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여중, 중등학교 공동사업 요리 나눔 봉사활동 호응

경산여자중학교는 최근 백천동 백천사회복지관에서 중등학교 공동사업 ‘요리 나눔 봉사활동’을 운영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번 ‘요리 나눔 봉사활동’ 프로그램은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으로 경산중, 장산중, 삼성현중, 사동중학교 등 4개 중학교가 함께 진행됐다. 프로그램 운영은 백천사회복지관, 효자손 요양원과 연계해 초콜릿, 쿠키 등을 직접 만들어 우리 지역의 소외된 이웃에게 나눠 주는 등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배우고 나눔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 됐다. 봉사활동에 참여한 경산여중 3학년 김모(15)양은 “내가 만든 초콜릿을 지역의 어르신이 받아 드시면서 무척 좋아하는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며 “이번 ‘요리 나눔 봉사활동’이 보람되고 유익한 시간이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신현구 경산여중 교장은 “봉사활동의 다양한 체험을 통해 건강하고 건전한 인성개발과 청소년 문화조성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며 “공동체 의식 배려와 존중하는 마음을 키워 지역사회에서 봉사 정신을 실천할 수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남동해 기자 namdh@idaegu.com

울진군, 제55회 추계 한국중등(U-15) 축구연맹전 개최

축구 꿈나무들의 산실이자 전국 최대 규모의 중등축구 대회인 ‘제55회 추계 한국중등(U-15)축구연맹전’이 지난 11일 막을 올렸다.축구연맹전은 오는 27일까지 17일간 울진군 일원에서 펼쳐진다.울진군과 한국중등축구연맹, 울진군체육회, 울진군축구협회에서 주관하는 이번 대회는 188개 팀(고학년86개 팀, 저학년64개 팀, 1학년 38개 팀) 선수 3천760명과 임원, 학부모 등 5천여 명이 참가한다.경기는 울진종합운동장 등 9개 구장에서 오후 4시부터 저녁시간에 ‘라이트 경기’로 진행되며 조별 리그전을 거쳐 본선 토너먼트로 형식으로 펼쳐진다.대회를 통해 어린 선수들이 그동안 훈련으로 쌓은 실력을 마음껏 펼침으로써 축구에 대한 안목을 넓혀 한국 축구발전의 든든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또 대회 기간 중 선수단은 물론 학부모, 임원진 등이 방문함으로써 ‘숨 쉬는 땅 여유의 바다 울진’ 홍보와 함께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김동명 체육진흥사업소장은 “대회 참가를 위해 우리지역을 찾는 선수단과 학부모 모두가 안전하게 대회를 마치기를 바란다”며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경기장 점검, 숙박·음식점 위생 점검, 의료지원, 자원 봉사자 운영 등 대회 준비에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강인철 기자 kic@idaegu.com

중등부 실력 뛰어넘어…슈팅 밸런스 ‘완벽의 경지’

