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보수’, 무엇이 문제인가

‘위기의 보수’, 무엇이 문제인가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지역의 한 방송사가 최근, 보수 일색의 대구를 집중 조명하는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보수의 섬’, 2부작이었다. 진보의 도시였던 대구가 보수화된 과정과 그것이 지금 대구에 미치는 영향을 반성적으로 고찰한 기획물이었다. 반응이 뜨거웠다. 며칠 사이 유튜브 조회 수가 12만을 넘었고, 응원 댓글도 쏟아졌다.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실은 ‘대구의 보수’ 이전에 ‘한국의 보수’가 심각한 위기다. 수년째 지리멸렬인데다 아직도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합리적 보수 성향의 시민들까지 등을 돌리고 있다. 왜 이렇게 된 것인가? 첫째,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진영의 책임있는 그 누구도 국민과 역사 앞에 사죄하고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국정을 농단한 몇몇 권력자만 법의 심판을 받았을 뿐이다. 보수진영 차원의 성찰과 혁신도 없었다. 각자가 혹은 분파별로 살아남기 위해 뛰었을 뿐이다. 보수정당의 이념과 정치문화는 대통령 탄핵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둘째, 대표적인 것이 종북몰이와 좌파타도 구호다. 많은 국민이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고 있는데 보수정당들은 여전히 냉전적 사고와 대결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지금도 상대를 빨갱이, 주사파, 친북좌파로 낙인찍어 상황을 반전시키려 한다. 하지만 그 효과는 전같지 않다. 오히려 자신을 역사의 미아로 만들고 있을 뿐이다. 셋째, 한국 현대사에 대한 편향된 인식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제 식민사관, 친미반공 세계관, 재벌중심 경제관, 기득권 중심의 권위주의적 질서관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신격화한다. 삼청교육대를 미화하고 위안부를 매춘부였다고 모욕하기까지 한다. 한·일 경제전쟁 국면에서도 줄곧 일본을 편들었다. 그러는 사이 한국의 보수는 ‘애국’이라는 자산마저 잃게 되었다. 보수가 아니라 극우, 매국일 뿐이라는 비판을 자초한 이유기도 했다. 넷째,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들도 버려졌다. ‘자유와 인권’이 대표적인 예다. ‘자유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버리고 지도자가 솔선하는 것이 보수진영의 미덕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과거의 보수정권들은 자유와 인권을 심각하게 유린했으며, 최근의 보수정권 하에서는 어렵게 쟁취한 자유와 인권이 다시 곤두박질쳤다. 자유와 인권을 지키기 위한 희생은 진보진영의 몫으로 넘어갔고 자유와 인권은 진보진영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다섯째, ‘안정감’도 원래 보수주의의 강점이다. 그것은 법과 규범과 질서를 중요하게 여기는 보수주의 세계관에서 나온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는 준법과 질서로부터도 너무 멀어져 있다. 한때는 차떼기로 상징되는 정경유착과 부패 범죄로 심하게 비판받았지만, 최근의 패스트트랙 충돌을 거치면서 폭력 이미지까지 떠안았다. ‘법치’와 ‘안정감’도 한국 보수에게는 더 이상 강점도 자랑도 아니게 된 것이다. 여섯째, 보수진영의 또다른 미덕은 ‘품격’이었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진영 지도자들과 강성 지지자들이 보여주는 말과 행동은 너무 거칠다. 품격이 아니라 증오와 저질 폭언이 한국 보수의 트레이드마크로 굳어졌다. 막말정당이라는 별명까지 갖게 되었으니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시대와 조응하는 역사인식도 부재하고, ‘애국’ 이미지도 잃었으며, 자유와 인권이라는 핵심가치마저 진보진영에게 빼앗겼고, 법치와 품격과 안정감마저 자랑할 수 없게 되었으니, 무엇으로 국민의 지지를 구해야 할지 난감해졌다. 유일하게 기댈 것은 상대가 실패하는 것이다. 상대진영에 대한 무조건 반대와 정국 파행이야말로 고유의 가치와 매력을 잃어버린 보수, 성찰과 혁신을 포기한 보수진영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가 된 것이다. 물론 보수진영 안에서 자성과 혁신의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늘 변방으로 밀려났다. ‘배신’ 혹은 ‘내부총질’이라고 매도될 뿐이었다. ‘대구 보수’가 주목받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한국 보수’의 혁신을 가로막는 중심에 ‘대구 보수’가 있다는 지적이다. 보수의 세가 강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지향하는 세계관과 문화가 구시대적이어서 문제라는 것이다. ‘보수를 살리는 심장’이 아닌, ‘퇴행보수의 진지’로 역할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방송에서 던진 묵직한 질문이 주목받는 이유다. ‘대구 보수’의 존재이유는 무엇인가? ‘한국 보수’의 혁신, 그를 위한 ‘보수의 섬, 대구’의 성찰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종교개혁 기념일’과 한국 기독교

