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군, 천년의 소리 향가 음악회 개최

군위군 군위문화원은 지난 3일 군위 삼국유사교육문화회관에서 천 년의 소리 향가 음악회를 개최했다.이번 음악회는 이정호가 지휘하는 풍류21퓨전오케스트라 반주,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 김영근과 김윤지·민정민·최은해 등이 출연, 향가를 노래해 공연의 흥을 더했다.향가는 신라 사람들이 창작하고 불렀던 노래를 하나의 장르로 묶어서 부르는 문학 장르다. 삼국유사에 14수, 균여전에 11수로 총 25수가 전해지고 있다. 향가 속에는 신라인들의 삶과 희로애락, 불교의 주술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김기덕 군위 부군수는 “이번 음악회를 통해 향가의 아름다움을 재확인했다”며 “일연스님이 군위 인각사에서 저술하신 삼국유사의 우수성을 알리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배철한 기자 baech@idaegu.com

조락

조락/ 이태수낙엽 지는 바위에 주저앉아 귀 기울인다/ 속도를 낮췄다 높였다 하는 바람, 바람소리/ 시간은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는다// 날줄과 씨줄, 수직과 수평으로/ 세상은 얽히고설켜 끝없이 돌리고 돈다// 짜이고 끌어당기고 밀어내고 떨어뜨리는 저 소리들// 땅바닥엔 개미떼가 길게 줄지어 기어간다/ 불현듯, 새 한 마리가 하늘로 솟구치고/ 허공에는 느리게 바퀴를 굴리는 구름마차// 바위에 바위처럼 앉아 한참 더 귀 기울이면/ 모든 소리들이 꿈결같이 희미하다// 아무 것도 잘 보이지 않는다/ 걸어온 길들을 발치에 벗어놓고 들여다본다/ 어느덧 해가 서산마루에 걸리고// 또 몇 잎, 나뭇잎들이 발등에 떨어져 내린다- 시집 『침묵의 푸른 이랑』(민음사,2012).............................................................. 가을타는 사람에게 조락이 마무리되어가는 이즈음은 싱숭생숭한 사색도 끝물이다. 꾸들꾸들했던 기분도 푹 가라앉아 조금씩 말라가고 있다. ‘가을은 혼자를 허락하는 계절’이라는 말이 있듯이 명상과 성찰에 빠져들기 좋은 계절이다. 실은 명상이라기보다는 잡념이고 성찰이기 보다는 번뇌에 가깝겠으나. 하지만 단풍이 절정일 때와 잎들이 조락하여 발치에 나뒹굴 때의 사색은 내용과 질에서 차이가 날 수 있다. 지금은 자연의 순환과정에 촘촘히 반응하는 이에게는 생각들이 더욱 깊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절기상으로나 이미 겨울로 들어섰건만 쥐꼬리만큼의 가을이 아직 발등에 서성인다. ‘낙엽 지는 바위에 주저앉아’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는’ 시간에 귀 기울인다. 소리 소문 없이 ‘세상은 얽히고설켜 끝없이 돌리고 돈다.’ 주의를 집중시켜야 ‘짜이고 끌어당기고 밀어내고 떨어뜨리는 저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 ‘한참 더 귀 기울이면’ 다시 ‘모든 소리들이 꿈결같이 희미하다.’ 불교에서 ‘관세음(觀世音)’이란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뜻이다. 바깥 소리가 자기 내면의 소리와 하나가 되도록 지극하게 귀를 기울이다보면 마침내 귀가 활짝 열린다고 했다. 그 열린 귀로 무엇을 듣고 깨달을 것인가. 무지와 무명에서 벗어나 자신이 하느님의 품 안에 있다는 사실과 삼라만상이 하느님의 현현이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느덧 해가 서산마루에 걸리’면서 미확인비행물체처럼 한 조각 뜬 구름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이라고 테레사 수녀님이 말했다. 낙엽마저 다 져버린 조락의 계절을 보고서 새삼 무상을 느낀다. 그때서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부산스럽게 ‘개미떼가 길게 줄지어 기어’가고, ‘불현듯, 새 한 마리가 하늘로 솟구치’며 제 존재를 알리지만 발등에 떨어지는 낙엽은 또 어디로 가는가. 낙엽은 결국 뿌리로 돌아가고 우리의 삶도 낙엽처럼 지지 않는가. 방하착(放下着), 공수래공수거. 그럼에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면 마치 끝도 없는 무한궤도를 달리듯 속도감이 마비되고 만다. 자칫 대형 사고라도 치게 되면 기관차에 올라탄 사람뿐만 아니라 둘레의 수많은 사람이 다칠 수 있다. 우울과 절망으로 뼈가 시린 겨울을 온통 지새우기 전에 ‘감속’과 ‘비움’ 그리고 ‘양보’와 ‘겸허’를 배워야할 때이다. 조락의 계절, 대통령이든 야당 대표든, 어떤 정치인이든 세속적인 언사로 구질구질한 변명을 이어갈 게 아니라 좀 묵직하고 대범하게 대응할 수는 없는 걸까. 어차피 부처님 손바닥 안이고 하느님 품 안이고 보면.

