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슬 버리고 강산에 살기를 노래하던 가문 외세의 위협 앞에서는 목숨까지 내던져

기차 소리가 한낮의 고요를 깨뜨린다.임청각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石州 李相龍, 1658~1932) 선생의 생가이자 독립운동의 산실이다. 앞에는 시퍼런 낙동강이, 뒤로는 태백산 줄기 영남산(映南山)이 에워싼 배산임수의 명승절경에 자리 잡은 임청각(臨淸閣)은 그러나 잘려나간 마당에 가림막이 둘러쳐져 낙동강 조망을 막아 버렸다. 낙동강은 가까이 영양 일월산에서 발원한 반변천과 합수돼 남해로 긴 물줄기를 이룬다.안동시 법흥동 낙동강변에 위치한 임청각(안동시 임청각길 63)은 뻔한 위치임에도 정작 가는 길은 꽤나 복잡하다. 안동역에서 임청각길을 따라 안동댐으로 가다가 법흥육거리에서 왼쪽으로 중앙선 철길을 따라가면 만난다. ◆임청- 도연명의 귀거래사 시구임청각은 고성이씨 12세 이증의 셋째아들 이명(李洺)이 의흥군수를 내려놓고 중형 이굉(李宏)과 함께 중종 때인 1515년 건립했다. 고려 밀직부사를 지낸 이황을 시조로 하는 고성이씨는 조선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향헌공 이원의 여섯째 아들 참판공 이증(李增)이 관직을 버리고 안동에 이거한 것이 정착의 시작이다.임청각은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동쪽 언덕 위에 올라 길게 휘파람을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노라(登東皐而舒嘯 臨淸流而賦詩)’라는 시구에서 ‘임청’을 따왔다. 당초 99칸이었는데 1940년 중앙선이 개통되면서 강제로 행랑채와 부속채 등이 철거되고 현재 70여 칸만 남았다. 이명의 아들 이굉(李肱)도 벼슬보다는 산수 간의 풍류를 즐기면서 유유자적한다. 백부가 지은 귀래정(歸來亭) 옆에 ‘갈매기와 벗한다’는반구정(伴鷗亭)을 건립한 것이다. 그 아들 이용(李容)도 반구정에서 만년을 보냈으니 삼대가 벼슬을 버리고 은거한 것이다. 3대가 과거급제 아닌 귀거래를 실천했으니 ‘고성이씨삼세유허비’가 세워졌을 만하다.중앙선 철길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고택 임청각에 들어서면 ‘국무령이상룡생가’라는 커다란 문패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단칸 맞배지붕의 문지방 없는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왼쪽 행랑채가 길게 늘어서 있고 바로 눈앞으로 군자정이 보인다.왼쪽 행랑채 쪽으로 들어가서 임청각 정침 마당에 선다. 바닥이 훤히 보이는 우물이 마당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다. 임청각이 들어선 자리가 산비탈 청석자리여서인지 깊지 않은 우물물이 맑다.석주 선생의 종손 이창수(55)씨는 “우물 앞에 있는 사랑채는 3명의 정승이 난다는 태실이다. 석주와 철종 때 좌의정이었던 낙파 유후조가 여기서 태어났다. 그러나 이 후 외손들은 이 방에서 해산하지 못하도록 했다”고 말한다. 집 전체 구조는 일(日)자와 월(月)자를 합친 용(用)자 형태로 지어졌다. 해와 달을 지상으로 불러내려 그 정기를 받으려는 염원이 건축에도 담겨 있다. 