‘종교개혁 기념일’과 한국 기독교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502년 전, 1517년 10월31일이었다. 독일의 비텐베르크 대학교 교회 문에 95개조 반박문이 붙었다. 교황청의 부패와 교회의 일탈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겼다. 유명한 ‘면죄부 판매’는 그 중의 하나였다. 주인공은 마틴 루터 사제였다. 1521년, 그는 사제직을 파문당했다. 그 일로 마틴 루터는 종교개혁의 상징이 되었고, 10월31일은 종교개혁 기념일이 되었다. 물론 마틴 루터가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었다. 실은 훨씬 이전부터 종교개혁의 불씨가 자라기 시작했다. 마틴 루터로부터 102년 전인 1415년이었다. 체코의 얀 후스 사제가 화형에 처해졌다. 역시 교회의 부패와 교황청을 비판했다는 이유였다. 37세에 프라하 대학 총장에 취임해 안락하게 살 수 있는 그였지만, 바른 신앙과 정의에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후스보다 40년쯤 전에도 큰 사건이 하나 있었다. 위클리프의 얘기다. 그는 영국 왕 에드워드 3세의 궁정사제였다. 왕을 따라 로마를 방문하고 돌아온 1374년 이후부터 교황청의 부패와 타락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1381년, 봉건제 타파를 주장한 와트 타일러의 난이 터지고 공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의 사상과 설교가 민중봉기를 부추겼다는 이유였다. 1415년, 교황청은 이미 31년 전에 사망한 그를 이단으로 단죄했고 묘를 파헤쳐 유해를 불태우라고 결정했다. 기독교는 그들의 순교와 열정으로 시작된 것이다. 근대사회의 토대가 된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 원칙을 위해서도 많은 이들이 죽거나 고난을 감당해야 했다. 순교의 역사는 20세기 들어와서도 이어졌다. 1945년 4월9일, 독일 루터교회의 행동하는 신학자, 본회퍼가 수용소에서 사형당했다. 히틀러가 자살하기 3주 전이었다. 히틀러 암살 모의에 가담했다 체포된 것이다. 그는 히틀러에 대해 분노하며 좌절했지만 당시 독일 교회들에 대해서도 절망했다. 평화주의자였던 그가 암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기도 했다. 나치 하에서 독일의 대부분 교회들은 히틀러에 무릎을 꿇었다. 독일을 재건할 ‘하나님의 선물’이라며 히틀러를 떠받들었고 나치에 적극 협력했다. 