금오산 법성사…금오산 채우는 법성사 개울 물소리…도심 가까운 절에서 잠시 쉬어간다

구미시 도개면 모례의 집에서 움트기 시작한 신라불교는 낙동강 건너 선산읍으로, 국보 182~184호로 지정된 금동여래입상, 금동보살입상이 발견된 고아읍으로, 이어 구미의 명산 금오산 등 구미 전역으로 확산했다.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치면서 신라불교의 성지로 우뚝 선 것이다.구미에서 가장 높은 산이기도 한 금오산은 예부터 지역의 명산, 신령한 산으로 여겨져 왔다.◆남숭산이라 불린 금오산, 수많은 절터 남아 있어금오산이 불교와 관련 깊다는 것은 옛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원래 대본산이었던 금오산은 한 때 남숭산이라고도 불렸다. 이는 중국 황하강 유역에 있는 중국 오악 중의 하나인 숭산과 생김새가 비슷하다해 붙여진 이름이다.남쪽에 있다고 해서 남숭산이라 하고 황해도 해주(천태종과 관련이 깊다)에 북숭산을 두었다.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이 천태종을 창종한 후 문도들을 이끌고 남숭산(금오산)으로 옮겨와 수도했다는 이야기는 앞서 1편 신라 이후의 구미불교 중 선봉사 이야기에서 다룬 바 있다.그가 대각국사 의천으로 호국불교 포교와 국정 자문에 임하면서 남숭산의 품격과 위상을 높였다.금오산은 해발 1천m를 넘지 않는 산이지만 굳이 숭자(嵩字)를 붙여 중국의 유명한 숭산에 비겨 칭한 것은 모두 불교와의 연관성에서다.이렇듯 통일신라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절이 금오산에 자리를 잡았다.1968년 진행했던 선산지구고적조사 보고서에는 ‘금오산은 계곡마다 물소리와 목탁소리가 끊어질 날이 없었다’고 기록할 정도였다.또 다른 조사에서도 유구와 유적, 표석이 남아 있는 금오산 평지와 산록부, 정상부에 입지한 절터 18곳이 확인되기도 했다.이 조사에서 확인한 금오산 평지와 곡저부의 절터는 대혈사, 갈항사, 선봉사, 옥림사 등 7곳이다.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가운데 신라의 고찰 갈항사와 대각국사비가 있는 선봉사의 경우 규모가 매우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이에 비해 산록에 있던 절은 2단이나 3~4개의 계단식 터를 갖고 있었던 것이 특징이며 규모도 작았다.물론 정상부에 있었던 절 또한 규모가 상당히 작았을 것으로 추정된다.이는 현존하는 약사암과 같이 입지조건 때문이었을 것이다.다만 성안의 동남쪽에 있었던 진남사는 터의 규모로 보아 상대적으로 잘 갖추어진 가람배치로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금오산 절터, 지형에 맞춰 규모와 가람배치또 금오산에 자리했던 절들은 금오산의 지형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으로 지어졌다.산록배치형인 구미시 수점동 절골의 절터는 남과 북의 단애가 결정되는 지점의 폭포수나 병풍바위 등 수직적 구조를 배경으로 가람을 배치해 성속의 공간 구분이 명확한 도량조건을 갖췄다.또 현존하는 약사암과 같이 정상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보봉사와 동양사는 정상의 장점을 살려 가장 먼저 해를 맞거나, 구미지역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절을 지었다.금오산 정상 보봉에서 조금 내려선 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동양사터에서는 주춧돌과 기와, 자기, 옹기파편, 구들장 일부가 발견됐다.특히 약사암이나 보봉사 처럼 해발 8~900m 수준의 봉우리와 정상부에 입지한 절터는 거대한 암석이나 화강암 단애를 배경으로 조형된 것이 지형적 특색이다.금오산에 있던 절에 대한 기록은 최현의 일선지에도 등장해 그 존재를 입증하고 있다.일선지에 ‘금오산의 최상봉이 보봉이다. 봉 아래에 작은 사찰이 있으니 곧 보봉사이다. 남동쪽 수백 리를 두루 바라볼 수 있다’라던가 ‘동양사는 보봉사 동쪽에 있다. 아침 햇빛이 먼저 비치기 때문에 이름으로 하였다. 시선이 미치는 곳은 보봉과 다름이 없고, 산에는 해송이 많다’고 적었다.또 ‘전종사와 보제사는 금오산 서쪽 기슭에 있었다. 임진란에 함께 불탔다’고 기록하고 ‘도선굴은 금오산 북쪽에 있다. 상하로 푸른 절벽이 천 길이나 깎아지른 듯이 서 있고 가운데에 바위 구멍이 있다.(중략) 민간에 전하길, 고려의 신승 도선이 거처하던 곳이라고 한다’고 전한다.◆고려시대 창건했던 옥림사터에 재창건한 법성사이렇듯 남숭산, 즉 금오산은 이 지역 주민들에게 신령스러운 산으로 예부터 많은 절이 모여 있었다.이곳에 현재 천 년 고찰 약사암과 신라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는 해운사, 고려말 창건했다가 폐사됐다는 옥림사터에 지어진 법성사 등이 남아 있다. 이 가운데 법성사는 현대 창건한 절이다.금오산 상가 주차장에서 구미시 형곡동을 잇는 지방도로를 따라 가다 보면 형곡동 전망대에 미치지 못해 오른편에 법성사라는 절이 있다.기록에 따르면 법성사 인근에 제법 규모를 갖춘 옥림사가 있었다고 한다. 옥림사는 고려말에 창건해 조선 중기인 정조 때 폐사됐다가 다시 고종 때 중건된 후 언제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다시 폐사됐다고 한다.조선말인 고종 때 재건 당시에는 법당 6칸과 방 10칸을 갖추고 있었다고 전한다. 법성사는 구미지역에서 도심에 가장 가까운 절 가운데 한 곳이다. 이 절은 1962년 7월 해운사 주지로 부임한 지우 스님이 현 절터에 토굴을 마련하고 수행했던 곳이다.이후 1991년 4월부터 중창불사를 시작해 정면 3칸 규모 팔작지붕의 대웅전과 2층 누각형식의 종각, 천불전, 요사채, 종무소 등을 갖추고 있다.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법성사를 바라보면 절 앞으로 키만 늘씬하게 키운 소나무 몇 그루가 종각과 대웅전을 가리고 섰다.종각을 통해 대웅전을 올려다본다. 언제 칠했는지 단청이 가을 단풍마냥 곱다. 종각 아래인 천왕문에 들어서면 양편으로 사천왕이 그 큰 눈을 부라리며 호기롭게 지키고 서 있다.불교에서는 이 사천왕이 수미산(불교의 우주론 중 가장 근본이 되는 상상의 산) 중턱에 살면서 4방위를 관장하며 악으로부터 이 세계를 지켜내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천왕문에 있는 사천왕 역시 부처님의 성역을 악과 사사로움으로부터 지켜내는 상징이라고 한다.대웅전에 다가가기 전에 종각 아래, 즉 천왕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누하진입이라고 한다. 종각루 아래를 지난다는 말이다. 이는 절을 찾은 이가 부처님께 공경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라는 절 건축의 숨은 의도이다.종각을 통과하면 조금은 넓은 마당이 나타나고 계단 위로 대웅전이 앉아 있다. 초기에는 법당과 요사채를 같이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은 대웅전 왼편에 요사채를 새로 지었다.대웅전 오른편 뒤쪽에 문화재가 한 점 있다.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584호인 금오산 법성사 석가여래불상(좌상)이다.이 불상에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조선 헌종 6년(1840) 하고미면에 살던 정민기씨의 꿈에 5대조 할아버지가 자신의 소유 전답이 있는 원남동 일명 부처골에 나타났다. 이튿날 아침 그곳에 가보니 부처 형상의 불상이 있어 그 자리에 토담집을 지어 보존 관리해왔다는 것.이후 1965년께 지금의 구미문화예술회관(구미시 송정동)이 있는 곳으로 옮겨와 보관하다가 이 일대가 신시가지로 조성되면서 1970년께 법성사 창건주인 지우 스님과의 인연으로 법성사에 기증했다고 한다.이 석가여래불상은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 초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대좌 위에 나나의 돌로 불상이 조각돼 있었다. 불두는 마멸이 심한 상태였다.그래서 보존 중 마멸되거나 부서진 곳을 시멘트로 고쳤다가 2009년께 시멘트 등을 걷어내는 작업을 했다. 하지만 아직 곳곳에 고쳤던 흔적이 남아 있다.이 불상은 왼손은 가슴 앞으로 올려 약병을 들고 있고,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앞에 가지런히 내려놓고 있다.대웅전 왼편에는 절에 있는 전각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형태의 전각이 하나 있다. 산신각이다.전하는 말에 따르면 원래 이곳에 남겨진 무속인의 건물을 부수려 했으나 중장비 기사가 이를 꺼려 형태를 남겨둔 채 법당으로 꾸민 것이라고 한다.법성사는 그 규모와 맞게 단출하다. 아니 깔끔한 인상이다. 법성사는 왕성한 사회봉사 활동으로도 유명하다.1996년 봉사단체인 자비회를 결성한 법성사는 2002년에는 법운사회복지회를 설립하고 효행장학금과 중·고생 급식비, 학자금, 저소득층 생활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라오스 동북부 생쾅주 반폰통 지역의 교육지원 사업 등에도 적극적이다.법성사 왼편은 금오산 도수령에서 흘러내리는 개울과 담장을 사이에 두고 맞닿아있다.금오산은 원래 계곡이 깊지 않아 물이 많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법성사 옆 개울은 마를 날이 없다.앞서 선산지구고적조사 보고서에 ‘금오산은 계곡마다 물소리와 목탁소리가 끊어질 날이 없었다’는 기록이 있다고 했었다. 아마도 이 말은 법성사 개울 물소리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2019 수필대전 지구가 자전하는 소리가 들리는 곳

