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역설

우리 시대의 역설/ 제프 딕슨건물은 높아졌지만 인격은 더 작아졌다. 고속도로는 넓어졌지만 시야는 더 좁아졌다. 소비는 많아졌지만 더 가난해지고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줄어들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작아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어졌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지혜는 모자란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너무 분별없이 소비하고 너무 적게 웃고 너무 빨리 운전하고 너무 성급히 화를 낸다. 너무 많이 마시고 너무 늦게까지 깨어있고 너무 지쳐서 깨어나며 너무 적게 책을 읽고, 텔레비전은 너무 많이 본다. 그리고 너무 드물게 기도한다. (하략)........................................................ 1999년 4월20일 미국 콜로라도의 작은 도시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히틀러가 세상에 태어난 날이었다. 평소 학교에서 따돌리고 놀림을 받곤 했던 두 학생이 자신들을 무시한 급우들을 죽이기로 작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수백발의 총알이 난사되면서 13명의 무고한 생명을 한순간에 앗아갔고 그들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끔찍한 이 사건소식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이 뉴스를 접한 호주 콴타스 항공의 최고 경영자 제프 딕슨은 글 하나를 인터넷에 올렸다. ‘우리시대의 역설’이었다. 우리 모두를 돌아보게 했던 이 글은 삽시간에 세계인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한 줄씩 덧보태어져 이어지고 있다. 이 글의 반향이 컸던 것은 세계인들이 그만큼 폭넓게 공감했다는 뜻이다. 당시 21세기 진입을 코앞에 두고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 듯했지만 한편으로 우리의 삶은 헛헛해져만 갔다. 좌표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들의 양면적 자화상을 이 시는 아프게 꼬집었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행복해져야 마땅할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하다. 어찌된 까닭일까. 물질의 풍요는 행복과 비례하지 않고 돈이 행복을 결정할 수는 없다. 물질적인 기반은 행복의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필요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물질적 만족 없이 행복이 담보되기는 어렵다. 수년 전 부탄 총리가 유엔총회에서 국민총생산지표를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으로 대체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는 사람들이 물량적 부의 추구로 인해 자기 파괴적 행동을 하고 있다며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GNH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탄은 히말라야 산맥 동쪽에 있는 인구 70만 명의 작은 산악 국가로, 국민소득은 2천 달러도 안 되지만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국민의 행복지수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진 나라다. 부탄은 1972년 이후 GNH를 국정의 기본철학으로 삼고 있어, 부탄 국민의 97%는 현재 행복하다고 말한다. 미국의 한 경제학자도 “경제성장(GNP)과 행복수준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논문을 발표하며 GNP를 대체할 새로운 지표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롱경제학이지만 거시경제를 짧게 공부한 내 소견으로도 공감이 가는 제안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경제성장의 과실이 고소득층에게 편중되는 양극화가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흐름은 시간이 갈수록 빨라졌고 2008년 이후에 가속화되었다. 양극화 현상을 방치하면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게 뻔하다.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좀 더 너그러워지고 겸손해져야 양극의 격차는 좁혀질 수 있을 것이다. 나 홀로 잘 사는 시대는 끝났다.

계명대 동산의료원

◆계명대 동산의료원△병원장 조치흠 △경영전략처장 금동윤 △비서실장 남창욱 △감사실장 김해국 △기획조정실장 정우진 △교육수련실장 김준형 △의료질관리실장 백성규 △진료부원장 한성욱 △행정부원장 겸 수술센터장 박남희 △간호부원장 최연숙 △의학도서관장 박원균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미주통신] ‘콜로라도 강’에 발을 담그고