일제 강점기 때 신사참배와 전쟁 헌금에 앞장섰던 조선 교회들과 흡사했다. 해방 후 무소불위의 세속권력을 위해 기도하며 찬양했던 기독교 지도자들의 모습과도 빼닮았다. 물론 한국 기독교의 역사에서도 본회퍼처럼 십자가 지고 순교했던 신앙인들이 적지 않았다. 일제 때 수차례 투옥되었다가 1944년, 옥중 순교한 주기철 목사가 대표적이다. 신사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였다.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고 1910년 3월, 교수형으로 생을 마감한 안중근 의사도 있었다. 그는 천주교 신자였다. 해방 직전인 1945년 2월, 27세의 나이에 일본 감옥에서 옥사한 저항시인 윤동주도 크리스천이었다. 독재정권에 항거하다 6차례 투옥, 고문, 망명 등 고난의 삶을 살다 간 박형규 목사도 있었다. 그의 별명은 ‘한국의 본회퍼’였다. 종교개혁 기념일은 한국 교회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먼저 눈에 띈 것은 광화문과 청와대 앞의 대규모 집회와 기도회였다. 전광훈 목사가 주관한 집회들이었다. 듣기 거북할 정도의 막말 잔치였다. ‘대통령은 간첩 총지휘자다’, ‘대한민국을 김정은에게 바치려 한다’, ‘공수처법을 만들어 나라를 공산화하려 한다’, ‘공수처법이 만들어지면 5만명이 죽게 될 것이다.’ 참석자들은 아멘과 박수로 호응했다. 논리와 이성은 없고 가짜뉴스와 선동으로 가득했다. 사랑 대신 증오가 넘쳐났다. 기도회를 내건 사실상 정치집회였다. 또 있다. 자신은 본회퍼를 따른다고 했다. 대통령을 히틀러에, 현 정부를 나치에 비유한 것이다. 지나친 견강부회다. 극단의 지적 혼돈이고 가치 전도다. ‘집회에 참여하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지우겠다’는 말도 했다. 구원받을 수 없게 하겠다는 뜻이다. 기독교 신자에게는 심한 저주다. 기독교 교리상 있을 수 없는 말이다. 신에 대한 도발이기 때문이다. ‘방향잃은 신앙’이 얼마나 잘못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저급한 정치와 ‘생각없는 믿음’이 결합될 때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목회자와 신앙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은 못되더라도, 최소한 신의 뜻을 참칭하진 말아야 한다. 혹세무민하며 예수와 기독교를 세상의 조롱거리로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종교개혁 502주년을 맞아 품어본 바람이다.

