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70주년, 한국전쟁과 대구문학

한국전쟁은 한반도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쓰러뜨렸지만 절망 속에서도 언제나 희망의 싹은 돋아나듯이 전란을 피해 대구로 몰려든 문인들로 인해 대구는 새로운 문학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전쟁의 마지막 보루였던 대구의 도심 향촌동에는 ‘종군작가단’, ‘문총구국대’ 소속 문인들을 중심으로 휴전 시까지 임시 한국문단이 형성되기도 했다. 이른바 전무후무한 ‘피란문단’이라 할 수 있다.전쟁의 참상으로 마음이 긁힌 문인들의 절망과 피폐, 낭만을 근간으로 슬프고 화려한 문학의 꽃을 피웠던 당시 향촌동의 피란문단과 문학인들의 모습을 재조명해보는 작업이 대구문학관에서 시도되고 있기도 하다.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많은 사람들이 전란을 피해 살던 곳을 떠나 대구로 피란했다. 그중에는 대한민국 문학계를 대표하는 수많은 예술가들도 포함됐다. 마해송, 조지훈, 박두진, 박목월, 김동리, 최인욱, 서정주, 유주현, 양명문, 오상순, 전숙희, 황순원, 최정희, 김윤성, 김송, 김팔봉, 구상, 정비석, 최태응, 유치환, 전봉건, 박인환, 장덕조가 그들이다.이들은 대구의 문인들과 어울리며 대구 문화의 중심지였던 향촌동으로 모여들었다. 한국전쟁이 많은 것을 황폐하게 만들었지만, 한편으로 대구문단을 한국문단의 중심에 서게 했다.1950년대 피란문인들이 향촌동으로 모이게 된 것은 이곳이 종합문화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부촌이었던 향촌동은 다방과 음악 감상실, 극장 등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았다. 이곳에서 전쟁으로 피폐해진 마음을 달래고 문학 창작을 위한 영감을 얻으면서 자연스레 독특한 문단이 형성됐던 것이다.대구로 터전을 옮겨온 피란문인들은 낯선 대구 땅에서 그나마 자신들에게 익숙하면서도 문화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해 자연스레 대구 향촌동의 다방으로 모여들었다.청포도다방, 백조다방, 모나미다방, 백록다방, 호수다방, 꽃자리다방, 상록수다방 등 많은 다방이 향촌동 일대에서 문인들의 안식처가 돼 주었다.향촌동의 다방은 문학과 예술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교환하고 문학적 결실을 확인하는 살롱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 당시 많은 문인들이 작품 발표를 위해 출판기념회를 열었는데, 장소는 주로 그들이 자주 가던 다방이었다.1951년 모나미다방에서 이효상의 ‘바다’ 출판기념회가 열렸고, 1953년 상록수다방에서는 박두진의 시집 ‘오도’, 살으리다방에서는 소설가 최인욱의 첫 단편집 ‘저류’의 출판기념회가 각각 열렸다. 1956년에는 구상의 시집 ‘초토의 시’ 출판기념회가 꽃자리다방에서 열렸는데 이곳은 구상이 그와 절친한 시인 오상순, 소설가 최태응과 자주 어울리던 곳이다. 오상순은 평소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는 인사말을 자주 했는데, 구상이 이에 영감을 받아 ‘꽃자리’라는 시를 발표했다. 꽃자리다방이라는 이름도 이 시에서 따온 것이라 전해진다.한편 1950년대 향촌동에서는 전쟁의 와중임에도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그중 클래식 음악 감상실 ‘르네상스’는 많은 대구의 예술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클래식 음악 애호가였던 박용찬은 1951년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음반을 가지고 대구로 피란했는데, 그 음반과 기기들로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실 수 있는 문화 공간 ‘르네상스’를 열었다.르네상스는 전쟁의 소음 속에서도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평화를 느낄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장소였기 때문에 군인과 기자, 그리고 문인을 포함한 많은 대구의 예술가들이 이곳을 즐겨 찾았다. 전봉건, 조지훈, 박두진, 구상, 오상순, 정비석, 마해송, 김팔봉, 신동집 등이 그들이다.또 대구로 피란한 많은 사람들은 전쟁의 와중에서도 극장으로 모여들었다. 전쟁에 대한 공포와 부족한 물자로 인해 몸과 마음이 지친 사람들은 문화와 예술을 향유함으로써 잠시나마 위안을 얻고자 했다. 때문에 당시 대구에는 많은 극장이 성업했다. 만경관, 대구극장, 송죽극장, 문화극장(이후 한일극장), 자유극장 그리고 군인들이 주 고객이었던 육군중앙극장, 공터에 천막을 치고 손님을 받는 천막극장 등이 있었다.대구에 피란 온 문인들은 직접 연극 공연을 시도하기도 했다. 창군 6주년을 기념하는 예술제전의 일환으로 1952년 1월15일부터 사흘간 자유극장에서 ‘고향사람들’이라는 1막 2장의 연극을 선보인다. 문인극 ‘고향사람들’은 김영수가 극을 썼고 구상이 기획과 무대감독을 맡았으며, 최정희, 박영준, 유주현, 이덕진, 양명문, 박기준, 장덕조, 최인욱, 정비석 등이 출연했다. 마을 처녀 정옥과 결혼하기 위해 많은 청년들이 구애하지만 정옥은 건실한 상이군인인 만수와 결혼한다는 내용이었다.한국전쟁은 많은 것을 파괴했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한국전쟁기 대구에서 출판문화가 융성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다. 피란문인들은 군의 종군문인으로 활동하며 글을 기고했고, 대구의 출판사들은 이러한 군 관계 출판물들을 생산하며 성장했다.당시 ‘육군종군작가단’에 소속됐던 문인으로는 최상덕, 김송, 박영준, 장덕조, 최태응, 조영암, 정비석, 김진수, 김팔봉, 구상 등이 있으며, ‘공군종군문인단’ 소속 문인으로는 마해송, 조지훈, 최인욱, 최정희, 곽하신, 박두진, 박목월, 김윤성, 유주현, 이한직, 황순원, 김동리, 전숙희, 박훈산 등이 있다.한편 대구문학관은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특별한 기획전시 ‘피란문단, 향촌동 꽃피우다’를 진행한다.크게 3부로 나뉘는 전시는 ‘1부’에서 향촌동의 골목길을 배경으로 김동리, 마해송,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유치환 등 당시 대구로 피란 온 작가들의 모습과 글을 드로잉과 영상으로 전시한다. ‘2부’는 예술인들이 서로 교류했던 당시의 다방 모습을 재현하고, 많은 문인이 찾았던 음악 감상실 르네상스의 모습도 재현해 전시한다. ‘3부’에선 한국전쟁기 출간됐던 정훈매체 등 군의 출판물과 피란문인들의 작품을 전시한다.이번 전시는 10월3일까지 대구문학관 4층 기획전시실에서 만나볼 수 있다.자료제공: 대구문학관서충환 기자 seo@idaegu.com