동쪽으로 담장 샛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랑채인 군자정(君子亭)이다. 현판 글씨는 퇴계가 썼다. 별당 건물로 기단 위에 누상주와 주하주로 구성된 군자정 누마루는 사방으로 계자난간을 갖춘 쪽마루를 돌려 지어졌다. 넒은 마루에는 석주 이상룡의 독립운동 과정이 영상물로 볼 수 있도록 했다.군자정에 있는 많은 현판은 임청각의 역사와 임청각을 지켜온 후손들의 정신이 새겨져 있다. 석주가 남긴 거국음(去國吟)과 아들 이준형의 피가 묻은 유서에서부터농암 이현보, 송재 이우, 의병장 고경명, 백사 윤훤, 파서 이집두 등의 시가 걸려 있다.임란 당시 전라도 의병장 제봉 고경명과 고성이씨 16세 이복원은 사돈간이었다. 고경명의 시 ‘제임청각’은 임란 직전 동래부사였던 고경명이 이복원의 회갑연에 참석해 임청각과 주변 풍광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이다.시판에는 고경명의 또 다른 별호 고태헌(高苔軒)이라 서명했다. 고경명은 두 아들과 함께 왜군이 영남에서 호남으로 진격하는 것을 막아내려다 삼부자가 장렬하게 전사했다. 고경명의 큰아들 고종후의 아내 고성이씨는 16살인 시동생 고용후를 비롯한 식솔 50여 명을 이끌고 친정 임청각으로 피란 와서 지냈다.“당시에는 영호남 간 혼인으로 교류했으니 지역감정은 없었음을 보여준 것이다”라고 이창수씨는 말한다. 이후 안동에 피란 왔던 고용후가 과거에 급제하고 안동부사가 되어 내려왔다. 그는 피란 당시 은혜를 입었던 고성이씨 문중과 학봉 김성일 일가 등 사람들을 모시고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종손 이창수씨는 임청각에는 ‘삼불차(三不借)’의 전통이 있다고 말한다. 3가지를 빌리지 않았으니 첫째가 자식의 대를 끊이지 않음이요, 둘째는 글을 빌리지 않았고 셋째는 돈을 빌리지 않았다고 자존심을 내건다. 분재기에 따르면 한 때는 노비만도 408명이나 되는 대가였고 한문공부도 나름 했는데 현재는 자신의 아버지(이철증)가 넷째였고 자신은 먼저 돌아가신 종손 (이도증)의 맥을 이었으니 삼불차도 이제 맥이 끊어졌다고 말한다. ◆독립운동의 성지임청각은 보물(182호)이기도 하거니와 근세에 와서 독립운동의 성지로 그 존재가치를 드높였으니 정부가 지정한 현충시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8·15 경축사에서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상징하는 공간”이라 칭찬한 곳이기도 하다.임청각은 석주 이상룡을 비롯, 아들 이준형과 손자 이병화 등 3대에 걸쳐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명문가다. 석주의 부인 김우락과 동생(이상동·봉희), 조카(이형국·운형·광민), 당숙 이승화, 손부 허은 등 독립운동가로 서훈을 받은 사람만 11명이나 된다. 석주는 구한말 1905년 대한협회 안동지회를 조직하고 지회장이 돼 협동학교를 설립하고 후진양성과 국민 계몽운동을 벌였다. 1910년 국권을 완전히 빼앗기자 이듬해 전 재산을 처분해 간도로 망명한다.54세의 나이에 아우 봉희와 외아들 준형, 조카 형국과 문형 등을 데리고 압록강을 건넜다. 그는 유학 서적을 접어놓고 가산을 모두 처분해서 가솔들을 데리고 만주로 떠난다. 이때 조상의 신주도 땅에 묻어 버려 임청각 사당에는 위패가 없다. 