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땅, 용자(勇者)의 나라

자유의 땅, 용자(勇者)의 나라이성숙거울처럼 눈부신 하늘이다. 당장이라도 하늘이 부서져 유리 파편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오랜만에 캘리포니아 날씨가 정상을 찾았다. 한동안 서울의 초가을 날씨처럼 선들선들해서 사람들의 걱정을 사던 날씨가 열기와 명도를 안고 돌아왔다.가까운 해변으로 나들이를 했다. 역에 차를 세웠다. 미국에 살면서 해 봐야 할 것 몇 가지가 있다. 국립공원 내 캠핑과 대륙횡단 여행, 그리고 기차여행이다. 그 중 한 가지를 실천하는 날이다. 기차여행은 시간을 거스르는 듯한 묘한 매력을 준다. 비행기처럼 빠르게 당도하지 않아 좋고, 자동차처럼 조바심 낼 필요가 없어 좋다. 생활이 주는 가파른 긴장에서 놓여나게 하고 세상과 사람을 구경하는 여유를 누리게도 한다. 기차로 미국 대륙횡단을 해야겠다는 모종의 꿈을 안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부에나 팍 기차역에는 매표소가 없다. 티켓 자동판매기 앞에서 사용법을 읽었다. 알파벳 첫 글자를 찍은 후 해당 역 이름을 찾으면 모니터에 가격이 뜨고 결제를 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엘에이 유니온 역까지 간 후 메트로 선을 갈아타고 산타모니카 역까지 가는 게 목표다. 유니온까지는 약 20분, 유니온에서 산타모니카까지는 1시간 반이 걸린다. 왕복으로 티켓을 샀다.메트로 링크는 엘에이 외곽을 운행하는 라인이다. 엘에이 도심을 오가는 메트로 라인을 중심으로 메트로 링크가 방사선으로 뻗어 있다. 각 노선은 색으로 구별되어 있다. 메트로 선으로 갈아타지 않고 그대로 간다면 엘에이 북쪽 외곽인 샌 버나디노까지 올라갈 수 있다. 오렌지 라인의 남쪽 끝은 샌디에이고까지 이어진다. 이 코스는 해안을 따라 놓여 있어 바다를 바라보며 갈 수 있다니 조만간 시도해 볼 생각이다.매트로 링크 내부는 좌석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도록 되어 있는 열과 한 방향으로 놓인 열이 반씩이다. 기차에는 부랑걸인이 많이 탄다고 해서 내심 겁을 먹었으나 오전이라 그런지 험상궂어 보이는 사람은 없다. 열차 내부는 서울의 지하철보다 깨끗하다. 열차 내에서 음식을 팔지는 않는다. 유니온에서 커피나 프레즐을 사들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테이블 있는 좌석에 가방을 내려놓자 아들을 데리고 탄 흑인 부인이 함께 앉아도 좋겠는지 묻는다. 여행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부인은 특유의 곱슬머리를 정성스럽게 땋고 머리카락 끝에 장식을 달았다. 그러고 보니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맞은편 대각선에는 수염에 염주 같은 것을 매단 청년이 전화통화 중이다. 청년의 어깨를 드러낸 몸에는 거의 빈틈없이 문신이 있다. 목덜미와 허리춤에도 젊은 끼가 새겨져 있다. 맞은편 좌석이 비어 있지만 다리를 뻗어 발을 걸치고 있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일상 보아 오던 모습들이 낯설게 다가온다. 같지 않으면 이상하거나 어색했던, 무례함이 통하던 서울과 많이 다른 모습이다.젊은 흑인 부인은 아들과 불꽃놀이를 보러 간다고 한다. 이날은 독립기념일이다. 해마다 이날 산타모니카 해변에서는 대형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그래서 인지 기차는 만원이다. 나는 만원이라고 말하고 있고 그녀는 기차가 붐빈다며 약간 불편해 한다. 서울처럼 사람과 사람이 부딪혀 서야 할 정도는 아니다. 평소에는 빈자리가 많다는데 이날은 서 가는 사람이 대여섯 명 있는 정도다.인구밀도 높은 한국에서 차 안이 붐빈다고 하면 사람들이 몸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빽빽이 타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 미국 사람은 좌석이 다 차서 몇 사람이 서 있는 상태를 붐빈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서울의 만원버스나 전철을 생각하면서 혼자 웃었다. 서로 다른 경험은 서로 다른 해석을 낳나 보다.산타모니카 역을 빠져나오자 사람들이 모두 공통의 목표를 가진 듯 일제히 한 방향으로 걷는다. 콜로라도 블러바드를 따라 10여 분, 나도 그들 사이에 섞여 해변으로 걷는다. 성조기 문양의 옷차림도 많다. 차량이 통제된 거리에 자전거와 세그웨이가 달려 나간다. 사람들은 아무데나 자전거를 세워둔 채 가버리고 또 다른 사람이 길에 세워진 자전거나 세그웨이를 타고 떠난다. 이곳은 일찌감치 공유경제가 실현되고 있다.슬리퍼를 벗어 들고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바다에 이른다. 바닷물이 발끝을 적신다. 이글거리는 태양을 이고 섰는데도 바닷물 냉기에 몸이 흠칫 놀란다. 이내 솜처럼 흡수력 좋은 심장으로 바다가 스민다.몇 시간 후면 이곳에서 축제가 시작될 것이다. 제트 스키를 타는 사람, 모래 위에서 커피를 홀짝 거리는 사람, 음성 높낮이가 만들어 내는 화음. 멋들어지게 자유를 누리는 이들이 부럽고 경이롭다.

맥도날드 햄버거의 아이러니

맥도날드 햄버거의 아이러니이현숙재미수필가엘에이에서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커다란 노란색 M자 아치가 자주 눈에 띈다. 미국을 대표하는 패스트푸드 체인점인 맥도날드다. 교통의 요지와 고속도로 주변에 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사람을 부른다. 이민 초기인 1980년, 처음 먹어본 맥도날드의 빅맥 햄버거는 너무 맛있었다. 진한 향수병에 시달렸을 때도 내 손에 들려 태평양 바닷가에 함께 갔다. 가족들의 이름을 모래사장에 썼다 지우며 눈물을 흘리다가 누런 봉투에서 식어버린 빅맥을 꺼내 먹고는 했다. 삶의 허기를 달랬던 눈물 젖은 빵인 셈이다.어느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자리를 잡고 있기에 맥도날드는 눈을 들면 보인다는 표현도 있다. 창립자인 레이 클록은 로케이션이 사업의 성공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며 체인점의 부지와 위치결정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안목과 관찰력은 대단해 맥도날드 매장이 들어서면 그 주위로 경쟁업체들이 자리를 잡으며 상권이 형성된다. 그래서 맥도날드는 가장 비싼 거리와 교차로에 땅을 갖고 있다고 한다.지나며 쉽게 만나게 되는 맥도날드의 숨겨진 이야기를 영화 ‘파운더’를 보고 알게 되었다. 미국 최대 햄버거 프랜차이즈인 맥도날드 창립자는 레이 클록이다. 그런데 영화에는 다른 두 명의 주인공이 더 나온다. 모리스와 리처드 맥도날드 형제다. 그들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버너디노의 작은 승차 구매(Drive-Thru) 시스템의 식당을 운영했다. 햄버거 조리를 분업화하여 30초 만에 만들어냈는데 값이 저렴하고 품질과 맛은 최고였다. 맥도날드 형제가 직원들과 테니스코트에서 주방 위치를 분필로 그려가며 몇 개월 동안 시행착오를 거쳐 개발한 자동 시스템 덕분이다. 헨리 포드의 자동차 모델 T형 생산라인을 재구성한 방식으로 당시 획기적이었고, 현재까지 미국 패스트푸드 주방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밀크셰이크 판매원이던 레이는 이런 맥도날드의 효율적인 운영방식에 반했다. 햄버거를 사기 위해서 끝없이 몰려드는 손님들을 보고 그의 욕망은 끓어올랐다. 교회의 십자가만큼이나 맥도날드의 황금 아치를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게 하겠다며 끈질기게 형제를 설득했다. 1955년 일리노이주 디플레인스에 맥도날드 1호점을 시작으로 레이의 질주는 멈출 줄 모른다. 가족 경영을 내세우며 재료의 신선함, 음식의 품질관리에 신경 쓰는 형제와의 마찰은 점점 커졌다. 결국, 1961년에 270만 달러와 연 이익의 1.9%를 지급받는 조건으로 상표권을 레이에게 팔았다. 그러나 연 이익금인 로열티는 구두로 한 계약이라 받지 못했다. 오직 하나, 자신들이 시작한 맥도날드 식당만은 남겨달라는 부탁도 거절당했다. 결국 ‘The Big M’이라는 상호로 바꾸었는데 근처에 맥도날드 체인점이 들어오며 망했다. 합법적으로 강탈당하고 난 후 두 형제의 허탈해하는 표정이 화면을 꽉 채우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영화를 보는 내내 고민했다. 현재 세계 119개국에 3만4천여 개의 매장을 소유한 글로벌 기업의 진정한 창업자는 누구일까.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며 사업 확장을 한 적극적인 레이 클록인가. 그는 자신이 1955년에 설립한 첫 프랜차이즈 식당을 1호점이라 부르고, 후에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맥도날드 형제는 햄버거를 만들었고 나는 그것을 삼켜버렸다.’ 한국판 영화 포스터에 한마디로 정리가 됐다. 맥도날드 햄버거의 창시자는 두 형제지만, '맥도날드 기업'의 설립자는 자신이라는 것이다.아니 진정한 원조는 품질 우선을 앞세운 맥도날드 형제가 아닐까. 창립 정신은 가족이지 돈이 아니라는 순박하고 고지식한 형제가 만약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맥도날드 형제는 자신들이 개발한 아이디어로 그 지역에서 안전하게 장사를 했을 것이다. 레이는 그저 그런 시골 레스토랑으로 남을 수 있다고 형제를 비꼬는 내용이 영화에 나온다. 지역의 맛 집 정도로 알려질 수도 있었다.레이는 야수처럼 탐나는 먹이를 잽싸게 낚아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그 영역을 넓혔다. 야비해 보이지만 그를 손가락질 할 수 없는 것은 소비자인 내가 그 혜택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편안하게 바로 손에 넣을 수 있으니까. 그런 사업가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역주의 안에서 새로운 세계를 접하기 힘들거나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가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아직도 그 아이러니에서 벗어나지 못해 고민한다. 이런저런 이유를 가져다 붙여도 사업가 기질이 없는 나는 레시피를 만들고 땀 흘려 기초를 다진 형제가 창립자라고 생각한다. 맥도날드는 모든 곳에 있어야 한다며 가능성을 알아보고 키운 레이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그가 남의 것을 빼앗은 것은 확실하니까.역시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맞다. 알고 나니 온전하게 빅맥의 맛을 즐길 수가 없으니 말이다.