입선 문은주 선글라스를 벗어 던졌다. 깊은 산 속을 파고드는 가파른 길 끝에 고라니 한 쌍이 구름처럼 노닌다. 산허리를 감돌아 오를 때마다 두루마리 산수화처럼 펼쳐지는 풍경의 무상함에 넋을 놓는다. 느닷없는 불청객이 귀찮은 듯 칡 넝쿨손이 자꾸만 자동차를 건드린다. 모든 것에서 멀어지고 있는 이 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재활용 수거함에서 우연히 발견한 신문의 기사 한 줄은 나의 일상을 방해할 만큼 생각을 지배했다. ‘지구의 자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 안동지례예술촌’이라는 제목과 함께 산과 호수를 품은 고택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고택을 방문한 호주 기자의 일화가 적혀 있다. 가만히 먼 산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지구의 자전 소리를 듣고 있냐?”고 물었다는 이 집 주인장의 말을 듣고 나중에 그 말이 기사 제목으로 쓰이면서 많은 외국인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임하댐 건설로 지례마을은 수몰 위기에 처한다. 그곳에는 400여 년의 얼이 담긴 지촌 김방걸의 종택과 지산서당이 있었다. 13대손 김원길은 가문의 터전을 보전하는 것이 후손의 도리라 여기며 그것들을 조각조각 해체하여 마을 뒷산 중턱으로 옮겨지었다. 시인으로 활동한 그는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고택이 예술가들의 활동지로 제격이라 여겨 ‘지례예술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연과 어우러진 고택은 무엇과도 대신하기 어려운 귀한 건축물로 거듭났다. 수장되어 멈출 뻔했던 지촌종택의 역사는 또 다른 스토리를 전개하며 시간의 흐름을 따른다.나의 고향 마을은 문씨 집성촌이다. 그곳에는 ‘연화당’이라는 종택이 있다. 사람이 끊이지 않았던 왁자지껄한 종갓집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고 품었지만 지난한 시간은 종택의 모습을 바꾸었다. 사람의 온기가 떠난 기와집은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다. 반지르르하게 윤기가 흘렀던 대청마루는 주저앉고 구부러진 처마 밑에 볼썽사나운 말벌집이 차지했다. 세월의 틈을 메우지 못한 기와는 헐렁거렸다. 떡메를 치던 아재의 인심 좋은 웃음, 솥뚜껑에 전을 지지던 친척 아지매의 모습도 없다. 고소한 기름 냄새를 맡고 모여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삐걱거리는 정지문으로 달아난다. 안간힘을 쓰며 세월을 견디고 있는 종갓집에는 차곡차곡 쟁여 둔 이야기보따리가 그득한데 누구 하나 들어주는 이 없다. 제멋대로 자란 질경이가 주인 행세를 하며 바람을 붙잡는다.고즈넉한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돌계단을 올라가니 홍살을 설치한 솟을대문이 보인다. 그 아래에 있는 의자 두 개, 사람의 출입을 방해 할 수도 있는데 굳이 의자를 갖다 놓은 이유를 금방 깨달았다. 의자에 앉으니 눈앞에 펼쳐진 것은 숨을 멎게 할 정도의 기품 있는 풍광이었다. 산을 품고 있는 호수는 다양한 색채를 풀어내며 물고기처럼 튀어 오르는 윤슬을 낚는다. 여름의 선명하고 힘찬 기운이 고스란히 마음에 들앉는다. 어쩌면 한 번도 닫을 수 없었던 문이었는지 모른다. 문으로 들어오는 풍경은 이 집 전체로 향하고 있다.다급히 들어선 걸음이 마당의 고요를 깨운다. 엎드려 있던 백구 한 마리가 낯선 이의 방문에 고개를 든다.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서는데 나의 마음을 들킨 거 같아 미안하다. 개의 눈빛이 온화하다. 맴돌이하는 제비의 날갯짓을 쳐다보는 백구가 초승달처럼 웃는다.댓돌 위에 놓인 하얀 고무신을 싣는 순간, 손님들은 신발 끈처럼 꽉 매어진 세상을 향했던 몸과 마음의 짐을 벗어 던지고 종택의 식구가 된다. 별당에 머물렀던 아씨, 사랑채의 손님, 행랑채에 기거하는 머슴이 된다. 방마다 독특하고 매력적인 구조는 자연의 힘을 빌려 비로소 완성한다. 사방에 열린 문마다 들어오는 풍경은 번잡한 욕심을 거두어 가더니 고요한 마음을 돌려준다. 누구나 공평하게 자연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음을 깨쳐준다.우리는 지산서당에서의 하룻밤을 허락받았다. 안동 선비의 기품을 깨치고자 하는 그들의 모습을 닮은 서당은 반듯하고 고풍스럽다. 기둥의 강건함, 대들보의 묵직함, 서까래의 유연함은 어느 것 하나 돌출됨 없이 제자리를 맞추어 서당의 품격을 높인다. 겹처마가 드리운 긴 그림자가 나그네의 옷자락을 붙든다.고택 담장을 따라 걷는 산책길에서 내려다본 ㅁ자형의 종택은 한 폭의 수묵화다. 개방하지 않아 더 은밀하고 숨은 공간이 있음을 짐작게 한다. 종손의 안채 살림은 긴 세월을 감내한 인내의 시간이어라. 대대손손 지킨 그 공간에는 15대손의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그 아이들의 발걸음에 지례예술촌의 아름다운 동행도 계속될 것이다.고택에서 하룻밤을 묵었던 사람들은 지구의 자전 소리를 들었을까! 나는 고라니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밤하늘에 차례대로 돋아나는 무수한 별들을 바라본다. 유년 시절, 평상에서 바라본 은하수의 물결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돌고 돌아 지금 내 앞에 있을까. 문풍지를 타고 올라가는 장수하늘소의 발걸음이 귓전에서 사각거린다. 모두가 쉬이 잠들지 못한 밤이다.“Mom, what's this?”네 살쯤 되었을까. 소녀의 시선을 따라가니 하얀 고무신에는 다육식물이 촘촘하다. 기둥을 살피고 마루의 나뭇결을 만져보던 외국인 부부가 평온한 얼굴로 소녀를 쳐다본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찾아온 그 아이의 눈에는 이 고택이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사람의 온기가 가득한 깊은 산속의 고택에서 나는 고향 마을의 쓸쓸한 종택을 떠올리며 먼 산을 쳐다본다. 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구미 옥성면 농소리 주민들 마을 수호신인 은행나무에게 동제 지내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은행나무에 제사를 지내는 행사가 지난 5일 구미에서 열렸다.구미시 옥성문 농소2리 새마을회는 마을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농소리 은행나무 동제를 지냈다.수령이 450여 년이 넘은 농소리 은행나무는 높이 21.6m, 둘레가 11.9m나 되는 노거수로 정확한 유래는 전하지 않지만 주변에 남아있는 절이나 장터의 흔적과 관련이 있는 나무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이 나무는 마을 사람들의 단합과 친목을 도모하는 향토문화적 가치와 노거수로서의 생물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1970년 천연기념물 제225호로 지정됐다.마을 주민들은 예로부터 농소리 은행나무가 마을과 주민들을 지켜준다고 믿어 매년 음력 10월 첫 오일(午日)에 동제를 지내왔다.신승남 기자 intel887@idaegu.com