한국자유총연맹 대구동구지회, 6·25 전쟁음식 시식회 개최

한국자유총연맹 대구동구지회가 지난 25일 대구 동구 동서시장에서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당시 음식재현 시식회를 개최했다.이날 행사는 전쟁당시 주식이었던 보리주먹밥과 보리떡을 그대로 재현, 주민들에게 시식기회를 제공해 당시 빈곤했던 시절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보며 현재의 풍요로운 먹거리에 대한 소중함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행사 후 마스크 착용 생활화와 기본생활수칙 실천 홍보 등 코로나19 극복 생활 속 거리두기 캠페인도 실시됐다.배기철 동구청장은 “6·25 전쟁당시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 먹었던 보리밥과 보리떡은 오늘날 건강식으로 대접받고 있다”며 “이번 행사를 통해 호국선열의 숭고한 정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승엽 기자 sylee@idaegu.com

김병욱, “문 정부에 발간된 중고교 역사 교과서는 편향된 시각에서 기술”

현 정부 들어 발간된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가 6·25전쟁 당시 북한의 만행은 축소 또는 삭제한 반면 남한의 과오는 부각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25일 미래통합당 김병욱 의원(포항남·울릉)이 2018년 7월 교육과정 집필기준 개정 이후 발행된 고등학교 새 한국사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이같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김 의원에 따르면 ‘씨마스’에서 발행한 ‘고등학교 한국사’를 보면 남북의 민간인 학살 문제를 다루면서 국군의 빨치산 토벌 작전 중 발생한 주민 학살 사건을 사진과 함께 게재한 반면 북한이 저지른 잔인한 양민학살에 대한 사진은 한 컷도 싣지 않았다.또한 (주)미래엔에서 발행한 한국사는 ‘전쟁 중 민간인 학살이 일어나다’는 주제 탐구 페이지에는 이승만 정권이 군대와 경찰을 동원해 국민보도연맹원들을 학살했다고 사진과 증언을 자세히 실었으나 북한군에 의한 학살만행에 대한 자료는 제대로 싣지 않았다. 지학사는 ‘6·25전쟁으로 남북이 큰 피해를 입었다’면서도 남한 정부의 국민보도연맹사건만 사진과 함께 따로 기술했다. 이 교과서는 또 남한과 북한을 모두 독재 체제로 기술하면서 북한 사회를 오히려 더 긍정적으로 묘사하기도 했다.해냄에듀가 발행한 교과서는 이승만 정권의 반공주의, 대통령 우상화, 독재 문제를 2페이지에 걸쳐 비판적으로 서술한 반면 김일성에 대해서는 한 페이지만 할애했다. 김 의원은 “문 정부가 들어서고 만들어진 교과서 집필기준을 보면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실조차 제대로 기술하지 않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이어야 할 교과서가 편향된 시각으로 기술되어 있다면 우리 자녀들에게 뒤틀린 역사관을 심어주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이어 “편향된 역사 교과서로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위대함과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 자녀들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는 역사 교과서 만들기에 더욱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이혜림 기자 lhl@idaegu.com