검찰이 더 문제다

검찰이 더 문제다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두달쯤 전이었다. 그때만 해도 늘 있는 여야간 정쟁쯤으로 생각했다. 장관 후보들의 흔한 결함들, 그리고 야당의 도넘은 시비들 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조국후보가 장관직에 취임하든 중도에 낙마하든 큰 관심도 없었다.그런데 언제부턴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조국후보의 온갖 의혹을 다룬 언론 보도가 엄청난 분량으로 쏟아지기 시작하면서다. 후보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와 딸과 아들 심지어 동생과 그의 이혼한 전처까지, 온 가족의 삶이 부정되고 매도되는 것을 보면서다.‘이건 과하다’는 생각을 갖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특수부 검사 대거 투입, 70군데 압수수색, 당사자 조사는 생략된 채 늦은 밤 진행된 정경심교수 기소, 11시간 자택 압수수색 등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수사해야 할 의혹들이 여럿 있다고 해도 심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무소불위’ 권력의 전형을 보는 듯 했다.‘왜 이런 거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윤석열총장이 처음부터 조국장관의 임명을 반대했다는 보도를 접했다. 대통령에게도 그 뜻을 전했다고 한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장관임명권을 무력화하는 수준까지 나아간 것이라면 문제다. 대통령이 조국교수를 장관후보로 지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대통령이 그를 후보로 지명하고 난 뒤에는 청문회 과정에서 낙마시키기 위해, 청문회까지 마친 뒤에는 대통령이 임명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그런 것이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다음의 질문이 연이어 꼬리를 문다. ‘윤석열총장이 저렇게까지 조국장관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국장관과 그 가족의 흠결과 비리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판단한 것인가?’ 그런 것이라면 검찰의 수사는 정의구현을 위한 것으로 박수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조국장관이 강력한 검찰개혁을 주장해 온 인사였다는 사실이다. ‘혹시 검찰개혁을 반대하는 검찰조직의 저항은 아닐까?’ 충분히 그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맥락과 상황이었다.혹여 그런 것이라면 그동안의 검찰 행동은 지탄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국민의 이익이 아닌 검찰조직의 기득권 보호를 위해 사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권력의 가장 나쁜 자세기도 하다.검찰의 권력 행사가 설령 과했다 하더라도, 검찰조직의 기득권이 아닌 사회정의 구현을 위한 것이었기를 지금도 바란다. 하지만 의문 하나는 여전히 남는다. 수사과정의 일탈이다. 검찰은 몇몇 언론에게 수사중 기밀사항들을 흘려 왔다. 확인없이 받아쓰기만 하는 언론들도 문제지만, 검찰은 그런 무책임한 언론들을 적극 활용했다. 낙인효과를 기대하며 사회적으로 매장하려 했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수사기밀은 야당에게도 흘러 들어갔다. 늘 정부에 적대해 온 야당과도 공조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그렇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조국장관을 낙마시키려 한 검찰의 의도까지 의심받게 된 것이다. 과묵하게 수사에만 집중했다면 그런 오해까지는 피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사회정의가 아닌 검찰조직의 기득권 수호를 위한 과잉수사로 오해받기에 충분한 정황인 것이다.조국장관과 그 가족들에게 흠결이 있고 그들로 인해 공정사회를 바라 온 청년세대의 실망이 컸다 하더라도,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하고, 야당과 언론까지 활용하면서 사실상 정치행위를 해온 것이라면, 그런 검찰이야말로 정의사회로 나아가는 길에 더 큰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문득 노무현대통령의 평검사와의 대화 장면이 생각난다. 안하무인 그 자체였다. 노무현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간 ‘논두렁시계 사건’도 떠오른다. 망신주기의 전형이었다. 우병우와 김학의도 스쳐 지나간다. 도넘은 제식구 감싸기였다. 검찰공화국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은 이유다. 문제는 촛불정부가 탄생한 뒤에도 여전하다는 사실이다.검찰개혁에 대한 국민 여망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중요한 국가 과제로 부상했다. 검찰개혁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절제와 공정이다. 검찰제도 개혁의 중요한 원칙은 견제와 균형이다. 매우 어려운 과제라는 사실은, 정부 수립 후 한 차례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로 극명하게 확인되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정의롭고 겸손한 검찰로 거듭나는 계기이기를 기대해 본다.

