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노모, 만취한 아들이 운전하던 차에 치여 숨져

아들을 마중 나왔던 70대 노모가 술 취한 아들이 운전하던 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8일 구미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 7일 오전 1시40분께 구미시 해평면 왕복 2차로 도로에서 1t 트럭을 운전하던 A씨가 자신의 어머니 B(74)씨를 치고 지나갔다. B씨는 늦게까지 귀가하지 않은 아들이 걱정돼 전동휠체어를 끌고 도로에 나왔다가 이 같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당시 아들 A씨의 음주측정 결과는 0.151%로 만취 상태였다. A씨는 사고를 낸 뒤 피해자가 어머니인 것을 알고 119에 신고했지만, B씨는 병원으로 옮겨진 뒤 끝내 숨졌다. 경찰은 사고 경위를 파악한 뒤 A씨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류성욱 기자 1968plus@idaegu.com

배우 이상희(장유) 아들 숨지게한 20대男 집행유예… 상고 의사 밝혀

지난 2010년 12월 미국 LA의 한 고등학교에서 배우 이상희(예명 장유·59)의 아들을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A(26)씨가 오늘(13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이상희의 아들 B군은 당시 동급생이던 A씨와 싸우다 주먹으로 머리 등을 맞고 쓰러져 뇌사 판정을 받은지 이틀 만에 숨졌다.LA 현지 경찰은 살인혐의로 검찰에 기소요청을 했으나 B군이 먼저 폭행해 방어 차원에서 때렸다는 검찰 측의 주장에 수사는 종결됐다.이후 이상희 부부는 A씨가 국내 대학에 재학 중인 사실을 알고 지난 2014년 1월 청주 지검에 재수사를 의뢰했으나 1심 재판부는 A씨의 폭행을 사망 원인의 하나로 추정할 수 있지만,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로 폭행했다고 볼 증거는 없다는 이유 등으로 무죄를 선고했다.해당 판결에 검찰은 항소했으며 2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피고인의 폭행으로 인해 지주막하출혈(뇌출혈)을 일으켜 사망했다는 공소사실을 추가했는데, 의사협회 사실 조회와 감정 촉탁 등을 종합할 때 피고인의 폭행과 피해자의 사망 간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유죄를 판단했다.이이상희 측은 항소심 판결 후 "유죄는 선고됐으나 구속 처벌이 아니라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며 대법원 상고 의사를 밝힌 상태다.online@idaegu.com

삼국유사 기행< 23 >-태종 춘추공(하)

