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나는 의심한다

나는 의심한다오철환객원논설위원 문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땐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었다. 문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촛불시위를 ‘촛불혁명’이라 즐겨 표현하고, 자신은 ‘촛불혁명’으로 집권했다고 자랑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와 ‘촛불혁명’이란 용어를 그냥 수사적 의미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의심을 이제야 해본다. 양자를 연계하여 지금까지의 경과를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혁명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급격한 변화가 나타나는 현상을 총칭한다. 그러나 혁명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정치적 혁명을 뜻하고, ‘시민운동, 봉기 등을 일으켜서 기존 정치체제를 급격하게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혁명은 흔히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며 지배계층 교체와 체제변혁을 추구한다. 혁명 과정에 억울한 희생과 사회혼란이 따르고, 새로운 독재자가 등장하는 경우도 많다. 부작용이 광범위하게 나타나면 혁명이 실패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혁명은 어려운 과업이다.적폐청산이란 명분으로 기득권 세력을 처단한 것과 이른바 캠·코·더(캠프, 코드, 더불어민주당) 인사로 요직을 장악한 것은 지배계층 교체다. 촛불정신을 헌법전문에 삽입하고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하려 한 것은 체제변혁을 시도한 거다. 토지국유화를 찬성한다는 여당 대표의 발언과 삼성이 20조만 풀면 1,000만원씩 200만 명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여당 원내대표의 말도 섬뜩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한 마디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이런 맥락에서 보면 지금까지 이해하지 못했던 여러 의문점들이 어느 정도 줄줄이 풀려나간다. 친중연북은 자연스럽다. 중국에 약속한 3불정책(사드를 추가배치하지 않겠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에 가입하지 않겠다, 한·미·일동맹에 참여하지 않겠다), 군의 손발을 묶어놓은 9·19 남북군사합의 등이 같은 줄기다. 9·19 남북군사합의는 전역장성들이 공산화 위험을 우려하면서 그 파기를 주장한 사안이다. 북핵을 심각하게 보지 않고 남의 일처럼 보는 점, 북핵 제재완화 역할을 자임한 점, 북미회담을 통하여 평화협정과 미군철수를 노린 점, 전시작전통제권을 조기 환수하려 하는 점 등도 역지사지하면 이해가 된다. 경제 영역에서 포용경제와 공정경제라는 이름하에 강행된 소득주도성장과 그 말썽 많은 다양한 정책 도구들도 다른 방향에서 보면 체제변혁을 꾀하는 징후로 읽힌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통한 연금사회주의, 친노동반기업 정책 등도 그 방향성은 같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필요한 희생과 사회혼란은 사뭇 혁명적이다. 독재자의 출현은 ‘글쎄’다. 부작용이 기승을 부리게 되면 혁명은 실패로 끝난다는 역사적 교훈은 엄혹하다.경제전쟁은 일본의 치졸한 선공으로 시작되긴 했지만 우리가 일본을 자극한 면도 간과하기 어렵다. 약을 올려서 싸움을 촉발한 측면이 있다. 미국 비위를 상하게 할 행동을 의도적으로 지속함으로써 한미동맹을 계획적으로 삐걱거리게 했을 지도 모른다. 미국과 일본을 자연스럽게 정리하고 새로운 체제에 부응하는 북·중·러 안보라인으로 갈아타는 고도의 계산된 전략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 해양세력보단 대륙세력과 친하긴 했다. 북한의 역할은 투정하고 비난함으로써 한통속 의심을 사지 않는 일이다. 미사일을 쏘는 등 딴전을 피우면서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고 있다. 정권핵심들의 경기어린 언행과 무력해 보였던 안보·외교정책도 뒤집어보면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볼 수 있다. 체제변혁에 대한 관심사를 따돌리는 기막힌 착상은 압권이다. 국제정세에 떠밀려서 불가피하게 체제가 수동적으로 변혁되는 상황은 국민에게 의식하고 반발할 겨를도 주지 않는다. 최근 난국을 보는 이러한 주관적 추론은 과도한 의심에 기인한 가설로 치부할 수 있다. 부디 어리석은 사람의 기우이길 진정 바란다.그렇지만 촛불시위를 혁명이라 하긴 무리다. 박근혜정권은 헌법절차인 탄핵을 통해 와해되었고, 문재인정권도 현행헌법에 규정한 국민투표를 통해 탄생됐다. 현 정권이 혁명정부가 아니라는 의미다. 따라서 현 정권은 체제변혁 권한이 없다. 헌법체제 내에서 권한을 가지며, 그 한도 내에서 제도개혁 권한만 가진다. 체제를 변혁하려면 ‘가고자 하는 체제’가 어떤 것인지 국민 앞에 그 정체를 명확히 밝히고, 그에 맞게 우선 헌법을 개정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은 체제변혁은 위헌이다.