기후위기, 청소년에 답이 있다

기후위기, 청소년에 답이 있다홍덕률대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사람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죽어가고 있어요. 생태계 전체가 무너져 내리고 있어요. 우리는 대멸종의 시작점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돈과 끝없는 경제성장의 신화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9월23일, 뉴욕 유엔본부의 한 회의실이었다. 주인공은 스웨덴에서 온 16세 여학생, 그레타 툰베리였다. 그가 말한 ‘여러분’은 ‘기후변화 정상회의’에 참석한 세계 각국의 정상들을 가리킨다. 연설 중에 분노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울컥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는 이렇게 이어갔다.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과학은 분명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계속 외면해 왔어요. 지금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행동하지 않고 있는 거라면 여러분은 악마나 다름없습니다.”그는 작년 8월부터 매주 금요일 등교를 거부하고 1인시위에 나섰다. 스웨덴 의회 앞에서였다. 손에는 ‘기후를 위한 학교 거부’라고 직접 쓴 피켓 하나를 들었다. 기후위기에 무책임한 정치인들을 성토하기 위해서였다. 함께 하겠다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후를 위한 교사 거부’라고 적은 피켓을 들고 그레타의 옆자리에 앉은 교사도 있었다. 특히 청소년들의 호응이 컸다. 이후 세계 각국에서 등교거부 시위에 참가한 학생이 140만 명에 달했다. 지난달 23일에 열린 ‘기후변화 정상회의’를 겨냥해서도 세계 각국에서 집회와 시위가 있었다. ‘글로벌 기후 파업’이었다. 9월20일에서 27일까지 전세계 139개국에서 4천638건의 집회가 열렸다. 20일에 열린 1차 집회에는 130여개국에서 400만 명이 참가했다. 유엔 기후행동 정상회의 및 유엔 기후주간의 마지막 날이었던 27일에도 전 세계가 들썩였다. 캐나다의 몬트리오올에서만 50만 명의 시위대가 가두행진을 벌였고 이탈리아에서는 160개 마을과 도시에서 모두 100만여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독일의 시위대에서는 ‘기후가 아닌 시스템을 바꿔라’는 손팻말이 눈에 띄었다. 한국의 시민들도 함께 했다. 정상회의가 시작되기 직전인 9월21일 토요일이었다. 부산, 순천, 대구, 서울 등 전국 10개 도시에서 집회가 열렸다. 각계의 330개 단체로 구성된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준비했다. 서울 대학로에만 5천여 명이 모였다. 미온적인 정부와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들이 도마에 올랐다. ‘온실가스 이제 그만’, ‘화력발전 이제 그만’ 등의 구호가 울려 퍼졌다. 비상상황을 선포할 것을 정부에 촉구하기도 했다. ‘NO EARTH, NO LIFE! 지구가 없으면 생명도 없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직접 만들어 참석한 여학생도 있었다. 대구 시민들도 힘을 보탰다. 참가자들이 거리에 죽은 듯이 눕는 ‘다이 인(die-in)’ 퍼포먼스가 열렸다. 동성로, 태풍 ‘타파’가 뿌리는 비를 맞으면서였다. 청소년들은 별도의 집회를 조직했다. 3월15일과 5월24일에도 전국 주요 도시에서 시위를 진행한 경험이 있었다. 5월 시위 때는 서울교육청으로 달려가 환경교육을 실시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툰베리가 시작한 ‘기후를 위한 등교거부’ 이후 세계적으로 확산된 청소년 시위에 한국의 청소년들이 적극 결합해 온 것이다. 9월27일에도 500여 명의 청소년들이 등교를 거부하고 서울 광화문에 모였다. 한 학생은 ‘대학 갈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다. 다시 툰베리의 유엔 연설로 눈을 돌려본다. “여러분들이 배출해 놓은 수천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할 임무를 우리 세대에게 떠넘기고 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기술도 나오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기후위기의 위험한 결과를 감수하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듣는 내내 전율이 일었다. 우리나라는 탄소배출과 관련해 매우 위험한 나라로 분류되고 있다. 예컨대 탄소배출 증가율이 OECD 국가중 1위이다. 우리의 생활방식대로 전세계 사람들이 살아간다면 지구가 3.5개가 필요하다는 연구결과도 나와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정부든 정치권이든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9월23일,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기후위기 연설에 대해서도 반응은 싸늘했다. 반환경 성장 이데올로기와 지금까지의 에너지 과소비 생활방식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분노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들의 엄중한 책망과 요구에 진지하게 답해야 한다. 기후위기에 관한 한 답은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에게 있다.