단순 통화용에서 현대인의 필수품으로 휴대폰, 이렇게 바뀌었다

수화기 너머의 세상은 또 다르다. 대면으로는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들을 음성을 통해, 그리고 메시지를 이용해 간절히 전달해 본다. 다른 한편으로는 최근 몇 년 새 급증세를 보이는 ‘보이스 피싱’ 관련 범죄를 통해 휴대전화의 민낯을 마주하기도 한다.한 가지 확실한 건 휴대전화의 정체성은 ‘본능’으로 출발해야 함이 옳을 듯하다. ‘소통’에 있어 시·공간의 제약을 타파하고자 하는 욕구로 전화기를 낳았고 글만으로는 도저히 형언하지 못할 메시지 위에 ‘이모티콘’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갓난아이들이 새로운 물건을 보면 물고 만지려 드는 습성으로 말미암아 ‘터치스크린’을 개발했다는 것, 업계의 암묵적 정설이다.이처럼 휴대전화는 몇 차례의 산업혁명과 그 시류를 함께 해왔다. 인공지능(AI)의 모토가 ‘인간을 위함’으로 대변되듯 휴대전화 역시도 단순 음성통화를 넘어, 메시지 전송, 음악·동영상 감상, 인터넷 이용 등 한 손으로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원스톱’의 욕구가 켜켜이 쌓여 이곳까지 왔다.휴대전화의 가입자 수가 대한민국 전체 인구를 훌쩍 넘어가는 시점이다. 휴대전화는 이제 ‘선택 사양’이 아닌 ‘공공재’의 역할로 바라봐야 할 때다. 다시 말해 휴대전화의 이용을 두고 단순 ‘소통’의 관점을 넘어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에 관한 고찰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30년 전 400만 원짜리 휴대전화불과 30~40년 전만 하더라도 휴대전화는 0.1%만을 위한 전유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웬만한 중형차 가격이 500만 원 하던 시절, 휴대전화는 400만 원을 육박했다. 그 크기만 해도 벽돌에 버금가다 보니, ‘휴대’라는 말을 붙이기에도 이래저래 겸연쩍은 수준이었다.휴대전화의 가격 대중화를 꾀한 시점은 1990년대 중반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부터 이른바 ‘X세대’의 필수품으로 여겨졌던 무선 호출기는 점차 뒤안길로 사라지고, 휴대전화는 이동통신의 정점으로 부각됐다.이때부터 개별의 통신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각기의 방식으로 서비스 공략을 제시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다. 무선 호출기와 함께 ‘실과 바늘’로 인식되던 공중전화 역시도 휴대전화의 등장으로 서서히 사양길에 접어들게 됐다.게임과 인터넷 등 통신 외 부가기능 서비스가 시작된 것은 2000년대 이후부터다. 이때부터 요금제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SF영화 속에서나 지켜볼 수 있던 ‘영상통화’ 역시도 밀레니엄을 보낸 이 시기부터 가능해졌다.똑똑한 휴대전화, ‘스마트폰’의 탄생을 지켜보려면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때부터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의 ‘S’ 시리즈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이로 말미암아 스마트폰은 굳건히 지켜오던 피처폰의 아성을 단박에 무너뜨리기 시작했다.바로 이 시기부터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세대별 통신기술’이 대두되기 시작한다. 1·2세대 피처폰을 넘어 스마트폰 시대의 개막에 따라 ‘3세대 이동통신’이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3세대 이동통신은 쉽게 말해 통신기술의 3세대를 의미한다. 흔히들 ‘3G’라고도 말한다. 3세대부터 음성과 비 음성의 구별 없이 모든 통신 전송이 가능해졌다. 이때부터는 기지국의 역할이 중요해 졌는데, 각 통신사들은 시쳇말로 ‘전화기가 얼마나 잘 터지나’의 경쟁을 위한 촘촘한 기지국 설치를 기업의 캐치 프레이즈로 내세웠다.‘4세대 이동통신’은 ‘LTE’의 이름으로 3세대 대비, 조금 더 총체적이고 안정화 된 솔루션 제공에 역점을 뒀다. 정확히 말하면 4세대는 0.1이 모자란 ‘3.9G’의 기술력인데, 여기에는 광대역을 초과한 초광대역, 원활한 ‘와이 파이’기능, 각종 스트리밍 멀티미디어 제공을 통해 3세대 대비, 덜 끊기되 더 빨라진 환경 구축을 최우선 시 하기에 이르렀다.앞서 연재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5세대 이동통신’은 ‘초고속’, ‘초저지연’의 기술력으로 욕구 잠입을 시도했다. 완벽한 상용화에는 아직 설왕설래를 거듭하고 있지만, 4G 대비 20배 이상 빨라진 5G의 통신 속도를 통해, 스마트폰의 궁극적 목적인 ‘토탈 솔루션’에 한 걸음 더 다가가려는 모양새다. ◆무궁무진한 스마트폰 활용‘투표’는 국민의 의무이자 권리다. 선한 삶의 갈구와 유지를 위한 일종의 ‘정치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팍팍한 일상에 본의 아니게 투표를 치를 수 없다거나, 마음을 먹고 투표장에 들어선다손 치더라도 이른바 ‘피크타임’에 걸려버리면 하릴없이 수 시간을 허비해야 한다.하지만 이 같은 맹점은 스마트폰의 활용으로 충분히 극복 가능한 문제다. 바로 ‘전자투표’를 의미하는데 스마트폰을 통한 전자투표가 상용화된다면 투표 시 시·공간의 제약을 없앨 뿐 아니라, 그에 따른 경제적 비용 절감 차원에서도 탁월하다. 통신을 통한 투표 집계가 실시간으로 이뤄질 수 있다면 결과 또한 신속히 접할 수 있다는 장점마저 발생한다.장례문화에도 변화의 조짐은 선명하다. 이 역시도 스마트폰이 적용된 ‘가상 장례문화’의 일환으로 이해하면 된다. 여기에는 VR, AR 등의 증강현실과 홀로그램의 기술력이 내포돼 있다. 다시 말해 ‘허구의 리얼리즘’을 추구한다는 증명이다.가상 장례문화는 크게 가상 조문과 추모, 장례지원으로 구별된다. 가상 조문은 말 그대로 장례 입장 후 절차인 분향, 헌화, 인사 등을 가상의 공간에서 치르는 것이다. 스마트폰에 투영된 홀로그램 등의 기술력이 장례식장을 방문하지 않았으나, 마치 현장에 있는 것처럼 그곳 환경을 인식·재현해 낸다.장례절차에도 스마트폰의 역할이 주효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마트폰에 투영된 ‘QR코드’를 활용, 이를 통해 각종 장례 정보와 용품, 구매에 이르는 전 과정을 온·오프라인을 망라해 공유하는 형식이다. 실제 특허청 통계에 따르면 이처럼 스마트폰이 접목된 장례 서비스 특허출원이 2016년까지 10여 건에 그치던 것이, 2017년부터는 25건 가까이 늘어났다.1차 산업혁명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농업 분야’에서도 스마트폰의 기세는 무섭다. 농업인 개별로 스마트폰은 이용, 유튜브나 블로그 등의 매체를 활용함에 따라 자신의 농작물을 별도의 자금 없이 개별로 홍보할 수 있는 역량 제고에 제격이라는 평가다.이제는 해양연구에도 스마트폰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심해탐구 간 스마트폰의 적용에 따라, 파생 가능한 리스크를 일정 부분 줄일 수 있다는 데 주안점을 둔다. 여기에는 휴대전화에 연동된 ‘애플리케이션’의 기술력이 투영된다.설치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해역의 수온, 생물 등의 각종 환경을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하다. 모 지자체의 해양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해양 정보 뿐 아니라, 기상청 등각 기관에서 관측하는 고급 자료도 손쉽게 공유할 수 있다.이처럼 스마트폰은 특정 전유물이 아닌 신변잡기적 일상이 돼버렸다. 무료한 시간을 더불어 보내줄 벗이 되기도, 활용도에 따라 편의성과 각종 위험을 사전에 차단해주는 ‘지킴이’ 역할에도 소홀함이 없다. 다만 서두에서도 언급했듯 지성인으로서의 분명한 고찰 역시도 요구된다. 흔히들 ‘중독’이라 불리는 스마트폰의 맹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의 지나친 이용에 따라 파생 가능한 각종 신경계 질환과 정신적 피폐가 결집 된다면 자칫 ‘사회성 결여’라는 이단적 현상마저 초래할 수도 있다. ‘과유불급’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6세대 통신을 준비하다이제는 ‘6세대 이동통신’을 바라봐야 한다. 5세대의 상용화 시점도 채 잡지 못한 이때, 과한 미래지향일 수는 있으나 격변하는 시류에 철저한 대비는 응당 치러야 할 덕목이다.실제 세계 최강국이라 일컬어지는 미국은 벌써부터 6세대 이동통신의 선구자적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업계에서는 향후 10년을 기점으로 발발할 6세대 이동통신은 현재 5세대보다 약 5배 이상 빠른 속도로 범람할 것을 예상하고 있다.이 같은 상황에 기인, 국내 유수의 대학과 통신업체는 최근 6세대 이동통신 관련 연구센터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그 시발로 대역 주파수를 적용한 ‘초고속 무선 백홀 시스템 개발’에 들어갔다.6세대의 가장 큰 차별성은 ‘수중 통신’에 있다. 이를 두고 중국은 6세대의 상용화 기점을 3년 앞당긴 2027년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론적으로 6세대의 다운로드 속도는 초당 ‘1TB(테라바이트)’에 달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정보통신의 종착역인 ‘만물인터넷(IoE)’ 시대로의 도래를 기대해볼 수 있다는 증명이다.‘혁신’은 언제나 그래 왔듯 이채롭되 위험했다. 하지만 우리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우매함 대신 언제나처럼 새로운 세상을 동경하고 실현해왔다. 반드시 성찰하되 아울러 대비하고 정진해야 한다는 말이다. 글·사진 군월드 IT사업팀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대구 동구청, 정보통신시설 지도점검 우수기관 돼