4차산업 혁명 주인공은 대구 청년

대구시는 다음달 1일부터 4차 산업혁명 청년체험단 3기 참가자를 모집한다. 사진은 모집 포스터.대구시가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지역 청년체험단을 모집한다. 청년체험단은 내년 초 미국에서 열리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0)와 실리콘밸리를 방문한다.4차 산업혁명 청년체험단 3기 참가자는 다음달 1일부터 모집에 들어간다.3기 청년체험단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 2020에 참가하고 실리콘밸리를 방문해 기업과 기관을 둘러본다.대구시는 참가를 위한 왕복항공료 및 숙식비, 현지 프로그램 등록비용 등 일체를 지원한다. 오는 9월8일까지 홈페이지를 통해 총 30명을 모집한다.주민등록 주소가 대구인 만 39세 이하 청년은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등록 주소가 타 지역이더라도 대구 소재 대학교의 재학생이거나 창업기업(5년 이내) 대표, 예비창업자(올해 말 창업)라면 지원 가능하다.선발되면 미국 방문에 앞서 사물인터넷(IoT), 드론, 3차원 프린팅 등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교육과 1박2일 캠프 등을 진행한다. 선배 체험단원들과의 네트워킹 시간도 마련해 현지체험에 필요한 노하우를 배운다.대구시는 지역 청년들의 도전정신 함양과 글로벌시장 진출 역량강화를 위한 목적으로 2017년부터 4차 산업혁명 청년체험단을 운영하고 있다.매년 15대1 이상의 모집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이승호 대구시 경제부시장은 “청년체험단이 배출한 1~2기 60명의 청년체험단원은 기수별 연합커뮤니티를 구성해 대구 스마트시티 홍보단, 청년 미디어 서포터즈, 코딩교육 등의 후속 활동들을 이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이주형 기자 leejh@idaegu.com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오늘을 사랑하라

오늘을 사랑하라/ 토마스 칼라일어제는 이미 과거 속에 묻혀 있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날이라네/ 우리가 살고 있는 날은 바로 오늘/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날은 오늘/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날은 오늘뿐/ 오늘을 사랑하라/ 오늘에 정성을 쏟아라/ 오늘 만나는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라/ 오늘은 영원 속의 오늘/ 오늘처럼 중요한 날도 없다/ 오늘처럼 소중한 시간도 없다/ 오늘을 사랑하라/ 어제의 미련을 버려라/ 오지도 않은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 우리의 삶은 오늘의 연속이다/ (하략)- 『Past and Present』(1843) .....................................................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역사가이며 비평가이자 걸출한 지성인 칼 라일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그에게 큰 명성을 안겨준 대표적 저서가 이다. 프랑스 혁명사는 칼라일이 1833년부터 1837년까지 4년 넘게 걸려 쓴 대작으로 알려졌는데 집필과정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칼 라일은 두문불출 오로지 집필에만 매달려 쓴 수천 장의 원고를 친구 존 스튜어드 밀에게 한번 읽어봐 달라며 주었다. 얼마 뒤 밀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달려왔다. 하녀가 실수로 그 원고를 몽땅 태워버렸다는 것이다. 오늘 이 일화가 떠오른 것은 나도 최근 작업하던 한글파일들이 모두 깨져버린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칼 라일에게는 2년여의 노력이 그만 수포로 돌아간 순간이었다. 한동안 그 충격으로 무력증에 빠진 그가 다시금 마음을 다잡은 것은 어느 공사장 앞을 지나다가 우연히 한 노동자가 벽돌을 한 장씩 쌓는 것을 본 이후다. ‘오늘 한 페이지를 쓰자. 그리고 ‘날마다 한 페이지씩을 다시 쓰자’ 그렇게 해서 다시 2년의 세월을 통해 완성시킨 역작이 프랑스 혁명사이다. 그는 이 저서에서 프랑스 왕정의 실패를 낱낱이 밝혔고 또 혁명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칼 라일은 에서 혁명을 지배계급의 악한 정치에 대한 천벌이라며 지지하면서 영웅적 지도자의 필요성을 제창했다. 그는 지배계급의 가장 큰 잘못은 그들이 아무 잘못도 인식하지 못하는 데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 섹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말도 그의 ‘영웅숭배론’에 언급되었을 만큼 뛰어난 인물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다. 그리고 인생은 ‘두 개의 영원 사이에서 번쩍 빛나는 한순간의 섬광’이라는 말도 남겼다. ‘인간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인생은 잠시 왔다가 잠시 후에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라고 했다. 삶이란 ‘녹고 있는 얼음판’이고, 우리는 그걸 타고 지금도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아래를 내려 보지 않아도 그것은 자꾸만 작아지고 있으며 언젠가는 가라앉을 것이다. 칼라일은 ‘우리는 시간을 느끼지만 누구도 그 실체를 본 사람은 없다. 시간은 우리가 딴 짓을 하는 동안 순식간에 저만치 도망쳐 버린다.’고 일찍이 시간을 각성케 했다. 어제의 미련을 버리고, 오지도 않은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면서 ‘오늘’을 사랑하라고 한다. 아무리 애써도 바꿀 수 없는 어제에 갇혀 허덕이거나 허황된 내일의 꿈만을 쫒는 사람에게 오늘을 살라며 권고하고 있지만 벅찬 선물로서의 오늘을 선뜻 받아들지 못할 때가 있다. 내일은 아직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아니다. 그러니 ‘오늘을 사랑’함은 지금에 감사하며 오늘의 삶에서 행복을 찾지 않으면 안 될 명백한 당위인 것이다. 결국 우리가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는 날은 오늘뿐이지 않은가. 늘 뒤뚱거리는 내게도 오늘을 다시 선물한다.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푸른 하늘을/ 김수영