태종 무열왕은 신라에서 여러 가지 기록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성골이 아닌 진골로서 최초의 신라왕이 되었다. 죽어서도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신라왕릉 중에서 귀부가 있는 비석이 최초로 나타난 왕릉이기도 하다. 비석의 몸돌은 사라지고 없지만, 남은 귀부와 이수는 최고의 예술적인 가치를 자랑하며 국보로 지정됐다. 김춘추는 당나라의 힘을 얻어 결국 백제를 멸망에 이르게 했다. 18년 만에 그의 딸과 사위에 대한 원한을 갚고, 신라의 삼국통일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김춘추는 누구보다 두뇌 회전이 빠르고 사리가 깊었다. 먼 앞날을 예측하는 눈도 밝아 전쟁에 대한 전술전략도 훌륭하다는 평가를 들었다. 김춘추는 51세에 왕위에 올라 백제 의자왕의 무릎을 꿇리며 삼국통일의 기초를 마련하고 고구려를 공격하는 한편, 후계 구도를 안정적으로 가져가기 위해 김유신과의 이중적 혈연관계를 맺기도 했다. 당나라와의 협력관계 유지를 위해 둘째 아들 인문을 당나라 황실 내부 깊숙하게 심어두었다. 김인문은 당의 정보를 신라에 전달하는 한편, 당나라가 신라의 우방으로 남을 수 있도록 상당한 역할을 했다. 삼국유사는 태종 춘추공에 대한 기록을 길게 늘여 소개하고 있다. 지면 관계상 단락을 나누어 간략하게 줄여 소개한다. ◆삼국유사: 태종 춘추공(3)당나라 고종은 백제가 멸망 이후에도 군사를 일으켜 신라와 전쟁을 일삼자 문무왕 5년 665년에 장군 유인원을 보내 신라와 백제가 서로 형제의 의를 맺어 화친하고, 영원히 당나라에 복종한다고 맹세하게 했다. 668년 당나라 군사가 평양에 주둔하며 신라에 군수물자를 요청했다. 문무왕이 적군 진영 깊숙이 있는 당나라 군사에게 누가 수송의 위험한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하자, 김유신 장군이 나서 군량 2만 섬을 수송하고 돌아왔다. ‘백제고기’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부여성 북쪽 모퉁이에 큰 바위가 있고 그 밑에 강물이 있다. 의자왕과 여러 후궁들은 최후를 면치 못할 것을 알고 서로 말하기를 “차라리 자살을 할 지언정 남의 손에 의해서 죽지는 않겠다” 하면서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한다. 당나라 소정방이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를 쳐서 평정하고 또 신라를 칠 계획으로 머물고 있었다. 유신이 그 음모를 알아차리고 당나라 군사에게 짐이라는 독약을 먹여 모조리 죽여 구덩이에 묻어버렸다. 지금 상주 경계에 당교가 있다. 이곳이 그들을 묻은 땅이다. 당나라 군사가 백제를 평정하고 돌아간 후, 신라왕이 여러 장수에게 명령을 내려 백제의 남은 적을 추격하여 잡게 했다. 군사가 주둔한 한산성에 고구려와 말갈의 두 나라 군사가 와서 성을 포위해서 마주 싸웠으나 포위를 풀지 못하더니 5월11일부터 6월22일 사이에 신라군사들이 매우 위급하게 되었다. 왕이 이 소식을 듣고 여러 신하들과 의논하여 묻기를 “어떻게 할 계책이 없을까?” 하고 망설이며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유신이 “형세가 급하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고, 신의 술법으로만 구할 수가 있습니다”라 했다. 이에 성부산에 제단을 설치하고 신술을 빌었더니, 갑자기 큰 항아리 만한 불빛이 번쩍거리며 제단 위로 나와 즉시 별처럼 북쪽으로 날아갔다. 적들이 공격을 하려고 하자 갑자기 번쩍번쩍하는 불빛이 남쪽 하늘 끝으로부터 오더니 벼락이 되어 돌을 쏘는 포 30여 곳을 때려 부수었다. 적군의 활과 화살 그리고 창칼들은 주판알이 흩어지듯 산산이 부서지고 병사들은 모두 땅에 쓰러졌다. 태종이 처음 왕위에 오르니 머리 하나에 몸이 둘이고 다리가 여덟 개나 되는 멧돼지를 바치는 자가 있었다. 해석하는 사람이 “이것은 필시 천하를 통일 할 좋은 징조입니다”라 했다. 태종 무열왕 때 처음으로 중국의 의관과 아홀을 쓰게 되었다. 바로 자장법사가 당나라 황제에게 청하여 가지고 와서 전한 것이다. 신문왕 때에 당나라 고종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 말하기를 “짐의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천하를 통일하셨다. 그래서 태종 황제로 하였는 데 너희 신라는 바다 밖의 작은 나라로서 태종이라는 왕의 호칭을 사용하여 천자의 이름을 범한 것은 불충하니 빨리 호칭을 고칠 것이다”라 했다. 신라왕이 “신라는 비록 작은 나라이나 거룩한 신하인 김유신을 얻어 삼국을 통일하였으므로 태종으로 한 것이오”라 했다. 