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지하도상가, 범죄예방 최우수시설 인증 획득

대구시설공단 범어지하도상가가 범죄예방 최우수시설 인증을 받았다. 27일 대구시설공단에 따르면 범어지하도상가는 지난 22일 대구수성경찰서로부터 ‘범죄예방 최우수시설’ 인증을 획득하고 인증패 수여식을 가졌다. 범죄예방 우수시설 인증제도는 관할 경찰서가 시민이 이용하는 시설과 공간에 대해 범죄예방환경을 진단하고 시설에 대한 안전강화와 자발적 개선을 유도하기 위한 제도다. 인증절차는 경찰서 범죄예방진단팀이 현장을 방문해 관리운영, 방범경비 등 총 65개 항목 평가 후 총점의 80% 이상을 취득한 경우 범죄예방우수시설로 인정받게 된다. 2018년 7월부터 범죄예방 우수시설 인증을 획득한 범어지하도상가는 이번 재인증 심사에서 통합관제센터 운영으로 상가 및 주차장 실시간 모니터링, 순찰시스템 체계화, CCTV 사각지대 해소로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운영해 ‘범죄예방 최우수시설’ 인증을 받게 됐다. 범어지하도상가 김미선 관리소장은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환경구축과 안전한 시설 조성은 시민을 위한 최우선 과제”라며 “시민들이 범어지하도상가를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주형 기자 leejh@idaegu.com