대구 동구청은 대구시가 진행한 ‘2019년 정보통신시설 지도점검’에서 우수기관을 선정돼 기관표창을 받았다고 29일 밝혔다.대구시는 2005년부터 매년 정보통신 일반분야, 창의적인 업무추진, 정보통신 시설분야 등 3개 분야 22개 항목을 점검해 우수기관을 선정, 시상했다.동구청은 이번 지도점검에서 자가통신망을 활용한 공공와이파이 서비스 개시, 대민행정서비스 자가통신망 수용, 전화민원 응대 서비스 개선을 위한 IP전화기 도입 등 시스템 구축과 운영부분 전반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울진군, 아마추어 무선연맹 재난통신 전국 청소년 필드대회 개최 !

울진군은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 경북도본부와 함께 오는 24일부터 27일까지 전국 청소년 아마추어무선사를 대상으로 긴급재난 교육과 재난상황대응을 위한 ‘제1회 아마추어 무선연맹 재난통신 전국 청소년 필드대회’를 개최한다.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에 소속된 전국 청소년 아마추어무선사와 관계자 400여 명이 참여하는 필드대회는 재난 및 위급상황 발생 시 안전 확보와 대응책 강구를 위한 인적 네트워크 구축과 위급 상황 발생 시 대처 요령훈련을 위한 생존방안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다. 특히 울진군은 재난안전 및 대응에 훈련된 청소년 아마추어무선사를 중심으로 하는 ‘YOUTH 재난안전 무선 클럽’을 전국 최초 창설하여 재난안전 선도도시로 앞장서고 있다. 전찬걸 군수는 “재난발생 급증에 따른 사회적 인식증가로 전국적으로 재난안전에 대한 자발적 참여와 책임성의 강화가 요구되는 요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안전문화 정착선도도시로써 울진군이 앞장서고자 본 대회를 개최한다”고 전했다. 한편 ‘제1회 아마추어 무선연맹 재난통신 필드대회’는 청소년들의 재난대응과 생존을 위한 해양 및 강변 조난 시 생존수영, 선박사고 생존법, CPR교육 등 다양한 생존 교육을 진행하고, 울릉도·독도를 방문하여 교신훈련 및 안전시설을 탐방할 예정이다.강인철 기자 kic@idaegu.com