당나라 황제가 그가 태자로 있을 때 ‘하늘에서 외치기를 33천의 한 분이 신라에 내려와 유신이 되었다’는 기록을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을 꺼내다 보고 놀랍고 두려워 다시 사신을 보내 태종이라는 칭호를 고치지 않아도 좋다고 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 김춘추의 권력 이양김춘추는 선덕여왕 당시 비담의 난을 진압하면서 권력의 중심에 자신이 서게 된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왕권에 가까이 다가왔다는 느낌이 진해지면서 서서히 차기 권력 구도에 대해 치밀한 작전을 빠르게 세우기 시작했다. 김유신을 앞세워 대신들을 지지 세력으로 우회시켰다. 김유신 옆에는 자신의 큰 아들 법민을 밀착시켜 감시하면서 친위세력으로 항상 가까이 두었다. 반면 마지막 성골 진덕여왕을 왕위에 오르게 하고, 그다음 자연스럽게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 구도를 짜 맞추었다. 진덕여왕 당시 상대등이자 완력으로는 누구도 따를 수 없었던 알평을 고립시키고, 김유신을 중심으로 대신들의 지지층을 두텁게 만들어 진골 출신이지만 왕위에 오르는 일을 착착 순조롭게 진행했다. 김춘추는 왕위에 올랐지만 두 가지 걱정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했다. 첫 번째가 딸과 사위의 원한을 갚기 위해 백제를 치는 일이었다. 당나라 군사의 힘을 업고 백제 의자왕을 무릎 꿇게 하고, 윤충의 목을 베어 복수를 이룬 춘추는 하늘을 보며 다시 한 번 포효했다. 두 번째는 절대적인 우방이자 절친인 최고의 무신 김유신을 왕좌에 대한 욕심에서 멀어지게 하는 한편, 자신의 우호세력으로 두는 일이었다. 자신의 아들을 세자로 미리 간택하고, 처남인 김유신에게는 자신의 딸을 시집보내 이중적인 혈연관계로 두텁게 옭아맸다. 김춘추의 머리는 촘촘한 전략으로 짜여진 그물 같다. 그는 김유신이 처음 백제와의 전투에서 돌아와 좌절에 울부짖으며 단석산으로 들어가 수련에 몰두하는 모습을 눈여겨 보았다. 이어 김유신이 보검을 차고, 한층 깊어진 눈으로 돌아왔을 때 절대 그를 적으로 돌려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춘추는 김유신의 경지가 사람으로서는 감히 흉내를 낼 수조차 없는 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짐작했다. 이어 유신과의 친분을 두텁게 쌓으면서 서둘러 그의 누이와 결혼해 확실한 우방으로의 관계를 맺었다. 춘추는 집요하다. 아들이 태어나자 아내와 아들을 수시로 유신의 집으로 보내 교류를 두텁게 쌓았다. 특히 아들이 걸음걸이가 자유로워질 무렵부터 유신에게 사정하여 사제지간의 정을 맺도록 했다. 춘추의 아들 법민은 외삼촌 김유신으로부터 검술과 전쟁의 기술을 오롯이 물려받은 장수로 성장했다. 김유신 또한 전쟁터에서 적군 깊숙이 들어가 적진을 혼란스럽게 휘저을 때는 뒤를 받쳐줄 실력 있는 우군이 필요했다. 법민은 빠르게 무술을 배워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외삼촌을 따라 전쟁터에 나섰다. 법민은 뛰어난 자질을 가진데다 유신의 신적인 기술의 지도와 실전에서 익히는 검법으로 빠르게 실력을 쌓았다. 고구려와의 싸움에서는 오히려 법민이 앞장을 서고, 유신이 뒤를 호위하는 무사가 되었다. 왕위를 물려받은 법민은 전쟁을 끝내 백성들의 고통을 줄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전쟁터에 뛰어들었다. 문무왕 법민은 칠순에 이른 외삼촌이자 무술의 스승인 김유신을 전쟁의 선봉에 세울 수 없어 자신이 직접 전쟁을 지휘하는 선봉장이 된 것이다. 김춘추의 전략은 성공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김유신의 신력을 가진 태산 같은 마음도 아들 같은 애제자이자 조카 법민, 즉 문무왕을 꺾고 왕위에 올라야겠다는 욕심은 애초부터 티끌만큼도 가질 수 없었다. 오히려 상대등으로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김춘추는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돌아오는 김유신과 아들 법민의 손을 꽉 잡고 신라를 부탁하면서 이순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김유신은 수염이 희끗희끗한 턱이 떨리지 않게 어금니를 깨물면서 법민을 도와 신라 삼국통일을 이룩하겠노라 다짐하며 무열왕의 눈을 감겨 주었다. *새로 쓰는 삼국유사는 문화콘텐츠 개발을 위해 픽션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농부의 아들, 다시 농촌으로… “끊임없이 ‘농사 공부’ 하는 중”