쉰 소리라면 후두성대질환 의심

30대 중반 회사원인 A씨는 회식자리마다 빠짐없이 2차는 노래방으로 향한다. 항상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는 노래들을 선곡하는 탓에 다음날 아침부터 쉰 목소리가 나고 목에 통증이 며칠 호전되지 않아 이비인후과를 방문한다.◆후두성대질환이란?코를 통해 들어온 공기는 후두를 거쳐 기관지와 폐로 들어가고, 숨을 내쉬면서 성대를 진동시켜 소리를 낸다.후두는 우리 몸에서 목소리를 내는 성대를 포함한 숨길의 일부로서 목의 앞쪽 부위에 위치한다.남성의 경우 목에 볼록 튀어나온 부분 (Adam’s apple)은 방패연골(갑상연골)이 앞으로 튀어나온 부분이며 그 내부에 성대가 위치한다.후두성대부위에 이상이 생기면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은 쉰 목소리.후두성대질환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대표적으로 급성후두염, 후두개염, 성대결절·성대폴립, 성대마비, 후두암 등이 있다. ◆급성 후두염과 후두개염‘급성 후두염’은 후두를 포함한 상기도 점막에 생기는 염증이다.흔히 기침, 가래 등 감기증상이 지속되어 잘 낫지 않고 증상이 지속되며 목소리의 변화가 나타나고 발성이 힘든 경우 급성 후두염을 의심해볼 수 있다.원인은 바이러스나 세균 등에 의한 감염이며 치료는 대증치료로 적절한 수분섭취와 함께 필요 시 약물치료를 병행한다.‘후두개’란 목에서 음식물이 넘어갈 때 기도로 들어가지 못하게 닫아주는 역할을 하는 후두의 뚜껑부위다.이 부위에 세균감염이 일어나서 생기는 염증이 ‘후두개염’이다. 음식을 삼키는데 어려움이 있고 숨 쉴 때 쌕쌕거리는 소리가 나거나 심한 경우 고열 및 호흡곤란도 올 수 있어 서둘러 진료해야 하는 응급질환이다.호흡곤란이 심하면 몇 시간 내에 기도폐쇄로 진행하므로 위험에 처할 수 있는 만큼 숨길을 확보하기 위한 응급처치가 시급하다.치료는 숨길이 잘 유지되도록 기도를 확인하고 처치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적절한 항생제를 사용한다. ◆성대결절과 성대폴립‘성대 결절’은 성대에 일종의 ‘굳은 살’이 생긴 증상이다. 원인은 목소리를 남용하거나 무리하게 잘못된 발성을 하는 습관 등이다. 말을 많이 하는 직업군에서 자주 발생한다.증상으로는 거친 쉰 목소리가 대표적이다.후두내시경 진찰 시 보통 성대 양쪽에 대칭적으로 결절이 나타난다.치료는 가능한 말을 하지 않고 (음성 휴식), 적절한 식생활 습관을 병행하는 것이다. 이때 술과 담배는 금지하며 카페인 피하는 게 좋다.원인이 잘못된 발성방법이라면 음성치료를 시행합니다. 오래된 성대결절은 수술을 통해 제거하게 됩니다. ‘성대 폴립’은 성대 안쪽 모세혈관이 파열돼 물혹이 질환이다. 보통 한쪽 성대의 앞쪽부위에 생긴다.원인은 과도한 음성의 사용, 잘못된 발성법에 의한 손상 등이지만 상기도 감염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증상은 성대결절과 비슷하게 성대의 진동이상으로 인한 쉰 목소리다. 초기에는 음성치료를 통해 잘못된 발성습관을 교정하고 약물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1~2달 경과 관찰에도 변화가 없다면 수술을 통해 제거해야 한다. ◆성대 마비와 후두암‘성대 마비’란 한쪽 또는 양쪽의 성대가 움직이지 않아 쉰 목소리나 호흡곤란이 올 수 있는 질환이다.원인은 주로 말초성 마비로 성대의 움직임을 관할하는 미주신경과 되돌이 후두신경이 마비되면 나타날 수 있다.수술 후 합병증으로 미주신경과 되돌이 후두신경이 손상되면 발생할 수 있다.목 부위의 종양이 신경을 누르는 경우나 바이러스가 침투해 신경에 염증을 일으키면 성대 마비가 생길 수 있다.치료는 한쪽 마비의 경우 음성치료와 성대내주입술, 갑상성형술 등이 있다.양쪽 마비의 경우 후두의 폐쇄와 같은 응급상황 시 기관절개술을 하고 수술적 방법으로 레이저를 이용한 성대절개술을 고려해야 한다.‘후두암’의 초기 초기증상 역시 쉰 목소리이다.몇 주일에서 몇 개월에 걸쳐 지속적으로 심해지는 양상을 보이는 경우 후두암을 의심해볼 수 있다.또 음식물을 삼킬 때 통증이 있거나 삼킬 때 덩어리가 있는 느낌, 경부의 임파선이 커지는 경우, 지속적으로 기침이 나는 경우 등과 같은 증상도 생긴다.치료는 종양의 진행 정도에 따라 수술적 치료와 방사선 치료, 항암치료로 구분한다.도움말=대구가톨릭대병원 이비인후과 이동원 교수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고교생 소리꾼 박은채 판소리 흥보가 완창 무대