대구대 학생 창업 지원에 팔걷었다

대구대학교 창업지원단이 창업동아리 학생 및 (예비)창업자들의 창업 활동 전용 공간인 ‘코워킹 스페이스(Co-working Space)’를 만들었다.창업선도대학 육성사업 지원을 받아 창업보육센터 1호관에 조성된 코워킹 스페이스는 176제곱미터(약53평) 규모의 학생 창업 공간으로, 창작실과 세미나실, 휴게실 등으로 구성됐다.지난 13일 대구대 경산캠퍼스 창업보육센터 1호관에서 이뤄진 개소식에서 참가 학생들은 각각의 창업 동아리를 소개하고, 수송용 드론, 홈제어 시스템 등 자신의 창업 아이디어를 구현한 시제품 등을 선보였다.또 창업동아리 간 네트워킹을 통해 아이디어를 보완하고 협업을 이어가겠다는 창업 활동 의지도 다졌다.권순재 대구대 창업지원단장은 “이번에 조성된 1호점 외에 캠퍼스 곳곳에 2호점, 3호점을 계속 만들어갈 계획이다”이라면서 “코워킹 스페이스가 창업을 준비하는 학생의 네트워킹 및 협업 공간으로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한편, 대구대는 지난 2016년 창업선도대학 육성사업에 선정된 후 대학 내 창업 활성화와 인프라 구축에 힘쓰고 있다. 특히 올해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주관하는 창업지원패키지사업(예비창업, 초기창업, 창업도약)을 모두 수행하는 전국 유일의 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경산자인단오제 대학장사 씨름대회’ 8일 개막

경산시체육회가 주최하고 경산시씨름협회가 주관하는 ‘2019 경산자인단오제 대학장사 씨름대회’가 오는 8일 자인면 계정숲 씨름판에서 개최된다.경산자인단오제 부대행사로 열리는 이번 대학장사 씨름대회는 3일간 진행된다. 2017년에는 ‘경북 씨름왕 선발대회’로, 지난해부터 ‘대학장사 씨름대회’로 개최되고 있다.대학장사 씨름대회에는 대구대학교와 영남대학교를 비롯한 전국 8개 대학교 씨름단 선수와 임원 등 180여 명이 참가한다.경기는 대학부는 단체전(팀당 7명으로 구성) 및 개인전(-90㎏급과 +90㎏급 2체급), 일반부는 당일 현장에서 신청을 받아 개인전(별도의 체급 제한 없이 무제한급 1체급)으로 진행된다.참가자격은 대학부는 대한씨름협회 등록선수이며 일반부는 중학교 등록선수를 포함한 대한씨름협회 등록선수는 참가할 수 없다. 만 30세 이상자는 제한 없이 참가할 수 있다.경산시체육회 관계자는 “참가하는 힘과 기량을 갖춘 대학 선수의 수준 높은 경기를 통해 우리 고유의 민속 씨름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호응을 끌어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동해 기자 namdh@idaegu.com

대구 특수학교 급식실 다목적강당 확충

대구시교육청이 대구광명학교 등 5개 특수학교의 급식실과 다목적강당을 새단장한다.대구교육청은 지난 37년간 사용하던 대구대학교(남구 대명동 소재) 내 대강당을 학교법인 영광학원 5개(대구광명·영화·보명·보건·덕희학교) 특수학교의 공동 급식실 및 다목적강당으로 사용을 위해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다고 최근 밝혔다.이를 위해 교육청은 31억5천만 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350석 958㎡ 규모의 공동 급식실을 새롭게 꾸며 기존 광명학교 급식실을 포함해 2개 급식실을 공동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또 1천200㎡ 규모의 다목적강당을 리모델링하면서 보건학교 강당을 포함한 2개 다목적강당을 체육·문화·예술 활동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활용하게 된다. 그동안 교실 배식을 하는 대구보건학교를 제외한 4개 학교는 광명학교 급식실을 공동 이용하면서 학교별 자리를 지정하고 학생들 급식 시간을 다르게 운영하는 등 불편을 겪어왔다.다목적강당 역시 최근 미세먼지 등으로 대기질이 좋지 않아 야외 활동에 제약을 받는 상황에서 보건학교 강당 한개로 5개 학교 사용에는 한계가 있어 이번 리모델링 및 확충 공사가 이뤄지게 됐다. 강은희 교육감은 “공동 급식실 및 다목적강당 리모델링 공사로 학생들이 장애 특성에 맞는 급식 공간과 기후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 안전한 시설에서 마음 놓고 다양한 예체능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이봉도 구미YMCA 이사장