영천시 고경면에서 사과농장을 운영하는 청년 농부 박덕수(38)씨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금융회사에서 마케팅 전문가로 활동한 회사원 이었다. 하지만 박 씨는 5년 만에 회사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돌아왔다. 고향에서 사과농사를 짓고 대학에서 공부한 전공을 살려 온·오프라인 쇼핑몰 ‘과일판다’ 의 대표다. 그는 올해 유난히 극심한 무더위 속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첫 수확을 앞두고 기대에 부풀어 있다. 이 청년농부의 꿈은 무엇일까? ◆귀농하기까지의 고심박 대표의 고향은 영천시 화산면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금융회사에 취업, 5년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2017년부터 고향으로 돌아와 고경면에서 사과 농장을 한다. 청년 귀농이다. 9월쯤 첫 수확의 기쁨을 누릴 것으로 기대돼 요즘 꿈에 부풀어 있다. 사과농장 규모는 약 1.5ha이지만, 재배면적은 약 1ha(1만㎡)이며, 후지(부사), 홍로(추석 사과), 시나노골드(황금 사과)를 재배하고 있다. 박 대표는 “부모님이 고향에서 평생 농사를 지으셨다. 그래서 어릴적부터 새벽에 들판에 나가시는 부모님을 따라 논밭일을 돕는 등 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가 됐다. 그때 느낀 것은 ‘농사는 크게 돈벌이가 되지 않는 그냥 힘든 일’ 이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농사일은 절대로 하지않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박 대표는 대구가톨릭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도시에서 안정된 삶을 추구하고자 직장인이 됐다. 대구 굴지의 금융회사에 취업해 금융과 마케팅관련 부서에서 수년간 사회 경력을 쌓으면서 열심히 뛰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봉급생활자의 애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박 대표는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종종 내가 가진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고 열심히 한 만큼 평가받을 수 있는 직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깊어졌다”며 “ 어릴 적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농민의 아들로서 부모님을 따라다닌 들판의 경험(?)이 있어 열심히 성실히 하면 성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농사’라는 직업에 대해 다시 한 번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특히 농업에 대학을 다니며 쌓은 여러 가지 자질에다 회사원으로서의 사무적인 역량, 디자인적인 감각, 경영과 마케팅과 관련된 지식을 농업에 융합한다면 큰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농사도 하나의 경영체라는 생각으로 내가 경영주로서 온 힘을 기울여 노력하고, 그 결과를 온전히 보상받을 수 있다면 농사도 괜찮은 직업이라 생각해 창·농을 결심했습니다.” ◆창·농 위해 직장생활 접고 농대에 입학박 대표는 2008년 대구가톨릭대학교 졸업 후 5년여 직장생활을 하다가 창·농을 결심하고 2014년에 또다시 한국농수산대학 과수학과에 입학해 사과를 주 작목으로 삼고 창·농의 꿈을 키웠다. 한국농수산대학 생활 중 1년 동안 사과 마이스터의 현장에서 실습과 실제 영농을 하는데 있어 필요한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쌓았다. 특히 농대에 재학 중 현장 실습으로 경험을 쌓으면서 학과친구들과 함께 농산물을 판매하는 쇼핑몰 사업인 ‘과일판다’라는 브랜드로 창업, 여러 공모전에 참여하면서 국회의장상,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 원예학회장 표창 등 10회 이상 수상해 창·농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이와 더불어 박 대표는 농대 졸업 후 1차 생산에 집중하면서 다양한 창·농과 특히 농산물 유통에 관심을 두고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이런 경험들이 좋은 기회로 작용해 현재는 창·농에 관심이 있는 대학생과 경북지역 청년창업농을 대상으로 마케팅과 관련한 강의도 하고 있다. 배움은 끝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박 대표는 또 부농의 꿈을 실현하고자 현재 마이스터대학 ‘사과’ 과정 1학년에 재학 중이다. 이처럼 박 대표의 ‘성공 농사’에 대한 꿈을 위해 끝없이 공부하는 노력파다. ◆농사도 계속 공부하고 변화해야…유통 관심 필요박 대표는 한농대 시절 지도교수의 자문을 얻어 시험 포장을 만들고 과수농사에 대해 국외의 다양한 선진 수형을 시험재배하고 있다. 보통 사과재배에는 나무의 모양을 말하는 ‘수형’을 중요시하는데, 박 대표는 ‘키 큰 방추형 수형’으로 사과를 재배하고 있다. 요즘 사과농가에서 유행하는 ‘키작은 사과나무’ 재배방법과는 전혀 다른 접근이다. 박 대표는 “키 큰 방추형 수형 사과 재배는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이 아는 사과나무 모양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며 “이 재배 방법은 왜화도가 높은 묘목을 좁게 심어서 나무에 햇빛이 잘 들고 착과 면적이 넓어 사과의 품질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재배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또 그는 “더 안전하고 좋은 농산물을 더 많이 생산하려면 농부들도 계속 공부하고 변화해야 한다”며 “앞으로 농부로서의 공부뿐만 아니라 다양한 신기술을 도입하는데 앞장서서 주변의 젊은 농부들과 좋은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위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박 대표는 지역에서 젊은 농부들과 함께 농산물을 공동 브랜드화 해 판매하는 것에 대해 관심을 두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17년에는 네이버에서 우수 쇼핑몰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지난해에는 영천시에서 젊은 농부들과 함께 농산물 유통과 관련한 사업으로 공모전에 출전해 ‘농정원장 상’을 받기도 했다. 사업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앞으로 법인을 만들어 수출도 할 수 있는 큰 꿈을 갖고 무역 영어와 농산물 유통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고자 ‘주경야독’ 하면서 준비하고 있다. 박 대표는 “앞으로 사과농장과 유통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지역의 좋은 농산물을 수집 판매하는 역할을 온 정성을 쏟아 지역 농가소득 증대와 ‘농부가 농부를 잘살게 하는 상생의 농촌, 잘 사는 농촌’을 만들어 가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또 그는 “앞으로 청년농업인들을 더 안정적으로 농촌으로 불러 들이려면 정책을 실행하는 기관에서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체계적이고 현실지향적인 정책구성과 실행을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웅호 기자 park8779@idaegu.com