“김제덕은 이미 중등부 실력을 뛰어넘었다.”서만교 예천중 양궁부 코치는 ‘김제덕(예천중 3학년)은 어떤 양궁 선수인가’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이같이 답했다.이어 “앞으로 세계 양궁계 길이 남을 우수한 선수로 성장할 것을 의심치 않는다”고 평가했다.양궁으로 이름을 서서히 알리고 있는 김제덕이 제48회 전국소년체전에서 누구도 해내지 못한 개인 ‘6관왕’에 도전한다.김제덕은 지난해 열린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양궁 4관왕을 차지한 바 있다.이 대회 30m(360점·대회 및 한국신기록), 50m(348점·대회신기록), 60m(343점)에서 1위를 차지 개인종합 1위(1천403점·대회신기록)를 달성했다.또 지난 3월 대한양궁협회로부터 ‘우수선수상’을 받는 등 실력은 이미 양궁계에서 정평이 나 있다. 현재 실력으로도 국가대표 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김제덕의 가장 큰 장점은 양궁을 즐긴다는 것이다.오죽하면 그의 친구들이 ‘양미’로 별명을 지어줬다. 양미는 ‘양궁에 미친놈’을 뜻한다.김제덕은 ‘양궁이 좋고 활 쏘는 게 재미있다’고 할 만큼 훈련량 또한 남다르다. 김제덕의 코치는 ‘제덕이의 훈련량은 과하고 지나치다는 표현이 부족하다’고 말할 정도다.현재 김제덕은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훈련하는 등 소년체전 준비를 확실히 하고 있다.이처럼 타고난 재능과 피나는 연습으로 만들어진 김제덕의 ‘슈팅 밸런스’는 완벽에 가깝다. 슈팅 밸런스는 양궁의 전부라고 할 만큼 중요하다.김제덕의 롤 모델은 김우진.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 양궁을 대표하는 세계 랭킹 1위의 선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우진을 뛰어넘겠다는 목표를 가슴 속에 품었다.김제덕은 “지난해 전국소년체전에서의 아쉬운 점을 보완해 이번 대회에서는 롤모델인 김우진 선수도 해내지 못한 소년체전 6관왕을 달성할 것”이라며 “이후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해 국가대표의 꿈을 이루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신헌호 기자 shh24@idaegu.com

제20회 증평인삼배 전국장사씨름대회 의성중학교 신건 중등부 장사급 우승

신건(의성중 3학년)이 제20회 증평인삼배 전국장사씨름대회에서 중등부 장사급 1위로 우승했다.지난 15일부터 충북 증평종합스포츠센터에서 열린 대회에서 신건의 우승으로 의성중학교 씨름부는 지난해 대회에 이어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이에 앞서 신건은 지난달 영남대학교에서 개최된 2019년 경북소년체육대회 중등씨름부 장사급에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신건은 제48회 전국소년체육대회 도 대표로 출전한다.신건은 “전국소년체육대회를 앞두고 이번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해 더욱 자신감을 갖게 됐다”며 “남은 기간 더욱 훈련에 집중해 우리나라 최고의 씨름선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이병철 의성중학교 씨름부 감독은 “현재 씨름부 학생들이 여러 가지로 어려운 여건임에도 항상 밝은 모습으로 훈련에 임하고 강한 의지를 보였던 만큼 좋은 결과를 얻게 돼 보람을 느낀다”며 “앞으로 있을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호운 기자 kimhw@idaegu.com