이봉도(56) 구미YMCA 신임 이사장은 “YMCA의 주인인 회원들과 함께 청소년·청년운동과 마을공동체운동, 시민운동, 평화통일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라며 “이사진과 실무진, 회원들과 의논하고 소통하면서 이사장직을 수행하겠다”고 말했다.이 신임 이사장은 경남 거창 출신으로 대구대학교 법학과와 대구한의대 사회복지대학원을 졸업했다.현재 비산어린이집 시설장을 맡고 있으며 구미YMCA 부이사장, 구미참여연대 대표, 구미풀뿌리희망연대 대표, 구미시 민간어린이집연합회장, 전국 민간어린이집연합회 비상대책위원장, 경북지방경찰청 인권위원 등을 지냈다. 임기는 2년이다. 류성욱 기자 1968plus@idaegu.com

대구대 정상화 출범…정이사 선임 마쳐

대구대 정상화의 닻이 올려졌따.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되던 대구대학교 학교법인 영광학원이 정이사 선임을 완료하고 새출범한다.교육부는 지난달 사학분쟁위원회에서 선정된 정이사 7명에 대한 선임을 완료하고 24일 영광학원에 통보했다.신임 정이사는 △송해익 법부법인 삼일 대표 변호사 △정대영 창원대 교수 △김효신 경북대 대외협력처장 △박윤흔 한국공법학회 고문 △장익현 학교법인 배영학숙 이사장 △김준호 춘강교육재단 이사 △장길화 대구대 총동창회장까지 7명이다.임기는 2019년 4월25일부터 2023년 4월24일까지 4년 간이다.영광학원은 정이사들의 임기가 시작되는 만큼 25일 오후 3시 대구 남구 대명동 사무실에서 첫 회의를 소집하고 이사장 등을 선출한 뒤 재단 운영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이로써 대구대 영광학원은 지난 5년 간 이어진 임시이사 체제를 마감하고 정이사 체제로 운영됨과 동시에 재단 정상화의 길을 걷게 됐다. 윤정혜 기자 yun@idaegu.com

이백효 구미교육지원청 교육장

이백효(58) 구미교육지원청 신임 교육장은 “학생들의 역량을 발현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지원하고, 성장하는 학교문화 조성을 위한 협력적인 교육공동체를 구현하는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 신임 교육장은 경북 의성 출신으로 경북대학교 사범대학과 대구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81년 강구중학교에서 교직에 첫발을 디딘 후, 성주중학교 교감, 경북도교육청 장학사, 쌍림중학교 교장, 화랑교육원 연구관, 경북도교육청 체육건강과장을 거쳐 예천교육지원청 교육장을 지냈다.류성욱 기자 1968plus@idaegu.com

화가 권정호, 대구대에 3억원 기증

대구대학교 명예교수이자 유명 화가인 권정호 교수가 학교법인 영광학원에 발전기금 3억 원을 전달했다. 또 소장품 100여 점도 대구대학교에 함께 기증키로 했다.대구대는 29일 경산캠퍼스 성산홀 2층 회의실에서 권정호 명예교수 발전기금 및 소장 작품 전달식을 가졌다.이날 전달식에서 권 교수는 발전기금 1억 원과 소장품 일부를 기탁했고, 나머지 2억 원은 조만간 전달키로 약정했다.권정호 명예교수는 “평생에 걸쳐 작업한 작품들을 몸담았던 대학에 기증하고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줘 고맙다”며 “앞으로 많은 지역민이 작품 관람을 위해 대학을 찾아오게 된다면 대학과 지역을 하나로 잇는 동시에 학교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김상호 총장은 “대학 내 권정호 미술관을 설치해 권 교수가 작품을 기증한 뜻을 기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한편 권정호 명예교수는 1983년 대구대에 부임해 2009년 정년 퇴임까지 26년간 미술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했다.윤정혜 기자 yun@idaegu.com