경산 아파트서 노모와 50대 아들 숨진 채 발견

경산시 한 아파트에서 80대 어머니와 50대 아들이 숨진 채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경산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24일 오후 7시8분께 경산시 옥산동 한 아파트에서 A(83·여)씨와 아들 B(58)씨가 숨져 있는 것을 딸이 발견해 신고했다.발견 당시 B씨는 목을 맨 상태였고, A씨에게서는 목이 졸린 듯한 흔적이 있었다. 주변에는 B씨가 쓴 유서가 나왔다.B씨는 지병이 있는 어머니와 둘이서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경찰은 시신에 대한 부검 등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할 방침이다.남동해 기자 namdh@idaegu.com

“상주상무전이요? 아들이 한 골 넣고 대구FC가 이겨야죠”

대구의 한 여성이 경기장 밖에서 아들을 응원한다. 여성의 아들은 그라운드에서 대구FC 팬들을 열광케 만든다.이 여성은 바로 대구FC를 후원하는 엔젤클럽 회원 박기자(55·무영 대표이사) 엔젤. 그의 아들은 신창무다. 어머니가 아들을 금전적·정신적으로 후원하는 셈이다.2014년 대구FC에 입단한 신창무는 현재 상주상무에서 활약하고 있다. 신창무는 오는 9월17일(전역일) 이후 대구로 돌아온다.박씨는 2016년 12월 엔젤클럽의 일원이 됐다. 가입하게 된 동기는 아들이 대구FC 선수로 활동하는 것도 있었지만 엔젤클럽의 취지가 좋았기 때문이다.한 선수의 어머니가 아닌 ‘대구시민’으로서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대구FC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박씨가 가입하자 아들 신창무도 반가워했고 감사의 인사를 진(?)하게 전했다는 후문.물론 2018시즌부터 올 시즌까지 대구FC와 상주상무의 경기가 있을 때면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대구FC를 응원하는 대구 시민이자 엔젤클럽의 일원과 아들의 활약을 보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이 충돌하는 것.박씨는 “팀은 대구를 응원한다. 그러나 아들이 돌아와서 자리 잡아야 하기 때문에 한 골 정도는 넣어줬으면 한다”며 “그래서 창무가 골을 넣고 대구가 경기에서 이기길 바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한다”고 말하며 웃었다.박씨는 엔젤클럽에 몸을 담은 후 대구를 더 사랑하게 됐다. 상주에서 군 생활하는 아들이 대구에 없지만 대구FC의 홈경기가 열릴 때마다 항상 경기장을 찾아 응원에 힘을 보탠다.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길 때마다 원정 경기도 참석할 정도로 대구FC의 열성적인 팬이다.그는 엔젤클럽 활동 이 외에도 주변 이웃에게 지속적으로 사랑을 베풀기로 정평이 나 있다.칠곡군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박씨는 벌어들인 돈 일부를 매년 대구·경북지역 발전을 위해 환원하고 있다.박기자 엔젤은 “아들에게는 묵묵히 뒤에서 응원하는 어머니로, 엔젤클럽에는 대구사랑을 실천하는 대구시민으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신헌호 기자 shh24@idaegu.com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아들에게 / 민영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아들에게/ 민 영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늘 약골이라 놀림받았다/ 큰 아이한테는 떼밀려 쓰러지고/ 힘센 아이한테는 얻어맞았다// 어떤 아이는 나에게/ 아버지 담배 가져오라 시키고,/ 어떤 아이는 나에게/ 엄마 돈을 훔쳐오라고 시켰다// (중략)//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생각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떼밀리고 얻어맞으며 지내야 하나?/ 그래서 나는 약골들을 모았다// 모두 가랑잎 같은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더 이상 비굴할 수 없다/ 얻어맞고 떼밀리며 살 수는 없다/ 어깨를 겨누고 힘을 모으자// (중략)// 한 마리의 개미는 짓밟히지만/ 열 마리가 모이면 지렁이도 움직이고/ 십만 마리가 덤벼들면 쥐도 잡는다/ 백만 마리가 달려들면 어떻게 될까?// 코끼리도 그 앞에서는 뼈만 남는다/ 떼밀리면 다시 일어나자!/ 맞더라도 울지 말자!/ 약골의 송곳 같은 가시를 보여주자!// 내가 너만한 아이였을 때/ 우리나라도 약골이라 불렸다/ 왜놈들은 우리 겨레를 채찍질하고/ 나라 없는 노예라고 업신여겼다.- 시집 『엉겅퀴꽃』 (창비, 1987)............................................세상에는 덩치와 키가 큰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힘이 센 사람도 있고 힘이 약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힘 좀 세다고 힘이 약한 사람을 괴롭힐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 분명 옳지 않은 일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약육강식의 피라미드가 존재한다지만 그들조차도 경우에 따라 나눔과 배려, 자족과 안분의 질서가 지켜진다. 하물며 사람이거늘 ‘약골’이라며 힘센 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떼밀려 산데서야 말이 되지 않는다.진정한 강자는 함부로 남을 깔보거나 약자위에 부당하게 군림하려들지 않는다. 근력이 좀 세다고 우쭐하고 오두방정 떠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이겨내는 내공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거니와 다른 이에게 인정받지도 못하므로 결코 강자가 될 수 없다. 어떻게든 남을 이겨보려는 욕심만이 넘치므로 주변 사람을 괴롭히는 결과만 빚게 된다. 힘만 앞세우는 인간은 참으로 못났다. 그런 못난 자에게 계속 당하기만 한다면 자존감이 형편없이 떨어져 스스로 비굴해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 ‘얻어맞고 떼밀리며 살 수는 없다’는 각성은 반드시 필요하다.과거 노무현 대통령이 바라던 세상도 ‘더럽고 아니꼬운 꼬라지’ 좀 안보고 사는 거였다. 1929년 광주에서 시작된 학생의거도 나라 잃은 학생의 설움이 일순간에 폭발한 것이다. 약골이라고 업신여김을 당할 때 약골의 송곳 같은 가시를 보여준 민족의 자존 회복 운동이었다. 그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힘을 모아야한다. 스크램을 짤 때는 대오가 흐트러져서는 안 된다. 이번 일본의 졸렬한 경제보복에 대처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원래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배상을 하는 것은 문명국가의 기본이다. 그간 정부의 미숙한 대응도 없지 않았고 어제의 원수라도 오늘 손잡는 것이 외교의 철칙이긴 하다. 그러나 그들을 향한 일관된 규탄도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푸는 한 방법이다. 이럴 때 대오에서 벗어나 “왜 공연히 말썽 피우느냐” “달라는 대로 줘버리지 그랬느냐” “잘 좀 달래서 이런 일이 없도록 하지” 따위의 그들이 바라는 언동을 일삼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내부의 적이 아니고 무엇이랴.