이명희 판소리 명창 외손녀 박은채가 흥보가 완창 무대를 12일 오후 1시30분 대구문화예술회관 비슬홀에서 연다.경북예술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소리꾼 박양은 이명희 명창의 외손녀로 명창의 피를 이어받아 5세부터 탁월한 소리실력으로 굵직한 행사에서 초청 공연을 해왔다. 지난해 12월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삼성전자가 주최한 장학생에 선정되기도 했다.이번 공연에서는 판소리 흥보가를 완창(2시간30분)한다. 판소리 완창은 암기력, 체력, 실력이 뒷받침돼야 가능한 무대여서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고 있다.이날 공연의 고수는 이태백 명고(목원대 한국음악과 교수), 가야금 반주는 한선하 명인(전 국립창극단 수석 반주,수성 가락보존회 회장)이 맡는다.판소리는 박양 집안의 전통이다. 외증조할머니 차일분에서, 할머니 이명희 명창(대구시무형문화재 제8호 판소리 예능보유자), 어머니 정정미(대구시 무형문화재제8호 판소리 전수조교), 그리고 박은채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쳐 명창가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박양은 “할머니 뒤를 이어 영남 지역의 판소리 역사를 이어가겠다는 계승의 포부를 가지고 할머니가 계시는 저 멀리 하늘까지 닿을 수 있도록 큰소리로 소리부르겠다”며 공연을 앞둔 소감을 전했다.전석 무료.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한국의 우수한 소리문화를 재조명 한다.

통일신라시대 성덕대왕신종 일명 에밀레종을 주제로 한국의 우수한 소리문화를 재조명하는 ‘제7회 신라 소리축제 에밀레전’이 12일 경주 첨성대 잔디광장 일대에서 열린다.BBS대구불교방송이 주최하고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사 등이 후원하는 이번 축제는 현존하는 세계의 종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가진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의 가치와 정신을 기리기 위해 신라 천년고도 경주에서 매년 개최되고 있다. 매년 큰 인기를 끌었던 4t 규모의 에밀레 모형종 타종행사를 비롯해 성덕대왕신종 비천상 탁본 및 인경체험, 신라복입기, 에밀레종미니어처 및 종모양 풍선접기 30여 개의 신라문화 체험 마당 프로그램으로 꾸며진다.‘에밀레’전의 백미로 꼽히는 ‘신라 간등회(看燈會)’는 한국 전통 등의 효시인 신라시대 간등(看燈)을 재연하는 행사로 대형 공작등과 용(龍)등, 신라토층 모형탑 등을 비롯한 대형 전통 등이 첨성대를 배경으로 은은한 야경을 연출할 에정이다.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문화공연도 펼쳐진다. 이정필 수석지휘자 외 50여 명이 출연하는 경북도립국악관현악단의 공연에서는 무용단이 ‘천마의 비상’으로 포문을 열고 ‘큰애기 반봇짐’, ‘배치기’, ‘난감하네’, ‘너영나영’ 등 국악가요가 꾸려진다. 이어 ‘바이올린과 국악의 만남’, ‘혼의 소리 아리랑’ 등으로 경주의 가을밤을 화려하게 장식할 예정이다. 마지막 무대는 인구가수 홍경민, 박미경 등이 출연해 히트곡을 선사한다.김혜성 기자 hyesung@idaegu.com

혁신의견 청취를 위한 군민 소리함 ‘칠곡 1번가’ 유명무실

칠곡군이 군민들의 혁신의견 청취를 위해 설치한 군민 소리함인 ‘칠곡 1번가’가 제 구실을 못한다는 지적이다.운영에 들어간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접수 민원은 고작 8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4일 칠곡군에 따르면 지난 3월부터 지역 발전 및 칠곡의 도약과 성장은 물론 불합리한 관행이나 생활 불편사항 해소 등을 위해 ‘칠곡 1번가’를 군민혁신 제안공모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칠곡군은 ‘이것만은 꼭 바꾸자’는 슬로건 아래 군청과 읍·면사무소 등 13곳에 ‘칠곡 1번가’를 설치, 주민들이 평소 생각했던 혁신 등 다양한 의견을 적어 넣도록 했다.또 주민들의 참여 확대를 위해 팩스와 우편, 방문접수를 비롯 군청 홈페이지(www.chilgok.go.kr)를 통해서도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하지만 실적이 너무 저조하다. 6개월이 지난달 말 현재 군청 홈페이지에는 공정한 수의계약을 위한 방안 등 7건, 팩스 1건 등 접수된 주민 의견은 8건에 불과한 실정이다.제안된 주민의견 대부분도 행정의 원활성과 주민편의 등 단순 요구 사항일 뿐 혁신의견은 전무한 것으로 알려졌다.게다가 군민 소리함이 군청 홈페이지의 참여마당→주민참여→열린 혁신제안(란)으로 명칭이 다르게 적혀 있는 등 군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등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주민 박모(55)씨는 “군민의 다양한 의견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 운영하고 있는 군민의 소리함인 ‘칠곡 1번가’가 부실 운영되고 있는 것은 홍보가 부족한데다 군민들의 군정에 대한 관심도 떨어지기 때문이다”고 말했다.이에 대해 칠곡군 관계자는 “‘칠곡 1번가’에 많은 군민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주민홍보를 강화해 나가는 한편 홈페이지의 명칭도 빠른 시일 내 변경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이임철 기자 im72@idaegu.com