질란드와 들꽃향기

질란드와 들꽃향기신영재미 시인·칼럼니스트뉴잉글랜드 지방 매사추세츠주 보스턴과 뉴햄프셔주 인근에 산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한 날이다. 1시간 남짓 운전으로 가면 바다가 있고 2시간 정도 가면 산을 만난다.매사추세츠주 동쪽으로 대서양과 접하고 북쪽으로 버몬트주와 뉴햄프셔주, 남쪽으로 로드아일랜드주와 코네티컷주, 서쪽으로 뉴욕주와 접한다. 영국 청교도들이 정착했던 탓에 그들의 정신문화가 깊이 박혀 있으며 매사추세츠주는 유서 깊은 교육의 고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욱더 좋은 것은 자연과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우거진 숲과 산과 바다가 많다는 것이 참으로 축복이다.지난주 토요일 ‘보스톤산악회’ 정기산행이 있어 다녀왔다. 산악회에서는 닉네임을 정해 부르고 있다. 그 이유는 어떤 모임에서처럼 그는 누구(학연, 지연 지위 등)라는 수식어의 필요성을 접고 산(자연)이 좋아 만나고 나누는 그저 자연의 한 사람으로 만나자는 취지에서의 시작이라고 한다.필자의 내 닉네임은 ‘하늘’이다. 그리고 이번 정기산행을 주관했던 분의 닉네임은 ‘들꽃향기’였다. 들꽃향기님은 산을 오른 지 10년이 된 산사람이고, 나는 2011년부터 시작했으니 만 8년차의 산사람이 되었다. 이렇게 10년이 가깝도록 함께 산을 오르내리니 나이와는 상관없이 편안한 친구가 되었다.10여 년이 다되도록 산을 오르내리다 보니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옛말이 있듯이 뉴햄프셔주 화이트 마운틴 지역을 지나칠 때면 산들이 눈을 통해 마음으로 들어온다. 부르지 않아도 익혀진 이름으로 가슴을 파고든다. 그 계절마다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추억과 버거웠던 산행의 힘듦 속에서의 추억들이 곰실거리며 가슴을 헤집고 파고드는 것이다. 이렇듯 정해놓고 오른 것은 아니었지만, 화이트 마운틴(White Mountains) 안에 4,000 피트 넘는 산이 48개가 된다고 하는데 35개 이상을 올랐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지난해였다. 가을 산을 오르며 닉네임이 들꽃향기는 필자에게 말했다. ‘하늘, 우리 4,000ft 이상의 48개 산행을 마무리해 보면 어떻겠냐’고 말이다. 그래서 그것 참 기분 좋은 일이겠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지내다 이번 산행지 질란드(Mt. Zealand·4,260ft)는 ‘보스톤산악회’에서 10년 만에 두 번째로 오르는 산이라고 했다.산 높이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거의 7시간이 넘게 걸릴 수 있는 긴 산행지였기에 선뜻 정하지 못했던 산행지였다. 겨울 계절이면 엄두도 못 낼 산행지였지만, 여름 계절이라 가능했던 곳이다. 이렇게 또 하나의 산을 올랐다.산은 정상이 목표가 아니라는 것을 산을 하나둘 오르면 오를수록 깨달아 간다. 산을 오르며 만나는 너무도 광활하고 신비로운 자연에서 크신 창조주를 만나고 너무도 작은 피조물인 나를 만나게 되는 까닭이다.그래서 산을 오르면 더욱더 겸손한 마음이 절로 차오르고 삶에서 다른 사람의 탓이 아닌 나의 탓을 깨닫게 되는 까닭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는 자연의 한 일부부인 이유일 것이다. 계절마다 만나는 바람은 내 배꼽 밑의 오랜 신음마저 끌어올려 주어 깊은 호흡을 만나게 한다. 새로운 호흡으로 정신이 맑아지는 것이다.이번 산행지인 질란드를 오르며 4.6 마일 지점에서 Zealand Fall(AMC Hut)을 만났다. 이때부터는 험하고 가파른 길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힘겨운 걸음으로 한참을 올라 갈림길 사이 Zeacliff(7.0 miles) 지점에 도착했다.눈 앞에 펼쳐진 진분홍 들꽃(철쭉과)들이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우리는 또다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질란드 정상에 도착했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빠른 걸음으로 산에서 내려오니 7시간 만의 산행이었다.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이 된 질란드와 들꽃향기 그리고 들꽃향기님이 기억은 오랜세월 간직하고 싶다.

경마를 보며 배운 한 수

경마를 보며 배운 한 수이현숙재미수필가말이 힘차게 달렸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말을 사진에 담으려는데 총알처럼 지나갔다. 100m 기록이 약 5초이고, 시속 60∼70㎞ 정도라더니 실감 났다.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아케디아에 위치한 산타애니타 파크 경마장은 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하다. 최근 2달 사이 경주마 20마리가 이유 없이 숨졌기에 일시적으로 폐쇄했다가 열어서인지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다. 조카는 경마 정보지를 검토하며 우승마를 예상했다. 또 보조 경기장에 가서 경주마와 기수가 자신을 뽑아달라며 몸매를 자랑하는 모습을 살폈다. 걸음걸이가 힘이 있는지, 몸의 균형과 털의 윤기를 살펴야 한다고 했다. 경기 전에 출전마들이 관람객들에게 선을 보이는 절차는 우승 예상마 판단에 도움이 된다. 마권을 발급받는 기계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고, 경마 준비를 알리는 안내방송에 따라 관람석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고 1~2분 이내에 승부가 갈리는 스피드의 세계에 사람들은 열광했다.자신이 예상한 우승마가 1등으로 들어오기를 응원하는 소리가 요란하다. 단단한 근육을 움직이며 박진감 넘치게 달린 말은 순식간에 결승선에 도달했다. 요란한 말발굽 소리를 따라 승리의 환호성과 우승이 빗나가 한탄하는 소리가 엇갈렸다. 다음 경주를 준비하는 동안 사람들은 TV 스크린으로 눈을 돌렸다. 열두 개의 다른 도시에서 생중계로 진행되는 경마에 다시 배팅했다. 나는 말의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혹은 내 생일이 있는 달이라는 이유를 달며 2불이나 5불씩을 걸었다. 번번이 돈을 잃었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기준을 정하고 했기에 큰 부담 없이 즐겼다. 그래도 아쉽기는 했다.승패에 격하게 반응하던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화가 났는지 마권을 꾸겨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이미 휴지가 되어버린 마권이 이리저리 뒹굴며 누군가의 지갑을 텅텅 비게 한 흉물로 전락하여 사람들의 발길에 차였다. 일확천금을 노렸기 때문인가. 저게 다 돈인데. 아니 돈이었는데. 원수진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으면 경마를 가르치라던 말이 떠올랐다. 중독성이 강해 예로부터 패가망신하는 길이라고 했다. 몸을 푹 담그지 말고 적당히 한다면 스트레스를 푸는 오락이 될 터인데 아쉬웠다. 달리는 말에 자신의 인생을 건다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 아닐까.지난달 미국 최고의 경마대회인 켄터키 더비에서 챔피언이 실격된 사건으로 사람들은 경악했다. 145년 역사상 처음이다. 7번 말(맥시멈 세큐리티)이 열여덟 마리의 경쟁을 따돌리고 결승선에 들어섰다. 20번 말(컨트리 하우스)이 그 뒤를 따랐다. 일등을 한 기수와 조련사는 꿈을 이뤘다며 서로 부둥켜안고 축하의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2등을 한 기수가 감독관에게 이견을 제소했다. 진로 방해를 받았다는 것이다. 판정 결과가 나오기까지 20여 분을 기다리는 동안 두 기수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첫 번째로 들어온 7번 말의 기수는 관람객들이 내지르는 환성에다 비도 오고 땅이 미끄러워 말이 당황해 살짝 진로를 비켜 나간 것일 뿐, 잠시 리듬이 깨졌던 것일 뿐, 문제 될 일이 아니라고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입술에 계속 침을 바르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것이 불안해 보였다. 반면 차등으로 들어온 기수는 미소를 지으며 동료들과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의 대조적인 모습이 TV 화면을 반으로 가르며 비교가 되었다.비디오를 돌려본 감독관들은 다른 말의 진로를 방해했다고 판정을 내렸다. 결국 실격 처리되며 7번 말(맥시멈 세큐리티)은 1등에서 17위로 밀려났다. 우승의 기쁨도 잠시 반칙했다는 불명예로 비난을 받았다. 2위에서 1위가 된 경주마는 우승확률이 65분의 1로 미미했었다. 이 뜻밖의 우승으로 마주는 186만 달러의 상금을 받았고, 단 2달러로 이 말에 우승을 걸었던 사람들은 65배인 132.40달러의 이익을 챙겼단다. 켄터키 역사상 두 번째로 알찬 횡재라고 뉴스 미디어는 신나서 알렸다. 생애 최초 켄터키 더비 우승컵을 들어 올린 말의 조련사는 인터뷰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경마라고 했다.새옹지마. 인생은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다. 켄터키 더비 경마대회를 보며 불확실한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한 수 배웠다. 잠시의 눈속임으로 이득을 취할지 모르지만,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뛰어봐야 안다. 그리고 끝까지 가도 그곳이 끝이 아닐 수 있다.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면 결과는 따라올 것이다. 인생은 한방이 아니다. 미래의 행운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흙먼지를 날리며 질주하는 경주마는 끊임없는 훈련으로 다져진 몸과 온 힘을 다해 결승점을 향한다. 한눈을 팔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고 달린다. 그거다.