고유정 현 남편, 숨진 아들 타살 의혹 제기 “압착에 의한 질식사 소견”

전 남편 살해 사건 피의자 고유정(36)의 현 남편 A씨가 오늘(19일)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전화 인터뷰에서 A씨의 아들이자 고씨의 의붓 아들인 B군이 '압착에 의한 질식사'라는 소견을 받았다고 알렸다.이날 라디오에서 A씨는 "지난달 17일 숨진 아들의 2차 부검결과에서 압착에 의한 질식사라는 소견을 받았다"며 "아이가 부검 당시 등 상단에 가로줄 자국이 있었다. 뭔가 외부 (압력)에 의해서 가로 자국이 발생한 것 아니겠냐"라고 의심했다.또한 경찰 조사에 관해서도 아들이 숨졌을 당시 그 집에는 자신과 고씨 뿐이었지만 경찰이 자신은 총 4번에 걸쳐 10시간 가량 조사를 했으나 고씨는 지난달 2일 참고인 조사 15분을 받은 게 전부라며 불만을 토로했다.B군은 지난 3월 2일 오전 10시 10분쯤 충북 청주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 A씨는 B군과 한 방에서 잠을 잤고, 고씨는 다른 방에서 떨어져 잤다.경찰조사에서 A씨는 "아이와 함께 잠을 잤는데 깨어보니 숨져 있었다"고 진술했다.online@idaegu.com

최민환, 아들과 함께할 수 있어 기쁜 마음? 한살배기 목 꺾인 시구

FT아일랜드 멤버 최민환이 지난 8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열린 '2019 신한은행 MY CAR KBO리그' LG 트윈스와 한화이글스 경기에서 한 시구가 논란이 되고 있다.이날 최민환은 시구를 할 때 아기띠를 이용해 아들을 안은 상태로 있는 힘껏 공을 던졌다.이 과정에서 아들 재율의 목이 갑작스럽게 심하게 꺾이고 흔들렸다. 네티즌들은 자칫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부주의한 행동이었다며 목이라도 잡고 시구를 했어야 했다는 등의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최민환은 자신의 SNS에 아들에게 뽀뽀하는 사진과 함께 사과문을 게재했다. [다음은 최민환 SNS 글 전문]안녕하세요 최민환입니다.얼마 전 한화와 LG의 야구경기에서 시구하는 과정에 있어 아기가 위험할수도 있었을 부분에 대해 걱정을 끼친 많은 분들에게 사과드립니다.시구 초청이 처음 들어오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아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습니다. 시구 하러 올라가기 전까지도 어떤 방법으로 시구를 하는 것이 가장 초청된 자리에 어울리면서도 안전할까 연습도 많이하고 이런저런 고민도 많았습니다.결론적으로 저의 부주의로 인해 아이가 위험할수있었고, 이런 일로 많은 분들에게 걱정을 끼친 점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세상에서 누구보다 짱이를 사랑하는 아빠로서 아이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논란을 일으킨 점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online@idaegu.com