경북도 인구교육, 신규공무원 필수강좌…내년 초·중등 의무화 추진

‘2018 합계출산율=0.98명’으로 저출생이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경북도가 인구교육을 강화한다. 이는 그동안 저출생 극복을 위한 각종 시책도 시책이지만 자라나는 차세대 등에 대한 인구교육을 강화함으로써 인구 감소에 대한 기본인식을 공유, 장기전에 대비하려는 취지로 읽힌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경북의 합계출산율은 1.17명으로, 전국 평균 0.98명보다는 높지만 2017년 1.26명보다는 0.09명이 감소했다.출생아 수는 전년보다 1천857명이 감소한 1만6천100명, 사망자 수는 전년보다 1천22명이 증가한 2만2천300명이었다. 경북도는 17일 도청 회의실에서 이철우 도지사가 참석한 가운데 제1회 저출생극복위원회(공동위원장 김희정 변호사)를 열고 범도민 공감대 확산을 위한 인구 교육 강화 등을 뼈대로 한 저출생 극복 방안을 논의했다. 우선 전국에서 처음으로 공무원교육원 신규임용과정에 인구교육을 필수강좌로 개설하는 등 공무원 대상 인구교육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또 2017년 민간보조사업으로 시작한 초·중학교 인구교육도 제도화에 들어간다.경북도교육청과 협의해 인구교육을 위한 시범학교를 지정·운영해 나가면서 내년부터는 도내 전 초·중등학교를 대상으로 인구교육 의무화를 도모하기로 했다.이를 위해 올 상반기에 필요한 조례도 제정하기로 했다.시범학교 인구교육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10개월 동안 지속돼 효과가 기대된다. 사회교육에도 인구교육을 대폭 반영한다.민간기업, 군부대,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하는 찾아가는 인구교육과 함께 예비군훈련 민방위 훈련에도 인구교육을 반영해 인구감소에 대한 기본 인식을 공유, 저출생 극복을 위한 공감대 형성에 나선다.한편 경북도는 결혼비용 부담 경감을 위한 작은 결혼식장 신규 설치, 울진에 이어 공공산후조리원의 상주 조성, 찾아가는 산부인과 진료 강화 등도 확대한다.통계청의 올 2월 기준 경북 내 시군별 인구 순이동 현황을 보면, 3만891명이 전입했고 3만2천917명이 빠져나간 2천26명이 순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지역별로는 도청 신도시가 형성되고 있는 예천군에 184명, 청도군 89명 등이 순유입됐고 나머지는 울릉 14명에서부터 구미 523명, 포항 482명 등 대부분 순유출됐다.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저출생 문제는 우리 사회의 복합적 원인에 의한 결과로 이미 일어난 저출생 현상은 수십년에 걸쳐 영항을 줄 것”이라며 “젊은 남녀가 일자리를 찾고 많은 만남과 결혼 기회, 안심하고 아이를 맡기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나가는데 도정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경주 무산중학교 춘계한국중등축구연맹전 우승

경주의 무산중학교가 ‘제55회 춘계 한국 중등축구 연맹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무산중학교 축구팀은 지난 12일부터 26일까지 15일간 영덕과 울진 일대에서 열린 이 대회 화랑그룹(고학년) 부문에서 우승했다. 무산중은 이 대회 결승전에서 과천 문원중을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4:3으로 승리하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번 우승은 지난 대회에서부터 이어져 온 연승으로, 기쁨이 두 배라며 선수들과 학교 측은 자축했다.또한 무산중학교는 이 대회 저학년부인 청룡그룹에서도 전체 40팀 중에서 3위를 차지, 축구 명문 중학교로서의 위상을 뽐내었다.무산중의 조건우 선수는 대회 최우수 선수상, 권윤수 선수는 GK상, 김기식 감독과 배장운 코치는 최우수 지도자상, 김대훈 교사는 팀부장상을 각각 수상했다.김기식 무산중 감독은 “훈련했던 것과 같이 실력을 마음껏 펼치며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고맙고 앞으로도 좋은 경기를 펼치고 싶다”고 말했다. 설승환 무산중 교장은 “우리 선수들이 앞으로도 좋은 경기를 계속 펼쳐 나갈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고 응원하겠다”고 격려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국내 최대 중등사학재단 설립…8·14대 국회 입성 정치활동도