이런 석주의 정신은 이후 독립운동의 상징이 되고 있다. 만주에서는 길림성 류허현에서 신흥강습소를 열어 교포 자녀의 교육과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1912년에는 계몽단체 부민단을 조직해 단장이 됐고 1919년 한족회를 조직해서 자치활동에 힘썼다.서로군정서를 조직해서 독판(督辦)으로 활약했고 1926년 임시정부에서 국무령이 돼 독립운동 최전선에서 싸웠다. 69세 고령으로 독립운동 일선에서 물러선 뒤 1928년 전민족 항일단체 통합에 노력하다가 1932년 5월12일 김림성 서란현에서 순국했다.석주가 순국한 뒤 귀국한 아들 동구 이준형은 일제의 추적에 월곡면 도곡리로 피해 있다 “일제 치하에서 하루를 더 사는 것은 하루의 수치를 더하는 것이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한다.만주로 망명한 석주가 임청각을 매각한 계약금을 갖고 갔다. 그러나 집안에서 계약금을 두 배나 주고 임청각을 되찾았다. 이를 두고 이창수씨는 “계약을 ‘물렸다’”고 표현했다. 그러나 당시 석주의 가족들은 호적을 만들지 않았고 임청각이 4명의 문중 대표 이름으로 소유권을 명의신탁했다. 석주의 손자 이병화가 명의자 4명을 찾아 해결하려 노력했으나 1명은 끝내 거절했다. 석주의 증손자인 이항증 선생(80·이창수의 숙부)이 최근까지 10여 년간 뛰어다니며 후손들을 상대로 소유권 말소 판결은 얻어냈으나 소유권 등기는 아직 해결되지 않아 공중에 뜬 상태다. 이항증 선생은 “보수적인 선비였던 석주가 종중 씨나락까지 팔진 않았다”며 일부의 임청각 소유권 주장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법원 소송에 비용도 많이 들었고 몸도 지쳤다”며 임청각의 소유권 문제는 국가에서 관리하는 것도 한 방법임을 시사했다. ◆탑동파임청각과 어깨를 맞대고 있는 탑동고택은 앞마당에 국보 16호 법흥사지 7층 전탑을 두고 있어 탑동파 고택이라 부른다. 신라 시대 법흥사가 있었던 자리라고 한다. 고성이씨 12세 참판공파 이증의 3남 이명이 임청각을 짓고 안동에 정착한 뒤 그의 손자 이복원은 다섯 아들을 둔다. 그 중 셋째 이적 (李適)은 처음 안동읍 남선면 현내리에 분가했다가 다시 임청각 기슭 영남산에 자리를 잡고 정착하니 그가 탑동파의 파조가 된다.탑동고택은 1천여 평 대지에 안채와 사랑채 정자인 북정 등과 잘 꾸며진 연못을 둔 아름다운 고택이다.조선 숙종 때 좌승지로 증직된 이후식이 안채를 건축하고 손자 이원미가 1719년 사랑채와 대청인 영모당을 완성했다. 대청 북쪽에 영조 때인 1775년 진사 이종주가 건립한 북정이 있다.임청각과 탑동종택이 모두 일제때 군부대가 수용되거나 철도 건설 당시 인부들 숙소로 이용되었는가 하면 철도 건설로 철거 훼손돼 옛날의 풍광을 찾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탑동파 종손 이재익(80)씨는 어릴 때 넓은 백사장에서 멱감고 놀았던 낙동강이 댐 건설과 환경변화로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됐다고 아쉬워 한다. 2025년이면 중앙선 철로가 현 경북도청 쪽으로 이설되면 임청각과 탑동고택이 옛 풍경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문정화 기자 moonjh@idaegu.com