‘슈퍼밴드 지상’ 배우 유전자 물려받은 훈훈한 외모… 유동근-전인화 아들

JTBC '슈퍼밴드'에 출연 중인 지상이 유명 배우인 유동근 전인화 부부의 아들로 밝혀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출연 당시부터 네티즌들로부터 '훈훈한 외모다', '얼굴이 배우상인데' 등의 반응으로 주목을 받았던 지상은 방송 출연에 앞서 유동근 전인화 부부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지 않도록 만전을 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모의 지명도가 아니라 오롯이 자신의 음악성으로 인정받고자 출연자 이름을 유지상이 아닌 지상으로 출연했다.오늘(22일) 지상이 유동근-전인화 부부의 아들로 밝혀지자 지상의 SNS도 주목을 받고 있다.지상은 평범한 듯 훈훈한 사진과 엉뚱한 매력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online@idaegu.com

대구일보 가정의 달 시리즈, 헌신과 희생의 이름으로 (5·끝) 42년간 장애인 아들 지킨 어머니, 김태선씨

“못 견디게 괴로워도 울지도 못하고, 그 누가 알아주나 기막힌 내 사랑을….”김태선(70·여)씨는 유행가 ‘울어라 열풍아’ 가사를 조용히 읊조렸다.42년간 뇌병변 장애(지체 장애 1급)를 가진 아들 허준호(42)씨를 돌본 그에게 이 노래는 슬퍼할 새도 없이 보낸 세월의 위로였다.아들의 뇌 손상 소식을 접하고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을 떠올리면 좌절과 아픔의 연속이었다.김씨는 “아들을 낳고 뇌 손상에 대한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세상의 모든 축복을 받은 것만 같았다”며 “준호는 태어난 지 6개월이 지나도 잠을 자지 않고 울기만 했다. 젖을 빨지 못해 뒤척이는 자식의 모습을 바라보는 어미의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떠올렸다.아들만 셋을 둔 김씨는 강한 어머니였다. 오전 2시 준호씨가 잠자리에 든 후에야 겨우 네 시간 쪽잠을 청할 수 있었다. 20여 년간 몸이 불편한 아들을 지각 한번 없이 학교에 보낼 수 있었던 것도 강인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는 “형편이 어려워 집까지 일감을 가져와 자식들이 잠이 드는 오후 10시부터 가내수공업을 시작했다”며 “첫째와 막내가 준호를 더 챙길 수밖에 없는 어미의 마음을 이해해줘 고마웠고 형제간의 우애도 깊어 수십 년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하지만 지속하는 지독한 생활고를 감당하기란 쉽지 않았다. 며칠 밤잠을 설쳐 어린 준호씨를 데리고 대구의 한 장애인 보호시설로 향한 적도 있었다고 털어놨다.그는 “아들을 맡기자마자 주저앉고 1시간을 울었다. 준호가 너무 보고 싶었다”며 “‘죽어도 같이 죽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키워내리라’ 다짐했다. 내 뱃속에서 나왔으니 평생 가슴에 대못을 박고 살겠다는 마음으로 아들을 다시 데려왔다”면서 당시를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이후 김씨는 더욱 강해졌다. 사회복지사가 꿈인 아들의 소원을 이뤄주고자 대학에 진학시켰다.세상 물정 모른다는 주위의 질타도 이어졌다. 하지만 단지 어머니로서 자식의 앞날을 열어주고 싶을 뿐이었다.그는 “준호는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98학번으로 입학했다. 내 평생 준호를 위해 살면서 가장 보람찬 일이다”며 “학비 걱정에 고생한 일은 한순간이었다. 학사모를 쓴 아들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고 자랑했다.김씨는 꿈은 아들보다 더 오래 사는 것이라고 했다.아들이 더 이상 아프지만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삶이라고 답했다.그는 “9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아들이 크게 다쳐 몸이 더 안 좋아진 것 같아 가슴이 찢어진다”며 “내 옆에서 나를 바라봐 주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고 고마운 아들이다. 여생을 아들과 함께 이웃에게 베푸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이동현 기자 leedh@idaegu.com