[미주통신] 미국발 르네상스 ‘거리 예술’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 거리 예술)만큼 미국을 설명하기 좋은 예술 영역도 없다. 스트리트 아트의 원조는 원색의 그래피티, 거리의 낙서라고 할 수 있다. 음지문화였던 셈이다. 음지의 낙서가 예술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미국적 사고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낙서는 사람 사는 곳 어디에나 그려져 있다. 대부분의 그것은 예술이라기보다 소음에 가깝다. 15, 16세기까지만 해도 예술이란 왕실과 귀족, 성직자의 전유물이었을 뿐 아니라 모름지기 고상한 정신 활동의 소산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 후 부르주아(중산층) 계층이 생겨나면서 개성이 가미된 그림이 소비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규격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했다. 고집스런 중세미술의 눈에 거리 미술이 ‘예술’로 대접받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거리 미술은 독백같은 형태를 띤다. 혼잣말의 생동감과 구체성, 그 무경계의 자유분방함이 펼쳐진다. 스트리트 아트는 1960년대 시작하여 80년대에 붐을 이루었다. 이 음지의 낙서에 예술가들이 참여하면서 회화적 요소가 가미되기 시작했고, 신흥 예술 장르로 발전한 것이다. 스트리트 아트에는 숭고함이 해체된 발랄함, 개인적 정서, 반항해도 좋은 미국적 유연함이 깊이 배어 있다. 이것들을 회의적으로 볼 필요가 있을까. 출생 배경 때문인지 스트리트 아트를 반달리즘적 시각으로 보는 견해도 적지 않지만 작가가 살고 있는 도시나 시대를 가장 현재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게 스트리트 아트이기도 하다. 역사가에게 그 시대를 기록할 의무가 있다면 예술가에게는 그들이 살아 있는 시대와 소통할 책무가 있다. 스트리트 아트는 아부나 비방이 아닌 시대의 목소리를 들려줌으로써 예술의 소박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관객의 상식을 파괴한 예술, 익명의 예술. 스트리트 아트는 익명성이 가져다 줄 수 있는 고발성과 반항성이 농후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성화나 초상화, 잘 알려진 성지 등을 그렸던 이전의 미술이 왕실과 귀족에 봉사한 예술이었다면 스트리트 아트의 작가는 자신의 내면에 봉사한다고 할 수 있다. 창조는 모방에서 기인한다고 하지만 오늘날 그들은 스스로 오리지널이 되어 스트리트 아트의 권위를 확장하고 있다. 미국의 토양이 이들을 자라게 한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스트리트 아트의 선구는 로스앤젤레스다. 시(City)는 작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벽을 제공하고 작가 정보와 작품을 직접 관리한다. 로스앤젤레스는 도시 전체에 수천 개의 벽화를 보유하고 있다. 다운타운에 있는 앤젤 시티 양조장 벽면을 중심으로 벽화가 펼쳐져 있다. 이 거대한 캔버스 앞을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지날 수는 없다. 골목을 이리저리 누비다보면 ‘로스앤젤레스 심장(안티 걸 작품)’이나 ‘도시의 주름(JR 작품)’, 그 옆으로 펼쳐진 ‘나는 보톡스 중독자였다(트리스탄 이튼 작)’, ‘비누 거품을 부는 여인(킴 웨스트 작)’ 등 지역 문화와 정서를 담고 있는 걸작들을 만날 수 있다. 옥션을 뒤흔든 뱅시((Banksy)의 작품도 이곳에서 만난다. 벽화 작품은 매달 바뀐다. 여기서 좀 떨어진 웨스트 8가, 메이시스 백화점 코너를 돌면 대형 천사의 날개가 그려져 있다. 날개 옆에는 ‘천사의 도시에 살고 있는 당신은 여신이다’라는 문구가 함께 적혀 있다. 즐거운 상상은 덤이다.벽화에서 영감을 얻은 작가들은 스트리트 기법을 작업실에서도 구현하여 전 세계 아트페어에서도 스트리트 아트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나는 원색의 거친 터치로 강렬하게 그려진 캔버스 앞에 서면 그 자유함에 가슴이 뻥 뚫리는 경험을 한다. 주제들이 현실과 닿아 있기 때문일까, 거기에는 해학과 풍자, 익살이 스며있다. 웃음이 나는 것이다.일주일 간격으로 두 곳 전시회에 다녀왔다. 먼저는 산타모니카 에어포트 아트 페어로 산타모니카 지역 작가들이 자신의 작업실을 개방하는 오픈 전시였다. 두 번째로 간 곳은 영국 사치 갤러리가 주목하는 작가 140인 전이 열리는 디 아더 아트 페어였다. 산타모니카 아트 페어는 물론이고 전 세계 작가가 한 데 모인 디 아더 아트페어에서도 스트리트 아트는 다양한 재료와 주제로 사람들 시선을 잡았다.미국은 역동적이다. 그들은 젊다. 미국에 살면서 이들이 정체되어 있다고 느껴 본 적이 없다. 그들은 늘 자신감에 넘쳐 있다. 노예제 폐지, 끝없는 서부로의 개척정신, 사회 전반에 두텁게 형성된 기부문화, 드라이브 스루, 스트리트 아트까지 미국발 르네상스가 확산하고 있다.호기심이 대접받는 나라. 아메리칸 드림이란 한 시대를 풍미하다 사라진 말이 아니다. 여전히 미국은 꿈이 실현되는 땅이다. 인간의 도전과 창의력을 높이 사는 국가정신은 앞으로도 미국을 문명주도국으로 남게 할 것이다.

[미주통신] 인연, 삶 그리고 사랑에도 때가 있다

인연, 삶 그리고 사랑에도 때가 있다신영재미 시인·칼럼니스트무슨 일이든 억지로 하려다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자연스럽지 않아 어색하고 어색하기에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의 관계에서도 처음 만나서 편안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유 없이 불편한 사람이 있다. 이런 관계는 사람의 노력으로는 어렵지만 인연도 있다. 사람 간 관계도 이런 데 사랑은 오죽할까. 첫 만남에서 불화산 같이 불이 번쩍 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화롯불 안 재에 덮인 불씨처럼 은은하게 오랜 시간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 중요한 것은 모두가 인연이 있어야 한다.“만남은 시절 인연이 와야 이루어진다고 선가에서는 말한다. 그 이전에 만날 수 있는 씨앗이나 요인은 다 갖추어져 있었지만 시절이 맞지 않으면 만나지 못한다. 만날 수 있는 잠재력이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가 시절 인연이 와서 비로서 만나게 된다는것이다. 만남이란 일종의 자기 분신을 만나는 것이다. 종교적인 생각이나 빛깔을 넘어서 마음과 마음이 접촉될 때 하나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우주 자체가 하나의 마음이다. 마음이 열리면 사람과 세상과의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진다.”(산에는 꽃이 피네·법정) 중에서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의 구분이 정확한 필자의 경우 이것이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단점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일에서는 그 일에 몰입해 열정과 끈기로 결과가 확실하도록 일을 추진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관심이 없는 분야에서는 마음이 동하지 않아 달려들지 않으니 때로는 방관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과의 중간 정도면 딱 좋겠는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쉬이 고쳐지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삶에서도 나 자신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어쩌면 사람 관계에서도 이런 부분이 두드러지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오래전 일이 떠오른다. 세 아이를 키우며 참 많이 몸과 마음이 분주한 시기를 보냈다. 딸아이가 세 살 되었을 때 유아원에 내려놓고 오는 길에 연년생인 두 녀석이 뒷 자석에서 잠이 들면 세 시간 동안을 집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그것도 눈 덮이고 추운 겨울에는 더욱 힘든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내게 버거운 시간이었다. 엄마라는 자리가 나와 너무도 맞지 않는 것 같아 아이들을 보면서 참 많이도 울었다. 그리고 그 가슴 속이 달래지지 않아 늦은 밤 남편과 세 아이가 잠든 시간에는 끄적이며 남기는 하루의 일기와 붓글씨 그리고 그림(유화)그리기로 나를 달래곤 했었다.그렇게 서른에서 마흔이 되는 십 년은 세 아이를 위해 나의 모든 시간을 쏟아부었다. 아니 정신을 다른 곳에 돌릴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마흔이 되었다. 세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해 다닐 무렵이었다. 이제는 무엇인가 나도 시작을 해야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선뜻 용기가 나질 않았다.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그 어느 누가 내 이름을 따로 불러줄 이 없었다. 그저 누구의 아내와 어느 집 며느리 그리고 세 아이 엄마의 이름표만이 나를 말해줄 뿐이었다. 아직은 아이들에게 엄마의 역할이 제일 필요하고 중요한 때임을 알지만, 더 늦기 전에 무엇인가 시작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그렇게 쉬지 않고 글쓰기와 그림을 그리던 훈련이 나의 삶의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배꼽 저 아래의 끝에서부터 꿈틀거리며 요동치는 예술적인 기운을 누르지 못할 때 쉬지 않고 해오던 매일의 글쓰기가 나를 돌아보는 반성의 기회와 앞으로의 꿈을 설정하게 했으며 정성 들여 써 내려가던 붓글씨의 성경 구절이 기도가 되었다. 그리고 덧바를수록 신비해지는 유화를 통해 내 안의 숨겨진 보물들을 하나씩 찾아내는 작업을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다. 세 아이를 키우며 버거웠던 시간마저도 내게 필요했든 귀한 시간었음을 세 아이가 훌쩍 커버린 지금에야 더욱 절실히 느끼는 것이다.‘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옛 성인들의 말처럼 늘 깨어 있어 준비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온다. 자신에게나 또 자신의 삶에서 욕심은 가지되 허욕을 부리지 말자는 얘기다. 자신의 피와 땀과 노력 없이 무엇인가 바라고 기다린다면 그것은 도둑 심보는 아닐까 싶다. 사람의 인연이나 삶 그리고 사랑에도 때가 있는 법이다. 그것은 나를 스스로 돌아볼 줄 아는 지혜와 오랜 기다림에 지치지 않고 인내할 줄 아는 힘이 필요한 까닭이다. 그럴 때 우리는 내게 찾아온 귀한 인연을 알아차릴 수 있는 심안이 열려 비로소 그때를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대구시, 장애인 정보통신보조기기 보급 지원