칠곡에서 경북도 주최 ‘6·25전쟁 제70주년 행사’ 열려

칠곡군은 25일 칠곡교육문화회관에서 ‘6·25전쟁 제70주년 행사’를 개최했다.이날 행사에는 이철우 경북도지사, 백선기 칠곡군수를 비롯해 장경식 경북도의회 의장, 임종식 경북도교육감, 이재호 칠곡군의회 의장, 보훈단체 회원 및 유족 등 350여 명이 참석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코로나19가 대구·경북에 발생해 많은 피해가 있었지만 6·25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해 나라를 위기에서 구했던 호국정신이 지금도 있었기에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백선기 칠곡군수는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지금의 자유와 평화, 발전과 번영을 만든 건 참전용사들의 호국정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앞으로도 국가유공자들이 존중받을 수 있는 보훈정책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했다.한편 이날 행사에서 이경호(99·영주시)씨 등 5명이 경북도지사 표창을 이경배(94·왜관읍)씨 등 3명이 칠곡군수 표창 등을 받았다.이임철 기자 im72@idaegu.com

6·25전쟁 70년 만에 받은 화랑무공훈장, 감격스럽습니다

“6·25전쟁에 나가 싸운 지 70년 만에 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당시 고난을 함께 했던 전우들이 유난히 생각나는 날입니다.” 6·25전쟁 당시 무공훈장을 바로 받지 못했던 김차수(88)씨가 화랑무공훈장을 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화랑무공훈장을 받게 돼 매우 감격스럽다. 급박했던 전쟁터 상황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고 바로 옆에서 죽어 나가던 전우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하다”고 회상했다. 25일 대구 수성구 그랜드호텔에서 ‘6·25전쟁 제70주년 행사’가 열렸다. 참전유공자, 보훈단체장, 유족 등 120여 명이 참석해 호국영령을 추모하고 용사의 값진 희생과 숭고한 뜻을 기렸다.백발이 성성한 모습의 참전유공자들은 서로 손을 부여잡고 건강과 안부 묻기에 바빴다. 올해는 화랑무공훈장 전수식과 70주년을 맞아 특별제작된 감사메달 수여식이 처음 마련됐다. 전쟁 당시 무공훈장을 받기로 결정돼 있었으나 훈장을 받지 못했던 김차수씨를 비롯해 총 5명이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아쉽게도 김씨만 본인이 직접 받았고 나머지 공로자는 고인이 돼 뒤늦게 나마 유가족들이 대신 훈장을 받았다.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처가 참전유공자에 대한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특별히 제작한 감사메달 수여식도 진행됐다.참석한 참전유공자 80명이 받았고, 현재 대구에는 모두 3천461명이 생존해있다. 참전유공자 이용수(89)씨는 “18살에 전쟁에 나가 목숨 걸고 나라를 지켰다. 당시 어떤 용기로 적과 싸웠는지는 모르겠지만 70년이 지난 지금 무척이나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최근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고 군대를 재배치하면서 정세가 불안한 실정”이라며 “이번 6·25전쟁 70주년 행사가 국가 안보를 더욱 단단히 하는 계기가 되고 다시 한번 나라를 생각하는 좋은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참석자들을 격려했다.김종윤 기자 kjyun@idaegu.com

김영수 의성군의회 의장 동정

△김영수 의성군의회 의장은 25일 오전 11시 의성문화회관에서 열리는 6.25전쟁 제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다.김호운 기자 kimhw@idaegu.com

영덕군 유족회,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미신고 유족 찾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희생자 영덕군유족회가 사건과 관련된 유가족을 찾는다.영덕군 유족회는 6·25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과 관련 2006년 10월11일 영덕지역 유가족들이 모여 결성한 유족회다.영덕유족회는 그동안 활발한 활동과 조직력 강화를 위해 여러 차례 모임을 갖고 억울하게 희생당한 고인들의 명복과 명예 회복을 위해 두 번의 위령제를 지냈다.한국전쟁 영덕지역 민간인 희생자 위령제는 2009년 4월27일 영덕읍 화개리 오십천 강변에서 유가족 및 관계자, 영덕불교사암연합회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거행됐다.또 2011년 11월12일에는 유족들과 관계자 등이 영덕문화체육센터에서 위령제를 올리고 억울하게 희생당한 부모 형제의 원혼을 달랬다.영덕지역 민간인 희생사건은 6·25전쟁 전후 영덕읍 화개리 뫼골과 지품면 원전리 등지에서 양민 300여 명이 보도연맹으로 몰려 국군과 경찰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된 사건이다.지난달 22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과거사 조사기간을 3년으로 정하고 1년 연장할 수 있게 됐다.이에 따라 영덕군유족회는 2005년 과거사위원회 출범 당시 조사를 받지 못한 미신고 유족을 찾고 있다.영덕지역 민간인 희생자 유가족을 찾는 유족회는 “한 맺힌 삶을 살아온 유족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할 일들이 많다”면서 많은 참여를 당부했다.신고는 영덕군유족회로 하면 된다. 문의: 010-2569-5288. 강석구 기자 ksg@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