다 나는 늘그막 숙박계의 뱃고동 같은 퉁명한 친절이 덥석,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생각된다 귀가 늙은 숙박계는 귀신같이 갈매기들의 몸부림을 손바닥 보듯이 훤히 다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바다는 대충 몇 시부터 잠에 곯아떨어지는가에 대하여, 몇 시쯤이면 동해가 해를 머리에 이고 일어서는가를, 그리고 나는 열쇠 없이도 드나들 수 있는 창이 있는 바다 한 칸을 부탁하기도 했다 내가 바다에게 몸을 맡기고 있을 동안은 몰락은 잠시 나를 피해 어디론가 꼭꼭 숨어버렸다 새벽까지도 내 가슴에, 등대처럼 환히 불이 켜져 있었던 걸 보면, 밤새도록 파도소리가 나의 살갗을 파먹도록 다만 나는 몰락하는 달빛만 아름답게 지켜보고 있었다 나 또한 그랬으면 하고, 바다여인숙처럼 홀랑 벗은 채.「대구문협대표작선집1」 (대구문인협회, 2013)몰락에 끌려 바닷가를 찾는다. 몰락은 앞을 막아서고 숨을 틀어막는다. 몰락이 바다로 이끄는 것은 끝장을 보기 위해서일 수도 있겠지만 기실은 몰락의 수용이 기다릴 뿐이다. 바다는 몰락을 받아들여서 한 몸이 되게 한다. 몰락을 받아들인 마음은 편안하다. 모두 다 포기하고 내려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까지 피해 다니기만 한 일이 바보스럽다. 그냥 담담하게 수용하고 내려놓으면 이기는 일인데 공연히 억지를 부리며 뿌득뿌득 축축하게 살아 왔다. 바다에게 배운 지혜다.시야가 탁 트인 바다를 보노라면 가슴이 뻥 뚫리고, 밀려오는 파도가 세상사의 번뇌를 확 쓸어간다. 바다의 푸른 빛깔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친구처럼 말을 걸어오는 갈매기는 부지런히 살아가는 모습을 몸으로 보여준다. 바람이 싣고 온 개펄 내음과 마음 없는 파도소리가 험한 세파에 찌든 몸을 말끔히 씻어주고 삶에 멍든 마음을 치유시켜준다. 바다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영혼을 포맷시켜주는 프로그램이다.포말로 부서지며 언제나 물안개에 싸여 있지만 바다는 생을 감싸줄 수 있는 눈치 빠른 존재다. 바다는 누구나 편하게 쉴 수 있는 여인숙이다. 온다고 해서 간을 내어줄 듯 간드러지게 맞지도 않고, 간다고 해서 말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바다여인숙이 좋다. 관심이 없는 듯, 뱃고동같이 퉁명한 배려가 오히려 매력이다. 숙박계는 비록 허술해 보이지만 바다 사정엔 손바닥 보듯 훤하다. 갈매기의 움직임, 일출과 일몰에 대한 정보도 빠삭하다.바다여인숙은 열쇠가 없어도 드나들 수 있는 자유로운 휴식처다. 바다가 보이는 창에서 지평선을 보며 파도소리와 함께 잠들 수 있다. 거기에 머무는 동안 몰락은 그 자취를 감춘다. 어두운 바다에는 등대의 불빛이 살아있고 아름답게 몰락했다가 무던하게 일어나는 달빛이 가슴 속에 와 닿는다. 어두운 새벽까지 희망의 등대가 마음을 비춰준다. 밤새도록 바다가 살갗을 파먹고 온몸을 삼켜도 아프지 않다. 태양이 떠오르고 달이 사라져도 시인은 청명한 달빛을 무심하게 지켜본다. 몰락이면 어떤가. 홀랑 벗은 채 원초적 상태로 또 다른 아침을 맞는다. 오철환(문인)

그래도 꿈은 버리지 말자