세계 명문대학생들과 함께하는 조정 축제, 달성군에서 열렸다

대구 달성군 구지면 낙동조정장에서 지난 21~24일까지 ‘2019 DGIST 세계명문대학 조정축제 겸 제3회 과학기술 특성화대학 친선조정대회’가 열렸다.올해 5회째를 맞이한 세계명문대학 조정축제는 한국의 DGIST, POSTECH, UNIST를 비롯한 미국 MIT, 일본 동경공업대,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홍콩과기대 등 총 5개국, 7개교에서 1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선수들은 해외 대학과 함께하는 남‧녀 대학부 너클포어(4+), 혼성 에이트(8+) 및 국내 특성화대 학생들 간 펼치는 너클포어(4+) 경기 등 기량을 마음껏 발휘했다.이번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대학별 국제 혼성팀으로 구성된 1㎞ 에이트(8+) 경기로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가 금메달, 홍콩과기대가 은메달, 일본 동경공업대가 동메달을 차지했으며 국내 과학기술 특성화대학 경기 종합우승은 DGIST가 차지했다.특히 유가·포산·현풍중 등 달성군 인근 중학생들로 구성된 300여 명의 응원단이 열띤 응원전을 펼쳤으며 김문오 달성군수을 비롯해 최상국 달성군 의장, 주한미국대사, 미 육군 대구기지 사령관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김문오 군수는 “DGIST 세계명문대학 조정축제는 각 대학 학생들 간 문화적, 학문적 교류 및 도전정신을 키워 진정한 미래의 글로벌 리더로 성장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한편 달성군은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가 주최한 축제가 세계인의 조정축제가 될 수 있도록 경기장 정비 등 행정 및 재정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관내 유관단체 자원봉사자들이 행사를 지원했다. 김재호 기자 kjh35711@idaegu.com

같은 수성라도, 다른 프리미엄, 결국 학군!

정부 규제가 갈수록 강력해지는데도 불구하고 대구 수성구의 분양 열기가 식지 않고 있다. 학군 때문이다.특히 같은 수성구에서도 명문학교와 더 가까운 아파트의 가치가 훨씬 높다는 것.수성구 학모 사이에 가장 확실한 학군입지는 ‘범4만3’으로 통한다. ‘범4만3’은 구 주소로 범어4동, 만촌3동을 말한다.범어4동에 경동초, 동도중, 정화여중·고, 경신중·고가 있고, 만촌3동에 대청초, 소선여중, 혜화여고, 오성중·고, 대륜중·고가 있다.범어4동과 인접한 범어네거리 쪽인 범어 1동에 동도초, 대구여고가 있다.따라서 대구 지하철 2호선 범어역에서 수성구청역, 만촌역, 담티역 구간에 시지방향 오른쪽 구역이 대구 엄마들이 가장 선호하는 학군 명당이다.분양가 대비 프리미엄 시세에서도 확인된다. 입주 3년차에 이르는 ‘만촌3차 화성파크드림’이 전용 84㎡기준 매매가 9억 원을 넘겼고 올 1월에 입주한 ‘빌리브범어’는 10억 원에 육박해 4억 원이 넘는 프리미엄이 생겼다.교육전문 신문 ‘베리타스 알파’에 따르면 2018년 대구지역 일반고 중 서울대 등록자 순위는 경신고가 1위, 대륜고 2위, 경원고 3위, 대구여고 4위, 정화여고·남산고 5위, 혜화여고·오성고 등이 6위였다.이러한 상황에 서한이 만촌3동에 ‘만촌역 서한포레스트’를 이달 중 공개한다.수성구 만촌동 1040-14번지 일원에 들어설 '만촌역 서한포레스트‘는 달구벌대로변 2호선 만촌역이 직선거리 200여m 거리에 있는 초역세권인데다 반경 1㎞ 이내에 오성중·고, 경신중·고, 대륜중·고, 정화여중·고, 소선여중, 혜화여고, 경동초, 대청초, 동도중 등 대구가 선망하는 초·중·고교를 모두 품고 있다. 여기에다 수성학군 학원가 핫라인에 위치한 수성명문교육의 중심입지로 주목받고 있다.서한 분양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수성구 1순위 청약자격 규제가 강화되면서 교육이사를 고려하는 대구 엄마들이 전용 59㎡ 아파트와 똑같은 설계로 청약자격이 자유로운 전용 84㎡ 주거용 오피스텔에 대한 문의가 많다”는 분위기를 전했다.‘만촌역 서한포레스트’는 전용 84㎡와 162㎡, 168㎡ 아파트 102가구, 오피스텔 156실을 포함한 258가구다. 이달 중 공개하는 모델하우스는 수성구 달구벌대로 2564번지에 있다. 이동률 기자 leedr@idaegu.com