대구시 남구 봉덕동 경일여자고등학교. 진입로 왼쪽에 학교법인 협성교육재단 건물이 있다. 소속된 중학교‧고등학교 등이 12개나 돼 우리나라에서 개인이 세운 중등학교로 숫자가 가장 많은 교육재단이다.고인이 된 재단 설립자 우봉(友峰) 신진욱(申鎭旭‧1924∼2014)은 중년 이상 대구 시민이면 상당수가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대구 교육계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가 간 길을 돌아보았다.재단 사무실은 교실 한 칸이 족히 될 정도로 널찍했다. 그곳에서 협성교육재단 권오수(58) 관리국장과 박준식(50) 관리실장을 만났다. 사무실이 자리는 많은데 직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박 실장은 두 사람이 교육재단 직원의 전부라고 했다. 신철원(52) 이사장은 행사 참석차 미국에 체류 중이었다.재단의 내력을 들은 뒤 ‘학원장실’ 이름이 붙은 집무실을 둘러봤다. 신진욱 학원장이 생전 근무할 때 그대로 집기와 자료 등을 보존해 두었다. 한쪽에는 1995년 경북예술고 교사가 만든 우봉의 흉상이 있었다. 집무실 책상에는 굵은 글씨로 인쇄된 ‘성경’이 펼쳐져 있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그가 즐겨 읽었다는 시편 23장이다.◆교육사업에 눈 뜨다우봉은 경북 의성의 유교 집안인 아주 신씨 신종기와 전주 이씨 이소선 여사의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자라면서 어머니로부터 배운 것이 기독교였다. 그래서 유교의 효(孝)와 십계명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 다를 게 없다며 두 가르침을 모두 따랐다.우봉은 일제강점기인 1940년 대구사범학교 강습과에 들어가면서 교육과 인연을 맺는다. 1944년 황해도 신계군 적여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첫발을 디뎠다. 이어 대구와 의성‧경주 등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시기 광복과 6‧25를 거친다.1953년 우봉은 화재로 소실돼 길거리에 나앉은 경주고아원 전쟁고아 120명을 맞닥뜨린다. 교육사업에 눈을 뜨는 ‘사건’이다. 그는 잿더미 위에 천막을 치고 숙소를 마련했지만 해결책이 아니었다.고민을 거듭한 끝에 120명 중 일부는 의성 자혜원으로, 또 일부는 연고를 찾아 돌려보냈다. 그러고도 30여 명이 남았다. 그는 그들을 데리고 대구로 나왔다. 처음에는 큰 집을 하나 얻어 함께 사글세를 살았다. 이후 남구 대명동 지금의 경북예고 땅을 인수해 원사를 지어 새로 출발한다.시간이 흐르면서 문제가 생겼다. 구호물자로 의식주는 해결됐는데 학교 교육이 과제였다. 그 사이 60여 명으로 불어난 원아들은 유아부터 고등학교 들어갈 나이까지 천차만별이었다. 그는 인근 중학교에 입학을 부탁하러 갔다가 무안을 당한다. 그때 우봉은 ‘좋다. 나도 학교를 해야지’ 다짐한다.◆협성상고 설립…신익희와 인연 학교 설립을 추진한 지 1년여 만인 1955년 2월28일 학교법인 자혜학원이 인가를 받는다. 이어 4월에는 드디어 협성상업고등학교 입학식이 열렸다. 한 학급이다. 이어 전쟁 등으로 진학을 미뤄 온 나이 많은 학생과 군인들이 주축이 된 야간부를 설치했다. 학교 이름은 ‘여럿이 힘을 합쳐 이룬다’는 뜻을 담아 ‘협성(協成)’으로 정했다.이렇게 출발한 협성상고는 1956년 2월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신익희 후보에게 유세장으로 교정을 빌려주면서 시련을 맞는다. 우봉은 자서전 ‘교육에도 왕도는 있다’에서 이렇게 당시를 회고했다.‘대통령 후보가 장소를 못 구해 유세를 포기할 처지인 걸 알게 됐다. 나는 이 땅에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일이라면 폐교도 불사한다는 각오로 자진해 교정을 빌려주었다.’ 