대구시는 장애인들의 정보통신기기 활용을 돕기 위해 ‘정보통신 보조기기 보급’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22일 밝혔다.정보통신보조기기 보급 사업은 신체적으로 정보통신에 대한 접근과 활용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시각, 지체·뇌 병변, 청각·언어 등 장애 유형에 적합한 정보통신보조 기기를 지원하는 것이다.지원 대상은 주민등록상 주소가 대구시인 장애인이나, 상이등급 판정을 받은 국가유공자가 지원대상이다.지원품목은 독서확대기, 점자정보단말기, 영상전화기 등 103종이다.제품가격의 80~90%를 지원해주며 나머지 10~20%는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일반 장애인의 경우 20%를 저소득층 장애인의 경우는 10% 정도를 개인이 부담하면 된다.보급을 희망하는 사람은 다음달 21까지 정보통신 보조기기 홈페이지(www.at4u.or.kr)나 대구시 정보화담당관실, 구·군청 정보화 부서로 우편 또는 방문 신청하면 된다.보급대상자는 중복지원 여부 확인, 심층 방문상담, 전문가 평가 등을 거쳐 오는 7월19일 최종 선정한다. 문의 : 053-803-3615.이주형 기자 leejh@idaegu.com

[미주통신] 매너를 적립하자

매너를 적립하자이현숙재미수필가자동차는 현대인의 발이다. 2016년에 차의 생산량은 1억대를 육박했고 지금도 꾸준히 만들고 있으니 그 숫자는 어나어마하다. 자동차 왕국이라는 미국은 인구 1.3명당, 한국은 2.3명당 1대꼴로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는 기록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는 차량 정체가 심하고 또 주차난도 심각한 대표적인 대도시다. 특히 인구 밀집 지역인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은 주차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점심이나 저녁 시간대에는 주차 전쟁터다. 울며 겨자 먹기로 돈을 내고 발렛파킹 한다. 그러다 보니 차량이 긁히거나 차 안의 물건이 없어져도 뚜렷한 증거가 없기에 항의를 할 수가 없다.얼마 전 엘에이 한인 타운의 주차 전쟁을 촬영한 영상이 소셜미디어와 주요 방송의 뉴스를 장식했다. 퇴근 시간인 저녁 6시쯤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 길가에 주차하려는 차량 2대가 한 자리를 두고 팽팽히 대치했다. 평행 주차하려던 검은색 차량의 뒤를 회색 차량이 막아섰다. 두 차량은 비상등을 켜고 1시간 30분 넘게 그 상태로 움직이지 않았다. 2차선의 도로에 한 줄이 막히니 교통체증이 이어지고 경적이 요란스럽게 동네를 흔들었다. 두 차량 운전자는 차 안에서 스마트폰을 보며 밖의 혼란은 나 몰라라 했다. 그 소란에 한 주민이 동영상을 촬영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생중계했고, 14만 명 이상의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했다. 급기야 ‘당신은 누구 편?’ 어느 차량이 주차공간을 차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투표까지 진행됐다. 결국 참다못한 그 지역 주민이 자신의 차량을 움직여 두 차량이 모두 주차할 수 있게 했다. 운전자가 누구인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차 안에서 주위의 혼란을 모른 체하며 버틴 오기와 끈기에 질렸다. 피곤한 퇴근길의 많은 사람을 자신들의 편리를 위해 묶어둔 그들의 이기적인 행동에 내가 그 지역 경찰이라면 당장 달려가 교통위반 티켓을 발부했을 텐데 하며 흥분했다.주차 신경전은 남의 일이 아니다. 몇 년 전에 팜스프링에 있는 아웃렛에 갔었다. 30분을 빙빙 돌아도 주차공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엘에이에서 두 시간 정도 달려간 길이라 그냥 돌아오기는 기름값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침 바로 앞에 한 차량이 후진하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기뻐하며 그 차 뒤에서 비상등을 켜고 기다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반대쪽에서 한 차량이 나타나 그 틈을 파고들었다. 양보도 없이 조금씩 차머리를 디밀다 거의 부딪칠 뻔했다. 두 차량의 운전자가 내려서 말다툼이 시작됐다. 서로 내가 먼저라고 우기다가 반대편 차량의 백인 운전자는 우리에게 너희 나라고 돌아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 일행 중 지인의 남편은 피부색이 검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며 영어가 유창해서 평상시에도 한국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난 아메리칸 인디언이다. 너나 너희 나라로 돌아가.” 결국 백인 운전자는 차를 후진했고 우리는 차를 세울 수 있었다. 그 순발력에 손뼉을 치며 통쾌했다.미국 배우 알렉 볼드윈이 뉴욕 맨해튼의 웨스트빌리지에서 주차 공간을 놓고 시비가 붙은 끝에 상대 운전자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려 폭행죄로 재판을 받았다. 볼드윈은 NBC방송의 생방송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흉내 내는 풍자로 인기를 끌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평소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그에게 행운 빈다며 비아냥댔다.주차난이 갈수록 심해지며 시비가 붙고 몸싸움이 벌어지기 일쑤다. 공공의 도로인데 내 집 앞은 내 땅이라는 잘못된 의식도 문제다. 내 구역이라는 심리가 마치 외적에게 침략당한 듯 피해 의식까지 불러와 열을 받는다. 다른 사람의 주차를 막기 위해 고깔 모형의 안전 표지판이나 두 자리를 차지하게 주차를 해서 가족의 자리를 미리 잡아두는 얕은수를 쓰기도 한다. 이웃 간의 정을 앗아가는 주차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절실한데 한정된 땅에 늘어나는 차는 대책 불가다.원래 내 자리라는 원칙은 없다. 빈자리는 먼저 발견한 사람의 몫이다. 내 것도 아닌 것을 놓고 권리를 주장하며 싸우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경쟁 사회에서 긴장하고 살다 보니 주차 자리를 놓친 것도 빼앗겼다는 피해 의식과 경쟁에서 실패했다는 심리를 자극해 상대를 증오하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내 삶도 온전한 내 것이 아니라 자리매김을 하기 힘든 세상인데 차 세울 자리는 더더욱 내 권한 밖이다.서울 방문길에 어느 지하철역에서 이런 표어를 봤다. ‘내가 지킨 매너와 배려는 언젠가 같은 모습으로 내게 돌아와 웃는다.’ 멋진 말이라 기억에 남았다. 빈자리를 찾아 한두 바퀴 더 돈다면 귀찮고 짜증이 나긴 하지만 타인과 얼굴 붉히고 마음 상하는 일은 겪지 않을 것이다. 쉽지 않아도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다. 당장은 손해를 본다고 느끼겠지만 마음의 여유를 갖고 서로 양보하는 자세로 기본 에티켓을 지키자. 오늘 내가 지킨 매너가 적립되고 이자까지 붙어 다음에 두 배로 활용할 수 있다면 손해 보는 일은 아니다.