김규환 의원, 문 정권 이후 명문 장수기업도 경제상황 나빠져

문재인 정권 들어 정부가 공식 인정한 명문(名門) 장수기업 마저 경제상황이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한국당 김규환 의원(대구 동구을 당협위원장)이 명문 장수기업을 대상으로 문재인 정권 이후인 최근 3년간(2016~2018) 주요 재무 지표를 분석한 결과 75% 이상이 경제상황이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1일 밝혔다.명문 장수기업은 45년 이상 기업을 운영해 온 중견·중소기업 중 경제·사회적 기여도가 높고 지속적 성장이 기대되는 기업이다. 현재 12개 기업이 선정돼 있다.김 의원은 “명문 장수기업 12개 중 9개 기업이 문재인 정권 이후 영업이익률과 순이익률이 하락했다”며 “문 정부 들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의 문제로 우리나라 뿌리산업 기업들의 경영난이 악화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이어 “정부가 공식인정한 강소기업인 명문 장수기업 마저 경제상황이 나빠졌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잘못됐다는 방증”이라며 “각종경제지표와 선진국들도 경고하고 있는 허상뿐인 소주성 정책의 방향을 수정하고 기업들이 경영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역설했다.그러면서 “대구의 경우 명문 장수기업은 커녕 명문 중소기업조차 하나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지역경제 활성화와 지역 간의 균형발전을 위해 대구의 소상공인부터 중소·중견기업의 경제상황을 살릴 수 있는 시장주도성장의 경제정책을 추진해야한다”고 강조했다.이혜림 기자 lhl@idaegu.com

“560년 신라 진흥왕이 울진 성류굴에 다녀가다!”

울진군은 최근 울진 성류굴(천연기념물 제155호) 내부 제8 광장에서 발견돼 보고된 다수의 신라 시대 명문 중 진흥왕이 560년 6월에 성류굴을 다녀간 기록을 확인했다. 새롭게 확인된 명문(심현용 박사․이용현 박사 공동판독)은 ‘庚辰六月日(경진 유월일)/ 柵作榏父飽(책작익부포)/ 女二交右伸(여 이교 우신)/ 眞興(진흥)/ 王挙(왕거)/ 世益者五十人(세 익자 오십인)’이다. 이 내용은 “경진년(560, 진흥왕 21) 6월, 잔교를 만들고, 뱃사공을 배불리 먹였다. 여자 둘이 교대로 보좌하며 펼쳤다. 진흥왕이 다녀가셨다(행차하셨다). 세상에 도움이 된 이(보좌한 이)가 50인이었다”로 해석된다. 잔교는 부두에서 선박에 닿을 수 있도록 해 놓은 다리 모양의 구조물로 이것을 통해 화물을 싣거나 부리고 선객이 오르내릴 수 있다. 이를 통해 경진년, 즉 560년(신라 진흥왕 21) 6월에 진흥왕이 이곳 울진 성류굴에 행차해 다녀간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진흥왕의 이동에는 선박이 활용되었고, 행차에는 50인이 보좌하였으며, 행차와 관련하여 동굴 내부를 잇는 잔교가 설치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같은 사실은 ‘삼국사기’를 비롯하여 기존 역사문헌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신라사를 새롭게 구성하고, 울진 성류굴의 역사적 위상을 밝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전찬걸 울진군수는 “진흥왕이 560년 울진 성류굴을 다녀갔다는 명문이, 1988년 울진 봉평리 신라 비(국보 제242호)의 발견을 이어, 다시 한번 더 신라사 연구의 기폭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심현용 박사(울진 봉평리 신라비 전시관 학예연구사)는 “향후 울진지역에서 진흥왕 순수비가 발견될 가능성도 있다”고 강조하면서 “울진 성류굴의 신라 명문들은 울주 천전리 각석(국보 제147호) 버금가는 신라 금석문의 보고로 한권의 역사책이 새로 발견된 것과 같은 충격적인 사료”라고 그 의미를 부여하였다. 강인철 기자 kic@idaegu.com

