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한 마음들 데리고 길을 나선 적 있지. 푸르고 맑은 것들의 빛나는 이마를 바라보며 골목을 하루 종일 헤매다 어느 집 담벼락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며 시든 잎처럼 앉아 있곤 했어. 여기가 사막이군. 무수한 도시의 사막은 그렇게 발견되었던 거야. 손가락 가득 모래가 빠져나가고 나면 거대한 모래 무덤이 더 이상 갈 데 없는 누추한 시절로 허공을 붉게 물들이지.//오래도록 서 있었으며//자주 그랬으며//오늘은 어디에서 나의 죽음을 저당 잡힐 수 있을까//그럴 수 있기나 할까?//근거 없는 이유들로 살아내기엔 가슴이 너무 뭉클했고, 잠을 자면 죽은 것들이 가득했다. 마음 없이 떠돌던 모든 것들 내게로 와 잠들었다. 잠든 것들의 이마를 짚어주며, 내게 등을 보인 것들을 하나씩 지워냈다. 버려진 담뱃갑이 각을 세우고 누워있는 구석 어디쯤, 뭐 그쯤에서 쓰러지면 그만이었다. 막막함이여.「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2012, 문학동네) 전문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들 삶의 특징은 무기력하고 반복적인 일상과 거기에 매몰된 삶이다. 자유로움과 생동감, 주체적 개인으로서의 개성 등은 도시인들의 삶과 거리가 멀다. 틀에서 찍어낸 듯 똑같은 모양의 네모반듯한 주거 공간이 수십 수백 밀집한 대단지 아파트 단지의 주민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같거나 비슷한 꿈을 꾸면서 현대인의 일상은 지속된다. 그러니 “이루 말할 수 없는 부가 아니라면 다 고만고만한”(김상혁) 게 우리네 삶의 모습이고, 잘났거나 못났음을 겨루는 자체가 우스운 노릇이다. 익명성과 무표정 또한 도시인들의 특징이다. 카츠나 호크니, 줄리안 오피 등의 현대 미술가들은 단순화된 이목구비를 한 인물 일러스트레이션을 공통적으로 그린다. 이는 그러한 표정이 현대인들의 보편적 감정을 나타낸다는 데 암묵적으로 합의한 결과다.한편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양상의 양극단은 다음과 같다. 예로써 무표정을 인장처럼 사용하는 줄리안 오피가 발표한 〈Dance 3〉를 보자. 이 작품은 사운드가 포함된 LED 영상인데, 폭발적인 에너지로 셔플 댄스를 경쾌하게 추는 인물들이 율동감과 생동감을 선사한다. 작가는 우연히 틱톡과 유튜브 같은 플랫폼을 통해 셔플 댄스를 추는 사람들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동작과 속도를 강조하는 그의 작품을 보면 현대인들의 밝은 모습에 마음이 절로 환해진다.세상을 가볍게 즐기며 살아가는 정반대 지점에 이승희 시의 화자가 존재한다. “허구적인 불빛”이 너무 붉어서 “눈물 나는” 화자는, “지겨워…… 살고 싶다는 말은”이라고 중얼거리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잠든 것들의 이마를 짚어주며, 내게 등을 보인 것들을 하나씩 지워”내는 막막함이라면 심하게 막막한들 어떨까 싶다. 막막함에 가치를 부여하려는 이런 시도 따위, 아마도 시인은 또다시 지겹다고 하겠지만 말이다. 신상조(문학평론가) 김광재 기자 kjk@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