'콜로라도 강'에 발을 담그고신영재미 시인·칼럼니스트 3년 전부터 계획했던 그랜드 캐니언 하이킹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10년이 다 되도록 함께 산을 오르내리던 두 부부와 함께 다섯 명이 오붓하게 다녀온 ‘하이킹 여행’이었다. 국립 그랜드 캐니언 공원에는 한국에서 오신 지인들과 함께 다녀오고 친구들과 함께 다녀오고 그리고 여행사를 통해 다녀온 기억으로 세 번 정도를 다녀왔던 기억이다. 몇 번을 다녀와도 다시 보면 자연의 장엄함과 신비로움 그리고 그 경이로움에 또 놀라고 만다. 자연이 만들어 낸 거대하고 웅장한 협곡인 바위 숲의 그랜드 캐니언은 20억 년 전 지구의 세월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이번 여행이 더욱 의미 있는 것은 그랜드 캐니언이 1919년에 국립공원으로 승격, 올해로 100주년을 맞고 있다. 국립공원 내의 기념품 가게마다 100주년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상품들이 즐비하게 마련되어 방문하는 여행객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눈으로만 보러온 것이 아니라 하이킹이 목적인지라 그 외의 것에는 시간을 보낼 여력이 없었다. 최대한 짧은 시간을 어떻게 안전하고 알차게 그리고 재미있게 보낼 것인가를 서로 여행 계획을 세우며 많은 준비를 했다.그랜드 캐니언은 미국 애리조나 주 북부에 있는 고원지대를 흐르는 콜로라도 강에 의해서 깎여진 거대한 계곡이다. 콜로라도 강의 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동쪽에 있는 글랜드 캐니언댐 밑에 있는 리스페리가 된다. 여기서 계곡으로 들어가는 콜로라도 강은 서쪽으로 446km의 장거리를 흘러서 계곡의 출구가 되는 미드 호로 들어가는데 이 구간의 양편 계곡을 그랜드 캐니언이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지역이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나 인디언 부족의 땅에 속한 지역도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강을 따라 고무보트 배를 타고 캐니언을 통과하는 관광을 할 경우 2주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는 것을 보면 캐니언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콜로라도 강에 의해서 깎인 계곡의 깊이는 1,600m에 이르고 계곡의 폭은 넓은 곳이 30km에 이른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노력으로 1908년에 그랜드 캐니언은 내셔널 모뉴먼트(National Monument)로 지정되었고 1919년에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그랜드 캐니언은 1979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2010년에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을 방문한 관광자 수는 439만 명으로 미국의 서부지역에 있는 국립공원 중에서 가장 높은 숫자를 기록했다.우리는 South Kaibob Trail -> Colorad River ->Bright Angel Trail을 다녀오기로 계획을 세웠었다. 그래서 도착한 다음 날 이른 새벽 4시30분에 기상을 하고 아침과 점심을 맥도날드 음식으로 간단하게 하기로 했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점심거리로 각자 햄버거 1개와 컵라면 1개를 준비했다. 그리고 물을 넉넉히 챙겨 준비를 마치고 출발을 기다렸다. 아침 6시에 South Kaibob Trail을 따라 Colorad River로 내려가는 내내 세월을 쌓아 올린 조금씩 다른 빛깔의 수십 억 년 동안 쌓인 지층들과 그 흔적을 보며 연신 감탄을 하며 내려갔다.4시간30분의 여정끝에 Colorad River에 도착하게 되었다. 이 지역이 얼마 전에 비가 많이 내린 관계로 ‘콜로라도 강’의 물이 뿌옇게 흐르고 있었다. 몇 년 전 여행 중에 헬리콥터를 타고 그 웅장함의 협곡을 내려다 본 일이 있었다. 그때는 초록과 푸른빛으로 참으로 아름다웠던 기억에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 강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미 충분한 감사이고 감동이었다. 우리는 발을 강물에 담그며 준비해 온 햄버거와 컵라면을 점심으로 챙겨 먹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 Bright Angel Trail을 오르기 시작했다.일행은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는 경이로움에 취한 채 수십 억 년의 장엄하고 신비로운 태고의 바위 속을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점심을 먹고 정오의 낮에 오르니 얼마나 덥던지 한 두시간 남짓 올라서야 바위틈 응달을 내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준비한 간식을 챙겨 먹고 물을 마시며 힘겹게 올랐다. 그리고 7시간을 올라서야 뉘엿뉘엿 서쪽으로 기우는 황홀경의 일몰을 정상에서 바라볼 때쯤 목표점에 도착하게 되었다. 참으로 힘들고 버거운 하이킹이었지만, 그 장엄하고 신비로운 자연 속에서 창조주를 만나고 티끌만큼 작은 피조물인 나를 또 확인하고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