울진 성류굴에서 삼국·통일신라·조선 각석 명문 수십 개 발견

천연기념물 제155호 울진 성류굴에서 6세기 신라 시대부터 통일신라 시대, 조선 시대에 이르는 수십 점의 각석 명문이 발견됐다. 이번 명문 발견은 지난 3월21일 군청 심현용 학예연구사와 이종희 한국동굴연구소 조사연구실장이 성류굴 내부 종합정비계획 수립을 위해 동굴 8 광장을 조사하던 중 종유석(석주, 석순)과 암벽 등에 음각된 ‘정원 14년(貞元 十四年)’이라고 새겨진 명문과 화랑 임랑 등 다수의 명문을 처음 발견했다. 이후 노중국 계명대 명예교수 등 관계 전문가들이 3차례에 걸친 추가 조사 결과, ‘신유년’ ‘경진년’ 명 간지와 통일신라 시대 관직명인 ‘병부사’, 화랑 이름인 ‘공랑’, 승려 이름 ‘범렴’, 조선 시대 울진 현령 ‘이복연’ 등 30여 개의 명문을 추가로 발견했다. 심현용 학예연구사는 “신라시대 명문이 있는 국보 147호인 울산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각석’과 역사적·학술적 성격이 유사한 것으로, 신라사 연구에 귀중한 국보급 문화재”라고 평가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한국 고대사 자료가 희소한 상황에서 이번에 확인된 다양하고 수많은 명문은 신라의 화랑제도와 신라 정치‧사회사 연구 등을 위한 중요한 사료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앞으로 각석 명문에 대한 실측과 탁본, 기록화 작업 등 전반적인 학술조사와 함께 동굴 내 다른 각석 명문에 대한 연차별 정밀 학술 조사와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인철 기자 kic@idaegu.com