매미소리 / 임영조

매미소리/ 임영조감나무 가지 매미가 악쓰면/ 벚나무 그늘 매미도 악쓴다/ 그 무슨 열 받을 일이 많은지/ 낮에도 울고 밤에도 운다/ 조용히들 내 소리나 들어라/ 매음매음… 씨이이… 십팔십팔/ 저 데뷔작 한 편이 대표작일까/ 경으로 읽자니 날라리로 읽히고/ 노래로 음역하면 상스럽게 들린다.- 시집『그대에게 가는 길』(천년의 시작, 2008).......................................................휘파람새는 수컷이 암컷에게 구애를 할 때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한다. 암컷은 수컷의 가창력도 살피지만 무엇보다 레퍼토리의 다양성에 더 점수를 준다. “호오, 호케꼬, 케꼬” 노래하며 간간히 바이브레이션을 뽑는다. 노래를 잘하는 수컷이 암컷의 선택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사랑의 고행은 매미도 마찬가지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여름이 뜨거운 것’이라며 안도현 시인은 말했다. 그 뜨거운 여름도 꺾여 처서의 끝물에 밤낮없이 줄기차고 맹렬했던 매미울음도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오랜 땅속 굼벵이 생활 끝에 지상에서의 한 달 남짓한 삶이니 암놈을 부르는 러브콜은 타는 목마름이고 지금은 처연하게 들릴 수밖에. 그래서 열 받을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스스로 열을 낸다고 해야 옳겠다. 만약 정말로 열 받은 매미가 있어 ‘씨이이...씹팔씹팔’ 한다면 아마도 구애 작업이 신통찮거나 열불 나게 하는 인간들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그 소리가 마치 데뷔작 한 편 달랑 대표작으로 내놓고 내내 우려먹는 시인의 경전처럼, 소품종 소량 생산으로 오랫동안 심각하게 남은 시인의 넋두리처럼 들렸던 모양이다.하지만 매미의 입장으로 관찰하면 날라리일 수가 없다. 우리 귀에는 같은 레퍼토리가 귀에서 공명하듯 들리지만 매미들에겐 그렇지 않다. 매미울음소리도 따지고 보면 지구온난화현상에 따른 기온 상승과 인간이 만들어낸 불빛 때문이라고 한다. 매미의 체온이 일정수준 이상이라야 울음을 울 수 있는 조건이 되며 기온이 떨어지면 울라고 애걸복걸해도 울지 않는다. 또 그래야 구애가 되고 사랑도 이뤄져서 스스로 강한 생존의 에너지와 번식력을 키워갈 수 있겠다.좀 예민한 분들도 얼마 남지 않은 이 여름 탓이고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 탓이려니 여기며 꾹 참아야지 별 도리 없겠다. 그런데 매미가 물러가도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에 대한 깔 쥐어 물어뜯기는 점입가경 찬바람이 불 때까지 계속될 태세이며, 그 소음은 매미소리의 두 배쯤인 160데시벨은 되는 것 같다. 세상 온통 이 소음에 파묻혀 그동안 안보와 경제, 민생이니 하며 떠들어대는 것들도 다 빈 소리처럼 여겨진다. 야당은 청문회를 최대한 뒤로 미루면서 이를 즐기고자 하는데, 이쯤 되면 진영 간의 진검승부나 다름없이 되었다.그럴 수 있다는 양해의 수를 쌓아올리면 우리사회에서 모두 이해하고 넘어갈 일들이지만, 부도덕과 비양심의 기미를 추출하여 낙인을 찍어버리면 죽어도 장관을 시킬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조국과 조국을 위해 벌이는 싸움처럼 비쳐지지만 이 싸움은 오래 전부터 준비되어왔다. 양쪽 모두 고난을 벗 삼아 당당하게 싸움에 임하고 있으나, 국민들로서는 애국으로 읽자니 ‘날라리로 읽히고’ 정파 싸움으로 음역하면 ‘상스럽게 들리니’ 어쩔 노릇인가. 매미소리는 머지않아 소멸되겠으나 우우 피 끊는 우리들의 속울음은 언제쯤이나 사라질까.

현대인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미소포니아' 증상… 스트레스 완화 필수

지난 5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미소포니아' 증상이 나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미소포니아란 특정 소리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증상으로 '선택적 소음 과민 증후군' 또는 '청각과민증'으로 불린다.대표적인 증상으로는 껌을 딱딱 소리내며 씹거나 쩝쩝대는 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 등 특정 소리에 대해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낸다고 의심하며 소리가 사라져도 여전히 그 생각에 사로잡혀 큰 고통을 호소한다.심해지면 나중에는 그 소리에 대한 혐오, 증오로 확대될수도 있다.미소포니아를 완치할 수 있는 일반적인 치료법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심리 상담과 병행해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것이 미소포니아의 증세를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전해졌다.online@idaegu.com

경주, 문화공연으로 더위 이긴다-심수정과 월정교에서 우리소리 우리가락 공연

경주지역 곳곳에서 문화재를 활용한 공연이 이어지면서 무더위를 이겨내고 있다. 신라천년예술단은 매주 토요일 해질녘에 월정교 난간에서, 계림국악예술원은 양동마을 심수정에서 오후 4시쯤이면 우리의 소리로 국악 공연의 무대를 연다. 지난 3일에도 심수정과 월정교에서는 대금과 우리의 소리가 어우러져 전국에서 경주를 방문한 관광객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월정교는 신라 제35대 경덕왕 19년(760년)에 축조된 것으로 월성에서 남산을 잇는 서라벌의 교통로로 기능했다. 고려 제25대 충렬왕 6년(1280년)에 경주부 유수 노경론이 중수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여몽전쟁의 참화까지 피해가며 최소한 520년간은 존재해왔다. 그러나 이후 다리는 무너지고 그 부재들이 폐허로 남아있었으나 신라왕경복원 핵심사업으로 복원사업이 추진됐다. 2013년에 1차 복원사업이 완료하고, 2018년 11월 주변정비사업을 비롯 모든 공사와 사업이 완료됨에 따라 항시 개방으로 전환돼 경주의 새로운 문화관광자원으로 기능하고 있다. 신라천년예술단 이성애 단장은 “월정교에서 신라시대 백성들의 아픔을 달래주었던 만파식적의 소리, 신라의 소리 대금 공연은 역사를 계승하는 일”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심수정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경주 양동마을의 중요민속자료 제81호로 지정이 된 전통 한옥식 정자다. 조선 명종 15년인 1560년 경에 농재 이언괄을 추모해 지어져 460년이 지나고 있다. 철종 때에 이르러 소실이 되었는데 1917년에 다시 지었다. 심수정의 아름다움은 바로 누마루에 있다. 3면이 훤히 트인 누마루에 오르면 양동마을이 다 보인다. 계림국악예술원 권정 대표는 “우리의 소리, 우리의 가락을 전통의 맥이 흐르는 심수정에서 우리 국민들과 배우고, 함께 즐기면서 공감하고 체험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풍류가 피어나는 음악회를 기획 운영한다”고 설명하며 많은 동참을 당부했다. 강시일 기자 kangsy@idaegu.com