이 결단으로 우봉은 신익희와 인연이 닿아 40여 년 영욕의 정치 생활이 시작된다.한번은 신익희가 경북 북부지역을 다지느라 의성을 방문해 우봉의 집에 묵으며 꿈을 심는 글을 써 주기도 한다. 야당과 가까워지면서 협성교육재단은 먹구름이 드리워졌다.그때부터 1971년 대구 남구에서 제8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기까지 우봉과 재단은 숱한 불이익을 감수한다. 그는 자서전에 ‘학생이 늘어나 학교는 더 필요한데 인문 학교와 대학은 인가하지 않고 남들이 싫어하는 중학교와 실업고만 설립을 허가했다. 그렇게도 바랐던 대학교 설립의 기회도 잃고 말았다’고 술회했다.◆재단 해체 위기서 기사회생그 시기 관(官)은 재단의 학교 경영 전반을 감사하거나 사찰을 계속했다. 학교 경리는 물론 건축, 학사 행정 심지어는 교실에 들어가 학생 수를 세기까지 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투명한 재단 경영을 했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그 무렵 재단에 결정적인 위기가 닥쳤다. 검찰이 재단 설립 과정을 정밀 조사하고 나선 것이다. 거기서 재단의 구성 요건 중 기본재산 미확보가 드러났다. 재단 설립 당시 일가친척의 과수원‧논밭을 끌어들이기로 하고 몇 건은 등기 서류를 내지 않아 차후 보완 각서를 제출한 뒤 설립을 인가받은 게 문제였다. 담당 검사는 재단을 문 닫게 할 작정으로 치밀하게 파고들었다. 우봉은 눈앞이 캄캄했다.드디어 검찰에 출두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사이 담당 검사가 바뀌어 있었다. 새 검사는 설명을 들은 뒤 “서류 보완 시기가 늦었을 뿐 사기성은 없으니 돌아가 학생이나 열심히 가르치라”고 격려했다. 우봉은 “그 말이 천사의 음성 같았다”고 회고했다. 기사회생이다.◆중·고교 등 12개의 매머드 사학재단 일궈재단의 모체인 협성상고는 1975년 대명동에서 현재의 봉덕동 교사로 이전한다. 재단 건물 남쪽이다. 협성상고는 1985년 다시 일반계인 협성고로 전환한다. 협성고는 이후 명문의 반열에 오른다. 대명동 일대가 부촌(富村)으로 수성구가 떠오르기 전이다. 한동안 협성고는 서울대 합격생 수에서 대구지역 상위를 다투었다. 1980년엔 재단에 마지막으로 경일여고가 세워졌다. 대구의 유일한 자율형 여자 사립고다.1955년 재단 설립 이래 지난해 2월까지 유치원 포함 12개 산하 학교를 졸업한 학생은 모두 30만3천900여 명. 또 재학생은 6천680여 명에 전체 교직원은 530명쯤이다. 전성기엔 재학생이 2만까지 이른 적도 있었다고 한다. 교육자 우봉에 대한 세인의 평가는 어떨까.지역에서 교장을 지낸 한 인사(81)는 “그를 참교육자로 보기는 어렵지 않으냐”고 지적했다. 오랜 기간 정치에 발을 걸쳤기 때문일 것이다. 또 재단 산하 소선여중을 나온 한 졸업생(55)은 “설립자가 어머니 이름을 따서 학교 이름을 붙이고 어머니 생신날 가족과 함께 학교를 찾아와 전교생이 ‘어머니의 노래’를 부르도록 한 건 어딘가 씁쓸하다”고 회상했다. 시민들의 평가가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다.◆정치에도 큰 족적 남겨우봉은 생전에 스스로 “본업은 교육, 정치는 외도”라고 표현했지만 정치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국회 진출 꿈은 집요했다. 그는 5대 총선에 고향 의성에서 36세 나이로 첫 출마해 낙선의 고배를 마신다. 6‧7대는 대구 남구로 출마했다. 다시 연거푸 낙선한다. 3전 4기. 1971년 8대 총선에서 우봉은 마침내 당선증을 거머쥔다. 그것도 이효상 국회의장을 1만3천여 표 차로 이긴 짜릿한 승리였다. 