명문 대학의 길

신재호/ 경북대학교 응용생명과학부 교수 경북대학교에서 학생으로 12년, 교수로서 12년을 경험했다. 그 정도 기간으로는 아직, 이 대학을 세계적 명문으로 만들 방법은 찾지 못했지만, 적어도 상위 랭킹에 오르도록 변화를 주는 방법을 12가지로 정리하였다.1. 대학에 변화를 주려면, 인센티브를 바꿔야 한다. 놀랍게도, 평범한 교수와 직원은 대학의 발전계획서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이런저런 선언적 목표나 지나치게 자세한 실행계획은 혼란함과 피곤함, 그리고 역효과를 가져올 뿐이다. 만약 구성원들의 변화가 필요하다면, 명확한 핵심 목표를 인센티브와 함께 제공하라.2. 최고의 교수진을 대학에 유치하려면, 최고의 리더가 필요하다. 대학의 수준을 올릴 저명한 학자를 초빙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보유한 가장 훌륭한 학자를 각 조직의 리더로 만들어야 한다. 논문을 독려하는, 논문 없는 리더에게 누가 귀를 기울이겠는가? 또한 훌륭한 리더는 ‘저명한’ 인재에게도 학문적 위협을 덜 느낄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적인 인사를 실행한다.3. 채용의 질을 높이기 위한 리더의 개입이 필요하다. 인간은 자신과 같은 다른 사람을 채용하곤 한다. 왜 자기보다 훨씬 나은 사람을 고용해서 인생을 힘들게 만들겠는가? 교수 초빙과 승진과 관련해서는 리더가 책임을 지고 주도하며 하나하나 감시해야 한다. 그저 원서 낸 후보 중에 제일 나은 사람을 채용하는 것은 평범한 선택에 대한 관용을 조장한다. 리더의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채용을 포기해야 한다.4. 우수한 교수를 발굴하고 알려야 한다. 학문의 길은 외롭다. 우수한 학자들에게 주는 가장 좋은 보상은 동료들의 축하이다. 동료의 존중을 받는 학자는 대학에 충성을 보여줄 것이다.5. 고통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변화는 반드시 상처를 준다. 이미 친구가 되어버린 동료를 평가하고 탈락시키는 일은, 학과 단위에서는 일어날 수가 없다. 최종적으로 환부를 도려내는 결정은 반드시 학과의 바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6. 너무 많은 변화는 이득이 없다. 지나치게 잦은 변화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불과 몇 년마다 목표나 전략, 실행계획이 뒤집히는 것은 리더쉽에 조롱만 남긴다. 대학의 변화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변화에는 집중력, 강인함 뿐만 아니라 시간 또한 필요하다.7. 연구비에 대한 확실한 인센티브. 현대 대학은 연구비의 규모가 곧 대학 우수성의 절대적 지표다. 더 많은 연구비 확보를 위해서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인센티브가 부여되어야 한다.8. 위원회와 회의를 줄이고 책임질 결정은 상부에서 하라. 대학 대부분의 일은 훌륭한 전문 행정직원의 능력으로 충분하다. 위원회가 일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고려하라. 절대적으로 필요한 위원회 이외에는 반드시 없애야 한다. 가장 훌륭한 학자들을 가장 전문성이 없는 행정에 소비하지 말라. 행정의 책임은, 위원회가 아니라 리더가 지는 것이다.9. 행정 직원과 학술 직원 (교수) 간의 관계를 명확히 하라. 행정 직원과 교수들이 얼마나 서로를 비난하고 조롱하는지는 다들 잘 알 것이다. 대학의 핵심 비즈니스는 연구와 교육이다. 이 핵심을 양쪽에 진지하게, 그리고 자주 설명해야 한다.10. 체계적 신임 교원 교육은 꼭 필요하다. 직업에 대한 태도, 강의에 대한 아이디어, 학계에서 살아남는 방법, 행정 직원들과의 소통 방식 등등 신임 교원이 알아야 할 핵심 내용을 반나절 안에 소화하는 프로그램을 자주 (적어도 한 학기에 한 번), 그리고 반복적으로 (초임 후 4년간) 제공해야 한다.11. 어떤 조직의 리더든, 적어도 5년 이상을 맡아야 한다. 최고 랭킹 대학을 이끄는 리더들의 평균 재임 기간은 7~10년이다. 성인군자가 아니고서야, 사람은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으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12. 리더에게는 충분한 힘이 부여되어야 한다. 리더에게 실행력과 실적을 원한다면, 그만한 힘이 부여되어야 한다.전통의 명문 대학이 되고 싶다면 변화하라. 경북대 약대 학장을 지낸 송경식 교수가 2004년에 만든 슬로건은 아직도 유효하다. “전통은 지켜나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경산과학고, 2019학년도 명문대학교 대거 합격

경산과학고등학교(교장 박경종)가 올해 서울대학교 등 명문대학교에 대거 합격한 것으로 나타났다.경산과학고에 따르면 올해 서울대 5명을 비롯해 카이스트 16명, 포스텍 12명, 디지스트 5명, 유니스트 22명, 연, 고대 각 4명 등 과학기술원 및 국내 명문대학교에 57명이 합격했다고 밝혔다.경산과학고는 전국 영재고 및 과학고의 치열한 경쟁으로 해마다 대학 입학의 문이 좁아지는 상황에서 전 교직원이 학생들의 학력향상과 연구활동을 열정적으로 지도한 결과 성과를 이뤘다.조기 졸업생으로 서울대 재료공학부에 합격한 2학년 박민진(17) 군은 “입학 후 지금까지 담임교사는 물론 학교 교사 모두가 늦은 밤, 주말까지 교과학습 등 여러 연구 활동을 지도했다”며 “입시상담에서 면접연습까지 헌신적으로 이끌어 주셔서 이런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박경종 교장은 “우수한 교사진의 열성적인지도, 첨단 과학 시설 및 학생들의 노력이 함께 빚어낸 성과”라며 “앞으로 더욱 적극적인 교육활동으로 글로벌 과학 인재 양성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남동해 기자 namdh@idaeg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