천 년 세월에도 바래지 않은 법향…은은한 비파소리·연꽃향기는 여전히 생생하다네

돌에 새겨진 천인상은 당장이라도 밖으로 나올 것 같은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오랜 옛날부터 불교미술의 주제로 사랑을 받아 온 천인상은 흔히 비천이라고 부른다. 신라 석공들의 마음과 손끝에서 새겨진 아름다운 비천은 새롭게 불법으로 장엄되고 면면히 이어져 왔다. 석조 비천상은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에도 바래지지 않고 오히려 법향에 젖게 한다. 비상하는 자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며 긴 시간 비바람을 버티어온 석조 부조물 앞에 섰다. 보물 제661호 상주 석조 천인상은 상주시 사벌면에 있는 상주박물관 전시실 유리상자 속에 전시되고 있다. 화강암 판석 2장에 비파를 연주하는 주악 천인상과 연꽃을 올리는 공양 천인상을 새긴 불교미술 문화재이다. 크기는 각각 127cm, 123cm이다. 문화재청은 천인상으로서는 큰 작품이며, 온유한 얼굴모습과 세련된 자태와 균형 잡힌 신체 각 부분의 사실적인 묘사 등으로 해서 1980년 6월11일 보물로 지정했다.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경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는 천인상은 연화대석과 석탑재 등과 함께 상주시 남성동 용화전 안에 있었다. 1982년 10월 상주 남산공원으로 옮긴 후, 2007년 6월부터 상주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당시 함께 발견된 폐 석탑재들은 박물관 야외에 전시되고 있다. 상주시가 2000년 착공해 94억여 원을 들여 2007년 준공한 상주박물관은 3만4천800㎡의 부지에 연면적 2천625㎡,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로 만들어졌다. 기획전시실과 상설전시실, 수장고실, 전통의례관, 농경문화관 등을 갖추고 있으며, 유물 2천500여 점을 보유하고 있다. 세월의 풍화작용도 빼앗지 못한 아름다움을 지닌 상주박물관의 석조 천인상. 어디에서 만들어져 천 년 동안 자리를 지키다가 현재의 위치까지 오게 됐는지 그 스토리를 지금은 자세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닳아버린 시간의 흔적은 알 수 없는 정감을 더욱 안긴다. 은은한 실내조명을 받으며 금방이라도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은 두 천인상 앞에서 한참을 서성인다. ◆상상의 미녀천인은 불교에 있어서 상계(上界)에 살면서 하늘을 날아다닌다는 상상의 미녀다. 몸에는 날개옷인 우의(羽衣)를 입고 음악을 좋아하며, 하계(下界)의 인간들과도 왕래한다고 한다. 날아다니는 도구인 우의를 인간에게 빼앗겨 그 남자와 결혼해 살다가 나중에 우의를 손에 넣자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는 선녀처 설화는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의 신선사상과 인도의 불교사상이 얽힌 이 같은 천인설화는 동양 각국에 수없이 전해진다. 조형미술에서는 비상하면서 찬탄내지 공양하는 모습으로 인도미술의 초기부터 등장하며, 이후 불교미술의 한 요소가 되었다. 기독교의 천사와는 달리 날개 없이 나는 것이 비천의 특색이며, 신선같이 자유롭고 유려한 비상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실크로드의 돈황 석굴에도 비천상의 벽화가 많이 보인다.특히 천의(天衣)를 길게 펄럭이면서 비스듬히 날아 내려오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표현된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는 경주박물관에 있는 봉덕사 신종의 비천상이 유명하다. 고구려 고분인 안악 2호분이나 장천 1호분 벽화에도 다양한 자세로 하늘을 나는 천인상의 벽화가 있다. 석탑의 가장 하부인 하층 기단에 양각으로 비천상을 새기는 이유는 탑이 하늘세계 혹은 이상적인 불국토 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파 켜는 주악 천인상상주 석조 천인상 중에 왼쪽에 있는 주악 천인상은 비파를 켜고 있다. 머리에는 화관을 썼고, 몸은 조금 틀어 얼굴도 그쪽으로 향했다. 한 발은 살짝 앞으로 내밀었지만, 다른 발은 뒤쪽에 두어 무게 중심을 잡고 있다. 살짝 돌린 옆얼굴은 눈매가 초롱하고, 도톰한 입술 가에는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가 감돈다. 좌우로 흩날리는 천의 자락은 비파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에 맞추어 춤추는 듯하다. 천인상의 왼쪽에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다. 이로 보아 석탑 기단부의 면석으로 추측한다. 오른쪽의 공양 천인상을 마주보는 듯 왼쪽을 향하고 있으며, 머리는 앞으로 숙이고 허리를 약간 뒤로 하여 유연한 자세를 취하였다. 미소를 머금은 단아한 표정과 비파를 타는 두 손의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인다.구불거리며 흩날리는 옷자락은 연주하는 자태와 함께 주악상의 율동적인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특히 손가락의 섬세하고 정교한 묘사에서는 신라 석공의 능숙한 조각술이 잘 드러나 있다. 하의는 주름이 져 있으며 윗도리 속에서부터 늘어지는 끈이 좌우로 바람에 날리듯 율동적으로 표현되었다. 실크로드의 중국 돈황이나 인도의 종교미술에서는 악기 연주나 무용은 부처를 찬탄하거나 공양할 때 사찰을 장엄하게 하는 중요한 장식 소재로 발전했다. 향, 등과 함께 공양의 하나로 조형되어 왔는데, 그 중에서 꽃과 함께 여러 음악으로도 공양을 한다고 하니 주악과 무도가 공양의 필수 요소임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로 국보 제47호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의 기록에 의하면 통일신라 후기의 유명한 승려 진감선사는 중국에서 귀국하여 불교음악인 범패를 한국에 최초로 전파했다. 신라 왕경에서 당나라로 향하는 교통로의 중요 거점인 상주 장백사가 첫 보급지였다고 한다. ◆연꽃 올리는 공양 천인상 오른쪽의 공양 천인상은 연꽃 봉오리를 받쳐 들고 오른쪽을 향해 앞으로 사뿐히 나아가는 순간의 모습이 매우 자연스럽고 동적으로 묘사되었다. 비천의 역할은 천상의 세계를 의미하며 꽃과 음악으로 부처님의 법을 찬양하는 것이다. 팔에 감긴 긴 띠, 즉 천의를 이용해 하늘을 날기 때문에 비천의 형상에서 그 표현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양 어깨에 걸쳐진 천의 자락도 양팔과 다리를 휘감으면서 바람에 뒤쪽으로 날리는 듯 매우 생동감 있게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왼팔은 아래로 내리고 안쪽으로 약간 구부린 채 엄지와 중지를 붙이고 있다.얼굴의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어 있다. 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입체적으로 처리된 옷 주름, 분명하게 조각된 눈·코·입의 표현은 정교하게 다듬어진 조각품으로서의 완벽한 기술을 보여준다. 우수한 종교 조각으로서의 숭고미를 더해주는 이 천인상은 8세기 석재 예술의 양식과 성격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두 석조 천인상의 상호를 보면 모두 볼 한가득 미소를 머금고 있다. 머리에는 낮은 보관을 썼으며 고운 자태로 반달 같은 눈썹에 오뚝한 콧날, 갸름한 눈매는 소리 없이 눈으로만 웃고 입가는 잔잔한 미소를 띠었다. 꾸밈없이 자연스럽고 밝아서 인자함이 묻어나고 있다. ‘상주의 미소’라 불릴 수 있겠다. 불교미술의 황금기를 맞고 있던 당시 통일신라의 석공들이 만든 예술 작품 속에서 신라인의 기질을 엿볼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석탑의 기단부 바위에 생동감 있는 주악비천상을 새겨 천상의 음악이 흐르는 불국토로 바꾸었다. 그 주위에서 탑돌이 하는 세인들을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놀라운 미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 비천상을 조각한 석공은 아마도 당시 통일신라에서 가장 이름난 장인 가운데 한 명 이었음이 틀림없다. 어떻게 이렇게 생동감 어린 조각을 돌에다 새겨 넣을 수 있는지. 단순한 기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힘이 담겨있음을 느끼게 한다. 최근에는 3D프린터로 같은 모양의 석조천인상을 만들었다는 기사도 보인다. 박물관에서는 부피를 작게 하여 탁본 체험도 가능하도록 했다. 상주박물관의 김진형 학예연구사는 “전체적인 구성 및 세부 묘사 등으로 봐서 통일신라 조각의 정점을 찍고 있다”며 “아마도 이 아름다운 천인상이 새겨진 석탑이 그대로 남아있었더라면 신라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장식의 문화유산으로 단연 국보급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주박물관의 대표적인 유물인 이 천인상 면석은 큰 건물의 기단부였을 수도 있다며 오랫동안 땅속에 파묻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데 그래서 비교적 상태가 온전하다고 했다. 그 동안 상주지역은 몽고 침입, 한국전쟁 등 수많은 전란을 겪어 온 지역이다. 이제 두 천인상은 박물관의 주요 유물로 자리 잡고 있다.지금도 조각예술가, 디자인 전문가들의 발길이 전국에서 이어지고 있다. 두 석조 천인상은 천 년 세월을 변함없이 세상만사를 미소로 관조하며 오늘도 그 자리에 서 있다.〈글·사진= 박순국 언론인〉 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대구 북구 서리지수변생태공원, 군부대 총소리에도 방음벽 설치 안돼