대구소방, 119회선 전화국 및 통신구 이원화 완료

대구소방안전본부가 안정적인 119 신고접수를 위해 119 신고 회선의 전화국 및 통신구 이원화 작업을 완료했다고 28일 밝혔다.이번 작업은 지난해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 당시 서울 중구, 서대문, 마포구 일대 통신장애가 발생해 완전복구까지 일주일 소요된 것을 계기로 진행됐다.지금까지 휴대 및 일반전화를 포함하는 지역 내 모든 119 신고는 KT 전화국을 거쳐 대구소방 119종합상황실로 연결돼 소방출동 전 과정이 시작됐다. 119회선은 119종합상황실이 최초 구축된 2000년부터 KT의 1개 전화국과 통신구를 통해서만 연결돼 있었다.이번 사업을 통해 KT와 대구소방안전본부는 KT 전화국과 119종합상황실간 119회선이 2개의 서로 다른 전화국과 통신구를 통해 연결, 화재 등 재난 상황에 대비할 수 있게 됐다.119종합상황실 측은 “소방본부청사의 회선연결을 위해 소방본부 주변에 119 통신주를 신규로 설치하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KT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으로 이원화를 구축하게 됐다”고 밝혔다.김지혜 기자 hellowis@idaegu.com

[미주통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성민희재미 수필가 뒤뜰이 소란하다. 얕은 흙을 밀치고 속속 고개를 내미는 새싹. 어느새 키가 훌쩍 자란 노랑, 분홍 튤립은 얼굴을 마주하며 속살대고 보랏빛 아이리스는 바람 따라 흔들린다. 휘황한 봄빛의 군무 위로 쏟아지는 햇살. 정말 봄이다.4월이 되면 나도 모르게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벨테르의 편질 읽노라.’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교정 등나무 아래에 앉아 목청껏 노래를 부르던 갈래머리 여고시절.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때 내 마음을 적셨던 베르테르의 슬픔이 찾아와 나는 설렌다.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고 가슴 한 켠을 차지하고 있다가 가끔씩 고개를 드는 그리움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햇살이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 하품을 하는 오후. 잠깐 밖으로 나와 보라며 친구가 전화를 했다. 대문을 열고 보니 친구는 쌀자루 두 개는 합한 것만큼 큰 비닐보따리를 들고 낑낑댄다. 내가 좋아하는 땅콩과자. 일 년 내내 먹어도 족히 남을 양의 땅콩과자 보따리를 내 생일 선물이라며 들이민다. 각종 도매상이 밀집해 있는 LA자바시장에 옷감을 사러 갔는데. 과자 도매상 앞을 지나다가 이것이 보이기에 차를 세웠단다. 그 복잡한 거리에서 파킹 자리를 찾느라 얼마나 헤매었을까. 생일 지난 지가 언젠데? 눈을 홀기는 나를 뒤로하고 바쁘다며 뛰어가는 친구의 모습에 마음이 울컥한다.하버드대에서 1938년부터 75년 동안 700여 명의 남성을 선정하여 10대부터 80대까지의 인생 데이터를 작성했다는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매년 피를 뽑고 뇌를 촬영하는 등 의료 기록을 체크하고 본인은 물론 10대에는 부모님을, 성인이 되었을 때는 배우자와 자녀들까지 인터뷰를 하여 그들의 인생 여정을 빈틈없이 추적한 스케일이 방대한 실험이다. 그 결과 건강을 유지하며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주위에 ‘좋은 관계’의 사람이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실험이 주는 분명한 메시지는 우리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삶이란 ‘좋은 관계’라는 것이다. 젊은 시절의 그들은 부와 명성, 높은 성취를 인생의 최고 가치로 여겼지만 황혼 고개를 넘은 지금은 주위에 좋은 가족과 친구, 보람을 느끼며 활동 할 수 있는 공동체가 가장 소중한 인생 자산이라고 말한다. 누군가와의 바람직하고 따뜻한 관계는 몸은 물론 뇌의 건강도 지켜준다. 그런 사람은 신체적인 고통이 심한 날에도 마음은 행복하며 치매에 걸릴 확률도 적다. 반면 불행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신체적인 고통이 심한 날에는 감정적인 아픔까지 겹쳐 고통이 더욱 극대화된다. 사람은 사회적 연결이 긴밀할수록 삶에 활력이 넘치고 정신도 맑아진다. 또한 내가 어려울 때에 진정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든든함은 나이를 먹는 고통의 완충제 역할을 한다고 한다. 가장 행복한 삶을 산 사람은 그들이 의지할 가족과 친구와 공동체가 있는 사람이라는 결론이다.좋은 관계의 사람은 수가 얼마나 많은지, 남이 보기에 안정적이고 공인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관계의 질이 중요하다. 아무런 마음의 거리낌 없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줄 수 있는, 너와 함께 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 할 수 있는 사람. 단 한 명만이라도 이런 친구나 가족이 있다면 성공한 사람이다.돌아보면 우리가 산다는 건 시간에 얹혀 그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촘촘히 생을 짜내는 작업이다. 사건을, 사람을, 감정을 씨줄과 날줄로 서로 엮는 일이다. 좋은 사람과의 관계라야 좋은 사건을 만들고 좋은 사건에서 좋은 감정도 생긴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감정의 도를 최고조까지 끌어올릴 수도 있고 바닥까지 끌어 내릴 수도 있다. 긍정의 에너지를 발산할 수도 있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절망도 느낄 수가 있다.마크 트웨인은 말했다. ‘시간이 없다. 인생은 짧기에 다투고 사과하고 가슴앓이하고 해명을 요구할 시간이 없다. 오직 사랑할 시간만이 있을 뿐이며 그것은 말하자면 한 순간이다.’행복하려면 행복한 사람 옆으로 가라는 말도 있다. 지금 내 곁에서 행복을 함께 엮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돌아보고 소중이 여길 일이다.아직도 ‘4월의 노래’에 마음이 설레듯 늦은 생일을 챙겨주고 차에 오르는 친구의 모습은 먼 훗날 또 다른 그리움으로 남을 것 같다.

[미주통신] ‘콜로라도 강’에 발을 담그고

'콜로라도 강'에 발을 담그고신영재미 시인·칼럼니스트 3년 전부터 계획했던 그랜드 캐니언 하이킹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10년이 다 되도록 함께 산을 오르내리던 두 부부와 함께 다섯 명이 오붓하게 다녀온 ‘하이킹 여행’이었다. 국립 그랜드 캐니언 공원에는 한국에서 오신 지인들과 함께 다녀오고 친구들과 함께 다녀오고 그리고 여행사를 통해 다녀온 기억으로 세 번 정도를 다녀왔던 기억이다. 몇 번을 다녀와도 다시 보면 자연의 장엄함과 신비로움 그리고 그 경이로움에 또 놀라고 만다. 자연이 만들어 낸 거대하고 웅장한 협곡인 바위 숲의 그랜드 캐니언은 20억 년 전 지구의 세월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이번 여행이 더욱 의미 있는 것은 그랜드 캐니언이 1919년에 국립공원으로 승격, 올해로 100주년을 맞고 있다. 국립공원 내의 기념품 가게마다 100주년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상품들이 즐비하게 마련되어 방문하는 여행객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눈으로만 보러온 것이 아니라 하이킹이 목적인지라 그 외의 것에는 시간을 보낼 여력이 없었다. 최대한 짧은 시간을 어떻게 안전하고 알차게 그리고 재미있게 보낼 것인가를 서로 여행 계획을 세우며 많은 준비를 했다.그랜드 캐니언은 미국 애리조나 주 북부에 있는 고원지대를 흐르는 콜로라도 강에 의해서 깎여진 거대한 계곡이다. 콜로라도 강의 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동쪽에 있는 글랜드 캐니언댐 밑에 있는 리스페리가 된다. 여기서 계곡으로 들어가는 콜로라도 강은 서쪽으로 446km의 장거리를 흘러서 계곡의 출구가 되는 미드 호로 들어가는데 이 구간의 양편 계곡을 그랜드 캐니언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지역이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나 인디언 부족의 땅에 속한 지역도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강을 따라 고무보트 배를 타고 캐니언을 통과하는 관광을 할 경우 2주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을 보면 캐니언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콜로라도 강에 의해서 깎인 계곡의 깊이는 1,600m에 이르고 계곡의 폭은 넓은 곳이 30km에 이른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노력으로 1908년에 그랜드 캐니언은 내셔널 모뉴먼트(National Monument)로 지정되었고 1919년에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그랜드 캐니언은 197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10년에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을 방문한 관광자 수는 439만 명으로 미국의 서부지역에 있는 국립공원 중에서 가장 높은 숫자를 기록했다.우리는 South Kaibob Trail -> Colorad River ->Bright Angel Trail을 다녀오기로 계획을 세웠었다. 그래서 도착한 다음 날 이른 새벽 4시30분에 기상을 하고 아침과 점심을 맥도날드 음식으로 간단하게 하기로 했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점심거리로 각자 햄버거 1개와 컵라면 1개를 준비했다. 그리고 물을 넉넉히 챙겨 준비를 마치고 출발을 기다렸다. 아침 6시에 South Kaibob Trail을 따라 Colorad River로 내려가는 내내 세월을 쌓아 올린 조금씩 다른 빛깔의 수십 억 년 동안 쌓인 지층들과 그 흔적을 보며 연신 감탄을 하며 내려갔다.4시간30분의 여정끝에 Colorad River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 지역이 얼마 전에 비가 많이 내린 관계로 ‘콜로라도 강’의 물이 뿌옇게 흐르고 있었다. 몇 년 전 여행 중에 헬리콥터를 타고 그 웅장함의 협곡을 내려다 본 일이 있었다. 그때는 초록과 푸른빛으로 참으로 아름다웠던 기억에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 강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충분한 감사이고 감동이었다. 우리는 발을 강물에 담그며 준비해 온 햄버거와 컵라면을 점심으로 챙겨 먹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Bright Angel Trail을 오르기 시작했다.일행은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경이로움에 취한 채 수십 억 년의 장엄하고 신비로운 태고의 바위 속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고 정오의 낮에 오르니 얼마나 덥던지 한 두시간 남짓 올라서야 바위틈 응달을 내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준비한 간식을 챙겨 먹고 물을 마시며 힘겹게 올랐다. 그리고 7시간을 올라서야 뉘엿뉘엿 서쪽으로 기우는 황홀경의 일몰을 정상에서 바라볼 때쯤 목표점에 도착하게 되었다. 참으로 힘들고 버거운 하이킹이었지만, 그 장엄하고 신비로운 자연 속에서 창조주를 만나고 티끌만큼 작은 피조물인 나를 또 확인하고 온 것이다.