대구지역 광장의 역사 (1) 반월당 네거리

대구에는 지명 대신 ‘광장’이라고 불리는 곳들이 있다.‘7호 광장’으로 불리는 대구 서구 두류네거리가 대표적이다.또 북구 만평네거리는 ‘8호 광장’이다.대구시가 1965년 ‘1차 도시계획재정비’에 나서면서 대구의 12개의 교통 요충지에 ‘광장’이라는 이름과 함께 번호를 매겼다.단순히 도면 확인의 편의를 위한 번호로 시작된 대구 광장의 역사는 시간이 흐르면서 광장이 현재 60여 개까지 늘어났다.‘2호 광장’처럼 현재 군부대 안에 위치해 본래 광장의 기능을 상실한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광장들은 여전히 대구 교통의 요충지로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대구 도시의 확장과 함께 성장해 온 대구지역 ‘광장의 역사’에 대해 알아본다.〈편집자 주〉-----------------------------------------------------------------------------------------“반월당에서 만나요.”1965년 발표된 ‘대구도시계획도’에 따르면 당시 계획된 12광장 중 가장 먼저 지정된 ‘1호 광장’의 위치는 현 대구 중구 남산동의 반월당 네거리 일원이다.반월당 네거리는 동성로와 함께 대구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고 붐비는 곳이다.현재 대구지역 대부분의 대중교통이 반월당 네거리를 중심으로 지나고 있다.대형백화점들이 위치해 있고 대구 번화가로 들어가는 관문이어서 예전부터 만남의 장소로 사랑받아 왔다.‘반월당’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먼저 후삼국 당시 후백제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왕건이 몸을 피해 이곳에 도착했을 때 반달(半月)이 떠 있었다는데서 유래했다는 설이다.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대구 최초의 백화점인 ‘반월당’의 명칭이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지도상으로도 대구의 가장 중심부에 있는 반월당 네거리는 대구 교통의 심장과도 같은 곳으로 대구의 정치·문화의 일번지로서 대구의 역사와 함께 성장해 왔다. ◆대구 도심의 역사 ‘반월당’대구근대역사관에 따르면 반월당 네거리 일대는 조선 후기 전국에서도 손꼽혔던 서문시장과 약령시를 찾는 상인들로 늘 북적였다.1906년 대구읍성을 헐고 조성된 ‘중앙통’ 거리가 현재의 대구 동성로 번화가의 시초로 추정된다.1936년 당시 약전골목의 상인이었던 차병곤씨가 고급화장품, 수예품, 메리야스, 양산 등의 잡화류를 판매하는 목조 2층 건물로 된 ‘반월당’이라는 가게를 연 것이 반월당의 시초다.특히 대구 최초의 백화점이라는 의미가 있다.당시 반월당은 현 중구 남산2동 반월당역 22번 출구 인근에 세워졌으며 고객은 여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1943년 경영난으로 다른 사람에게 넘겨져 ‘공신백화점’으로 상호가 바뀌었고 해방 이후 백화점은 문을 닫았다.이후 여러 상점 등으로 분리돼 운영됐지만 1981년 도로 확장 공사로 인해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반월당은 사라졌지만 반월당이라는 지명으로 여전히 통용될 만큼 당시 화려했던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현재 동아쇼핑과 현대백화점 등이 옛 반월당의 명맥을 잇고 있다. ◆대구 관문을 넘어 중심상권으로 성장 경상감영 사백년사에 따르면 대구지역 최초의 도시계획은 1937년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이 실행했다.당시 대구의 인구 15만 명을 기준으로 30년 후인 1965년에는 35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해 만든 계획이었다.하지만 1965년에는 대구의 인구가 80만 명에 달해 계획은 무용지물이 됐다.대구시는 1965년 ‘1차 도시계획재정비’를 발표하며 대구에 12개 교통광장을 설치한다는 계획을 세웠다.이 중 반월당 네거리를 ‘1호 광장’으로 지정했다.대구시 도시계획정책관 민병룡 팀장은 “건축법시행령에 따르면 교통광장으로 지정 시 복잡한 도로환경의 정리와 더불어 보행자들과 차량들을 위한 다양한 편의시설 설치가 용이해진다”며 “반월당 네거리를 대구 교통의 중심축으로 두고 대구의 도로들을 재개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다양한 도심과 부도심들이 공존하고 있는 비슷한 규모의 타 도시들과는 달리 대구는 유난히 상업지구가 단일 도심인 동성로에 집중돼 있다.반월당 네거리는 동성로의 입구인 동시에 대중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며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특히 2005년 도시철도 2호선 개통과 2011년 현대백화점 대구점 개점으로 주변상권도 다시 개편되는 등 관문을 넘어 중심상권으로 변모 중이다. ◆대구 ‘광장 민주주의’의 성지반월당 네거리는 많은 유동인구와 넓은 공간이라는 장점으로 예전부터 각종 모임 장소로 활용됐었다.특히 1960년 당시 이승만의 자유당 독재정권에 맞서 항거한 2·28시위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2·28시위는 당시 대구지역 8개교 학생들이 부패한 정권의 불의와 부정에 항거해 자발적으로 일으킨 광복 이후 최초의 학생민주화 운동이다.특히 아시아 최초의 민주시민혁명인 4·19혁명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최근 도시철도 반월당역의 지명을 2·28역으로 바꾸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이밖에도 1972년 유신반대시위에서 19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대구의 굵직한 민주화 시위들이 모두 반월당 네거리에서 열린 까닭에 대구 ‘광장 민주주의’의 성지로 불리기도 한다.현재도 대구지역의 대형 집회와 걷기행사 등이 반월당 네거리에서 열리고 있는 등 대구지역 집회·시위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통한다. ◆대구 시민의 만남의 ‘광장’ 대구 시민의 대표적인 만남의 장소는 바로 반월당이다.특히 반월당 네거리는 대구에서 유일하게 도시철도 1호선과 2호선이 만나는 지점으로, 대구를 가로와 세로로 가르는 달구벌대로와 중앙로가 교차하는 곳이기도 하다.위치상으로도 대구의 중심에 있으며 신천대로, 북대구IC 등 대구 주요도로의 진입이 용이해 다양한 교통 인프라를 갖춘 대구 교통의 최중심지다.도시철도 1호선과 2호선이 환승하는 반월당역의 출구는 무려 23개.반월당역은 전국 도시철도역 중 출구가 가장 많은 역이다.또 반월당역은 대구 도시철도 전 구간을 통틀어 가장 승하차 인원이 많은 역이다.두 노선을 합쳐 작년 기준으로 하루 평균 7만5천여 명의 이용객이 반월당역을 찾고 있다.이는 비수도권의 도시철도역 중 두 번째로 많은 숫자다.반월당 네거리는 대구 유일의 도심지이자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의 입구에 있다.2005년 도시철도 2호선 개통 이후 뛰어난 접근성으로 인해 상권의 중심지의 명성을 다시 찾았다. 반월당 네거리 지하에 조성된 메트로센터 지하상가는 7만5천900㎡(2만3천 평) 규모다.점포수는 400여 개이며 도시철도 이용객은 물론 메트로센터를 찾은 이들로 늘 북적인다.메트로센터 상가 중앙에는 분수대가 있는 넓은 공간의 광장이 있다.‘만남의 광장’으로 불리는 이곳은 시민들의 대표적 약속장소다. 또 2009년 반월당 네거리~대구역을 잇는 1.05㎞ 구간이 국내 최초로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되기도 했다.영남대 도시공학과 윤대식 교수는 “반월당 네거리는 대구의 모든 교통이 관통하고 있는 대중교통의 중심지로 대구 도심의 얼굴이자 상징”이라며 “대중교통의 시작점으로 반월당 네거리를 중심으로 대구의 도심이 점차 재개편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상화로 입체화 사업, 지하도로 건설로 확정