대구 60대 가장, 부부싸움 중 자해 끝 숨져

부부싸움을 하던 60대 가장 A씨가 자해 끝에 숨졌다.이 과정에서 30대 부인 B씨와 아들 C(13)군은 A씨가 휘두른 흉기에 얼굴과 손바닥 등을 다쳤다.12일 대구 강북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3시23분께 북구 팔달동 한 아파트에서 A씨가 부인과 말다툼을 하던 중 홧김에 부인 B씨와 아들 C군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한편 자신의 목도 찔러 자해했다.A씨는 아들의 신고로 병원에 이송됐지만 결국 숨졌다.경찰 관계자는 “A씨 부부는 평소 성격 차이로 인해 부부싸움이 잦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사건 진술을 토대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이동현 기자 leedh@idaegu.com

제약사 대표 아들 누군가 했더니… ‘한국휴텍스제약’으로 밝혀져, 홈페이지 마비

오늘(18일) 집안 곳곳에 몰래카메라(몰카)를 설치해 10년 동안 자신의 집을 방문한 여성들의 신체를 불법촬영한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해당 제약사는 국내 중견 제약사로 알려진 한국휴텍스제약으로 피의자는 이상일 대표의 아들 이 모씨로 밝혀졌다.한국휴텍스제약은 지난 1969년 국내 제약업 제8호로 등록, 의약품을 제조·공급하는 중견 제약사로 지난 2010년 8월, 한 방송에선 이상일 대표를 '역경을 딛고 일어난 기업인'으로 소개하기도 했다.서울 성동경찰서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지난달 고소된 이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씨는 변기나 전등·시계 등 자신의 집안 곳곳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방문한 여성들의 신체를 동의 없이 촬영한 혐의를 받았다.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이 이씨의 노트북·휴대전화 등 통신 장비를 압수수색한 결과 이씨가 지난 10년 동안 이 같은 범행을 벌여온 사실이 드러났으며 확인된 피해자만 3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압수물에선 불법 영상·사진이 수백개가 넘게 나왔다.현재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의 혐의를 대체로 인정했으나, 유포 목적이 아니라 혼자 다시 보기 위해 이 같은 촬영을 벌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이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휴텍스제약 측은 사태 진화에 나섰다.이날 한국휴텍스제약 관계자는 "개인사건으로 회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며 "현재 이씨는 회사에 근무하지도 않고, 주주도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online@idaegu.com

제약사 대표 아들 “몰카는 취미, 주변 사람들도 다 찍는다”… 누구?

자신의 집안 곳곳에 몰래카메라(몰카)를 설치해 10년 동안 집을 찾은 여성들을 불법촬영한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서울 성동경찰서는 지난 17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지난달 고소된 30대 이모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고 밝혔다.이씨는 국내 한 제약회사 대표이사의 아들로 변기나 전등·시계 등 자신의 집안 곳곳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방문한 여성들의 신체를 동의 없이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소장을 접수한 경찰이 이씨의 노트북과 휴대전화 등 통신 장비를 압수수색한 결과 이씨가 지난 10년 동안 이 같은 범행을 벌여온 사실이 드러났다.압수물에서는 불법 영상과 사진이 수백 개가 넘게 나왔다고 한다. 확인된 피해자만 30여명에 이른다.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의 혐의를 대체로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포 목적이 아니라 혼자 다시 보기 위해 이 같은 일을 벌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피해 여성 A씨는 17일 JTBC와의 인터뷰에서 "카메라를 발견하고 이씨에게 항의했지만, 이씨가 '몰카 찍는 게 자기 6년 동안 혼자 자취하면서 취미생활 같은 거라고. 자기 주변 사람들도 다 그런 거 찍는다고 했다'"고 주장했다.A씨는 이씨와 헤어진 뒤에도 고통은 지속됐다고 밝혔다. 그는 "지우라고 해도 안 지우고. 너무 수치스럽고 진짜 유포되는 악몽을 너무 많이 꾼다. 하루에도 한 5번씩은 꾼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online@idaegu.com

실명 공개 ‘버닝썬’ 마약 주요고객들 “김무성 사위, CF감독, 대형병원장 아들, 고위층 아들”

지난 9일 JTBC 보도에 따르면 황하나 씨와 함께 마약을 투약했다고 알려진 '조 모씨'가 버닝썬 주요 고객들의 실명을 공개했다.조 씨는 버닝썬 MD로, 지난 2월 마약 혐의로 현재 구속되어 있다.JTBC는 당시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의 사위인 이모 씨의 마약 사건과 거기에 연루된 고위층 자녀들이 더 있다는 의혹을 취재하기 위해 클럽 아레나를 찾아갔다.그 과정에서 조 씨는 "나는 옛날부터 알았지. OO형(김무성 사위), OO형(CF감독), OO형(대형병원장 아들), OO형(고위층 아들), OO형(마약 공급책). 솔직히 말하면 같이 놀았지. 항상"이라고 밝혔다.조 씨는 자신이 위의 언급한 사람들에게 마약을 공급했다고 주장했으며 수사 과정에서도 이러한 정황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online@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