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인생에 대한 성찰~…그는 거친 숨을 내쉬었다. 지구 종말 장면에서 그의 연기가 압권이었다며 모두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안개가 걷힐 무렵 그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촬영 현장을 빠져나갔다. 그는 단역배우였다. 스물에서 마흔아홉까지 연기를 했으나 거의 무명이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잘 없었지만 남에게 우월감을 주는 구부정한 등으로 인해 ‘절박한 등짝’ 또는 ‘아부의 등’이란 별명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연기생활 29년 만에 드디어 뜬 셈이다. 비록 조연이었지만 최후의 지구인 같은 표정 하나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 직후 그는 거짓말처럼 행방을 감췄다. 그의 차만 촬영 현장이었던 한강변 주차장에 방치되어 있었다. 차엔 그를 추적할 만한 어떤 단서도 없었다. 그는 산골의 빈집에서 외부와 연락을 끊고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동거녀에게조차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나왔다. 그가 종적을 감추자 동료, 기자, 문명비평가, 심리학박사 등이 그에 관해 나름대로 그럴듯한 분석을 내놓았다. 심층취재를 다룬 심야 TV프로도 방영되었다. 리셋증후군이란 정신질환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그렇지만 그의 실종에 대한 납득할만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자살을 했거나 스스로 잠적했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혀갔다. 경찰수사도 진전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특이한 건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자살 쪽으로 결론을 내고 시신을 찾기 위해 차가 발견된 한강을 수색했다. 그의 것으로 추정되는 운동화가 발견됐고 사건 5개월 만에 모든 수사가 종결되었다.마지막 촬영 며칠 전 밤 열두 시 쯤, 야간 촬영을 위해 한강변으로 차를 몰았다. 갑자기 길이 끊어지고 낭떠러지가 나타났다. 차에서 내려 보니 길은 정상이었다. 촬영 마지막 날 밤 열두 시 쯤, 낭떠러지처럼 느꼈던 기억을 잊고 한강변 도로를 무심히 달렸다. 갑자기 아스팔트가 솟구쳐 일어났다.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파열음과 충돌음이 동시에 울렸다. 정신을 가다듬고 앞을 보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후진했다가 다시 정신없이 달렸다. 차에 부딪친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만약 그게 사람이라면 아마 죽었을 것이다. 그는 끝이라는 걸 절감했다.한편 격리된 생활을 하던 그에게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몸의 비주얼이 점점 사라져갔다. 이전에 그런 전조가 있긴 했다. 먼저 그의 오른손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만져지는 감각은 멀쩡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곧 적응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시간이 갈수록 다른 신체부위로 점차 확대되어갔다. 왼쪽다리, 허벅지, 어깨, 얼굴 등이 사라지고 근 한 달 만에 온몸이 다 사라졌다. 그는 어디선가 살고 있을 몸을 미치도록 그리워했다.…레겐다는 전설을 뜻하는 라틴어로 어원적 의미는 ‘읽히게 되어 있는 것’이다. “지식의 속성은 보는 것이나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하는 것이다.”라는 ‘미셸 푸코’의 말을 작가는 작품 말미에 부언해 두고 있다. 그의 인생은 존재조차 없다. 그러한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 끝이 보인다. 마침내 그 자신의 실존이 그가 몰던 차에 받쳐죽고 만다. 의미 없는 비루한 몸뚱어리를 끝장낸 것이다. 어쩌면 29년간 벼루어온 일을 마침내 해치운 건지 모른다. 마지막 연기는 실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토록 감동을 준 것이다. 그는 잠적할 수밖에 없었고 거기서 몸이 점점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행인1이나 행인2로 살아온 유령인생에 대한 자신의 앙갚음이 놀랍고 처절하다. 오철환(문인)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