22일 오전 10시30분 대구 북구 서리지수변생태공원 산책로. 사격 훈련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나서 곧바로 수십 발의 총소리가 공원에 울려 퍼졌다. 2㎞ 둘레길 산책에 나선 시민들은 어리둥절 놀란 표정을 짓고서 걸음을 멈추는가 하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시민 김모(58)씨는 “지난 5월 서리못에 공원이 조성돼 가끔 아내와 산책을 하는데 오늘 처음 총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며 “울타리가 설치돼 있어도 총소리가 크게 울리는 탓에 무섭기도 하다”고 말했다.군사보호구역으로 접근이 금지된 육군 50사단 군 경계선부터 공원 안전 펜스까지 거리는 겨우 100m 남짓이다. 방음시설로는 앙상한 메타세콰이어 50여 그루를 심어놓은 게 전부였다.주거 환경 개선 및 도심 속 녹지 공간 마련을 위해 조성된 북구 서리지수변생태공원이 정작 주민들은 찾지 않는 공원으로 전락하고 있다. 공원 내 울려 퍼지는 총성 탓이다.총소리 민원에도 공원을 조성한 북구청은 50사단 측과 협약한 내용과 달리 방음벽이 아닌 메타세콰이어 나무로 방음시설을 대체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북구청에 따르면 사업비 116억 원을 들여 지난 5월 서리지수변생태공원 1단계 조성사업을 마무리한 데 이어 2020년까지 16억 원을 들여 2단계 조성사업을 완료한다.서리지수변생태공원은 군사보호구역이 일부 포함된 곳으로 군부대 사격장과 700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연간 100여 차례의 사격 훈련이 실시된다. 1회 사격 인원만 150여 명 이상으로, 3천 발 이상의 총성이 울려 퍼지는 곳이다.50사단은 2012년 공원조성사업 계획 당시 사격장 소음 등 5가지 해소 방안 및 조치 계획 등을 조건으로 북구청과 협약한 것으로 알려졌다.군 측은 △사격장 소음 관련 군부대에 민원 제기 이행각서 제출 △제한보호구역 보호 및 훈련모습 노출 방지 위한 계획지역 일부 조정 △사격 소음으로 인한 민원 피해 방지를 위한 소음방지시설 설치 △제한보호구역 진입 가능 지역에 대한 군사보호구역표지 설치 및 관리 등을 해소방안으로 북구청에 제시했다.당시 북구청은 민원제기 불가 이행각서와 군사보호구역 표지판 설치 및 방음벽 설치, 차폐 조경식재, 전망대 미설치 등을 약속했다.하지만 북구청이 1단계 조성사업을 마무리하면서 방음벽 대신 메타세콰이어 50여 그루를 심는 것으로 대체하는 등 50사단과의 협약을 이행하지 않았다.50사단 측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50사단 관계자는 “올해 3차례 이상 북구청에 공원 이용객 불편 방지를 위한 방음벽 관련 문의를 했지만 예산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답변뿐이었다”며 “당시 나무 목재를 이용한 방음벽 설치는 협약서에 명시됐지만 나무숲은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이어 “공원 2차 조성 사업 완료 시 군부대에 최종 심사를 받게 돼 있는 만큼 소음 관련 문제가 발생할 경우 북구청에 방음벽 설치 등 모든 사안을 재요청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이동현 기자 leedh@idaegu.com

문경소리공연단 작은 음악회, 시민들 “문화갈증 떨쳐버렸어요”

문경문화원이 공연문화에 갈증을 느끼는 지역주민들을 위해 작은 음악회를 마련해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8시 가은읍 아자개 장터에서 ‘문경소리공연단 작은 음악회’가 성대하게 펼쳐졌다. 이 음악회는 문경문화원이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으로 한국문화원연합회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어르신문화프로그램이다. 대한가수협회 문경지부 회원들의 공연과 문경소리공연단의 색소폰·하모니카·합창, 가은읍 양산주부합창단의 공연 등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 음악회를 찾은 지역민들과 관광객들은 함께 노래부르고 춤을 추며 한여름 밤을 즐겼다. 문경문화원의 문경소리공연단 작은 음악회는 지난 2일 문경읍을 시작으로 오는 10월까지 18차례 공연을 펼쳐 시민들에게 공연문화 갈증을 해소해 줄 예정이다. 현한근 문화원장은 “다양한 공연단을 구성해 음악회를 마련한 것은 지역민 모두가 생활 속에서 문화를 향유하며 건강하게 생활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규 기자 kimmark@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