그러나 국회의원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듬해 10월 유신으로 국회가 해산되면서 의원직은 1년7개월 만에 끝이 난다. 1973년 그는 다시 9대에 출마하지만 이번에는 국민투표법 및 포고령 위반으로 화원 대구교도소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옥중에서 낙선 소식을 듣는다. 구속 기간은 40일에 불과했지만 그의 정치 활동은 발이 묶였다. 1984년 정치인 해금으로 우봉은 정치를 재개한다. 그리고 14대에 민주당 전국구로 다시 국회의원이 된다. 우봉은 사학을 운영하면서 30년을 이렇게 가시밭길인 야당과 더불어 산 풍운아였다.◆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사치와 낭비 몰라그는 어머니의 뜻대로 독실한 기독교인이 됐다. 한때의 포부였던 목사는 되지 못했지만 대구 남산교회의 장로였고 선교에 열심이었다. 또 1975년에는 동심교회를 세웠다. 그가 3남 3녀 자식들에게 자주 말했다는 세상에 산 표적을 남기려면 “첫째, 학교를 지어라. 둘째, 병원을 지어라. 셋째, 교회를 지어라” 중 두 가지를 실현한 것이다. 부인(장경옥)은 경북예고 교장 등을 지내며 재단을 함께 이끈 동반자였다.그는 교회 설립과 함께 5대조(회병 신체인)의 강학 공간이던 금연정사(錦淵精舍)를 의성 봉양에 중건하고 1981년에는 금산서원(錦山書院)으로 승격시킨다. 회병은 퇴계 이황의 학맥을 이은 이상정의 제자였다. 우봉은 그래서 퇴계 선생을 누구보다 흠모했다. 또 과거에 급제한 뒤 승지를 지낸 11대조(오봉 신지제)를 그의 정신적 지주로 받들었다. 그가 즐겨 쓴 우봉(又峰‧友峰‧愚峰)이란 호(號)의 ‘봉’도 자신이 따르고 싶었던 오봉 선조에서 유래한다. 자신이 경영한 교육재단의 연원(淵源)은 이렇게 금연정사로 이어진다.우봉은 자전 에세이 ‘아직도 할 일이 많다’에 ‘내 돈 씀씀이가 기대치에 못 미친다고 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그 이유를 자수성가한 데다 사치‧낭비를 모르는 생활 철학으로 본인은 물론 가족이나 남에게 만족하게 쓰지 못했다고 술회했다.직원은 학원장이 그런 가운데도 유머가 있었다고 기억한다. 재단 박 실장은 “한번은 학원장이 이사장(신철원)과 길을 가다가 음식점 아주머니의 인사를 받고는 ‘우리 아들인데 다음에 가면 밥 많이 주이소’ 하자 아주머니가 크게 웃더라”고 했다. 스스로 밝힌 좌우명도 ‘얼굴에는 미소가/머리에는 지혜가/가슴에는 사랑이/손에는 일이 있어라’였다.우봉은 2014년 90세로 삶을 마감했다. 유택(幽宅)은 고향 선영에 마련됐다. 유학자 김창회는 묘비에 “(우봉은) 오직 내 갈 길은 내가 개척하라는 좌우명을 실천하고 협성 가족 모두에게 깊이 심었다”고 적었다.우봉은 수많은 이력만큼 평가도 다양하다. 그래도 열정으로 국내 최대 중등 사학재단을 일구고 또 민주화를 앞당기는데 몸을 사리지 않은 것은 분명한 것 같다.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 yeeho1219@naver.com신진욱 연보‧1924년 경북 의성군 봉양면 출생‧1931년 의성 봉양초 입학‧1942년 대구사범학교 강습과 졸업‧1944년 황해도 신계군 적여초등학교 교사‧1950년 경주 문화고등학교 교사‧1952년 사회복지법인 자혜원 설립(경주‧의성)‧1955년 협성상업고등학교 설립‧1968년 한국 YMCA 연맹 이사‧1970년 대구 남산교회 장로‧1971년 제8대 국회의원 당선(신민당, 대구 남구)‧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 중 국민투표법 위반으로 구속‧1977년 대구 동심교회 설립‧1980년 경일여자고등학교 설립‧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당선(민주당, 전국구), 국회 한일의원연맹 부회장‧2000년 재단법인 협성장학재단 설립‧2014년 타계홍석봉 기자 dghong@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