고가도로 방식에서 지하도로 방식으로 변경하면서 사업비 증액 문제로 난항(본보 7월16일 1면)을 겪은 대구 달서구의 상화로 입체화 사업이 지하도로 방식으로 추진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대구시는 지난달부터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상화로 입체화 사업에 대한 사업계획적정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18일 밝혔다. 사업계획적정성 검토는 대구시가 제출한 사업계획은 인정하되 사업비 규모의 적정성을 검증하는 단계다. 상화로 입체화가 지하도로 건설 방식으로 확정된 셈이다.상화로는 달서구 월곡네거리∼유천네거리 3.9㎞ 구간을 교차로 및 신호 단절 없이 통행할 수 있도록 전면적으로 개선하는 사업이다.현재 상화로 주변에는 월배지구, 대곡지구, 대구국가산단, 테크노폴리스 등 대규모 주거 및 산업단지가 들어서 있다. 이렇다보니 매일 심각한 교통 체증이 벌어지고 있다.상화로 입체화 사업은 2018년 5월 예타 조사를 최종 통과했다. 당시에는 고가도로 방식이었다.사업비는 2천856억 원(국비 1천496억 원, 시비 1천360억 원)으로 책정됐다.이후 대구시는 올 4월 주거지역 통과에 따른 대규모 민원발생, 도시경관 저해 등을 이유로 상화로 입체화 사업을 지하도로 방식으로 변경하는 안을 국토교통부에 신청했다.국토부는 고가도로 방식이 경제·환경적인 측면과 엇박자가 난다는 논리로 대구시의 지하도로 변경 요청에 찬성했다. 문제는 기획재정부가 지하도로 건설에 따른 추가 사업비가 과다하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것. 지하도로로 변경할 경우 고가도로 방식일 때 보다 600억 원 이상의 사업비를 더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하지만 대구시는 고가도로 건설 시 방음벽 설치비용(700억 원) 등이 드는 만큼 지하도로 방식과 사업비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고 기획재정부를 설득했다.기재부 역시 이 같은 논리를 인정해 상화로 입체화 사업이 다시 속도를 내게 됐다.대구시 관계자는 “올해 안으로 사업계획적정성검토가 끝날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 초에 공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김현수 기자 khsoo@idaegu.com

경주 금장교 사거리 만성적인 교통체증 해소 나선다

경주시가 금장교 사거리의 만성적인 교통체증 해소를 위해 지하 차도를 건설해 17일 개통했다.금장교 지하도는 사업비 9억5천만 원을 들여 길이 604m, 폭 4m 도로로 건설했다. 당초 금장교 아래로 통과 높이가 3.5m였으나 부산국토관리청과 지속적으로 협의해 4.2m로 높여 버스 등 대형차량까지 통행이 가능하도록 했다.금장교 일대는 현곡 푸르지오, 용황동 협성휴포레와 이편한세상 등 대규모 아파트가 최근 입주하면서 통행 차량이 급증해 출퇴근 시간에 교통체증이 빚어졌다.주낙영 경주시장은 “이번 지하차도 개설로 현곡면과 황성동 등 강변로 일원의 출퇴근 시간대 시민들의 통행불편이 크게 해소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한편 경주시는 현곡지역의 만성적 교통난 해소를 위해 제2금장교 설치 등의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