[미주통신] 4월, 우리는 아무도 패배하지 않는다

4월, 우리는 아무도 패배하지 않는다이성숙재미 수필가날씨가 적당히 흐린 날은 뉴포트 비치가 좋다. 4월의 이른 아침. 해변은 건강한 사람들로 넘쳐난다. 물속에 들어가기에는 이른 시간이고 바닷물은 아직 차갑지만 바다에는 한가득 서핑족이 떠 있다. 둑방으로 올라선다. 긴 둑방 끝에는 낚시 통을 옆에 둔 어부들이 빈틈없이 앉아 있다. 은빛 고등어가 열댓 마리씩 낚여 올라온다. 감탄을 연발하는 내게 막 고기를 잡아 올린 남자가 한 통 가득한 물고기를 거저 가져가라며 농을 건넨다. 내가 손사래를 치자 그는 그렇다면 미끼값으로 5불만 내고 가져가란다. 그의 흥정이 유쾌하다. 그 아침을 그대로 보낼 수 없어 나는 값을 치르고 고등어 한 통을 고무통째 받는다. 살아 팔딱이는 고등어를 바다에서 만나는 느낌은 특별하다.고등어가 물통을 넘어 솟구친다. 갈매기와 펠리칸이 물통 위로 배회하고 신신한 아침 공기는 바다를 배경으로 출렁댄다. 태양은 구름을 못 이겨 멀리서 실루엣만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인지 공기는 더 차고 사람들 말소리는 낡은 필름 속 영화 대사처럼 더디게 들린다. 어쩌면 차원이 다른 세계에 들어선 듯하다.내게 고등어를 판 어부가 웃어 보인다. 그의 굵은 주름위에는 샛노란 장난기가 묻었다. 하바나의 그 노인처럼 의지적이지는 않아도 바다를 안고 사는 그의 삶이 어쩐지 낭만으로 가득 차 보인다. 그래, ‘그의 모든 것은 늙거나 낡아 있었고 그의 파란 눈은 아침 생기에 빛나고 있었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이지는 않지만 낚싯대 드리운 그의 눈빛은 진지하고 고기를 낚아챌 때는 바다와 내기를 하듯 혼잣말을 하기도 한다. 운동복 마크가 새겨진 그의 재킷에는 꼬깃꼬깃 바다가 묻어난다. 정오가 되면 그는 몇 푼의 돈과 고등어를 안고 호기롭게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이윽고 그가 낚시 도구를 챙겨든다. 정오가 훌쩍 지났다. 날씨가 흐린 탓인지 찌를 내리기 바쁘게 고등어가 물려 올라오는 바람에 일어날 시간을 놓쳤다고 했다. 바닷물은 검고 깊다. 난간에 매달려 바다를 굽어본다. 육안으로도 고등어 떼가 장관이다. 과연 4월은 고등어가 제철인 때다.문학과 예술은 문명의 반작용으로 태어난다고 했던가. 물통, 낚싯대, 찌를 썰던 칼자루가 빈 고등어 통에 담긴다. 때 국물에 절은, 그가 한나절을 머물던 텐트가 접힌다. 거뭇거뭇하니 빛바랜 텐트와 낚싯대는 어부의 삶을 지탱해 온 장치들이다, ‘별빛과 달빛이 수없이 앉았다 갔을’. 하루를 정리하는 어부의 손길이 기도처럼 숭고하다. 삶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다. 햇살에 그을린 얼굴과 깊게 패인 주름, 흰머리, 체구에 비해 단단하게 단련되어 보이는 손가락 마디는 그의 삶의 기록일 터다.잠시 머물렀던 물 마을 하바나에서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낳았다, 인간은 파괴될 수 있어도 패배할 수 없다던. 오늘 고등어를 낚은 어부는 내일쯤 고래를 잡을지 모른다. 볕이 들지 않는 작은 집으로 돌아가는 어부의 등에 햇살이 앉는다. 모든 것이 충만한 삶이란 도태를 의미하지 않던가. 고래를 잡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어부의 삶을 밀고 가리라. 천적이 없는 존재는 자멸하고, 배부른 돼지는 살아남지 못한다. 세포조차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형질만이 다음 세대에 전해지는 법이다. 어부의 손등에 불거진 심줄은 인류가 다음 세대에도 살아남을 것임을 보여주는 징표가 아닐 수 없다. 그는 다시 새벽을 기다려 집을 나서고 고등어를 거저 가져가라며 행인에게 말을 건넬 것이다. 선한 얼굴에 주름을 피우고 살 오른 고등어를 길어 올릴 것이다.어부가 지나간 둑방을 따라 걷는다. 마파람이 머리칼을 젖히자 비린내가 폐로 침투한다. 둑방 난간에는 미끼로 사용되던 조갯살과 갯지렁이가 생선 피와 뒤섞였던 흔적이 남아 있다. 두께가 5㎝는 됨직한 나무 도마가 옹이 자국처럼 움푹 패여 있다.백사장에는 날개를 접은 펠리칸이 먹이를 쪼아대느라 분주하고 하늘에는 갈매기가 소란하다. 어부가 떠난 자리에 몸집 큰 갈매기가 잽싸게 내려앉는다. 파편이 된 미끼가 그의 식량이다.둑방 아래쪽으로는 새벽 어시장이 갈무리 중이다. 해산물을 팔던 상인은 좌판을 푸른색 비닐로 덮어씌우고 네 귀퉁이를 고무줄로 단단히 조인다. 새벽 장은 매주 한 차례씩 열린다. 늦깎이 손님을 기다리는 것인지 좌판을 열어 둔 곳이 두어 집 있지만 관광객 차림으로 어슬렁거리는 내게는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안쪽에서는 남자 두 명이 긴 고무장화에 빗자루를 든 채 물 고인 바닥을 쓸어내고 있다. 광장에는 특산물 수레와 야채 상인이 진을 치고 있다. 길가에는 장신구를 파는 사람, 야자수 아래서 첼로를 연주하는 사람, 마른 과일을 들고나온 아주머니, 꽃을 파는 청년이 자리하고 있다. 모두가 화사한 얼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