푸른 하늘을/ 김수영 푸른 하늘을 제압하는/ 노고지리가 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革命)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 유고시집 『거대한 뿌리』 (민음사, 1974)........................................................4·19혁명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발표 직후 쓴 작품이다.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고 ‘혁명은 고독’한 것으로 자유와 민주를 위한 투쟁의 어려움을 절규하고 있다. 자유는 가만히 앉아 거저 얻어지는 수동적 소극적인 개념이 아니라, 싸워서 획득해야 하는 적극적 실천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노고지리의 비상을 통한 낭만적 자유에 일침을 가하면서, '푸른 하늘'이라는 높고 아름다운 자유를 향한 비상도 실천적인 투쟁과 노력 없이는 온전히 누릴 수 없다고 역설한다. 혁명이란 철저한 자기변혁을 위한 고통을 스스로 이겨내야 하니 외롭지 않을 수 없고, 실패에서 오는 좌절까지도 견뎌야하는 굳건한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얼마 전 한 방송에서 4·19를 맞아 지금의 학생들이 이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인터뷰하여 내보낸 적이 있다. 가슴에 깃발 같이 펄럭이는 열정으로 다가왔던 지난 역사의 장면들이 기억 속에 사라져버리고 의미마저 퇴색해버린 이때, 그들의 대답은 들어보지 않아도 뻔했다. 학교에선 국사가 안 배워도 그만인 과목이 된 지 오래다. 더구나 시험에 잘 나오지 않은 근현대사는 이해는커녕 관심조차 없었다. 그러니 4·19혁명이 잊힌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의 민주와 지성을 일깨우는 살아있는 정신으로 이어가야 한다는 목소리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4·19는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먼 과거 속의 신화이며 박제였던 것이다.시위과정에서 경찰이 쏜 총탄에 수많은 국민이 피를 흘리고 죽거나 부상당한 희생 위에서 4·19의 장엄한 민주혁명을 쟁취했음에도, 이 역사적 사실을 망각하거나 외면한 채 시시콜콜한 연예뉴스 따위에만 반응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물론 그때의 자유에 대한 목마름은 해갈되었지만 지금은 지금의 또 다른 가치가 존재한다. 4·19혁명은 역사상 초유의 성공한 주권행사였고, 민족사적 측면에서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건이다. 지배와 피지배로 갈리고 억압과 굴종으로 나뉜 역사에서 피지배와 굴종만을 운명처럼 알고 살아온 사람들이 처음으로 억압자들을 뒤엎어 버린 가슴 벅찬 감동의 사건이 아니고 무엇이랴.4·19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그들의 정신을 실천하였기 때문에 지난 촛불혁명도 가능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우리가 꿈꾸는 자유와 정의의 푸른 하늘은 열리지 않았으리라. 그 정신을 가다듬지 않고 부활하지 않고서는 또 다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기도 하고 혁명의 완성을 위한 과정의 어려움과 긴장에 대한 부담도 이해된다. 그러나 당장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국정농단세력 등 적폐 척결의 완성 없이 두루뭉술 선급하게 단 한 차례의 반성도 없었던 ‘박근혜 석방’ 운운은 역사적 미숙이고 퇴행이 될 수도 있다. 4·19정신의 방기이며 세월호의 희생을 헛되이 하는 처사의 다름 아니다. 혁명은 고독한 것이고 앞으로도 고독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