오용수한일문화관광연구소 대표 올해 추석은 코로나19로 인해 예전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 차례도 간소해 지고 오지 못한 가족들은 실시간으로 보내오는 영상을 보며 멀리서 절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생각조차 못한 일이지만 사회적 거리두기의 장기화로 온라인 회의나 모임이 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세계적으로 코로나 감염자가 3천300만 명이 넘었고, 사망자도 1만 명 이상이다. 생명과 일상을 중단시키고 관광 등 산업을 붕괴 위기로 몰아갔다. 문화예술계도 코로나 초기에는 문을 닫았다. 2~3개월이 지나며 관중 없는 공연을 시작했다. 유튜브, 개인TV 등으로 발전하더니 드디어 이제껏 보지 못한 무대 장치와 구성도 나타나고 있다.가을하늘은 맑고 높다. 몇 년 전부터 파란 하늘 보기가 어렵더니 올해는 봄부터 맘껏 즐기고 있다. 손 씻기, 마스크 생활화로 감기도 크게 줄었다. 음식도 숟가락을 같이 담그지 않고 덜어먹기가 보편화됐다. 학교 수업도 처음에는 학생이나 선생님이나 모두 당황했지만 점차 집에서 방송을 보며 공부하는 게 익숙해졌다. 대학과 사회교육도 좋은 콘텐츠를 갖춘 방송강의에 수강생이 몰린다. 온라인강의가 확대되면 학교의 빅뱅도 나타나게 될 것이다.항공사도 지난 7월 성수기에 국제선 탑승률이 97% 감소하는 상태에서 여객기를 임시로 의자를 들어내고 화물기로 활용하고 인천공항을 떠나 강원, 경상, 제주, 전라, 충청을 거쳐 돌아오는 여행프로그램이 나오자 단숨에 매진됐다. 전시회나 박람회도 온라인으로 전환하고, 축제도 랜선으로 중계돼 온라인으로 참여하고 있다.한편 자택근무를 하다 보니 미국과 거래를 하는 이들은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고 학교에 가지 않는 학생들은 조용한 시간에 몰두하고 있는지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는 집이 유난히 많다. 밤잠을 설치는 이들이 늘었고 생활리듬을 잃어버린 이도 적지 않다.또 코로나에 걸렸다 완치가 됐지만 주변에서 피하거나 꺼리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TV토론에서 마스크 착용을 비웃던 트럼프 대통령이 감염돼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이런 코로나 블루(우울증) 치유책이 음악이나 여행이다. 어려움을 겪던 음악계는 BTS, 나훈아 공연으로 길을 찾았다. 그러나 여행사는 영업실적이 성수기였던 7~9월에 전년보다 98.4%나 감소되는 등 거의 빈사상태에 처해 있다. 원래 여행은 안전이 위협을 받을 때는 즉각 중단된다. 그리고 잠잠해지면 서서히 회복된다. 그것도 안심할 수 있는 가까운 곳부터 되살아난다. 추석 연휴에 경주를 찾은 관광객이 10만 명을 넘는 등 그나마 국내여행은 힘겹게 버티고 있지만, 해외여행은 아직 꼼짝 못하고 있다. 그래도 조금만 더 버티자. 거의 때가 된 것 같다. 꽁꽁 얼어붙었던 한일 간에도 기업인은 2주 격리없이 오갈 수 있게 됐다. 또 여행을 자제해달라던 외교통상부 장관의 남편마저 해외여행을 몸소 실천하고 있지 않은가.페스트가 유럽 인구를 절반으로 만들자, 봉건제도가 붕괴되고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다. 콜레라도 많은 희생자를 냈지만, 식수(食水)의 중요성을 깨우쳐 상하수도의 변혁을 가져왔다. 코로나가 세상을 힘들게 하지만 온라인화 등 부산물도 생겨났다.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약도 만들고, 제도와 관습도 바르게 고치자. 그리고 부활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이들에게 손을 내밀자. 이제 포스트 코로나에 힘을 모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